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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十回 曹丕废帝篡炎刘 汉王正位续大统
제80회: 조비가 황제를 폐하여 유씨 한나라를 찬탈하고 한중왕은 제위에 올라 대통을 잇다.
却说华歆等一班文武,入见献帝。歆奏曰:“伏睹魏王,自登位以来,德布四方,仁及万物,越古超今,虽唐、虞无以过此。群臣会议,言汉祚已终,望陛下效尧、舜之道,以山川社稷,禅与魏王,上合天心,下合民意,则陛下安享清闲之福,祖宗幸甚!生灵幸甚!臣等议定,特来奏请。”帝闻奏大惊,半晌无言,觑百官而哭曰:“朕想高祖提三尺剑,斩蛇起义,平秦灭楚,创造基业,世统相传,四百年矣。朕虽不才,初无过恶,安忍将祖宗大业,等闲弃了?汝百官再从公计议。”华歆引李伏、许芝近前奏曰:“陛下若不信,可问此二人。”李伏奏曰:“自魏王即位以来,麒麟降生,凤凰来仪,黄龙出现,嘉禾蔚生,甘露下降。此是上天示瑞,魏当代汉之象也。”
각설, 화흠 등 한 무리 문무 관료들이 들어가 헌제를 뵙고, 화흠이 아뢰기를,“삼가 살펴보건대 위왕(조비)께서 왕위에 오르신 이래 덕을 사방에 베푸시고 어짊이 만물에 미칩니다. 고금을 초월해서 비록 요순임금이라도 이것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신들이 모여 의논했습니다. 한나라의 복이 이미 끝났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요순의 도를 따라 산천과 사직을 위왕께 넘겨주시면 위로 천심에 맞고 아래로 민의에 맞습니다. 그러시면 폐하도 맑고 한가한 복을 편안히 누리게 되시니 조상도 다행이요, 백성도 다행입니다! 신들이 의논하고 정해서 특별히 찾아와 주청하나이다.”하니, 황제가 듣고 크게 놀라 한참 말이 없다가 백관들 눈치를 보며 울며 말하기를,“짐이 생각건대 고조 황제께서 삼척검으로써 흰 뱀을 베며 의병을 일으켜 진나라를 평정하고 초나라를 멸해 왕업을 창조하여 대대로 왕통을 전한지 4백년이오. 짐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처음부터 아무 과오나 죄악도 없이 어찌 차마 조종대업을 함부로 버리겠소? 그대 백관들은 다시한번 공평하게 상의해보시오.”했다. 화흠이 이복과 허지를 끌고 앞으로 다가와 아뢰기를,“폐하께서 만약 믿지 못하시면 이 두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하니, 이복이 아뢰기를,“위왕께서 즉위하신 이래 기린이 태어나고 봉황이 나타났으며 황룡이 출현하고 큰 벼이삭이 우거지고 단 이슬이 내렸습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이 상서로움을 보인 것이니 위나라가 마땅히 한나라를 대신할 징조입니다.”했다.
许芝又奏曰:“臣等职掌司天,夜观乾象,见炎汉气数已终,陛下帝星隐匿不明;魏国乾象,极天际地,言之难尽。更兼上应图谶,其谶曰:鬼在边,委相连;当代汉,无可言。言在东,午在西;两日并光上下移。以此论之,陛下可早禅位。‘鬼在边,委相连’,是‘魏’字也;‘言在东,午在西’,乃‘许’字也;两日并光上下移,乃‘昌’字也:此是魏在许昌应受汉禅也。愿陛下察之。”帝曰:“祥瑞图谶,皆虚妄之事;奈何以虚妄之事,而遽欲朕舍祖宗之基业乎?”王朗奏曰:“自古以来,有兴必有废,有盛必有衰,岂有不亡之国、不败之家乎?汉室相传四百余年,延至陛下,气数已尽,宜早退避,不可迟疑;迟则生变矣。”帝大哭,入后殿去了。百官哂笑而退。
또 허지도 아뢰기를,“신들의 직무가 천문관측이라 밤에 천문을 살피니 한나라의 운명이 이미 끝났습니다. 폐하의 제성(자미성, 작은곰자리)은 숨어서 희미한데, 위나라의 천문은 하늘에 가득해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더욱이 도참(예언)에도 들어맞으니 그 예언에 이르기를,‘귀신(鬼)이 가(邊)에 있고 위(委)가 붙어서 마땅히 한(漢)을 대신하니 차마 말할 수가 없다. 언(言)이 동쪽에 있고 오(午)가 서쪽에 있어 두 해(日)가 나란히 빛나며 위아래로 옮겨가리라.’했사옵니다. 이것을 논하면 폐하는 어서 선위하셔야 합니다. 귀(鬼)가 가(邊)에 있고 위(委)가 붙음은 바로 위(魏)자입니다. 언(言)이 동쪽에 있고 오(午)가 서쪽에 있음은 바로 허(許)자입니다. 두 해(日)가 나란히 빛나며 위아래로 옮김은 바로 창(昌)자입니다. 이는 바로 위나라가 허창에서 한나라의 선위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살펴주소서.”했다. 헌제가 말하기를,“상서와 도참(예언)은 모두 허망한 것인데 어찌 허망한 것으로써 갑자기 짐더러 조종기업을 버리라 하오?”하니, 왕랑이 아뢰기를,“자고이래로 흥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폐하는 것이 있고, 성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쇠하는 것도 있습니다. 어찌 망하지 않는 나라가 있으며 무너지지 않는 가문이 있겠습니까? 한나라 왕실은 4백여 년을 전해 와서 폐하께 이르러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니 어서 물러나야지 늦춰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지체하면 곧 변고가 생길 것입니다.”했다. 헌제가 크게 통곡하며 후전으로 들어갔다. 백관들이 빙그레 웃으며 물러났다.
