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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순종하는 삶(딤후 3장12-17)
성경본문: 디모데후서 3:12-17
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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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대학에 점쟁이들이 많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학사 점쟁이 석사 점쟁이 박사 점쟁이 들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어떤 타락보다도 무서운 것은 영적 무지함입니다.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예수다"
그래도 믿고 따라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거룩하다, 누구든지 내가 죽는 물을 먹으면 영생한다 그러면 세숫물도 받아먹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많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잘못된 이단들을 대학 교수들도 그렇게 많이 따라가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10월 28일에 예수님 재림한다> 그러면 말도 아닌 말을 수많은 교인들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계시가 특별하다”
그러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계시를 믿고 따라가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씀의 교육이 없고 말씀을 체계적으로 훈련받지 못하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지 못한 삶이기 때문에 이런 잘못된 유혹을 받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확실하게, 보람되게, 가치있게, 흔들리지 않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듣고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온전한 삶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품도 온전한 제품 우리의 삶도 우리의 인격도 우리 생애도 온전하게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비추는 대로 순종하고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고 말씀대로 우리가 지키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을 귀히 여깁니다. 얼마나 귀히 여기느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지 만물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에는 권세가 있고 말씀에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에 사람이 왜 귀하냐, 하나님은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 하나님RP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셔서 어떤 생명보다 다른 것은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하도록 창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대화를 끊어 버립니다. 인간관계도 끊어지면 대화가 안되듯이 대화가 안되면 좋은 관계도 끊어지듯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좋은 관계였는데 범죄하므로 이 관계가 대화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불행이고 저주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 인간에게 한 사람을 향하여 대화의 문을 여시는데 바로 그 분이 아브라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브라함은 말씀을 잘 들었어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말씀한 대로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었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그대로 순종하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그대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아브라함의 혈통을 귀히 여기사 말씀을 주는 백성으로 만들어서 그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어요. 또 그 자손에게 메시야를 보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기록하여 주시면서 그 말씀을 읽고 순종하게 만든 민족이 바로 유대인이예요.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만 말씀하시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온 인류에게 문을 열어 놓아 주셔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하나님과 대화가 열리도록 만들어 주신거예요. 이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순종하는 삶을 일생동안 살아가시다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안자계셔서 말씀으로 온 인류를 지금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셔서 말씀으로 온 인류를 지금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첫 번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그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세 번째 선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 번째 선물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축복하고 죄와 저주에서 우리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들입니다.
우리는 만물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 아들을 믿어야 되고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늘 듣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셔서 우리로 말씀을 잘듣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늘 가르쳐 주시고 권고하시고 말씀 있는 곳으로 늘 인도하셔서 말씀을 깨닫고 사랑하고 가까이 하도록 만들어 주는 분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은혜를 받는 건 아닙니다.
말씀에 눈을 뜨면서 사람은 은혜를 받고 우리 인간의 삶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우리 인간이 원래 가져야 할 기쁨과 행복을 말씀 속에서 우리는 얻게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모든 생명이 길이 있는데 인간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학문이 있지만 인간의 길은 없습니다.
어떤 철학과 어떤 종교도 인간의 길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하는 책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인간을 향해 범죄로 타락한 우리 인간을 영생을 얻기까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잇는가를 하나님 말씀 속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이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라고 하는 모든 문제는 성경 속에 "이렇게"라고 하는 대답으로 안내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수 1:7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며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동쪽으로 가느냐 서쪽으로 가느냐. 집을 어떻게 짓느냐. 어느 나라에 가서 사느냐가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면 촌에 있든지 도시에 있든지 어디서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면 안됩니다. 이것은 어디가도 이래도 저래도 안된다는 말입니다.
시 103:10에 보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말씀을 거역하며 “사망”, “흑암”, “곤고”, “쇠사슬” 이 네 가지에 매인다라는 거예요.
나는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알고 그대로 갖고 왔습니다.
주님이 뭐라 그랬어요?
“심어야 되느니라. 일해야 되느니라. 너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니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쫗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철처하게 심는 종교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종교가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가지고 산에 가서 빌면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땀 흘리는 종교요 부지런한 종교요. 일하는 씨를 뿌리는 종교입니다. 내가 뿌리면 뿌린 것만큼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는 직업의 귀천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 해야 된다는 겁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이 땅을 떠나는 날까지 부지런히 일하고, 사람은 일 하는 것만큼 먹는다라는 겁니다.
