|
탈출 12,43-51
파스카
- 하느님이 모세와 아론에게(אל משה ואהרן)
교회 공동체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 에 대해서 함께 성찰하고 얘기해 볼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었으면....
성서 백주간 하는 성서 백주간 가족들 함께 묵상하시면서 이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셨겠지만, 그런 틀에서 아직 얘기 못나누어 보신 분들이 있다면 묵상 나눔 하실 때 나의 개인적인 문제 또 공동체 문제에 관해서도 함께 얘기해 보실 수 있는 거기서 꼭 결론이 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성서 백주간을 하면서 정책을 하나 만들어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이렇게 자신들이 느끼는 느낌들을 나누고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무언가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며 걱정하는 그런 나눔의 모습들 안에서 그런 것들이 모여지고 모여지면 좋은 정책도 나올수 있지 않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신부님이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우리 사회가 그런 자유주의 내지는 신 자유주의에 시기를 살다 보니까 "신 자유주의" 라는 개념 밑바탕에는 어떤 것이 있는 겁니까?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개인과 공동체 중에서 어떤게 더 중요합니까? 공동체보다 우선시 되는 개인.
세상의 흐름이 신자유주의라면 교회는 그것을 벗어나서 생각해야 할텐데, 교회는 하느님과 공동체의 관계라는 좋은 출발점을 갖고 있어...
부모는 자녀의 행복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주고 싶지만 그것을 통해서 이 아이들이 궁극적으로 행복해 질수 없는 상황입니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가 행복해야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미와 동남 아시아와 이런 곳에서 하루하루 생존해야만 하는 그런 어떤 어린아이들...다음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어떤 세상을 준비해야 될 것인가? 라는 폭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의 커다란 역사, 하느님의 창조부터 종말까지의 큰 지평 위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현재 나의 삶에서 어떤 방향을 어떤 삶의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생각해 보시고 각자의 느낌을 나누어 보시는, 나눔들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탈출기의 텍스트도 굉장히 넓은 시간적 공간적인 지평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탈출 12,43부터 시작합니다.
탈출 12,43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파스카 축제 규칙은 이러하다. 외국인은 아무도 파스카 제물을 함께 먹지 못한다.
저희 성경은 이 부분의 제목을 파스카 축제 세칙 이라고 붙였는데, 신부님은 그냥 파스카(하느님이 모세와 아론에게)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텍스트가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 한 얘기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탈출기란 이 텍스트를 궁극적으로 보면, 탈출기에 저자와 하느님께서 그것을 읽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지만,
텍스트 내에 들어가면은 텍스트에 내적 구조안에서 누가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항상 염두해 두면서 텍스트를 읽어 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야훼가 모세와 아론에게 하는 이야기다. 라는 것을 조금 이렇게 머리에 꼭꼭 눌러서 기본적으로 프린트를 해놓고 그 다음부터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탈출 12,43의 이어서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파스카 축제 규칙은 이러하다. 외국인은 아무도 파스카 제물을 함께 먹지 못한다.
신부님은 텍스트를 조금 바꾸셔서, 직역
야훼가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다.
파스카 규칙(חקת הפסח) 이러하다.
이방땅의 모든 이들은(כל בן נכר), 콜 벤 네카르, 그것을 함께 먹지 못한다.
성경이 말하는 파스카 규칙이라는 부분은 히브리 말로 후까 하 페사흐 라고 읽을 수가 있는데,
오늘 강의 중에 기억해야 할 단어 ; 후 까( חקה) 여성형, 훅은 남성형
토라(תורה),라는 것은 율법의 큰 뭉텅이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어로 가르침, 율법이고, 구약성경의 첫 다섯편. 즉 모세오경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토라는 율법서 전체, 헌법의 개념임
반면에 하나하나의 규정을 부르는 호칭이 있으며 그중 파스카에 관한 규정들이 후까(훅)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는 파스카 후까 헤 페사흐 라고 하니까 페사흐의 규칙인데,
신부님이 왜?? 힘들게 직역을 하면서 우리 성경을 규정하냐면? 그 다음 문장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방 땅의 모든 이들은 그것을 함께 먹지 못한다." 에서 '그것' 이라면 뭘까요? 앞문장에 나온 규칙을 먹는 것은 아닐테고, 그것 이라는 대명사는 파스카를 함께 먹지 못한다.의 명사를 받고 있을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파스카 규칙이라고 했을 때 그 파스카는 파스카 제물을 얘기할 것입니다.
