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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위기의 시대,
자기계발이 아닌 올곧음과 사랑으로 돌아가라!
2011년 인디고서원, 서울시교육청 추천도서였던 《왜 학교는 불행한가》의 저자 전성은의 교육론을 담은 책,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1965년부터 약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전성은이 구상하는 ‘교육’ 3부작 중 두 번째 책이다.
교육이 ‘학습’과 ‘공부’로만 인식되는 현실 속에서 저자는 사랑과 올곧음이 교육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국내 최초의 혁신학교인 거창고등학교를 만든 정신적 스승들(전영창, 유보성)의 발자취를 따라 이 시대가 놓치고 있는 교육의 참 정신을 살핀다. 현 교육체제는 기득권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교육일 뿐, 교육에 무지한 사람조차 자신들이 교육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노 선생의 일갈을 담았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이 책에서 전성은은 힘의 논리를 떠나 사랑의 논리로 실행하고 불의를 떠나 정의를 추구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사명이라고 역설한다. 아무쪼록 우리 교육계가 이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면 좋겠다”고 추천사를 보내왔다.
시대의 아픔을 내 것으로 끌어안는 것이 교육
전작에서 교육의 목표는 ‘평화’임을 밝혔던 그는 이번 책을 통해 교육의 근본을 살핀다. 그리고 교육은 지식 전달이나 자아실현이 아니라 시대정신인 사랑과 정의를 직접 살아내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교육을 고민하는 후배 교사와 학부모에게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교육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것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하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일본 강점기 시대의 교육은 대한의 독립이었고 군부 정권 시대의 교육은 민주주의였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현 대한민국의 교육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육은 결국 ‘사랑’이라는 천명을 아는 것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강요나 지식의 전달이 아닌, 교육자 각자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가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적 불의와 부패에 끝까지 굽히지 않고 싸워 사랑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한편, 사랑 실현을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역사 속에서 사랑 실현으로 교육을 실천했던 시대의 스승들인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와 부처의 일화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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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교육은 실패했어.” 이 책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혁신학교이자 인성과 학업능력에서 우수한 학교로 손꼽히는 거창고등학교의 실질적 창시자인 전영창 교장이 했던 말이다. 그는 저자 전성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빚더미에 앉은 학교를 인수하고, 정치적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교사들이 떠나버리고 마는 현실 속에서도 거창고를 지켰던 전영창은 왜 자신의 교육이 실패했다는 말을 남겼던 것일까? 그가 실패했다고 말한 교육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들에서 시작된 이 책은 ‘교육의 본질’을 향해 간다.
인간은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질문에 답한 책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육을 부정하며 교육의 개념에 접근한다. 교육은 지식의 습득이나 전달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 시대, 사회를 억누르고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하는 노력과 실천임을 저자는 주장한다.
“교육은 불의와 양립할 수 없다. 교육 최대의 적은 무식함, 교육 받지 못함이 아니다. 이기주의, 곧 사회적 불의다. 유·무식을 떠나서 천명을 보느냐 못 보느냐는 불의를 보느냐 못 보느냐에 달려있다. 천명을 본다는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불의를 본다는 말이다. 천명을 안다는 말은 불의를 안다는 말이다. 천명을 산다는 말은 불의와 싸운다는 말이다(57쪽).”
전성은이 생각한 진정한 교육자는 일본 학교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조선 학생에게 돌아가 독립을 위해 힘쓰라고 말해준 일본 교사나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들에게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피아노를 치라고 가르치는 아버지이다. 자기주도 학습법이나 맞춤형 공부가 교육의 전부인 냥 개인의 입신과 양명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한국 교육계에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 유의미하고 무게감이 있다.
교육은 옳다고 믿는 내 길을 가는 것
하지만 저자는 교육자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것은 결국 이데올로기가 되어 죽음의 문화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말이다. 그저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교육이라는 뜻이다.
“교육은 길 감이다. 길 가르쳐줌이 아니라 길 보여줌이다. 길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길을 가면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올지 말지는 상대방이 선택할 몫이다. 남의 인생을 내가 결정하려고 해선 안 된다. 그것은 그 사람(혹은 신)에게 맡겨야 한다. 그것을 내가 결정지어 주려고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의 전수다. 이데올로기는 아무리 좋은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인다. 죽음의 문화를 가져온다. 교육은 이데올로기의 전수가 아니다(26쪽).”
사람들은 흔히 문제점을 지적하면 대안을 내놓으라고 한다. 공교육의 폐해가 드러나고 교사들은 직업의식을 잃고 아이들은 자살로 내몰리고 있는 이 암담한 교육 현실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대안은 단 한 가지, 그 길을 가는 것뿐이라는 이야기를 저자는 전하고자 했다.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다’의 부정법으로 본질에 접근하다
간혹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간과할 때가 있다. ‘인간은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인간이 받아야 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저자는 교육 현장에서 40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 질문들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치열한 고민은 아홉 가지의 이야기가 되었다.
40년 동안 이어진 시간적 순서와 연결로 이루어진 아홉 가지 이야기들은 특히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다’는 ‘부정법(via negativa)’을 통해서 본질로 깊숙이 다가간다. 사랑, 정의 등의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정의보다 부정적 정의가 더 올바른 이해를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각 개념들이 먼저 무엇이 아닌가를 밝히고 나서 그 부정에 대한 긍정으로, 즉 부정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만 한정해 긍정적 정의를 내려 오해를 최소화했다.