미국 사회가 달라가 왜 귀하냐 일한 대가예요. 그냥은 주는 법이 없어요. 그래서 대체로 연봉제를 정합니다. 잘 하는 분에게는 잘하는 것만큼 주는 거예요. 능력대로 더 주는 거예요. 어느 분야든지 능력대로 주고, 또 줄 때에는 주급으로 줍니다. 열심히 일하고 교포들도 보면 다 한 주일에 타오더라고요. 엿새동안 일하면 주말에 가서 한 주일 일한 것 타와요. 2주간에도 예를 들면 한 시간을 어디서 다녀오면 그 한 시간을 빼버립니다. 어떤 분은 커피 사먹으러갔다 오니까 오분을 제하고 주더랍니다.
정확하게 주는 거예요. 어떤 분은 화장실에 오래 갔다 오니까 탁 줄이는 거요.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는 것하고는 다른 거예요.
하나 하나를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는 겁니다. 일한 것만큼 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한국 사람이 운동장에 가서 야구 구경을 하다가 머리가 아파서 옆에 있는 사람한테 머리 아프다고 하니까 옆에 분이 그러더래요 만져보더니만 “감기 같다고 집에 가서 이런 약을 사먹으라”고 그래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집에 왔어요.
한 일주일 후에 돈 내라고 통지서가 왔어요. 보니까 그 옆에 잠깐 이야기 해준 그 의사 선
생님이 돈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럴 수가 있느냐 우리 나라 같으면 그걸 친절로 생각하는데 말도 안된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냐? 그래가지고 변호사한테 갔어요.
“세상에 선생님 이럴 수가 있느냐. 미국이 좋은 나라인데 이럴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하고 이야기 하니까 이거는 이렇게 해서 다시 소송하라고 그래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집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일주일 후에 또 뭐가 하나 딱 날라 왔는데, 그 변호사한테서 돈 내놓으라는 거예요. 돈. 공짜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일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종일 다방에서 담배나 피우며 놀아나는 이 사람들이 수 십만이예요. 젊은 사람들이 건강한데 일 안하고 한탕만 바라고 화투나 치고 낮에는 낮잠만 늘어지게 자다가 밤에는 나이트 클럽가서 어떤 꼬일 여자 없는가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가만히 노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대학 졸업하고,
“이건 내하고 너무 안맞아. 이건 얼마 안돼. 이건 내 맘에 안 맞아“.
돈이 아니예요.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면 좋은 날이 오는데, 일 안하는 사람에게 좋은 날이 안온다라는 거예요.
하루 종일 앉아서 장기나 두고 바둑이나 하고 고스톱이나 하고 되겠어요? 노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기독교는 씨를 뿌리는 종교입니다. 좋은 것을 뿌리면 좋은 것을 거두고 믿음을 뿌리고 기도를 뿌리고 열심을 신앙을 봉사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잘 못 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불의를 심으면 불의를 거둡니다. 죄를 심고 방탕과 거짓과 음란과 교만과 불신앙을 심고 좌악으로 벗하려 이 세상에서 헛된 삶을 살면 그냥 헛되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헛된 것도 거두는 거예요.
잘못 심은 것도 허송세월도 거두는 거예요. 실패를 거둡니다. 질병을 거두고 부끄러움을 거
두고 멸망을 거두고 가난과 고통을 거두는 것입니다.
저는 목화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젊어서 부모를 잘 만나가지고 흥청망청 살다가 나중에 악하고 저주스런 병에 걸려서 가정이 다 파탄이 된 그런 교인들이 여러분 있었습니다.
전에는 백만장자고 전국에 몇째 가는 부자들이 뿌린 것 없이 나중에 잘되겠지 했는데 자기를 심은 그대로 거두는데 어디에서 누가 자기를 도와준단 말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은 땅에서는 식물이 자라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행하는 대로 열매맺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농촌이 좋고 평화로운 것은 한 가지 단순한 진리입니다. 씨를 뿌리면 거둔다는 이 진리가 농촌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경찰이 되는 겁니다. 농촌은 검찰도, 경찰도, 판사도, 검사도 없습니다. 군인도 없습니다. 그래도 다 질서 있게 살아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심는 대로 거두는 간단한 농사 속에서 자기들이 나쁜 짓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심는 대로 거두는걸 늘 보는데 어찌 나쁜 일을 하겠어요.