따라서 페사흐의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파스카 축제, 파스카 제물, 또는 그냥 본래 동사로서에 지나간다는 의미의 지나감
여기서 얘기하는 파스카규칙(페사흐)은 파스카 제물,
즉 양에 관한 규칙입니다.
결국 파스카 제물은 양이니까, 양에 관한 규칙입니다.(한번더 설명)
그 양을 어떻게 먹느냐에 관한 규칙을 이야기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44(b)에서 '외국인은 아무도 파스카 제물을 함께 먹지 못한다.' 라고 되었는데 그 외국인이라는 말은, 이방땅의 모든 아들이 직역입니다.
히브리 말로 (콜-벤- 네카르, כל בן נכר) 라고 얘기하는데 구약 전체의 문장에서 본다면, 이방땅의 모든 아들 이랬으니까?
이 흐름 자체로 텍스트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미 가나안에 도착해서 거기에서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가나안에 도착해서 살고 있는데 거기 함께 살고 있느 사람들 중에 히브리 혈통에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불렀느냐? 히브리 혈통은 아니지만 가나안 땅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이방땅의 아들 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피로써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그와 같은 외국인들을 지칭하는 그 내용이었을 것이다. 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 이제 부터입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 디테일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규칙을 만들다 보면 그 경계선의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 부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는 그 애매한 부분....본당 신부를 하다 보면 제일 많이 겪게 되는 문제가 바로 이럴 경우에 세례를 줘도 되는지, 안되는지,
이럴 경우에 혼배를 줘도 되는지, 안되는지.... 이 혼배가 무효가 되는지, 안되는지....가 첨예한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도
외국인은 그것을 함께 먹지 못한다.
라고 되었는데, 이제 질문들이 생기게 됩니다. 종은 어떻게 됩니까?..등등 거기에 대해서 규정들이 디테일하게 들어가게 됩니다.
첫째. 종에 관해서 얘기합니다.(종은 종인데 종에도 여러부류가..)
탈출 12,44
돈으로 사들인 종(עבד)은 누구든
할레를 받았으면 함께 먹을 수 있다.
따라서 돈을 주고 사지 않은 종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포로 또는 종으로 내가 누굴 샀는데 종들끼리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도 자동적으로 종이되는 경우에는 논하지 않겠고...
돈으로 사들인 종은 할례를 받았으면 함께 먹을 수 있다. 종은 주인에 속하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은 할례만 받았다면 이스라엘인과 동등하게 취급한다.(법적인 의미에서 완전하게 동등하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파스카에서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속한 종. 돈으로 산 종이고 할례를 받았다면 함께 먹을 수 있다)
탈출 12,45
거류민과 머슴은 함께 먹지 못한다?
우리 말로는 종과 머슴이 별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에서는 구별이 됩니다.
-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주인에게 속합니다(주인의 소유), 하지만 주인이 극단적으로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본래 고대의 개념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로서, 주인이 생사 여탈권을 갖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법에서는 '종이 잘못하면 때려도 좋다. 하지만 죽이지는 말아라." 나중에 좀더 완화가 되면 '종이 잘못하면 때려도 좋다. 하지만 다음날 못일어날 정도로 때리진 말아라.' 이런식으로 조금씩 종의 인권이 보호되는 입장으로 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은 자유로운 존재는 아닙니다]
- 머슴은?
신약에서 보면 '포도원 주인이 아침에 장터에 나가서 포도를 따야 하는데 같이 딸 사람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 그게 일종의 머슴의 개념.
종은 주인의 소유이나 머슴은 일용직 고용(일꾼)의 관계
그런데 여기서 거류민과 머슴을 같은 의미로 외국인 일용직자, 라고 얘기한 것인지 아닌지에 관해서 학자들에 토론이 있습니다.
