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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eo From 5 To 7, 1962)
<목 차>
Ⅰ. 아네스 바르다, 그녀에 대해서
Ⅱ. 누벨바그와 아네스 바르다
Ⅲ. 영화 분석 (전반부/후반부)
Ⅳ. 영화에 나타난 특징
Ⅴ. 영화 안 시대상황
Ⅵ토론
*참고문헌 및 논문
교 수 명 : 유 지나
교과목명 : 고전영화분석
팀 원 : 박세준 박소영 박은비 박정아 박지민
변규미 빈영은 서원진 성혜인 송성회
이은수 이현영
Ⅰ. 아네스 바르다, 그녀에 대해서
1. 그녀의 작품세계
아네스 바르다는 192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사진작가로서의 경험은 훗날 그녀가 정확한 카메라 워크를 구사하고 순간적인 것의 의미 포착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과 거리에 관한 시적인 에세이 〈오페라 무페거리〉(1958)로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로부터 커다란 환대를 받았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던 그녀는 본격적인 극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통해 일약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다. 암 선고를 받을 걸로 지레 짐작하고 겁을 먹은 젊은 여성 가수가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겪는 일상적 사건의 흐름과 내면 풍경을 활기찬 카메라 워크와 편집으로 뒤쫓으며, 연대기순의 시간에 영화가 어떤 질서를 부여해줄 수 있는지를 풍부한 스타일로 증명했다. 그 이후 1964년에 만든 〈행복〉은 동시대의 어떤 프랑스 영화와도 구별되는 여성감독 바르다만의 영화세계를 확립시켰다. 1972년부터 여성주의 운동에 동참한 바르다는 〈방랑자〉(1985)를 만들 때까지 극영화로는 1976년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한 편만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여성감독으로서 그녀의 자리는 이때 더 확고해졌다. 1975년에 만든 8밀리 영화 〈여성의 대답〉 이후 동료 여성들과 함께 꾸준히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 작업을 이어갔다. 바르다의 영화세계는 늘 그녀의 체험에 기초해 이뤄졌다. 자신이 사는 집 주변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삶을 다룬 〈다게레오타입〉(1974)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아무도 모르게〉(1987)를 찍을 때는 아들 마티유를 주연으로 출연시켰다. 그리고 역시 〈아무도 모르게〉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제인 버킨에 관한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본 제인〉(1987)을 만들기도 했다. 남편이자 〈셸부르의 우산〉(1964)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자크 드미가 병으로 죽어갈 때 바르다는 그와 함께 산 33년의 삶을 회고하며 걸작 〈낭트의 자코〉(1991)를 만들었다. 현재도 활발히 작업 중인 그녀에게 ‘현존하는 최고의 여성감독’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2.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영화인
●프랑스 페미니즘 영화의 상징
기존의 영화적 관습을 거부하며 모든 종류의 권위와 편견에 대항했던 누벨바그 영화들도 여성문제에서만큼은 별다른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트뤼포의 <쥴앤짐>에서 두 남자와의 삼각관계를 주도하는 카트린이나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자신의 애인을 경찰에 밀고하는 파트리샤 같은 여자 주인공들은 전통적인 여주인공들과 달리 어느 정도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들 역시 결국엔 남자 주인공들과 짝을 이루어야만 의미를 갖는 여성일 뿐 독립적인 면모를 갖추지는 못했다. 이처럼 영화 탄생 이후 약 반세기가 넘도록 줄곧 극단적이라 할 만큼 남성위주의 창작 환경으로 일관되어 오던 서구 영화사에서, 바르다는 독창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영화세계로 여성 영화의 위상을 드높인 선구적인 여성 시네아스트이다. (영화 작가나 제작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용어. 일반적으로는 ‘영화인’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인 영화 애호가를 포함하고, 영화 예술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생이나 열광적인 관객 등도 포함한다.) 바르다 작품의 여성 주의적 시각은, 우선 한 쌍의 남녀가 이끌어가는 통상적인 이야기에서도 종전의 영화들이 보여주던 남성의 전지적 역할이 사라지고 대신 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나간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영화들은 보통 일반적인 남녀가 맺는 내적 관계와 또 이들이 사회와 맺는 외적 관계가 겹쳐져 있는 이중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내적 관계와 외적 관계 모두를 주시하고 유지하면서 좀 더 나은 것으로 개선해가려 하는 이는 항상 여자이다. 예를 들어 <다섯 시에서 일곱 시까지의 클레오>는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서만 살아온 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해가는 것은 언제나 여주인공들인 것이다.