‘성공하는 사람을 길러 내는 일이 아니다, 지천명하는 일이다’,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길 가기다’, ‘절대적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모든 진리가 상대적임에 눈뜨는 일이다’ 등과 같은 방식으로다.
◆ 추천사
“어떤 책은 온몸으로 쓰고 전율하며 읽는다. 이 책이 그렇다. 전성은의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온 교육의 진실들이 살아서 펄떡펄떡 뛴다. 국내 최초의 혁신학교, 거창고를 만든 견고한 사상의 뿌리를 체감할 수 있다. 놀랍게도 책을 읽으며 여러 번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젖었다. 이 책에서 전성은은 힘의 논리를 떠나 사랑의 논리로 실행하고 불의를 떠나 정의를 추구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사명이라고 역설한다. 아무쪼록 우리 교육계가 이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면 좋겠다. 교육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지론을 담은 이 책이 다른 언어로 번역돼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나라에서 읽히기를 기대한다.” - 곽노현(전 서울시 교육감)
“전성은은 교육학에 대한 이론적 통찰이나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사람살이가 빚어내는 일종의 무늬이다. 사람은 이야기를 듣고 살고, 이야기를 지으며 산다. 이야기가 삶을 만든다. 그래서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꺼내기 위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힘이 있다. 한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전성은이 주창하고 있는 지천명으로서의 교육은 우리가 가야 할 ‘오래된 새 길’이 아닐까? 전성은이 쓴 글의 얼개가 다소 성기어 보여도, 글 속에 담긴 그 뜨거운 혼의 불꽃에 접속되어 참교육의 길을 걷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 김기석(문학평론가·청파감리교회 목사)
교육은 궁극적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행위이다. 그 행위는 내 동포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한다. 내 나라, 내 조국, 내 민족을 사랑하는 일은 인류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 교육은 행위다. 행위는 시간과 장소를 가진다. 즉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교육은 역사 속에서 행해지는 사랑 행위다. 역사 속에서 행해지는 동포 사랑 행위다. - P. 29
인간은 역사와 영원을 연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야기’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어느 민족, 어느 부족이나 그들만의 신화와 설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교육이 역사와 영원을 하나가 되게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교육은 무엇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하는 것이다’를 이야기를 중심으로 비유와 상징적 언어를 사용해 풀어보려고 한다. - P. 32~33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을 줄이고 없애는 길은 오직 사랑임을 깨닫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동포가, 백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돌아가 그들과 고통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 P. 46
교육은 불의와 양립할 수 없다. 교육 최대의 적은 무식함, 교육 받지 못함이 아니다. 이기주의, 곧 사회적 불의다. 유·무식을 떠나서 천명을 보느냐 못 보느냐는 불의를 보느냐 못 보느냐에 달려있다. 천명을 본다는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불의를 본다는 말이다. 천명을 안다는 말은 불의를 안다는 말이다. 천명을 산다는 말은 불의와 싸운다는 말이다. - P. 57
불의는 부패를 낳고 부패는 불의의 온상이 된다. 교육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더라도 불의·부패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불의와 부패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요인이지, 가난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 P. 61
대안을 찾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안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찾은 대안에 머물지 말고 계속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길을 가는 것이 모든 학문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본(사랑)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구체적 모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 P. 68
대안은 꿈을 향해, 더 밝고 더 따뜻한 세상을 향해 지금 이곳에서 내가 내딛어야 할 한 걸음이다. 내 뒤를 이어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한 걸음, 한 걸음이 보태어질 ‘나의 한 걸음’이다. 남의 한 걸음이 아니다. 나의 한 걸음이 곧 대안이다. - P. 70
교육이 인격을 기르는 일이라면 결국 교육이란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더 크고 더 깊게 하는 일이다. 자아완성은 인격완성이고 인격완성은 사랑완성이다.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사랑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원수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을 완성한 사람이 자아가 더 완전하게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P. 86
교육을 받은 사람은 누군가가 타인에게 고통당해 느끼는 아픔을, 내가 책임질 이유가 없는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아픔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바로 나라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남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그는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기술을 습득했다고 하더라도 남의 아픔에 무관심하다면 그는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다.
- P. 117
“사람이 얼마나 사람다워졌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의 마음이 아파지는 반경이 어디까지인가, 나아가서 그 아픈 마음이 얼마나 깊고 뜨거운가로 측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척도가 사람이 얼마나 사람다운지를 재는 절대적인 척도는 아닐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척도임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 P. 115
진정한 도덕은 사람과 공동체를 계급이나 계층, 남녀 등의 어떤 형태로도 차별 짓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은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구별해서 차별하거나 군림해서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다. 그래야 도덕이다. 갈라놓아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도덕은 제국의 논리다. 그건 힘의 논리다. - P. 124
자기가 받은 천명은 자기에게 절대다. 남에게도 절대가 아니다. 천명의 근원이요 귀소인 사랑은 각자에게 절대일 뿐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 신앙, 사상, 이론, 주의, 가설이나 자기가 속한 종교, 국가, 정당, 조합, 지역, 인종 등을 자기와 동일시해 절대라고 알고 믿으며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한다면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길을 가게 된다. 그런 것들은 주인이 아니다. 그런 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면,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죽음의 역사를 만들게 된다. - P. 158
교육을 받은 사람은 낙심하지 않는다. 다만 절망할 뿐이다. 절망할 때마다 한 단계씩 성숙한다. 자신에 대한 절망 없이는 성숙도 없다. 절망은 깊을수록 깊은 성숙을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