이것을 똑같은 사람들로 보고 두가지 단어로 표현한 걸로 보는 중의적인 의견과
그 두가지를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만약 구분해 본다면...
거류민(תושב),
외국인으로서 이스라엘에 살면서 종이나 머슴으로 고용되지 않은 자유직종인들
머슴(שכי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용된 외국인.
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어느 영어 학원에 영어 강사가 호주사람이, 캐나다 사람이 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거류민입니다.
반면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머슴에(요즘엔 종은 없고.. 사업주와 일정한 고용관계에 있으니) 근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대적인 생각으로 보면 종이나 머슴중에 고른다면, 차라리 머슴을...
하지만 고대의 개념에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종은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지만 반면에 주인이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기에 생존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머슴은 하루의 일하고 월급만 주면은 내일은 어떻게 될지? 주인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주인에게 의무가 없습니다)
고대의 개념이지만,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종은 정규직이고(사대보험이 적용) 반면에 머슴은 비정규직(오늘 일하고 내일은 불투명??)
따라서 고대 사회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가 나와 나의 가족의 안전을 더이상 지킬수 없을 때,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모를 때, 아예 가족을 다 데리고 누군가의 종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기록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탈출 12,46
어느 집이든 한 집에서 먹어야 한다. 고기를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외국인이 먹더라도 어느 이스라엘 사람 한 집에서 먹어야 한다. 라고 장소를 규정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파스카 제물의 고기를 집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안되고,( 이 의미는 고기 자체는 파스카 제물인 만큼 거룩해서 그 거룩한 제물이 세속적인 공간으로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거룩함은 지켜져야 한다)
앞의 12,10 에서 거룩한 것은 거룩한 시간을 넘어서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탈출 12,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 거룩한 시간 내에 먹어야 한다. 거룩함의 보존에 관한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
예를들어 미사 시간에 받은 성체를, 우리는 그것을 언제까지 영해야 합니까?
3초내에, 5초내에 규정은 없지만, 전례적인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성체 후에 사제가 기도를 합니다. 그 전까지는 영하셔야 합니다.
또 어떤 곳은 가톨릭 교회인데,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만.
성체를 다 받고, 자기 자리로 갑니다. 그리고 나서 사제가 영할 때 함께 영하는 그런곳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되도록 이면 성체는 받아서 빠른 시간 안에 모시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가끔씩 교리 시간에 교리를 충분히 듣지 않으신 분들이 간혹,
착한 며느리님이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자가 봉성체?? 를 하려고 하신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교회법으로 조금 더 나가면 몰영성체가 됩니다.
항상 성체가 성전이라는 공간을 떠날때는 미사시간이라는 영성체 후 기도 전까지에 기간을 넘길때는, 특별한 전례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제가 모시고 가는 것 이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에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와 같은 생각들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왜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과 구분하는 그런 출발점은 어디서 나왔을까??
따지고 따지고, 파고 파고 보면은...지금 탈출기 텍스트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거룩함을 보존하려고 했던 전통이 나중에 오늘날 교회의 이런 전통으로 발전하고 자리 잡게 되었다. 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가 더 특이합니다.
탈출 12,46
어느 집이든 한 집에서 먹어야 한다. 고기를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 뼈(עצם)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뼈를~~안된다. 이것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뼈를 부러뜨리면? 왜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고기를 삶아도 된다고 했습니까? 안된다고 했습니까? 적어도 탈출기 안에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구워 먹어야 된다. 나중에는 삶아 먹고 왔다갔다 하는 성서의 규정들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일단 여기서는 고기는 구워먹어야 하고 삶아 먹으면 안된다고 했으니,
삶기 위해서는 양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뼈를 부러뜨리겠죠??
즉 삶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금지하기 위한 것일까?) 것일까?
아니면은?
구약에서는 골수를 먹는 것이 금지가 되어있습니다. 부정합니다.
따라서 골수를 먹지 말라는 의미에서 뼈를 부려뜨려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예상해 보자면은
"뼈를 부러뜨려서는 안된다."
→ 는 그 제물이 온전해야 한다. 온전함을 강조
하는 틀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뼈"(עצם)
º 민수 9,12 :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되고, 뼈를 부려뜨려서도 안 된다.