●주관적 객관주의 영화들
바르다의 많지 않은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주관적인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시에서 일곱 시까지의 클레오>에서부터 이미 드러났던 이러한 성향은, 대개의 작품들이 다큐멘터리나 그와 유사한 형식에 기초하면서도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매우 그럴 듯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좀 더 허구적인 다큐멘터리’ 혹은 ‘좀 더 상상적인 실재’를 영화 안에 만들어내는 셈인데, 마치 변증법의 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그녀는 이를 통해 좀 더 ‘사유적인 사실’ 혹은 ‘사유해야 할 사실’에 이르고자 한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 <다섯 시에서 일곱 시까지의 클레오>.<행복>,<피조물들>,<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집도 없이 법도 없이>에 이르기까지 바르다의 영화들은 모두 현대 사회에서의 여성의 정체성이라는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도, 동시에 어느 하나 뒤떨어지지 않는 높은 영화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바르다는 이전까지의 다른 영화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연출솜씨와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애가 넘쳐흐르는 비판적 시선으로 여성 영화의 탁월함을 입증해보인 진정한 여성 시네아스트라 할 수 있다.
Ⅱ. 아네스 바르다와 누벨바그
1. 누벨바그의 탄생과정
누벨바그의 탄생 배경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언급된다. 첫째, 트뤼포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짧은 글이다. 이 글은 작가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으며, 트뤼포를 중심으로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 새로운 영화를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물론, 바로 이 젊은 영화인들이 몇 년 후 누벨바그를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다. 둘 째, 트뤼포의 글이 실렸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이다. 앙드레 바쟁이 편집장을 맡았던 이 잡지는 젊은 영화인들이 자유롭게 영화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담론의 장이 된다. 셋째, 1940년 대 말 앙리 랑글루아에 의해 설립된, 일종의 국립예술전용 극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이다. 다스의 희귀 필름들과 영화 도서들을 소장한 이곳에서 당시 새로운 영화를 갈구하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지적, 문화적 욕구들 충족시킬 수 있었다.이 밖에도, 프랑스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는 두 가지 요인이 더 있다. 첫째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운동이고, 나머지는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와 현대인을 특정 짓는 하나의 대안적 사상으로 퍼져나간 실존주의 철학도 누벨바그 영화들의 정신적인 배경이 된다. 특히, 가톨릭 문명보다 고대의 희랍 문명에서 사상적 근원을 찾으려 했던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고다르나 트뤼포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대한 다양한 암시들을 영화 곳곳에 숨겨 놓곤 했다.
ex)<오!슬프도다>는 헬레니즘 신화의 명쾌한 해석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2. 누벨바그의 미학
누벨바그의 미학은 작가 감독의 창작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저예산에 특전을 부여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데 있다. 그러나 누벨바그의 미학은 영화의 개념 자체로부터 편집과 마지막 동시녹음까지 당시 기술적 관행을 지배하던 수많은 관습을 확 뒤집어엎기도 한다.
1. 작가 감독은 영화의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하다.
2. 작가 감독은 사전에 엄격하게 작성된 장면을 이용하지 않으며, 많은 부분이 시퀀스의 구상, 대사, 배우의 연기 분야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
3. 작가 감독은 촬영할 때, 자연 그대로의 배경에 특권을 주고 스튜디오에서 재구성된 세트 작업을 거부한다.
4. 작가 감독은 몇몇 사람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을 이용한다.
5. 작가 감독은 촬영 후 녹음보다는 촬영 당시 녹음된 직접 음향을 이용한다.
6. 작가 감독은 과중한 추가 조명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촬영감독과 함께 아주 민감한 영화필름을 선택한다.
