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어성인(謬於聖人)-(글이나 문장, 말과 행동이) 성인에게서 어긋났다(기만했다)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
류어성인(謬於聖人) : 謬(그릇될 류) 於(어조사 어) 聖(성인 성) 人(사람인)
謬(그릇될 류)는 그릇되다, 속이다, 기만하다 의 뜻을 지닌다. 於(어조사 어)는 ~에서의 의미이며 聖人(성인)은 지덕이 가장 뛰어나 천하가 우러러 사표로 삼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말에는 신성(神聖)까지 포함된다. 사마천의 사기집해(史記集解)를 쓴 송나라 사람 배인이 그 서문에 한서(漢書)를 편찬한 반고(班固)가 사기에 대하여 폄하한 말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반고가 ‘사기의 문장이 성인(聖人) 즉 주나라 문왕과 공자의 뜻과 사상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비판한 것에 대하여 ‘사기야말로 오랜 세월의 역사적 사건을 잘 정리하여 기록한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하는 글에서 나온 것이다. 반고는 모든 역사평가의 기준을 주 문왕과 공자에 비추어 해석하고 평가하려 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다양한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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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나친 배타성의 병폐 최근 또 덴마크와 스웨덴 등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소각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러한 행위를 신성 모독이라며 분노한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7월20일(현지시각) 시위대가 스웨덴 대사관 벽을 올랐다. 다음날인 28일 분노한 이라크 시위대가 스웨덴 대사관을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이것은 외교적으로나 국가안보상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해당국 정부에서 이에 대한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자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반발했다. 덴마크의 민족주의 성향 정당인 인민당의 모르텐 메세르슈미트 대표는 외국 대사관 앞에서 꾸란 소각을 금지하자는 정부 제안에 대해 “충격적이다” “덴마크에선 꾸란이나 무슬림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이 자유는 우리가 찬성하지 않는 것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덴마크에서 ‘언론 자유’ 운동을 주도하는 야코브 음창가마 변호사도 “덴마크 정부는 비참하게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덴마크 정부는 꾸란 소각 방지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덴마크의 페테르 후멜고르 법무장관은 “외국을 반복적으로 모욕하는 표현 방식을 계속 용인해야 할지의 문제다. 더 큰 문제를 만들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간 두 정부는 꾸란 소각 시위를 비판하면서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시위 원천 차단은 보류해 왔다. 스웨덴은 1970년대에, 덴마크는 2017년 신성모독법을 폐지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이 꾸란 소각 시위에 강하게 반발하고 테러 및 보복 범죄 위험이 커지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상황이 위험하다. 스웨덴에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입국해선 안 된다” “국경 검문, 차량 수색 등을 강화하겠다” “공공집회 관련 허가 여부를 안보적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라며 꾸란 소각 시위를 사전 금지할 가능성도 언급했다.(동아일보 2023. 8. 3) 이렇게 덴마크, 스웨덴 정부가 자국 내에서 이슬람 경전인 꾸란 소각 시위가 잇따른 뒤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서자 ‘표현의 자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꾸란 소각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하려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이슬람 국가들의 압박에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라며 거센 반발 여론이 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꾸란 소각 행위에 이슬람 국가와 이슬람교도들의 반발과 테러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기독교 신자들의 꾸란 소각 행위는 나의 신성을 지키기 위한 타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다. 겉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나의 존재, 나의 신앙의 신성함에 빠져 다른 종교의 신성함과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극단적 행위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타 종교를 믿는 사람과 국가의 강력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꾸란을 소각하는 기독교도들의 생각의 저변에는 모든 신성 판단 기준은 성경이며 다른 종교의 경전은 배척하는 지나친 배타주의에 기반을 둔다. 