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만추(晩秋)」
내가 스물세 번째 가곡 「만추(晩秋)」를 완성한 것은 사실 2024년 11월 6일 이었다. 이 가곡은 정말 우연히,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완성한 곡이었다.
나는 몇 달 전부턴가 내가 스무 살 시절 아내를 만나고나서 부터 썼던 내 일기와 내가 그녀에게 썼던 편지, 그녀가 내게 보내준 편지들을 하나씩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가곡을 만들려면 우선 가사가 있어야 하는데 마땅한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고, 나에게 가곡의 영감을 주는 것은 역시 옛날 우리가 스무 살 시절부터 열병처럼 서로에게 사로잡혔던 그 시절의 이야기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우리가 그 시절에 주고 받았던 글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성의 보고(寶庫) 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 시절처럼 진실하고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리고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었으니까. 내가 자서전을 쓰기위해 그 시절의 글들을 읽었던 때는 어떻게 보면 대충 읽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그때의 글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면 그 글 속에서 단 한 줄이라도 좋은 문장이 나올 수 있고, 그러면 이를 모티브로 하여 새로운 가곡의 가사를 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76년, 내가 그녀를 만나고 나서부터 우리가 주고받았던 편지와 글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러한 글에서 찾은 문장들을 철저히 가려내서 “글모음” 이라는 파일에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 글이 쓰여진 날짜도 적어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든 글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짧은 문장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옛날 노트와 편지를 읽다가 발견한 것이 「골고다의 십자가」 였고, 이 시는 거의 그대로 성가곡이 되었다. 사실 최근에 내가 만든 「마지막 편지」도 그녀가 내게 준 편지의 글을 토대로 만든 것이고, 「사랑」, 「불씨」도 전부 이러한 과거 내가 써놓은 글 속에서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내가 군(軍) 시절인 1978. 10. 29.에 노트에 적어둔 글에서 짧은 시를 한 편 찾았다.
어두워가는 하늘 저 편에
한 떨기 유성이 지고 있다.
밤은 깊어가고
모두가 떠나버린 숲에
슬픔처럼 앉아 있는 젖은 눈동자
어디로 가는 길목인가
가랑잎 지는 소리 끊이지 않는데
돌아보며 돌아보며
멀어져 가는
이름 모를 후조의 날개짓 소리
사실 이 글은 제목도 없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읽어보니 시의 운율이 느껴지고 선율만 붙이면 가곡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시에 「만추(晩秋)」 라는 제목을 붙여본 것이다.
그리고 유성(流星)이라는 한자어는 ‘별꽃’으로 바꾸고, 후조(候鳥)도 ‘철새’ 라고 수정하였으며, 내용도 조금 다듬었다. 그 결과 완성된 가사는 이러하였다.
만추(晩秋)
어두워가는 하늘 저 편에
한 떨기 별꽃이 지고 있네
밤은 깊어가고
모두가 떠나버린 숲에
슬픔처럼 앉아 있는 젖은 눈동자
어디로 가는 길목인가
가랑잎 지는 소리 끊이지 않는데
돌아보며 돌아보며
멀어져 가는
이름 모를 철새들의 흐느끼는 소리
이름 모를 철새들의 흐느끼는 소리
가사가 완성되자 선율은 금세 붙여졌다. 멜로디는 첫줄만 떠오르면 다음 줄부터는 쉬웠다. 이렇게 하여 나의 스물세 번째 가곡 「만추」가 완성되었으나 아직 녹음을 하지 못하였다.
https://youtu.be/ue-mjUI2PCs?si=72AMtMzp8Gwi6o2s
첫댓글
이 삼복이 지나면
만추 선선한 가을이 오겠지요
한곡씩 마무릴 하시면
뿌듯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