次日,官僚又集于大殿,令宦官入请献帝。帝忧惧不敢出。曹后曰:“百官请陛下设朝,陛下何故推阻?”帝泣曰:“汝兄欲篡位,令百官相逼,朕故不出。”曹后大怒曰:“吾兄奈何为此乱逆之事耶!”言未已,只见曹洪、曹休带剑而入,请帝出殿。曹后大骂曰:“俱是汝等乱贼,希图富贵,共造逆谋!吾父功盖寰区,威震天下,然且不敢篡窃神器。今吾兄嗣位未几,辄思篡汉,皇天必不祚尔!”言罢,痛哭入宫。左右侍者皆歔欷流涕。
다음날, 관료들이 다시 대전에 모여서 환관을 들여보내 헌제에게 청했다. 헌제가 걱정스럽고 두려워 감히 나오지 못하니 조황후(조조의 딸)가 말하기를,“백관이 폐하께 조정을 열기를 청하는데 무슨 까닭에 거절하십니까?”했다. 헌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그대의 오빠가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백관을 시켜 핍박하니 짐이 나갈 수가 없소.”하니, 조황후가 크게 노해서 말하기를,“내 오빠가 어째서 이렇게 반역을 저지른단 말이냐!”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홍과 조휴가 검을 차고 들어와서 헌제에게 대전 밖으로 나가라고 청하자 조황후가 크게 꾸짖기를,“이 모두 너희들 무례한 도적이 부귀를 바라고 함께 역모를 꾸몄구나! 내 부친의 공로가 세상을 뒤덮고 위세가 천하에 울려도 감히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지 않았다. 이제 내 오빠가 왕위를 잇자마자 한나라를 찬탈하겠다니 하느님께서 결코 복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을 마치더니 통곡하며 궁궐로 들어갔다. 좌우에서 모시는 이들 모두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曹洪、曹休力请献帝出殿。帝被逼不过,只得更衣出前殿。华歆奏曰:“陛下可依臣等昨日之议,免遭大祸。”帝痛哭曰:“卿等皆食汉禄久矣;中间多有汉朝功臣子孙,何忍作此不臣之事?”歆曰:“陛下若不从众议,恐旦夕萧墙祸起。非臣等不忠于陛下也。”帝曰:“谁敢弑朕耶?”歆厉声曰:“天下之人,皆知陛下无人君之福,以致四方大乱!若非魏王在朝,弑陛下者,何止一人?陛下尚不知恩报德,直欲令天下人共伐陛下耶?”
조홍과 조휴가 억지로 헌제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청했다. 헌제가 핍박을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옷을 갈아입고 정전으로 나갔다. 화흠이 아뢰기를,“폐하! 신들의 어제 의논을 따르면 큰 화는 면하십니다.”하니, 헌제가 통곡하며 말하기를,“경들이 모두 한나라 녹을 먹은 지 오래오. 그 사이 한나라 조정 공신의 자손이 많은데 어찌 차마 이런 신하답지 못한 일을 하오?”했다. 화흠이 말하기를,“폐하께서 만약 중의를 따르지 않으시면 조만간 내부의 변란이 일어날까 걱정이니 신들이 폐하께 불충한 게 아닙니다.”하니, 헌제가 말하기를,“누가 감히 짐을 시해하겠소?”했다. 화흠이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천하 사람들 모두가 폐하께서 임금의 복이 없어 사방 큰 난리가 난 걸 알고 있습니다! 위왕(조조)께서 조정에 계시지 않았다면 폐하를 시해한 자가 어찌 한사람에 그치겠습니까? 폐하께서 아직 은혜를 모르고 그 덕을 갚지 않아 곧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폐하를 토벌하게 만들 셈입니까?”했다.