7. 작가 감독은 등장인물의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서 비전문 배우를 기용한다.
8. 작가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배우를 기용하게 되면, 자유롭게 배우의 연기를 지도하기 위해서 새로운 배우를 선택한다.
이 모든 선택은 영화 제작의 더 큰 유연성을 지향하고, 상업적이고 산업적인 모델에 의해서 고안된 영화의 무거운 제약을 가능한 경감시키려고 노력한다. 또한 픽션과 기록영화 사이에 경계를 없애 버리는 것은 누벨바그 미학의 축의 하나이며 또 다른 축은 더욱 서술적인 주제에 있다. 여기에는 창작의 더욱 소설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는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 피에르 카스트, 자크 도니올 발크로즈 같은 작가가 포함된다. 이 모든 작가 감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촬영 후 녹음을 하고 사전에 준비된 시나리오와 대사에 기초를 둔 영화에 대한 더욱 전통적인 관습대로 영화를 제작한다, 이들도 역시 누벨바그의 운동에 속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저예산, 자서전적인 영감, 현대사회에 그리고 그 시대의 분위기에 묶인 그들 영화가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즉 청춘에 대한 신화, 새로운 도덕, 영화의 자서전적인 차원, 서술적 자유, 본론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이다.
3. 누벨바그의 영향
누벨바그는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 운동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뉴욕이란 도시와 북아메리카의 다양한 경치를 알게 되듯이. 외국관객이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통해 프랑스 사회의 행동, 존재 양식, 제스처, 말하는 방식. 도덕적 태도를 보고 항상 프랑스 사회를 재발견하다. 외국 관객 중에는 영화 팬도 있고 영화학도나 대학생도 있다. 장 피에르 멜빌이 폴 슈 레이더나 오우삼에 대해서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틴 스코시즈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증언하듯이. 외국 관객들은 트뤼포나 고다르의 작품을 통해서 영화역사에 입문하고 미국, 아시아, 동양 영화의 젊은 세대는 <국외자들>이나 <피아니스트를 쏴라>의 교훈을 되새겼다.
-오우삼을 어느 정도 아는 팬들이라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듯 그의 작품은 멜빌의 <사무라이>나 <암흑가의 세 사람>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우삼의 폭력미학 역시 멜빌으로부터 빌려 왔고. 결국 멜빌은 오우삼에겐 사표(師表①학식과 덕행이 높아, 세상 사람의 표적이 될 만한 사람 ②모범 인물)로서 군림하고 존재이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러티브(서사, 이야기)다. 인간은 실제로는 서사적이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이야기를 욕망한다. 이야기는 의미를 생산하고 질서를 부여한다. 그런데 서사는 객관적일 수 없다.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종의 질서와 법률, 권위를 합법화하려는 욕망을 지닌다. 주류영화의 서사는 대체로 부르주아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지지한다. 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신화라고도 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깨기 위해 서사를 붕괴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1950~60년대 누벨바그 운동이 대표적이다. 장 뤼크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는 서사구조의 연속성을 파괴했다. 한국에서는 홍상수가 내러티브를 찢는 감독이다. 홍 감독은 영화에서 아무리 많은 얘기를 늘어놔도 차이와 반복만 남는다. 타란티노 감독은 1994년 에피소드마다 이야기의 순서를 뒤죽박죽 섞은 ‘펄프 픽션’을 만들었다.
4. 기존 누벨바그와 아네사 바르다의 차이점
(1) 주제- 여성의 리얼리티와 실존적 고민
아네사 바르다의 영화는 지배적 남성 이데올로기의 특권을 박탈하고 제도적 미신을 폭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지극히 혼란스럽게 영화 언어를 사용한다. 여성들은 역사와 무관하고, 타자로서 구현되는 즉, 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 존재하지 않는 주변인인 여성을 주목한다.
“영화는 세상의 풍속보다 빨리 나아가야 한다. 여성은 자신의
재현을 변형시킴으로서 자신의 미래를 발명해야 한다.”