그들의 사고의 저변에는 예수는 신성한 존재이며 마호메트는 불량한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에 의한 타 종교의 배척과 말살 행위는 오랜 역사를 지니며 수많은 갈등과 전쟁을 몰고 왔다. 인간이 특정의 사상과 종교에 빠져 함몰되면 다른 사상과 종교는 보이지 않는다. 부정하게 된다. 지나친 기독교 신자에게 타 종교는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마귀가 된다. 그리고 다른 영역은 모두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나친 배타성을 갖게 되며 그것을 경멸하고 배척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이 각기 다르듯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의 집합체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일인데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지나친 배타성은 사회적 갈등과 투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극단적인 비판 행위와 관련된 고사가 있다. 바로 류어성인(謬於聖人)이다. 꾸란을 소각하는 극렬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님이란 성인(聖人) 즉 신성(神聖)에 꾸란은 위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극렬한 입장에 서면, 이슬람교도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마호메트란 성인(聖人) 즉 신성(神聖)에 성격은 위배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중국에서 한나라 이후 유학을 국시로 한 이후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유학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고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을 배척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특히 극렬한 유학적 교조주의자들은 그 배타성이 강했다. 그러나 공자는 평생토록 타 학문과 사상을 그토록 배척하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자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과 물상의 존중이었다. 2. 류어성인(謬於聖人)의 유래 사마천의 『사기집해(史記集解)』를 쓴 송나라 사람 배인이 그 서문에 한서(漢書)를 편찬한 반고(班固)가 『사기』에 대하여 평가한 것을 수록하고 있다. 반고는 『사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섭렵한 바가 매우 넓고 경전(經傳-‘성경현전(聖經賢傳)’의 준말, 경서와 그 해설책)을 꿰뚫어서 고금(古今) 위아래 수천 년간을 말달리듯 부지런히 기록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보는 방법이 자못 성인(聖人-주공과 공자)의 사리에 맞지 않는다.(亦其所涉獵者廣 傳馳騁古今上下數千年間 斯已勤矣 又 其是非頗 謬於聖人)”(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신주사기 ①오제본기』,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022) 반고가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때 경전과 백가(百家-제자백가)를 꿰뚫어 상하 2,000년간의 역사를 채록하여 부지런히 찬록(撰錄-부지런히 짓고 기록하다)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마천의 노고를 높이 칭찬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옳고 그름을 보는 방법과 기준이 성인(聖人)에 어긋났기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인은 주나라의 문왕인 주공과 공자를 지칭한 것이다. 공자는 그 정치 탐구의 근원을 주공의 선정을 중심으로 탐구하여 체계화하고 발전시켰으므로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곧 유학(儒學)의 종주로서 덕(德)을 숭상한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황제(皇帝)와 노자(老子)를 내세우고 세력과 이익을 숭상하였으니 그것은 ‘성인의 학(유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신주사기 ①오제본기』,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022) 반고는 사마천이 류어성인(謬於聖人)한 것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영역에서 들며 비판했다. 첫째는 대도(大道)를 논하면서 황로(黃老-황제와 노자)를 먼저하고 육경(六經-중국의 여섯 경서 즉 역경·서경·시경·춘추·예기·주례)을 뒤로 했다(論大道則先黃老以後六經)는 것이다. 둘째는 유협(遊俠-협객)을 서술하면서 처사(處士-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草野)에 묻혀 조용히 살던 선비)들을 물리치고 간웅(姦雄-간사한 영웅)을 내세웠다(序遊俠則退處士以進姦雄)는 것이다. 셋째, 화식(貨殖-재산을 늘리는 것)을 기술하면서 권세의 이익을 높였다(述貨殖則崇勢利)는 것이다. 넷째는 빈천(貧賤-가난하고 천한 것)을 부끄럽게 했다(而羞貧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당나라 때 장수절은 그가 쓴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대도라는 것은 대개 받아서 스스로 꾸리는 것이니 도(道)라 일컬을 수 없다. 도는 천지(天地)보다 앞에 있고 먼저 생겨서 그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자를 도(道)라고 말한 것이다. 황제와 노자는 이 도(道)를 높였다. 그래서 태사공(사마천)이 대도를 논하면서 모름지기 황제와 노자를 먼저하고 육경을 뒤로한 것이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신주사기 ①오제본기』,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022)라고 반박하였다. 