帝大惊,拂袖而起,王朗以目视华歆。歆纵步向前,扯住龙袍,变色而言曰:“许与不许,早发一言!”帝战栗不能答,曹洪、曹休拔剑大呼曰:“符宝郎何在?”祖弼应声出曰:“符宝郎在此!”曹洪索要玉玺。祖弼叱曰:“玉玺乃天子之宝,安得擅索!”洪喝令武士推出斩之。祖弼大骂不绝口而死。后人有诗赞曰:“奸宄专权汉室亡,诈称禅位效虞唐。满朝百辟皆尊魏,仅见忠臣符宝郎。”
헌제가 크게 놀라 소매를 털며 일어났다. 왕랑이 화흠에게 눈짓하자 화흠이 종종걸음으로 쫓아가 황제의 용포를 붙잡고 낯빛을 고쳐 말하기를,“허락인지 불허인지 어서 한마디 하시오!”하니, 헌제가 벌벌 떨며 답하지 못했다. 조홍과 조휴가 검을 뽑아들고 크게 외치기를,“옥새 관리인은 어디에 있느냐?”하니, 조필이 그 소리에 나오며 말하기를,“옥새 관리인이 여기에 있다!”했다. 조홍이 옥새를 찾아내려 하자, 조필이 꾸짖기를,“옥새는 천자의 보물이거늘 어찌 네 멋대로 찾느냐!”하니, 조홍이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끌어내 베라고 했다. 조필이 크게 욕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죽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간사한 도적들이 권력을 잡아 한나라 왕실이 망하니, 선위를 사칭하며 요순임금을 본받는다네. 조정 가득한 신하들 모두 위나라를 떠받들고, 충신이라고는 겨우 옥새 관리인만 보이네.”했다.
帝颤栗不已。只见阶下披甲持戈数百余人,皆是魏兵。帝泣谓群臣曰:“朕愿将天下禅于魏王,幸留残喘,以终天年。”贾诩曰:“魏王必不负陛下。陛下可急降诏,以安众心。”帝只得令陈群草禅国之诏,令华歆赍捧诏玺,引百官直至魏王宫献纳。曹丕大喜。开读诏曰:“朕在位三十二年,遭天下荡覆,幸赖祖宗之灵,危而复存。然今仰瞻天象,俯察民心,炎精之数既终,行运在乎曹氏。是以前王既树神武之迹,今王又光耀明德,以应其期。历数昭明,信可知矣。夫大道之行,;唐尧不私于厥子,而名播于无穷,朕窃慕焉,今其追踵尧典,禅位于丞相魏王。王其毋辞!”
헌제가 덜덜 떨어 마지않는데, 다만 보니, 섬돌 아래 갑옷 입고 창을 든 수백여 사람들이 모두 위나라 군사였다. 헌제가 눈물을 흘리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짐이 천하를 위왕에게 선양하겠으니 부디 남은 목숨을 살려주면 천수를 다하겠소.”했다. 가후가 말하기를,“위왕께서 반드시 폐하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어서 조서를 내려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십시오.”하니, 헌제가 어쩔 수 없이 진군에게 나라를 넘기는 조서를 기초하게 하고, 화흠에게 조서와 옥새를 받들어 백관을 이끌고 곧바로 위왕 궁전으로 가서 헌납하게 했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조서를 펼쳐 읽으니, 조서에 이르기를,“짐이 재위한지 32년 동안 천하가 흔들리고 뒤집혔으나 다행히 조상의 혼령 덕분에 위기를 벗어나 다시 존립했소. 그러나 지금 하늘의 현상을 우러르고 민심을 굽어 살피니 불의 정기(한나라는 불의 덕으로 일어났다고 함)가 이미 끝나고 운세가 조씨에게 있소. 이에 전왕(조조)은 이미 신통한 무예의 공을 세우고 금왕(조비)도 밝은 덕을 비춰 그 기대에 응했소. 천명이 이렇게 분명하니 믿어 알 수 있소. 무릇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공의 것이라 했소. 요임금은 아들을 위해서 사사로이 하지 않아서 이름을 무궁히 전하오. 짐도 가만히 이를 사모하였소. 이제 요임금의 본보기를 따라 승상 위왕에게 선위하니 위왕은 사양치 마시오!”했다.
曹丕听毕,便欲受诏。司马懿谏曰:“不可。虽然诏玺已至,殿下宜且上表谦辞,以绝天下之谤。”丕从之,令王朗作表,自称德薄,请别求大贤以嗣天位。帝览表,心甚惊疑,谓群臣曰:“魏王谦逊,如之奈何?”华歆曰:“昔魏武王受王爵之时,三辞而诏不许,然后受之,今陛下可再降诏,魏王自当允从。”帝不得已,又令桓阶草诏,遣高庙使张音,持节奉玺至魏王宫。
조비가 다 읽자마자 조서를 받아들이려 했다. 사마의가 간하기를,“불가합니다. 비록 조서와 옥새가 이미 왔으나 전하께서 마땅히 표를 올려 겸손히 사양하여 천하의 비방을 끊으십시오.”하니, 조비가 이를 따라, 왕랑에게 표를 짓게 하여, 스스로 덕이 모자라니 따로 대현을 구해 천자 자리를 잇도록 청했다. 황제가 표를 읽더니 속으로 몹시 놀라고 의심스러워 신하들에게 말하기를,“위왕이 이렇게 겸손한데 어찌해야겠소?”하니. 화흠이 말하기를,“지난날 위 무왕(조조)이 왕의 작위를 받을 때 세 번 사양했지만 조서로써 불허하자 그런 후에 받았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다시 조서를 내리면 위왕이 마땅히 따를 것입니다.”했다. 헌제가 부득이하게 다시 환계에게 조서를 기초하게 하고 고조(유방) 사당지기 장음더러 증표를 지니고 옥새를 받들어 위왕의 궁으로 가게 했다.