바르다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 또한 존재한다. 이는 그녀의 작품을 유럽 예술 영화(요컨대 남성)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 뒬락, 엡스탱처럼 프랑스 초기 페미니스트 영화인들의 맥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일부 페미니스트 영화 진영에서 바르다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구체적, 현실적 여성 문제를 다룰 것을 주장 한 페미니스트로부터 <클레오>나 <행복>같은 영화는 부르주아 페미니즘으로 비판 받는다.
(2)스타일
●다큐와 극영화의 병치, 공존
1954년 다르다의 첫 번째 장편영화 <라 푸엥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라 푸엥트 쿠르트’ 어촌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것이다. 이 작품속의 공간은 4년 간 동거해 온 여자와 남자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드라마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는다. 다르다는 다큐와 픽션의 병존, 개인과 집단이 동시에 존재하는 일상의 풍경을 공간의 공통으로 묶어 표현해내며, 다큐-에세이는 대안 영화 양식으로 주목받게 된다.
●색채 상징주의
컬러에 관한 제작의 두 흐름은 ‘현실감’을 드러내던지, 또는 컬러에 두드러짐과 의미를 넣는 기회로 이용 하던 지로 나뉜다. 바르다의 영화 <행복>은 주인공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따라 화면이 바뀔 때마다 노란색과 붉은 색으로 짙게 물드는 화면의 색채 상징주의를 통해 결혼제도의 불안한 토대와 그 토대 위에서 추구하는 행복, 열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또한 첫 인트로 씬만 컬러고 나머지는 흑백을 사용, 즉 한 영화 안에서 흑백과 컬러를 동시에 사용하였다. 바르다의 말을 인용하면, 첫째 픽션(타로 시퀀스의 타로 점) 논픽션(흑백에서 영화가 쫓아가는 클레오의 비극 아닌 비극)의 구별이다. 두 번째로 문자 그대로 영화의 전망을 채색하면서 나머지 영화의 압도적 중요성을 반영한다.
●거리
거리는 그녀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구이자 표현의 매개이다, <이삭을 줍는 여인과 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방랑자>등등 그녀는 거리에서 영감을 받거나 거리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상의 풍경과 리얼리티, 실존적인 고민을 거리에서 찾는 것을 거리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시켰다.
Ⅲ. 영화 분석 (전반부/후반부)
1. 전반부
●타로카드
타이틀의 타로카드: 한 여자가 혼자 의자에 앉아있다. → 이 영화는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암시
-과거 : 애인이 그녀의 생활에 많은 영향 / 도움이 안 되지만 헌신적인 과부 → ‘앙젤’을 말함
-현재 : 다정하고 돈 많은 남자 (덕분에 재능을 펼침) 당신 곁에 한 남자가 있다. 하지만 자주 못 만난다. 여하튼 너한테 좋은 남자. → ‘그 불륜상대, 사업가’ / 질병의 조짐
-미래 : 결혼은 힘들 거야. 역마살(운명의 세 여신)이 있다. → 이건 확인할 방도가 無
●두 번째 타로
변화, 고통이 있을 거고, 큰 병의 조짐이 있다./ 새로운 남자 (말 잘하고 즐겁게 해주는 청년)를 우연히 마주칠 것이다. → ‘앙투안’ 하지만 병이 걱정이다./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마지막 카드 => 클로에는 이것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결말부에서 ‘새로운 (자아의) 탄생’이 옳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 4분의 타로카드 장면은 영화의 모든 내용을 암시 하고 있다. 병원에서 검사만 받고 결과를 점괘로 미리 알아보려는 클레오의 모습이 어리석다.
<챕터 1 : CLEO de 17h.05 a 17h.08>
●‘핸디헬드, 한 샷의 반복 : 마치 음악의 리듬감을 영상 안의 클레오로 표현. (음악활용)
●‘수많은 거울 안의 클레오 : ‘추함이야말로 곧 죽음이지.’ ‘미모가 있는 한 나는 살아있는 거야.’ -> 인생의 의미와 삶을 아름다움과 결부시킨다.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모습.