서울이 문제가 많은 것은 이걸 모르고 어려서부터 자라나는 거예요. 어린 아이들이 안 심어도 된다고하는 이 도시 문명 속에서 청소년들이 탈선하고 있고 거기서 자라난 기성세대가 오늘 문제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밤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소매치기와 도적질과 나쁜 짓 하려고 밤을 기다리는 사람이 수십만이예요.
위조수표, 위조화폐, 어디 누구를 해칠 사람이 없는가. 갖가지 죄악을 가지고 계획하는 사
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밤이 아니라 당신 앞에 어두운 밤이 올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훔치는 것이고 남을 강도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나를 강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진리되시는 말씀, 거룩한 말씀, 생명의 말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정확하고 진실하게 오늘날 우리를 지켜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게 살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입니다.
한평생 잘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어리고 장성한 것은 말씀의 순종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13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젖만 먹는 것이고 장성한 사람은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다. 장성한 사람은 무엇을 말하느냐.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사람은 “이러면 되나, 안되 나를 아는데 어린아이는 그걸 모른다”는 거예요.
교인 가운데도 어린 교인은 이렇게 되는지 저렇게 되는지 모르고 그냥 막 사는데 신앙 생활을 벌써 하나님 말씀 속에 깊이 오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안 사귄다는 거요.
누구나 결혼 안하고 어떤 사업이나 안 한다는 거예요.
길이 있다 선악을 분별한다는 거예요. 철저하게 분별하는 거예요.
매일 매일의 삶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먹을 것과 안 먹을 것 분별하며 먹는다는 거예요. 어린아이처럼 아무 것이나 입에 넣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랑 받고 매 맞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저희들이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농사를 짓는 걸 보면 우리 아버님께서 여름에 한철 바쁠 때 소를 빌려옵니다. 옆집에서 빌려옵니다. 옆집 부잣집의 큰 소 오래된 소를 빌려다가 하루 종일 일을 하시면 그 소가 하루 종일 순종하면서 그 주인의 말하는 그대로 순종하는 거예요. "이랴"하면 갑니다. 서는 것은 "워"하면 섭니다. "돌아"하면 돕니다.
때릴 필요가 없습니다. 화도 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능률이 올라 갑니다. 소도 편하고 주인도 편하고 일을 많이 합니다.
어떤 때는 옆집의 소를 못 빌려올 때는 우리 집 얼니 소를 사용합니다. 젖 뗀지가 한 1년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그냥 못가고 앞에서 끌어야 해요. 그런데 끄는데도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때립니다. 막 속상 해 하십니다. 왜? 말을 잘 안들으니까. 왜 맞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안하는 거예요. "이랴" 그래도 안가는 거예요. "돌아" 그래도 안도는 거예요. "워" 그래도 제 멋대로예요. 그러니까 얻어 터지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개인이나 민족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서 하나님께서 속상해 하시는 거예요. "내 마음이 답답하다"
그러시고요 "내가 괴롭다" 그러시고 얼마나 그런 말씀이 많아요.
내가 내 백성 때문에 견딜 수 없다 그러는 거예요. 왜?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환난과 재난과 질병과 전쟁과 가난과 슬픔과 수고와 고통으로 갖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을 때리는 거요.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순종하는 자는 징계가 안 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떠나 살아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떠나면 길이 막힙니다. 탕자처럼 길이 막힙니다. 함정에 빠지든지 가는 길이 반드시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떠난 민족 말씀을 떠난 개인을 안됩니다.
우리 나라가 IMF의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도 이 민족이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시 2편에 보면 "어찌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
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
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세상의 관원들이 높다고 말씀을 무시하고 세상의 높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이 나라를 잘해보자. 여호와께서 웃으심이요. 여호와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말씀을 떠나서 승리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링컨이 말한 대로 “성경을 늘 손에 펴고 있으라”
천국 가는 길까지 늘 펴져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늘 펴고 순종하는 정치가가 되고 지도자가 될 때에 천국 가는 그날까지 우리의 삶의 길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떠나서 성공하려고 하는 생각은 하나님이 비웃으시는 거예요.
말씀 앞에 고개를 숙이고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고 살아하시고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이 순종할 때 제일 좋아 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순종할 때 좋아합니다.
지휘관은 순종하는 부하들을 좋아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처럼 더 좋아하는 건 없습니다.
말씀을 떠나면 다 싦어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무시하면 싫어하는 것입니다.