曹丕开读诏曰:“咨尔魏王,上书谦让。朕窃为汉道陵迟,为日已久;幸赖武王操,德膺符运,奋扬神武,芟除凶暴,清定区夏。今王丕缵承前绪,至德光昭,声教被四海,仁风扇八区;天之历数,实在尔躬。昔虞舜有大功二十,而放勋禅以天下;大禹有疏导之绩,而重华禅以帝位。汉承尧运,有传圣之义,加顺灵祇,绍天明命,使行御史大夫张音,持节奉皇帝玺绶。王其受之!”
조비가 조서를 개봉해 읽으니, 조서에 이르기를,“아아! 위왕이여! 글을 올려 겸양하셨구려. 짐이 가만히 한나라의 운수가 점차 쇠퇴했다고 여긴지 오래 되었소. 다행히 무왕 조조가 그 덕망으로써 천명을 받고 신통한 무예를 떨쳐 흉포한 무리를 베어 없애서 중원을 맑게 평정했소. 금왕 조비가 유업을 계승해서 지극한 덕이 빛나고 명성과 교화가 사해에 미치며 어진 기운이 천하에 퍼졌소. 하늘의 천명이 참으로 그대에게 있소. 옛날 순임금에게 스무 개의 큰 공이 있어 요임금이 그에게 천하를 넘겼소. 우임금에게 소통이 쌓이자 순임금이 제위를 선양했소. 한나라는 요임금의 천운을 이어받아 착함을 돕고 성스런 이에게 전하는 도리가 있으니 천지신명을 따르고 밝은 천명을 받아 어사대부 장음을 시켜 절부를 지니고 옥새를 받들어 가게 하니 왕은 부디 받아주시오!”했다.
曹丕接诏欣喜,谓贾诩曰:“虽二次有诏,然终恐天下后世,不免篡窃之名也。”诩曰:“此事极易,可再命张音赍回玺绶,却教华歆令汉帝筑一坛,名‘受禅坛’;择吉日良辰,集大小公卿,尽到坛下,令天子亲奉玺绶,禅天下与王,便可以释群疑而绝众议矣。”丕大喜,即令张音赍回玺绶,仍作表谦辞。音回奏献帝。帝问群臣曰:“魏王又让,其意若何?”华歆奏曰:“陛下可筑一坛,名曰‘受禅坛’,集公卿庶民,明白禅位;则陛下子子孙孙,必蒙魏恩矣。”帝从遣太常院官,卜地于繁阳,筑起三层高坛,择于十月庚午日寅时禅让。
조비가 조서를 접하고 기뻐하여 가후에게 말하기를,“비록 두 차례 조서를 받았으나 끝내 천하와 후세에 찬탈의 오명을 벗지 못할까 두렵소.”하니, 가후가 말하기를,“이 일은 매우 쉽습니다. 다시 장음더러 옥새를 갖고 돌아가라 하면서 화흠을 시켜 헌제로 하여금 단을 하나 쌓아 ‘수선단’이라 이름 짓게 하십시오. 좋은 날 좋은 시간을 택해 대소 공경을 모두 모아 단 아래로 오게 하여, 천자를 시켜 친히 옥새를 받들어 천하를 왕께 넘기게 하면, 이로써 사람들의 의혹을 풀고 여러 말들을 근절시킬 수 있습니다.”했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장음에게 옥새를 갖고 돌아가라 하고, 이어 황제에게 표를 지어 겸사했다. 장음이 돌아가 헌제에게 아뢰니 헌제가 신하들에게 묻기를,“위왕이 또 사양하니 그 뜻이 무엇이오?”하니, 화흠이 아뢰기를,“폐하께서 단을 하나 쌓아 ‘수선단’이라 이름 짓고 공경과 서민을 모아 선위를 밝히십시오. 그러면 폐하의 자자손손이 위나라의 은택을 입을 것입니다.”했다. 헌제가 이를 따라 태상원관(예조 관리)을 파견해서 번양에 터를 정해서 3층의 높은 단을 쌓고 10월 경오일 인시(새벽 4시쯤)에 선양하기로 했다.
至期,献帝请魏王曹丕登坛受禅,坛下集大小官僚四百余员,御林虎贲禁军三十余万,帝亲捧玉玺奉曹丕。丕受之。坛下群臣跪听册曰:“咨尔魏王!昔者唐尧禅位于虞舜,舜亦以命禹:天命不于常,惟归有德。汉道陵迟,世失其序;降及朕躬,大乱滋昏,群凶恣逆,宇内颠覆。赖武王神武,拯兹难于四方,惟清区夏,以保绥我宗庙;岂予一人获乂,俾九服实受其赐。今王钦承前绪,光于乃德;恢文武之大业,昭尔考之弘烈。皇灵降瑞,人神告徵;诞惟亮采,师锡朕命。佥曰:尔度克协于虞舜,用率我唐典,敬逊尔位。於戏!天之历数在尔躬,君其祗顺大礼,飨万国以肃承天命!”