●‘거리를 걷은 클레오; 트랙킹 (누벨바그 특징 + 실시간 이동하는 모습으로 파리의 전경 show)
●‘앙젤을 만나 자신의 점괘에 대해 말한다; 자신이 병자처럼 보이는지 묻는 클레오. 그렇게 보인다면 죽어버릴 것이라는 것에서 그녀의 인생관이 보인다.
<챕터 2 : 앙젤 de 17h.08 a 17h.13>
●‘ 독백으로 시작: 그녀의 철없음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한다. → 하지만 앞에서는 위로를 건넨다. + 그녀를 달래는 앙젤.
●‘남자 둘이 클레오에게 관심을 보인다. (클레오는 매력 있는 여자)
●‘ 앙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 주변인들이 검사 받은 환자를 죽은 사람 취급했지만 그가 도리어 남보다 오래 살고 있다는 이야기. (클레오의 걱정은 허망한 것임을 비유)
하지만 클레오는 옆의 커플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인다.→남녀 커플의 이별
-> 클레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는 앙젤이 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불안에 사로잡혀, 불길하고 부정적인 것에 모든 감각이 쏠린다.
●‘클레오와 앙젤 거리 트랙킹, f.s.
●‘모자가게에 들린 클레오와 앙젤; 앙젤은 심드렁하지만 클레오는 신이 나서 구경한다.
(그녀의 변덕을 보여준다. 철부지 + 제멋대로
<챕터 3 : CLEO de 17h.13 a 17h.18>
●‘독백으로 시작: 새 모자를 고르는 것을 즐거워하는 클레오
●‘클레오의 거울 반사로 지나가는 기병대, → active athletic camera...라고 합니다.
●‘여름의 털모자를 사는 클레오. (검은색 삼각모) → 화요일에 새 옷 입는 것은 재수 없다고 말하는 앙젤 (거울에 비치는 모습 많음)
●‘클레오의 직업 소개; 가수 → 타인의 시선을 즐기기도 하는 그녀.
●‘또다시 거리 트랙킹.f.s.
●‘앙젤은 계속해서 미신에 대한 것을 말한다. (차번호를 보고 택시를 탄다.)
●‘파리의 시내를 보여준다. (클레오에게 껄떡대는 남자들)
택시 안에서 그녀의 노래가 나온다. → 우연히 내다본 디스플레이에 토속 신앙적 가면(또는 아프리카 인들의 가면)들이 보이고 클레오는 더 위기감에 휩싸인다. (+ 가면을 쓰고 노는 청년들)
<챕터 4 : 앙젤 de 17h.18 a 17h.25>
●‘독백으로 시작; 젊은 시절에는 즐겨야 한다. → 클레오의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택시기사의 무용담→ 용감하고 당당한 여자상을 보여준다. (클레오의 동경)
●‘라디오의 뉴스
위스키 샴푸 → 잠깐 앙젤이 머리를 쓰다듬는 샷 (클레오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상태)
알제리에서 폭동. 파리 군 재판 농민들의 시위 마를레 시위 주동자의 재판소식 그것에 대한 시위 케네디에게 개를 선물한 것.
=> 각각에서 터지는 시위보도. 혼란스러운 시기
피곤하다는 클레오 → 자신의 문제에 빠져, 상관없는 많은 뉴스들에 신물을 느끼는 클레오.
●‘다시 뉴스
지하철 역 작업사고 박물관 폐쇄 에디트 피아프(유명가수)의 수술 후 회복소식(생명을 건졌다) -→ 희망적 뉴스, 영국인이 도버해협을 건넜다. → 용기의 예, 여자 낙하산병에 대한 것 → 긍정적인 택시기사의 반응 (또 한번 택시녀의 용감함)
●‘집으로 돌아온 두 여자.
좁은 앙젤의 방에 비해 널찍한 클레오의 방. 사방에 거울 배치. 하지만 답답하다고 말하는 클레오. 하얀색 화려한 슬립을 걸치는 클레오. 앙젤은 검은 색 옷을 입는다. 여기서도 거울에 비친다. 집에서 조차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풀어진 머리를 다시 손질하는 클레오. 남자가 찾아온다. ‘아프단 말 하지마요. 남자는 아픈여자 싫어해요.’ (둘의 관계에서 클레오가 을이다.)
