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문기(화가, 시인, SDA 서울도슨트협회 회장) 무의식적 충동과 문학적 응시로 화면을 경영하는 신석주의 수채화는 존재론적 물 (水)의 메타포로써 노장 철학을 모던아트의 어법으로 엮어내고 있다. 작가 신석주가 강렬한 문학적 저항과 철학적 몸짓으로 추스르는 낭만적 사랑의 잉여물들은 감성적 모순율과 해체적 언어로 독자적 조형성을 창출하고 있다. 신석주의 작품들은 우주의 근원으로 향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시적직관(詩的直觀)으로 모더니즘의 자기동일성을 뚫고 나아가 ‘예술을 위한 예술(fine art)’이 아닌 ‘예술의 가치를 위한 예술’이 가능한 이유를 반성적으로 얘기 하고자 하는 작품 의도를 엿보게 한다. 이러한 신석주의 수채화는 포지티브공간과 네거티브공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지만 매우 경제적 감성의 공간을 저울질하며 추상적 유희의 신선한 어법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지요. 결코 여백의 미가 포지티브공간이 될 수 있음이다. 동양미학의 동시대적 해석과 서양미술의 물질적 사유를 개념화 시키는데 난해한 점을 감안하여 화가 신석주의 철학적이며 문학적인 감성의 성격은 작품이 곧 사랑이고 사회적 공동의 선(善)이며 공감과 감동의 불꽃이기를 희망하는 칸트미학의 상징성을 실현하기를 갈망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칸트(Kant)는 미(美)가 초감성적 이념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현시할 때 객관성을 갖게 된다고 말함으로써 다시 <미>를 도덕적 선(善)의 상징능력으로 환원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석주의 작품에 담긴 역동적인 선(線line)과 색채들은 추상 수채화의 장점인 음악적 공간의 유희본능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성의 충동과 사유를 소박한 격정과 공감의 향기로 환원시키는 휴머니틱한 애정을 연출하는 곳까지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신석주의 작품은 기운(氣韻)과 골법(骨法)의 동양미학을 구현 한다는 의미에서 서양화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 되며, 동양적 직관의 운율과 여백의 미를 휘저어내고 있는 것이다. 즉 우주의 에너지(氣)를 작가 내면의 기(aura)로 품어낼 수 있는 야심적인 공명(共鳴)의 음악적 조형감각으로 생명의 우주적 진동을 표현해 내고 싶어한다. 이렇듯 신석주의 작품들은 한 폭의 바람처럼 채색되는 관조적이며 명상적 필치로 태어나는 수줍은 바다처럼 빛과 어둠을 한 몸에 담고 미소 짓는 대지처럼, 사춘기의 섬처럼, 눈물 젖은 별빛처럼, 혹은 여명과 황혼의 질감으로 흠뻑 젖어 내리는 삶의 흐뭇한 후렴인 듯, 2차원(평면)의 삶속에 간추려지는 생성의 음률을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놀이 본능에 타오르는 그림으로 보인다. 이렇게 천진한 순수 감성으로 출발한 신석주의 회화는 시적공간의 외침으로 타오르다가 철학적 사유의 꽃으로 열리기도 하고 은유적 물결이 되어 종이 위에 번지고 스치면서 스며들고 배어 나오는 듯 촉촉한 입술로 삶의 이야기를 조립한다. 시작되는 듯 머무름인 듯 우월한 침묵의 발걸음에 동행하며 사물의 언어와 만난 신석주의 선험적 의식의 축제성은 새로운 몸짓으로 춤추며 비정형 회화의 서정적 내면풍경을 우주적 무의식에 접근시키고 있다. 때문에 신석주의 지적감성의 파도는 미적향수와 동시대적 조형양식 사이에서 마찰 없이 자유로운 자아도취의 에너지로 낭만의 지평을 열어가며 작업에 몰입한다. 흰 종이의 숨결 속으로 감추어 졌다가 다시 스며 나오는 황홀한 흐느낌의 색채들은 <수련의 꿈>이나 <계관지정 > 같은 작품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국적 영혼을 노래하듯 뜨거운 무의식적 모티브와 의식적 삶의 서정성을 융합시키는 탄력성을 구사하고 있으며 물기어린 메시지를 연출하기도 하다. 이 물(水)맛 자체를 우연성과 필연적 인간성으로 조화 시키며 다스리는 감각은 아마도 삶에 대한 성찰과 존재의 얼룩진 그늘을 개인 신화로 승화시키는 주술적 암시의 묘사력도 바탕에 깔고 있다. 조형미에 대한 ‘유희본능’과 정감어린 터치와 어울리는 절묘한 색채들의 본능적인 감각은 물론 수채화에 대한 경력과 기본기에 대한 경지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이렇게 순발력과 해학적 이미지 산출에 대한 대담성은 예술은 만들어지기보다 탄생되기를 바라는 신석주의 영감어린 음악적 조형감각 덕분이며 추상적 기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추상충동과 감정이입’을 최초로 논한 ‘보링거’의 논리에 ‘호딘’은 추상화 (抽象化)와 감정이입(感情移入)의 대립개념으로 문제제기를 했으며 추상화(抽象化)는 현실 세계로부터의 탈출개념이며 불안의식의 표출이지만 <감정이입>은 융의 말대로 신비적 동일화의 과정에 의해서 그 현실세계로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원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상표현주의의 감정이입과 합리적 이미지라는 이원론을 극복하고 있는 신석주의 작품세계는 추상표현주의(Informal) 양식의 아방가르드적 분열과 소외를 넘어서는 동양적 감성으로서의 역설적 직관이며 성상파괴적 비인간화의 절대적 형식주의를 추월하는 형식으로 시적 상상력의 에너지로 삶의 고뇌와 향기를 함축적으로 숙성시켜서 표현하는 동시대적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상대적 가치가 다시 인간적으로 절대화 되는 삶의 진지한 절대 선(善)과 음악적 충동과 감동으로 생명의 흐름을 낭만적 영혼의 빛깔로 이끌어 내고 있는 <시인 같은 화가>, <화가 같은 철학자>를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계를 향한 완성된 자연인으로서 자아를 현시하며 언어화 시키고자 하는 신석주의 작품들이 생명의 에너지와 우주적 기(氣)의 호흡을 포용하며 사회적 가치실현과 행복을 창조하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누게 된다면, 우리들의 공감과 긍정의 미소가 신석주의 작품 속에 되돌려져 그 마음의 온도가 뜨거워질 것이며 떨리는 심장으로 감동의 작품들이 탄생하리라 믿어본다. 작품 ‘천리동풍(千里同風)’처럼 ‘봄의 길목’에서 만나는 봄비처럼 우리를 우주적 아침의 향기 가득한 삶의 지평으로 초대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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