기일이 되어, 헌제가 위왕 조비에게 단에 올라 선양을 받으라고 청했다. 단 아래에 대소 관료 4백 명과 수도 방위 친위대 3십여 만 명을 모아 놓고 헌제가 친히 옥새를 받들고 조비에게 바치니 조비가 받았다. 단 아래 신하들이 꿇어앉아 책봉 칙서를 들으니, 이르기를,“아아! 위왕이여! 지난날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선위하고 순임금도 우임금에게 선위했소. 천명은 영원히 머물지 않고 오로지 유덕한 이에게 돌아가오. 한나라의 운수가 점점 쇠퇴하니 세상은 질서를 잃었소. 짐의 대에 이르자 대란으로 더욱 어지럽고 흉악한 무리가 방자히 반역하니 천하가 뒤집혔소. 무왕(조조)이 신통한 무예로 사방에서 이 난리를 구원하고 중원을 깨끗이 하여 종묘를 지켜 편안케 했소. 어찌 나 홀로 안정시켜 온 나라에 그 은덕을 누리게 했겠소? 금왕(조비)은 삼가 선대 왕업을 계승해 그 덕이 빛나오. 문무 대업을 갖추고 선친의 큰 공훈을 밝히는구려. 신령이 길조를 내리고 사람과 귀신이 상서로운 징조를 고했소. 크게 정사를 보좌하던 여럿이 짐의 명운을 입을 모아 말하니 다들 그대가 순임금보다 더욱 적합하니 나로 하여금 요임금의 전범을 따라 삼가 그대에게 양위하라 하오. 아아! 하늘의 운수가 그대 몸에 있으니 그대 마땅히 큰 예절에 따라 온 나라를 향유해 삼가 천명을 받드시오!”했다.
读册已毕,魏王曹丕即受八般大礼,登了帝位。贾诩引大小官僚朝于坛下。改延康元年为黄初元年。国号大魏。丕即传旨,大赦天下。谥父曹操为太祖武皇帝,华歆奏曰:“‘天无二日,民无二主’。汉帝既禅天下,理宜退就藩服。乞降明旨,安置刘氏于何地.”言讫,扶献帝跪于坛下听旨。丕降旨封帝为山阳公,即日便行。华歆按剑指帝,厉声而言曰:“立一帝,废一帝,古之常道!今上仁慈,不忍加害,封汝为山阳公。今日便行,非宣召不许入朝!”献帝含泪拜谢,上马而去。坛下军民人等见之,伤感不已。丕谓群臣曰:“舜、禹之事,朕知之矣!”群臣皆呼“万岁”。后人观此受禅坛,有诗叹曰:“两汉经营事颇难,一朝失却旧江山。黄初欲学唐虞事,司马将来作样看。”
책서 읽기를 마치고, 위왕 조비가 즉시 황제의 예식을 거쳐 제위에 올랐다. 가후가 대소 관료를 이끌고 단 아래에서, 연호는 연강 원년을 황초 원년으로, 국호는 대위로 고친다고 했다. 조비가 곧 교지로써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부친 조조에게 태조 무황제의 시호를 올렸다. 화흠이 아뢰기를,“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에 두 임금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나라 황제는 이미 천하를 넘겼으니 마땅히 지방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밝은 교지를 내려 유씨를 다른 곳에 안치하소서.”라고 말하고, 헌제를 부축하여 단 아래에 무릎을 꿇려 교지를 듣게 했다. 조비가 교지를 내려 헌제를 산양공으로 낮추어 그날 바로 떠나게 했다. 화흠이 검을 잡으며 헌제를 가리켜 소리 높여 말하기를,“새 황제를 세우면 옛 황제는 폐함이 예부터 변함없는 도리요! 금상께서 인자하셔서 차마 해치지 못하고 그대를 산양공으로 봉했으니 오늘 바로 떠나서 황제가 부르지 않으면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불허하오!”했다. 헌제가 눈물을 머금고 절하여 사례하며 말을 타고 떠났다. 단 아래 군사와 백성들이 슬퍼해 마지않았다. 조비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양위한 것을 짐도 알겠구려!”하니, 신하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훗날 누군가 수선단의 일을 살펴보고 시를 지어 한탄하기를,“전한과 후한의 경영이 자못 어려웠거늘, 하루아침에 옛 강산을 잃어버렸구나. 황초 원년에 요순임금의 옛 일를 배웠다지만, 사마씨가 장래에 본받으려 보고 있었네.”했다.
百官请曹丕答谢天地。丕方下拜,忽然坛前卷起一阵怪风,飞砂走石,急如骤雨,对面不见;坛上火烛,尽皆吹灭。丕惊倒于坛上,百官急救下坛,半晌方醒。侍臣扶入宫中,数日不能设朝。后病稍可,方出殿受群臣朝贺。封华歆为司徒,王朗为司空;大小官僚,一一升赏。丕疾未痊,疑许昌宫室多妖,乃自许昌幸洛阳,大建宫室。
여러 관원들이 조비에게 천지에 사례할 것을 청하니, 조비가 바로 무릎을 꿇고 절하는데 홀연히 단 앞에서 한 줄기 바람이 휘몰아쳐서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단 위에서 불이 일어나 모조리 불살라졌다. 조비가 놀라서 단 위에 쓰러지니, 백관이 급히 구해서 단 아래로 내려왔다. 조비가 한참 뒤에 깨어나서 근신이 부축해 궁중으로 들어가 며칠간 조회를 열지 못했다. 그 뒤에 병이 조금 낫자 비로소 대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다. 화흠을 사도로, 왕랑을 사공으로 봉하고, 대소 관료들을 일일이 승진시키고 상을 주었다. 조비의 병이 낫지 않자 허창의 궁실에 요사한 것이 많은가 의심해서 허창에서 낙양으로 행차하여 크게 궁실을 지었다.