<챕터 5 : CLEO de 17h.25 a 17h.31>
●‘남자가 왔다는 말에 거울을 보는 클레오. 로맨틱한 음악과 함께 애인등장.
●‘대화들; 다정하지만 자주 못 만나는 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레오가 아픈 것도 모른다.) ‘이렇게 고운 몸에 병이 날 리가 없어.’
→ 클레오는 스스로도 그렇지만 타인에 의해 시선에 대한 압박과 집착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순식간에 떠나려는 남자. 모자가 배달 온다.
●‘앙젤과 대화 나누는 클레오; 남자에 대한 애정을 점친다. 사랑받는 것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클레오. ‘만나자 할 때마다 만나주고 예쁜 모습만 보여준다.’→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녀가 을이라는 것이 보여준다.
병의 결과에 대해 걱정한다. 흔들거리는 의자와 그네 →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심리
<챕터 6 : 밥 de 17h.25 a 17h.31>
●‘마우리스와 밥(미셸 르그랑, 음악감독→ <쉘부르의 우산>의 영화음악). 클레오가 아프다는 말에 의사로 변장해서 장난치는 둘. 클레오는 짜증을 낸다. (자신은 우울한데 남들은 즐겁고 유쾌해 하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
●‘’추는 미이고 미는 추이다.’ 셰익스피어의 말.
●‘일정을 당겨서 여행을 계획하는 클레오.
→죽음에 대해 그녀가 택한 선택으로 보인다.
클레오를 위로하는 둘. 마우리스가 위스키를 넘기는 과정에도 음악을 깔아준다.(음악활용)
-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는 밥. 박자에 맞춰 화면이 waltzlike camera walking,
‘유희’를 부르는 마우리스, 컵의 무늬. 세 여자. → 운명의 세여신.. 설마...????^^????
<챕터 5 : CLEO de 17h.38 a 17h.45>
●‘밥 ‘이 노래를 소화할 수 있을까?’ → 재능을 의심한다고 생각하는 클레오(자격지심)
●‘노래 ‘사랑의 눈물’ ; 가사 ‘아름다움을 꽃피우지 못한 채 잔인한 겨울 속에 버려진 나는 빈 껍질이에요. 당신 없이는’ /카메라 워킹 서서히 클레오의 얼굴로 c.u. → 다시 사이즈가 순식간에 빠진다(클레오가 노래의 화자에게 동조하다가 노래가 끝나면서 자신의 현실로 돌아온다.)
‘절망’이란 단어에 반응하는 앙젤과 클레오.
●‘감정의 동요가 커지는 클레오. (시선에 대한 압박감)
●‘밥이 클레오에게 ‘순 응석받이’라고 말하는 화면; athletic camera walking = dissolve + panning → 클레오의 감정의 축이 바뀌는 것을 표현. (불길, 불안함)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는 클레오. 거울대에 가발을 벗어던진다. → 타인의 시선을 벗어던진다. 그런 클레오에게 시선을 던지는 세 사람.
검은색 털모자를 쓰고 나간다. ‘아무렴 어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클레오가 집 밖으로 나올 때, 거리에 앉아있는 아기의 장난감 피아노에서 음악이 시작된다.(음악활용) 또 거리 트랙킹.
●‘클레오의 독백; bonne Santé(건강식품가게)에 눈길 한번, 금탑반점(식당이름)거울에서 / 두려움이 없어진다. ‘결국 나를 아는 건 나뿐이다.’ → 타인에 시선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개구리...먹는 남자는 용기의 극단적인 예,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클레오의 이미지와 대립된다.
●‘거리의 시계 (영화 속 시간 표시) → 다큐멘터리함을 드러낸다.