파스카 축제의 모든 규정에 따라 그것을 지내야 한다.
이 규정이 탈출기와 같이 반복되는 것으로 봤을 때, 매우 엄밀하게 준수 되었던 그와 같은 규정일 것이다.
탈출 12,47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כל עדת ישראל)가
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라고 얘기하면 뭔가 사람들의 집합체일텐데...누구를 얘기하는 것일지? 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 분명히 인간 내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것은 누구일까요? 성인 남성(20세 이상)
그러면 여자와 어린이,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공동체에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아닌지 이게 문제가 됩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 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다인들이 안식일에 시나고가 전례를 하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숫자가 스무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몇명이 부족한 경우, 작은 유다인 공동체에서는 시나고가 전례를 할 수 없습니다. 신부님께서 그곳에서 공부하실 때, 전화가 옵니다.(유다문학 공부를 하고 계시는 것을 그분들이 알고 전례에 참석하실 수 있으니)
"우리 시나고가 전례를 해야하는데, 19명 밖에 없는데 와줄수 없냐?"
그때는 할례를 받았는지, 유다인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고, 그때 규정은 적어도 성인 남자 스무명이 모여야 한다. 라는 규정만 있는 겁니다.
파스카 전례, 라면은 할례를 받았느냐? 유다인이냐? 아니냐? 이런 것들을 따지겠지만 시나고가 전례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성인 남자만 있으면 되는데, 아직까지도 그 구성원이 누구여야 하느냐? 스무살 넘은 성인남자인 조건이 채워져야 하는 규정
공동체 구성원의 규정은 오늘날의 유다인 전례에도 남아 있어 스무살 넘은 성인 남자만을 중심으로 볼것 인데,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탈출 12,48
네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גר)이 주님을 위하여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면,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그는 본토인처럼 파스카 축제를 함께 지낼 수 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아무도 함께 먹지 못한다.
다른 단어로 계속나옵니다. 외국인, 거류민, 이번에는 이방인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 이라는 구절은 앞선 거류민 또는 머슴과는 구별되는 개념일 겁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은 할례를 통해서 공동체에 구성이 될 수 있고..
"네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
이 이방인은 할례를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어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르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데, 그 가나안 땅은 빈땅이 아니라 본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점령한 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본토에 그냥 살던 사람들은 함께 살았을 것 같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그렇게 여호수아기나 그런 기록들에 나와있는 것처럼 전쟁을 해서 다른 사람들을 싹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점점점점 함께 살면서 점점더 가나안 땅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간 것이 아니냐? 라고 많이 짐작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어떤 확증을 잡을 수는 없지만, 참으로 이상한게 여호수아 시절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시기에 전쟁을 한 흔적이 고고학적으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 고고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의견을 굉장히 강하게 얘기합니다. 전쟁을 통해서 가나안 땅이 정복되어진게 아니라 천천히 변화가 시작이 되었고,
어떤 일정한 시기가 지난 다음에, 그런 어떤 신학적인 문화적인 지배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겠느냐? 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따라서 이스라엘 땅에서는 살지만, 이스라엘의 혈통을 지니지 않는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머슴이라는지 종이라든지, 그런 어떤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일지라도 역시 파스카 축제를 함께 할 수 있는데 조건은? 할례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유다교는 유다인들만 유다인이 아니라, 외국인도 유다교인이 될 수 있고, 소위 말하는 종교적인 지평이 넓어지는 겁니다.
그전 까지는 야곱의 후손들만 유다인들이었는데, 이제는 야훼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 야훼 신앙을 가졌다는 표시로써 할례를 받는 사람이면 누구나 유다 전통에 속한다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고 열어 지는 것입니다.
탈출 12,49
이 법(תורה)은 본토인에게나 너희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에게나 동일하다."
그러므로 어떤 겁니까? 따라서 본토인이라도, 이스라엘 사람이라도 부모가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들 할례 안받을래~~그러면 그 아이는 파스카 축제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앞에 있는 것들은 법규정을 머슴, 거류민, 종일 경우에 각각 다르게 이야기 하였지만 뒤에가서는 하나로 구분해 버리는 겁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로,
그래서 이제는 이방인도 할례를 받으면 파스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이법은 본토인인 너희에게나 이방인이게나 동일하다.