황희 정승이 하루는 아들이 어디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외관을 정재하고는 아들에게 절을 넙죽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이 "아이고 아버님 어찐 일이시옵니까?제가 누구 아닙니까? 왜 이러시옵니까?",
" 아닙니다. 손님이 오시는 데 내가 절하지 않을 수가 어찌 있습니까?",
"저는 아들이지 무슨 손님이라 하십니까?", " 아버님 왜 이러시옵니까?",
"내 말은 순종하지 않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요, 내 자식이 아니면 손님이데 손님이 오는데 내가 어찌 안 일어날 수 있소 어서 오세요."
그래서 그 아들이 회개하고 아버님 말씀을 잘 순종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순종해야 되요.
하나님께서 목소리 순종하는 것 보다 더 좋아 하겠느냐. 삼상 15:22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이 기름보다 나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라는 거예요.
목소리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할 사람은 없다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사랑 받는 길이 여러분이 잘 되는 길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축복 받는 길인데 하나남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여 순종하는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늘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는 수양하러 오는게 아니예요. 친정하고, 재미있고, 즐거워서 오는게 아니예요. 근심 벗으려고 오는게 아니예요. 말씀 시가닝 재미있는 시간으로 철학 강의 시간 정도로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거예요.
하나남의 말씀은 우리를 향하여 정확하게 비추어 주어서 하나하나 세밀하게 거룩하게 하셔서 내 도덕과 윤리와 가정과 생활과 언어를 바로 잡아 주셔서 하나님 앞에 고치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누가복음 13:4에 "예루살렘에 망대가 무너져서 열 여덟 사람이 죽지 아니하였느냐?. 그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더 많은 줄아느냐"아니라는 거예요.
주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망하리라"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고가 일어나고 뉴스가 나면 그 사람들 말만 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도 그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원래 그 집들이 죄가 많고 과거에 그 집들이 그래서 그렇게 됐다고 그렇게 남의 이야기만 모두 하고 돌아다녔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남의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너를 향하여 주는 말씀, 너 회개하라고 경고하는 것,너보다 더 죄가 있는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경고 했는데 안 들어 가지고 당했고 경고하는 것, 너보다 더 죄가 있는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경고 했는데 안들어 가지고 당했고 안 들어 가지고 당했고, 너도 지금 그 사람들을 통해 또 경고하는 것이라”는겁니다.
남의 가정 이야기하지 말아요. 남의 가정이 여러분 가정에 대한 경고예요.
남의 기업 이야기 하지 말아요. 여러분에 대한 경고예요.
남의 남편 이야기 하지 말아요. 여러분에 대한 경고예요.
내 앞날 내 영혼 내 생명 내 모든 앞날을 귀히 여기거든 하나님 앞에 늘 회개하는 삶이 되시를 바랍니다.
사법고시 하는 사람들은 고시 준비를 서울에서 하지 않습니다. 외로운 곳에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자신과 싸우는 거예요. 모든 만남을 만나지 않고 자기 앞날을 자기가 성실하게 철저하게 자기 앞날을 자기가 책임지고 들어가는 것이 고시생이예요.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내려오면서 수천년 동안 수도원 제도가 얼마나 우리를 경건하게 해서 깊이 기도하고 내 자신의 문제를 위하여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오래오래 고난과 좁은 길 십자가 짊어지고 걸어온 오늘날입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너무 많이 타락했어요. 너무 많이 세상과 흥청망청 섞여서 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자신을 잃어버린 삶들이예요.
남에게 관심이 너무 많아요. 내 영혼이 죽어 가는 내 자신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거예요. 성경은 말합니다.
“네가 회개하라는 거예요. 네 문제가 크다라”는 거예요. 네 앞날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거예요“
회개하고 바로서는 길만이 여러분이 영원히 잘 되는 길 일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 119:103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 119:127에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니이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꿀이예요. 달아요. 맛있어요. 우리 인간의 꿀은 말씀이예요.
내 영혼의 꿀은 말씀이예요. 속에 있는 내 인격은 말씀을 들어야 내게 영양을 주고 힘을 주는 거예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꿀같이 되도록 여러분이 말씀을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꿀과 정금이예요.
세 번째,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눅 5:5에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릴 때에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채워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그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백부장은 "말씀만 하옵소서,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 잘 들으면 잘 지키면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게 되어져 있습니다.
어떤 교인은 설교는 안듣고 예배마치고 안수만 받으려고 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설교시간이 안수보다 몇 만 배 귀한 것입니다.
설교 시간이 내 영혼을 안수하고 내 모든 죄를 안수하여 죄를 사하고 설교시간에 질병을 안수하여 병이 떠나가는 시간이예요.