早有人到成都,报说曹丕自立为大魏皇帝,于洛阳盖造宫殿;且传言汉帝已遇害。汉中王闻知,痛哭终日,下令百官挂孝,遥望设祭,上尊谥曰“孝愍皇帝”。玄德因此忧虑,致染成疾,不能理事,政务皆托与孔明。孔明与太傅许靖、光禄大夫谯周商议,言天下不可一日无君,欲尊汉中王为帝。谯周曰:“近有祥风庆云之瑞;成都西北角有黄气数十丈,冲霄而起;帝星见于毕、胃、昴之分,煌煌如月。此正应汉中王当即帝位,以继汉统,更复何疑?”于是孔明与许靖,引大小官僚上表,请汉中王即皇帝位。
벌써 어떤 사람이 성도에 가서 조비가 자립하여 대위 황제가 되고 낙양에 궁전을 축조한다고 보고했다. 또한 헌제가 이미 피살됐음을 전했다. 한중왕이 듣고 종일 통곡하고 백관에게 상복을 입으라고 했다. 멀리 바라보며 제사를 올려 헌제를 효민황제로 추존했다. 현덕이 이로 인해 근심하여 병이 되니 정사를 살피지 못하고 정무를 모두 공명에게 맡겼다. 공명이 태부 허정, 광록대부 초주와 상의해서, 천하에 하루도 임금이 없을 수 없다고 말하며 한중왕을 황제로 높이려 했다. 초주가 말하기를,“요즘에 상서로운 바람과 구름의 길조가 있어 성도 서북쪽에 누런 기운 수십 길이 하늘로 치솟고, 또한 황제 별이 필성, 위성, 묘성(별이름)의 자리에 보이며 달처럼 휘황합니다. 이는 곧 한중왕이 황제에 올라 한나라 황통을 계승할 징조이니 무엇을 더 의심하겠습니까?”하니, 이에 공명과 허정이 대소 관료를 이끌고 표를 올려 한중왕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청했다.
汉中王览表,大惊曰:“卿等欲陷孤为不忠不义之人耶?”孔明奏曰:“非也。曹丕篡汉自立,王上乃汉室苗裔,理合继统以延汉祀。”汉中王勃然变色曰:“孤岂效逆贼所为!”拂袖而起,入于后宫。众官皆散。三日后,孔明又引众官入朝,请汉中王出。众皆拜伏于前。许靖奏曰:“今汉天子已被曹丕所弑,王上不即帝位,兴师讨逆,不得为忠义也。今天下无不欲王上为君,为孝愍皇帝雪恨。若不从臣等所议,是失民望矣。”汉中王曰:“孤虽是景帝之孙,并未有德泽以布于民;今一旦自立为帝,与篡窃何异!”孔明苦劝数次,汉中王坚执不从。孔明乃设一计,谓众官曰:如此如此。于是孔明托病不出。
한중왕이 표를 읽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경들이 나를 불충불의한 사람으로 만들 셈이오?”하니, 공명이 아뢰기를,“아닙니다. 조비가 한나라를 찬탈해 자립했습니다. 왕상께서 는 곧 한나라 황실의 후예라 한나라 황통을 계승해서 한나라의 제사를 이어가야 합니다.”했다. 한중왕이 벌컥 얼굴을 붉히며 말하기를,“내가 어찌 역적이 하는 짓을 본받겠소!”하고, 소매를 떨쳐 일어나 후궁으로 들어갔다. 관리들이 모두 해산했다. 사흘 뒤에 공명이 또 관리들을 이끌고 조정에 들어와 한중왕에게 조정에 나올 것을 청했다. 모두 앞에 엎드려 절하고, 허정이 아뢰기를,“지금 한나라 천자는 이미 조비에게 살해되었으니, 왕상께서 제위에 올라 군사를 일으켜 역적을 치지 않으면 충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천하에 왕상께서 즉위하여 효민 황제의 원한을 씻어 주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만약 신들의 의논을 따르지 않으면 바로 백성의 바람을 잃게 됩니다.”하니, 한중왕이 말하기를,“내가 비록 경제의 후손이나 아직 백성에게 덕택을 베풀지 못했소. 이제 하루아침에 황제로 자립하여 황제가 된다면 찬탈과 무엇이 다르오?”했다. 공명이 애써 수차 권해도 한중왕이 고집하며 따르지 않았다. 이에 공명이 한 가지 꾀를 내서 관리들에게 이러저러하게 지시했다. 이에 공명이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았다.