직역하면,
탈출 12,49
하나의 토라가 본토인과 이방인에게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토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토라가 있다는,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이 법적인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 토라의 평등함에 관해서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강조하는 틀을 우리가 볼수 있습니다.
토라의 평등함
º 레위 16,29 : 본토인이든 너희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든 마찬가지이다.
º 레위 17,8-15 : 누구든지 이스라엘 집안에 속한 사람이든 그들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든
º 레위 18,26 : 그러니 너희는 내 규칙들과 내 법규들을 지켜, 본토인이든 너희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든 이 온갖 역겨운 짓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지 않도록 하여라.
요즈음은 어떻습니까?
그 해외에 이렇게 가서 보면은 본토인과 이방인들 가운데 누가 더 우대를 받습니까? 본토인들이 우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동남아에 어떤 나라에 다녀온 분이 화가나셔서, 말하기를
"그 나라 정말 이상해요.. 똑같은 호텔인데 자기나라 사람에게는 하룻밤에 20불을 받고, 외국인에게는 200불 300불을 ...받아요."
이런 경우 본토인들이 우대를 받습니다.
따라서 외국나가서는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받는 불이익 같은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외국인들이 더 이득인 것 같다고 하시며...
신부님이 어느 본당에 계실때 그 근처 이쁜 주택단지가 새로 만들어져서 산보나 갈까? 하면서 그 집들의 가격은 얼마나 한지 물어보셨대요..거기 관리하신분이 신부님을 흘깃 보더니, "여기는 한국 사람들은 못삽니다." 그렇다면 외국인 빌리지 그와 같은 거로 정부에서 허가를 내준....
그리고 돌아오셔서 화가나신게 신부님이 외국살 때는 외국살아서 차별을 받았는데, 한국에 와서도 오히려??? 차별을 받는? ㅜ
하지만, 여기서는 본토인이든 이방인이든 평등하다...토라는 하나의 토라일 뿐이다. 따라서 이 생각을 우리가 한다면은,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그렇게 노동하는 사람들의 권리는지켜지고 있는가??
설혹 우리나라의 법이 아직까지 시야를 갖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인권은 지켜주려는 그와 같은 노력들을 우리가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들을 우리가 중요하게 해보아야 합니다.
탈출 12,50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이 구절은 이 앞부분에 있는 12,28을 닮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인
탈출 12,51
바로 이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대로 편성하여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라는 것은 41절을 닮아 있습니다.
탈출 12,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날, 주님의 모든 부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여기서,
파스카 제물과 관한 규정을 마무리하면서 그 결말 부분에서 하나는, 그 앞선 파스카 규정에 마지막 부분인 28절의 결말을 본따서 두고있고,
또 다른 하나는 열째 재앙과 이집트에서 나오는 그 대목에 마지막 부분의 결말이 하나 또 여기에 와있습니다. 그 두 결말이 여기서 합쳐져 있는 겁니다.
하나의 큰 뭉텅이에 규정에 대한 앞선 결말과 또 다른 하나의 큰 뭉텅이에 전체적으로 이야기 진행, 내러티브가 끝나는 그 두가지의 결말이 여기서 함께 만나고 있다. 라는 것에 대해서..따라서 이것은 오래된 편집의 작업 일까요?
아니면 굉장히 늦게 된 편집의 작업일까요? 굉장히 뒤늦은, 앞선 이야기들을 다 알고 있는 그러면서 전체를 하나로 합치려는 그런 편집자의 노력을 우린 여기서 만날수 있습니다.
이렇게 파스카 제물에 관한 규정에 대해서 몇가지 생각해 볼 내용들이 있습니다.
종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면은, 돈으로 산 종이 있고,
종에게서 태어난(구약에서는 씨종이란 말을 씀) 종의 자녀로서 종이된 경우,
또는 물려 받거나 선물받은 종(소유니까),
그리고 부채로 인한 종은 주로 이스라엘 사람 끼리에서, 특히 부채로 인한 종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고 마지막은 전쟁 포로로 인한 종입니다.