죽은 자가 일어나는 시간이 설교 시간이예요. 말씀만 잘 들으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라고 하는 모든 문제는 "이렇게"라고 하는 모든 길로 다 안내해주는데 말씀 잘듣고 순종하여 기적이 일어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새롭게 합니다. 내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 다 수술한다”라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잘못된 것을 다 깨끗하게 치료해 주는 말씀.
에스겔 37장에 읽어보면 에스겔을 하나님이 어느 골짜기로 안내하는데 에스겔이 눈을 뜨고 보니까 수 많은 해골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에스겔아 너 무얼 보느냐",
"해골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이것이 살 줄로 믿느냐? 이 해골이, 이 뼈가 다 살줄로 믿느냐?
예 하나님이 말씀하면 살 줄로 믿습니다.“
그때 뭐라 했어요? "너는 이 모든 뼈에게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명령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에스겔이 그 모든 말씀으로 뼈들을 향하여 설교를 했더니 벼들이 소리를 내면서 전부 자기 뼈를 찾아서 붙더니만 조금 있으니까 살이 붙고 힘줄이 붙어서 훌륭한 군사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너희 나라가 지금이 뼈들과 같다”는 거예요.
살아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 백성들은 해골 골짜기라는 거예요.
살아있어도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이 부흥이 와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말씀으로 돌아올 때 이 백성은 이렇게 새로운 이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한 부분만 건드려서 이 나라가 살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 민족은 말씀 위에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영국이 빅토리아 여왕 때에 말씀을 일으켜서 전 영국이 부흥이 일어나서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처럼 독일은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해서 성경을 번역하여 온 국민이 성경을 읽으면서 독일이 일어난 것처럼, 이 민족이 성경으로 돌아가서 해골 골짜기 같은 우리의 정신들, 우리의 이 타락한 모습들이 말씀으로 새롭게 일어날 때에 이 민족은 정말 위기에서 벗어나고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민족으로 쓰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세상을 올바로 다스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올바른 인격 올바른 국가, 올바른 생애, 올바른 우리의 삶은 오직 말씀 대로입니다.
다섯 번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집을 짓되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
람 같다라고 마태복음 7:24에 말씀했습니다.
든든한 집입니다. 흔들리지 아니하는 집입니다. 견고한 삶입니다. 우리의 생명이나 건강이나 물질이나, 가정이나 국가가 든
든해야겠습니다. 어떤 시험과 환난과 재난이 올지라도 요동치 아니하는 그런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나라를 보면 너무 가벼워요.
어렸을 때 부흥 목사님이 그래요. 냄비 신앙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불에다 올려 놓으면, 보르륵 금방 끓는 다는 거예요. 금방 식고, 금방 뜨겁고 금방이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의 신앙이 말씀에 의지하여 천근 만근, 천년 만년 가는 신앙이 되야 하는데 너무 가벼워요.
요사이는 외제 자동차라고 막 긁어버린다 그러고요. 어떤 교인이 차를 대어 놓았는데 막 긁어 놓았다는 거요.
어제 뉴스에 미국하고 유럽에서 한국차 안 팔아 준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우리는 1년에 백만 대나 팔아 먹는데, 외국차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것 긁는다? 그 사람들이 볼 때 상대 못할 사람. 이 나라가 상대할 민족이 아니라는 거예요.
외제를 왜 긁습니까?
외제 탄다고 왜 욕합니까?
우리는 전부다 남의 나라에 팔아서 남의 나라 사람들이 다 쓰고 있는데 천 오백 불이나 우리가 팔아먹으면서 왜 외제를 그렇게 합니까?
너무 가벼운 거예요.
말 한마디하면 너무 가벼워요.
외제 쓰지 말자 그러니까 노트까지 볼펜까지 다 안쓰는 거예요.
우리도 좀 사야 사람들도 사 주고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는 너무 가벼워요.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그저 온 나라가 일순간에 넘어지는 거예요. 총소리 하나만 들려도 전부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그래요. 이렇게 가벼운 국민성으로 어떻게 세계에 일을 하겠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너희는 교회에 뭐 하러 갔더냐. 좋은 옷 입은 사람 보려고 갔더냐. 그런 사람은 왕궁에 있느니라.”
신앙은 그런 것 보고 다니지 말라는 겁니다. 굳건한 믿음 위에 서서 반석 같은 신앙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변치 아니하는 신앙의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만이 내 집도 든든하고 아무 요동치 아니하는 여러분의 생애가 되어서 환난이나 재난이나 시험을 이겨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