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또한 총 4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한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톱스타의 모든 면을 갖췄기에 가능하겠다.
무엇보다 특히 여자에게 치명적이었던 이혼에도 그녀는 특유의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영화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과 결혼해 스타감독과 여배우의 결합으로서 떠들썩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배우 최무룡과 결혼했고 1969년 또다시 이혼했다.
무엇보다 헤어지면서 한 말이 화제가 되었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로 이혼해도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최무룡은 영화 제작 등 사업을 벌이고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김지미가 떠안을 여러 가지 부담을 덜어주고 톱스타인 아내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며 이혼을 결정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김지미는 1991년에 심장내과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4번째 결혼을 했지만 10년이 채 지나지 못해 이혼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또한 8번의결혼과 이혼으로 할리우드 호사가들을 즐겁게 했는데,4번의 결혼과 이혼한 김지미에게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말은외모 뿐 아니라 결혼생활에서도 정말 딱 맞는 별칭인 것 같다.
'라디오스타'에서 최민수가 아직도 김지미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며
아버지와 헤어졌어도 자신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최무룡 또한 동료배우 강효실과 결혼해 최민수를 낳았으나 결국 이혼했고, 이후 김지미와 결혼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살아본 적 없어 결혼을 포기하면서도 막연한 그리움을 가졌다는 최민수는 현명한 부인을 얻은 덕에 여러가지 기행에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재혼조차도 실패한 연예인은 참 많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의 결혼 또한 큰 화제를 모았었다.
1948년 영화로 데뷔한 최은희는 당시 촬영기사였던 김학성과 결혼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남편인 김학성이 포탄을 맞고 장애인이 되며 불화를 겪는다.
이후 영화감독이었던 신상옥과 함께 여러 작품을 하며 사랑에 빠졌고, 1954년 김학성과 이혼 후 바로 재혼한다.
김학성은 최은희와 신상옥을 간통죄로 고소했으나 곧 취하했고 이에 관해 여러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5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신상옥과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는 작품을 많이 배출했으나 1976년 이혼하며 22년 결혼생활을 종지부 짓는다.
이유는 신상옥 감독이 여배우 오수미와 바람을 펴 2명의 자식까지 몰래뒀던 것이다.
하지만 1978년 1월 최은희가 북으로 납치되고 전남편이었던 신상옥이 7월에 연달아 납치되며 북한에서 재회했으며1986년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했다.
신상옥의 불륜상대였던 오수미는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 납치되며 신상옥의 두 아이와 남겨졌고 이후 사진작가 김중만과 재혼했었다.
1984년 신상옥 감독이 탈북에 성공해 오수미는 자신이 키우던 두 자녀를 신상옥 감독에게 다시 돌려보냈고 김중만과의 결혼 생활도 결국 이혼으로 끝을 맺게 됐다.
신상옥 최은희의 북한 탈출로 신상옥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김중만에게 안기부 직원들이 찾아와 아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강제출국 당했고 미국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오수미는 이후 배우생활을 이어갔지만 그리 주목받지 못했고 마약에까지 손을 대며 인생 하락세의 길을 걸으며 1992년 교통사고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