2. 후반부
<챕터8 : QUELQUES AUTRES de 17h.45 a 17h.52>
클레오가 밖으로 나가서 처음 방문한 장소 카페 ‘르 돔’은 현재에도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카페 벽에는 ‘마네’전시회 포스터 등이 붙어있다. 이 영화에서는 파리의 모습, 연출 된 공간이 아닌 실제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 시, 그림, 기사, 일상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 죽음에 대한 두려움, 걱정을 안고 있는 클레오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줌
●카페에서 나와 길을 걷는 클레오. 클레오를 쳐다보는 사람들 모습, 개구리를 먹던 남자
→ 처음에는 클레오를 향한 시선들이 촬영을 구경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가, 점점 의도된 시선처럼 느껴 짐.
●클레오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클레오의 모습을 교차
전반부에 등장한 밥(음악하는 남자)/시계/전반부에 나온 지인들/벗어 놓은 가발
→ 전반부에 시계탑이 등장하는데, 이때의 시계는 영화상의 시간과 일치하는 시간.
하지만 이 장면에서 나오는 시간은 영화상의 시간이랑 맞지 않은 시간(3시35분).
그 시간대에 등장했던 남자, 여자(매니저), 벗어놓은 가발이 나옴.
→ 처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다가 지인들의 시선을 떠올림.
지인들이 클레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클레오와 그들과의 관계가 깊거나 진실 되지는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줌. 벗어 놓은 가발 역시 진실 된 클레오의 모습이 아닌 느낌을 줌. 가발을 벗어 놓고 길로 나온 모습이 이후에 달라질 클레오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음.
→ 시계의 똑딱 소리가 초조한 느낌을 줌. 초조하고 두려운 클레오의 심리.
●꼬챙이로 팔을 뚫고 있는 남자를 봄.
→ 앞에서 보았던 개구리를 먹던 남자와 비슷. 이는 죽음에 대한 암시는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며 걷 는 클레오가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봄으로써 죽음의 이미지를 계속 떠올리게 만듦.
<챕터9 : DOROTHEE de 17h.52 a 18h.>
카페 다음으로 방문한 화실. 다른 연애를 하고 있는 대조적인 모습의 친구가 등장한다. 친구 도로타는 누드모델로 일을 하고 있고, 클레오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전반부의 특징 중 하나인 나래이션이 나옴.
●‘네 몸매를 보고 놀리면 어떡해’ 라는 질문에 몸매 자랑을 하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친구
→ 대조되는 친구의 모습.
●너답지 않게 혼자 산책을 가냐고 클레오에게 묻는 친구
→ 이전에는 클레오가 혼자서 잘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 평소와 다른 모습을 통해 두려움, 불안을 느끼고 있는 클레오를 보여줌과 동시에 평소와 다른 모습을 통해 클레오가 변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줌.
●거리엔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말하는 클레오
→ 살아있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줌.
<챕터10 : RAOUL de 18h. a 18h.04>
도로타의 남자친구가 등장한다. 영화 전반부에 나왔던 클레오의 남자와 다른 모습이다. 클레오의 연애와 대조적인 연애를 보여준다.
●보여주는 단편영화
→ 장 뤽 고다르, 안나 카리나가 등장함.
‘아! 이 안경 때문에 모든 게 다 검게 보였구나!’라는 대사가 이 단편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면 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같음.
<챕터 11 : CLEO de 18h.04 a 18h.12>
클레오가 깨진 손거울, 깨진 카페 유리창 등을 보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점점 더 느끼기 시작한다.
●깨진 손거울, 깨진 유리창, 배경음악
●‘위반해도 죽이기야 하겠어요.’라는 택시기사의 말
→ 클레오를 자극하는 대사들.
<챕터 12 : ANTOINE de 18h.12 a 18h.15>
한 군인 남자를 우연히 만나고 대화를 하며 병원으로 함께 가게 된다.(멜로영화 Before시리즈의 두 주인공 같다.)
●택시보다 버스가 더 재밌다는 남자
→ 늘 택시를 타던 클레오가 버스를 탐. 변하는 클레오의 모습.