그리고 장수절은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반고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며 사마천을 옹호하였다. “태사공의 <사기>는 각각 육가(六家)의 종(宗)을 드러내는데 황로(黃老)의 도가(道家)를 종(宗으로 하고 육경(六經)의 유가(儒家)를 수(首)로 삼았다. 유협(遊俠)을 서술한 것은 처사(處士)들을 물리친 것이고, 화식(貨殖)을 서술한 것은 세력과 이익을 숭상한 것이다. 처사의 빈천(貧賤)은 원헌(原憲-노나라 출신으로 공자의 제자였음, 그도 매우 가난했다) 도 병(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신주사기 ①오제본기』,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022)고 하였다. 이처럼 장수절이 생각하기에 사마천의 사기 서술은 절대로 유가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 장수절은 “무릇 역사를 저술하는 요체는 시대를 섭렵하는 것에 힘쓰고 나라의 법규 중에 좋고 나쁜 것을 갖추어 펼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과 땅의 이치를 모두 갖춰 통하게 하고 하늘이 부여한 재주(天縱之才)를 옮겨서 짓는데 막힘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 그것은 주공과 공자의 도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반고가 그런 점을 꾸짖고 배인이 이를 서문에 인용한 것은 통인(通人-학식에 많은 사람)의 폐단이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신주사기 ①오제본기』,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022)고 하였다. 반고는 사마천의 사기가 류어성인(謬於聖人)하였기에 이치에서 어긋났다고 하였으나 역사의 서술은 그렇게 유가의 입장에 얽매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장수절의 해명이다.
3. 존중하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의 중요성 류어성인(謬於聖人)이 지나치면 확증 편향에 빠진다. 기독교인들이 꾸란을 소각하는 행위 또한 류어성인(謬於聖人)에 의한 확증 편향에 빠진 사례다. 우리나라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 ‘개딸’들이 특정 정치인의 관점과 지지의 입장에서 그것에 어긋나면 무조건 공격하는 행위 또한 류어성인(謬於聖人)이 지나쳐 확증 편향에 빠진 결과다. 어떤 목사가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들고 집회를 하며 특정 세력을 규탄하는 행위 또한 하나님을 앞에 세운 류어성인(謬於聖人)이 지나쳐 확증 편향에 빠진 결과다.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를 난입한 것도 트럼프란 개인의 정치적 지지에 빠져 저지른 결과다. 사람들이 류어성인(謬於聖人)이 지나쳐 확증 편향에 빠지면 사회는 갈등의 연속이며 투쟁과 분열을 초래한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당쟁 역시 류어성인(謬於聖人)에 빠져 공자와 주자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례들이다. 조선 중기 노론 일파를 중심으로 한 서인들은 주자학과 숭명의리(崇明義理)라는 명분에 빠져 다른 모든 것을 배척(특히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로 배척)하다가 병자호란을 불러들이고 나라를 초토화시켰다. 조선의 선비들은 유학(즉 주자학)적인 명분에만 빠져 있다가 나라의 발전과 학문의 다양성을 막았다. 한 인간도 특정의 사상과 학문 경향에 지나치게 빠지면 다양성을 잃고 인식의 오류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세상 살면서 모든 사람은 나름의 관점과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지나치면 타인은 물론 다양성을 배척하고 유아독존이 된다. 그것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된다. 따라서 타인을 비판하는 데는 늘 신중하여야 하며 나의 그 비판 기준이 옳은가를 항상 살펴야 한다. 비판은 늘 갈등을 불러들이기에 성경에서도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복음 7장 1-2절)고 하였다. 꾸란을 소각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잘못된 가치관과 극단적인 믿음으로 성경에도 어긋난 행위를 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확고한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배타적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정신과 사상, 믿음이 소중하면 타인의 정신과 사상, 믿음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존중하고 존경하는 인물을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흉기가 된다. 예수도 공자도 자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일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것은 세상 사는 중요한 이치이자 지혜다. 그것은 공자가 경이원지(敬而遠之)라 하여 신을 공경은 하되 멀리한다는 말과 같이 공경하면서도 빠지지 않는 것과 같다. 예수도 공자도 편견에 빠지지 않았다. 절대로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며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내가 먼저 타인을 존중하라고 하였다. 특정의 사상과 신념으로 남을 배척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의 중심과 가치관을 확고히 가지되 류어성인(謬於聖人)을 들어 확증 편향에 빠지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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