汉中王闻孔明病笃,亲到府中,直入卧榻边,问曰:“军师所感何疾?”孔明答曰:“忧心如焚,命不久矣!”汉中王曰:“军师所忧何事?”连问数次,孔明只推病重,瞑目不答。汉中王再三请问。孔明喟然叹曰:“臣自出茅庐,得遇大王,相随至今,言听计从;今幸大王有两川之地,不负臣夙昔之言。目今曹丕篡位,汉祀将斩,文武官僚,咸欲奉大王为帝,灭魏兴刘,共图功名;不想大王坚执不肯,众官皆有怨心,不久必尽散矣。若文武皆散,吴、魏来攻,两川难保。臣安得不忧乎?”汉中王曰:“吾非推阻,恐天下人议论耳。”
한중왕은 공명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친히 부중에 이르러 곧바로 들어가 침상 가에서 묻기를,“군사께서 걸린 질환은 무엇이오?”하니, 공명이 답하기를,“걱정으로 가슴이 타는 듯해 목숨이 오래가지 못하겠습니다.”했다. 한중왕이 말하기를,“군사께서 걱정하는 바는 무슨 일이오?”하고, 잇달아 수차 물어도 공명은 다만 병세가 위중하다고 핑계를 댈 뿐 눈을 감은 채 답하지 않았다. 한중왕이 거듭 묻자 공명이 휴 한숨을 쉬며 탄식하기를,“신이 초가집를 나와서 대왕을 만나 지금껏 모시면서 대왕께서 제 말은 들어주고 제 꾀는 따르셨습니다. 지금 다행히 대왕께서 양천의 땅을 점유하고 신이 옛날에 말한 것(융중에서 말한 대책)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조비가 제위를 찬탈해 한나라의 제사가 곧 끊어질 터라 문무 관료가 모두 대왕을 황제로 받들어 위나라를 멸하고 유씨를 부흥해 함께 공명을 도모하려 합니다. 뜻밖에 대왕께서 고집하며 수긍하지 않으니 관리들 모두 속으로 원망하다 머지않아 반드시 모두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만약 문무 모두가 흩어지고 오나라와 위나라가 침공해 오면 양천을 보전하기 어려운데 신이 어찌 걱정하지 않겠습니까?”하니, 한중왕이 말하기를,“내가 거절하는 게 아니라 천하 사람들의 논의가 무서울 따름이오.”했다.
孔明曰:“圣人云:名不正则,言不顺,今大王名正言顺,有何可议?岂不闻天与弗取,反受其咎?”汉中王曰:“待军师病可,行之未迟。”孔明听罢,从榻上跃然而起,将屏风一击,外面文武众官皆入,拜伏于地曰:“王上既允,便请择日以行大礼。”汉中王视之,乃是太傅许靖、安汉将军糜竺、青衣侯向举、阳泉侯刘豹、别驾赵祚、治中杨洪、议曹杜琼、从事张爽、太常卿赖恭、光禄卿黄权、祭酒何宗、学士尹默、司业谯周、大司马殷纯、偏将军张裔、少府王谋、昭文博士伊籍、从事郎秦宓等众也。汉中王惊曰:“陷孤于不义,皆卿等也!”孔明曰:“王上既允所请,便可筑坛择吉,恭行大礼。”即时送汉中王还宫,一面令博士许慈、谏议郎孟光掌礼,筑坛于成都武担之南。诸事齐备,多官整设銮驾,迎请汉中王登坛致祭。
공명이 말하기를,“성인께서,‘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명분도 바르고 말하기도 순조로운데 사람들이 논의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허물을 받는다.’라는 말도 듣지 못하셨습니까?”하니, 한중왕이 말하기를,“군사의 병이 낫기를 기다려 행해도 늦지 않소.”했다. 공명이 듣자마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병풍을 한번 치니 바깥에서 문무 관료들이 모두 들어와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왕상께서 윤허하셨으니 바로 날을 골라 대례를 행하기를 청합니다.”했다. 한중왕이 보니, 이들은 바로 태부 허정, 안한장군 미축, 청의후 상거, 양천후 유표, 별가 조조, 치중 양홍, 의조 두경, 종사 장상, 태상경 뇌공, 광록경 황권, 좨주 하종, 학사 윤묵, 사업 초주, 대사마 은순, 편장군 장예, 소부 왕모, 소문박사 이적, 종사랑 진복 등의 무리였다. 한중왕이 놀라 말하기를,“나를 불의에 빠뜨린 건 모두 경들이오.”하니, 공명이 말하기를,“왕상께서 이미 청한 바를 윤허하셨으니 어서 단을 쌓고 길일을 골라 삼가 대례를 행해야 합니다.”하고, 곧 한중왕을 궁으로 돌려보내고, 박사 허자와 간의랑 맹광에게 예식을 맡겨 성도 무담의 남쪽에 단을 쌓았다. 모든 것이 갖춰져서 많은 관리가 임금의 수레를 마련하여 한중왕을 맞이해 단에 올라 제사를 지낼 것을 청했다.