부채로 인한 종이 중요한 이유는?이스라엘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부채로 인한 종이 되던지...이스라엘 사람이 이방인에게 종이 된 경우에는
율법의 규정을 따르자면, 그를 빨리 부채로부터 해방 주어야 합니다
누가? 가까운 친척이 그를 부채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의무! 인데 간혹 그 사람이 미워서 해방시켜 주지 않으면, 그게 나에게 죄가 되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부채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에서 대속의 개념이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속하셨다. 구속 사업이다.
이것은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고 있는데, 죄의 노예로 살고 있는데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대신 갚아주심으로서 인간이 죄에서 해방
따라서 우리는 죄의 노예로 살 필요가 없다..우린 더 이상 누구가의 종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다. 자유에 대한 선포와 맞물려 있는 그 신학적인 흐름에 출발점은
"내 형제가 누군가에게 종이 되었다면 대신 갚아 주어라."
여기서 44절에 보면은,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창세 15장과 17장에서
두번 나오는데 15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제물을 차려 놓고 있으니까 불타는 모습으로 제물 사이를 가로 지르는 ....
17장에서는 계약을 맺는데 나는 너에게 후손과 땅을 주고 너와 너희 후손들은 할례를 해야한다. 라는 두 가지 계약의 틀이 있는 것을 기억합니다.
여호수아에서도 보면 할례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서 5,2-9입니다.
여호수아에서 길갈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거기에서 돌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두번째로 할례를 베풀어라. 라는 야훼의 말씀을 여호수아가 실행하는데 이게 굉장히 여기서 보면은 어찌 보면은 변명같은 왜? 이걸 해야하는지에 관해서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여기서 할례 받았다고 한 부분에서 언제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파스카 바로 직전에 할례하고 나오지는 못했을 겁니다.( 할례하고 통증으로 바로 움직일수 없으니)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살면서 그 안에서 할례의 전통을 지켰었다. 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런데 실제로 그랬었느냐? 관해서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텍스트를 믿는다면, 그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고 광야에서 태어난 백성은 할례를 받지 않은 겁니다. 사십년 동안,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이제 가나안 땅으로 넘어가지 전에 적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는, 그와 같은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았고 그와 같은 사건이 거기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 장소의 이름을 오늘날 까지 길갈이라고 한다.라는 그 내용까지를 우리가 여호수아기 5,2-9 에서 읽게 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구약에서 할례에 관한 내용이 그렇게 빈번하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닌다.
창세기 17장에서 발견, 창세기 21장에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베푸는 장면 발견 34장에서 시메온과 레위가 자신들의 누이를 대신해서 스켐에 복수하는 장면에서 스켐 사람들에게 우리집안과 결혼하려면 할례 받아라. 해놓고서 죽여버리는,
그리고 함께 읽은 탈출기 4장에서 치포라가 아들의 포피를 잘라서 하탄담밈,
우리 성경에서는 '피의 신랑'입니다. 라고 얘기하면서 목숨을 건지는 그와 같은 이야기,
그리고 12장에 와서 파스카 율법적인 관점에서 파스카를 지내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 라는 정도의 이야기고 의외로 구약 성경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는 내용을 우리가 보게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여호수아기 5장 뿐만 아니라 민수기 9장에서도 파스카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이 됩니다. 파스카 축제에 관해서
그런데 민수기 9장에서는 할례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할례뿐만 아니라 파스카에 관해서도 구약성경 전체에서 지금 우리가 읽는 요부분에서 언급이 되고 앞서 얘기한 민수기 9장, 여호수아기 5장에서는 언급이 됩니다만,
그 외의 부분에서 언급이 되는 것은 2열왕 13장에서 언급 될 뿐입니다. 따라서 파스카, 할례, 이와 같은 규정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빈도수로 등장하지 않는다.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것이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둘째 이것이 이때부터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래 전통적으로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유배를 갔다온 상황 아래에서 이와 같은 전통들이 중요하게 되었고, 그것을 앞에 있는 이야기로 역으로 투영한 것이 아닐까? 라고 짐작해 보는 것도 역시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히브리어는 최승정신부님 탈출기I 을 참조하였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