谯周在坛上,高声朗读祭文曰:“惟建安二十六年四月丙午朔,越十二日丁巳,皇帝备,敢昭告于皇天后土:汉有天下,历数无疆。曩者,王莽篡盗,光武皇帝震怒致诛,社稷复存。今曹操阻兵残忍,戮杀主后,罪恶滔天;操子丕,载肆凶逆,窃据神器。群下将士,以为汉祀堕废,备宜延之,嗣武二祖,躬行天罚。备惧无德忝帝位,询于庶民,外及遐荒君长,佥曰:天命不可以不答,祖业不可以久替,四海不可以无主。率土式望,在备一人。备畏天明命,又惧高、光之业,将坠于地,谨择吉日,登坛告祭,受皇帝玺绶,抚临四方。惟神飨祚汉家,永绥历服!”
초주가 단상에 올라 큰 소리로 제문을 낭독하기를,“건안 26년 4월 병오 초하루에서 12일이 지난 정사 일에 황제 비는 천지신명께 감히 명백히 알립니다. 한나라는 천하를 소유하여 왕위의 순서가 끝이 없었습니다. 지난날 왕망이 찬탈하자 광무황제께서 진노해서 그를 주살하고 사직을 부흥했습니다. 이제 조조가 무력을 믿고 잔인하게 황후를 살해하여 죄악이 하늘까지 차오르고, 조조의 아들 조비는 방자하게 흉악한 역모를 꾸며 황제 자리를 찬탈했습니다. 저의 부하 장사들은 한나라 사직이 황폐하므로 제가 마땅히 이어받아 고조와 광무제를 계승해 몸소 천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덕망도 없이 제위를 더럽힐까 두려워서 서민들과 밖으로 먼 곳의 군장들에게도 물어보니 다들 천명은 답하지 않을 수 없고 선조의 유업은 오래 폐할 수 없으며 천하에는 임금이 없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온 나라에서 바라는 것이 오로지 저 한사람에게 있습니다. 저는 하늘의 밝은 명을 경외하며 또한 고조와 광무제의 유업이 장차 땅에 추락할까 두려워서, 삼가 길일을 골라서 제단에 올라 고합니다. 황제의 옥새를 받아 사방을 어루만지며 다스리고자 합니다. 신이시여 한나라 왕조를 축복하셔서 왕위를 영원히 편안하게 하소서!”했다.
读罢祭文,孔明率众官恭上玉玺。汉中王受了,捧于坛上,再三推辞曰:“备无才德,请择有才德者受之。”孔明奏曰:“王上平定四海,功德昭于天下,况是大汉宗派,宜即正位。已祭告天神,复何让焉!”文武各官,皆呼“万岁”。拜舞礼毕,改元章武元年。立妃吴氏为皇后,长子刘禅为太子;封次子刘永为鲁王,三子刘理为梁王;封诸葛亮为丞相,许靖为司徒;大小官僚,一一升赏。大赦天下。两川军民,无不欣跃。
제문을 다 낭독하고 공명이 관리들을 인솔해 공손히 옥새를 바쳤다. 한중왕이 받아서 단상에 받들어 놓고, 거듭 미루고 사양하기를,“나는 재주와 덕이 없으니 청컨대 재주와 덕을 갖춘 이를 찾아서 받게 하시오.”하니, 공명이 아뢰기를,“왕상께서 사해를 평정하여 공덕이 천하에 밝게 빛나고, 하물며 한나라의 종친이시니 마땅히 바른 자리에 오르십시오. 이미 천신에게 제를 올려 고했는데 어찌 또 사양하십니까?”했다. 문무관리가 모두 만세를 불렀다. 절하고 춤추는 예식을 마치고 장무 원년으로 연호를 바꾸었다. 왕비 오씨를 황후로 삼고, 맏아들 유선을 태자로 세웠다. 둘째아들 유영은 노왕으로 봉하고, 셋째 아들 유리는 양왕으로 봉했다. 제갈량을 승상으로, 허정을 사도로 봉하고, 대소 관료 하나하나 벼슬을 올리고 포상했다.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양천의 군사와 백성들 가운데 기뻐 날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次日设朝,文武官僚拜毕,列为两班。先主降诏曰:“朕自桃园与关、张结义,誓同生死。不幸二弟云长,被东吴孙权所害;若不报仇,是负盟也。朕欲起倾国之兵,剪伐东吴,生擒逆贼,以雪此恨!”言未毕,班内一人,拜伏于阶下,谏曰:“不可。”先主视之,乃虎威将军赵云也。正是:君王未及行天讨,臣下曾闻进直言。
다음날, 조회를 열어 문무 관료가 절을 마치고 양쪽으로 자리 잡았다. 선주(유비)가 조서를 내리기를,“짐은 도원에서 관우, 장비와 결의하며 생사를 함께하자 맹세했소. 불행히 둘째 운장이 동오 손권에게 살해됐소. 만약 복수하지 않는다면 맹서를 저버리는 것이오. 짐은 전국의 병력을 일으켜서 동오를 정벌하고 역적을 사로잡아 원한을 씻겠소.”했다.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자리에서 한 사람이 나와 섬돌 아래 엎드려 간하기를,“불가하옵니다.”했다. 선주가 보니 바로 호위장군 조운이었다. 이야말로, 군주가 아직 토벌하지도 않았는데, 신하가 일찍이 직언하는 것을 알았구나.
未知子龙所谏若何,且看下文分解。
자룡이 간언이 어떠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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