<챕터 13 : CLEO et ANTOINE de 18h.15 a 18h.30>
병원으로 가는 길, 곧 알제리로 떠나야 하는 남자와 많은 얘기를 한다. 클레오의 내적갈등이 해결이 되는 마지막 챕터다. 이 마지막 챕터는 다른 챕터와는 다르게 시간이 길다. 다른 챕터는 평균 6-7분이었지만 이 챕터는 6시15분부터 6시30분까지, 15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챕터의 시간 상으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사실 <5시부터 6시반까지의 클레오>이다. 하지만 우리는 6시반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 할 수 있다.
●밤이나 병처럼 나체는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하는 클레오
→ 여전히 병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음.
●나체 이야기를 한 후 등장하는 인큐베이터에 있는 조산아
→ 죽음을 이겨내고 새 생명을 얻은 아기. 탄생의 느낌을 주며 클레오의 상황에 대입하여 생각할 수 있 음.
●‘오늘은 모든 게 놀라워요. 내 모습, 사람들 모습.’
→ 클레오가 오늘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들이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평소와는 다른 생각으로 본 주변의 모습은 클레오에게 새롭게 다가옴. 클레오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
●병원에 왔지만 의사를 찾지 않고 남자와 함께 있겠다고 말하는 클레오
→ 남자와의 관계를 암시해줌, 변한 클레오의 모습
●의사가 등장하고 클레오에게 두 달만 치료하면 낫겠다고 말함.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두렵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클레오
→ 마침내 두려움의 원인을 없앰. 죽음에 대한 걱정을 안고 혼자 시작한 짧은 여정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을 클레오. 앞으로의 클레오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음.
Ⅳ. 영화에 나타난 특징
● 거리
영화는 전체적으로 거리의 사람들 및 풍경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이는 위에서 정리한 내용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바르다가 거리의 모습을 통해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실존적인 고민을 거리에서 찾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시간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 시간의 독창적인 사용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지속시간과 영화의 상영 시간이 동일하다. 이러한 시간의 사용은 무엇보다도 영화에 사실주의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바르다는 영화를 보는 시간, 즉 현실속의 시간의 흐름과 똑같이 영화 속의 시간이 전개되고 있음을 관객에게 알려주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사용한다. 바르다는 영화를 13장으로 나누어 각 장마다 제목과 시간을 자막으로 표시한다. 이러한 시간의 표기는 마치 서류의 기록처럼, 보이지 않는 흘러가는 시간을 객관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또한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또 다른 장치는 바로 시계이다. 클레오가 돔 카페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익스트림 롱 쇼트로 길을 건너는 클레오를 포착하면서 오른편에 영화 속의 시간, 5:50분을 알려주는 시계탑을 보여준다. 8장에서 클레오가 장례 행렬을 통과, 르나스 묘지 근체어서 만날 때에도 클레오의 모습 뒤로 시계탑이 보인다. 이러한 영화 속 시간에 대한 환기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소리에서도 계속되는데, 라디오나 타이머 장치들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 거울
영화 속에서 거울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거울’과 ‘타인의 얼굴’은 클레오의 정신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거울은 죽음을 외면하는 클레오의 시선을 의미한다. 클레오가 바라보는 세상 역시 거울에 비친 상들이다. 점집을 나와 들린 카페에서 클레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괴로워한다. 하지만 카페 안 거울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클레오가 카페에서 앉아 있을 때 옆에서 두 남녀가 언쟁을 벌인다. 그런데 이 장면은 클레오의 뒤에 있는 거울로 인해 마치 분활 화면처럼, 혹은 반사된 이미지처럼 보인다.
클레오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식은 거울의 반사상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클레오는 걸에서 이전에는 외면했거나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던 것들을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 거리에서 그녀는 추함, 늙음, 피, 죽음을 목격한다. 이를 통해 클레오는 불편하고 낯선 내면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거울의 반사상으로 표현되는 1부의 클레오의 시선이 대부분 정지 화면 속에 포착되었다면 2부의 클레오의 모습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속에 담긴다. 거울이 반사한 이미지가 타자의 존재를 배제한 시선이라면, 클레오가 거리에서 만난 얼굴들은 나를 세상 밖에 두는, 나를 타자의 존재로 만들고,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한다. 즉 클레오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Ⅴ. 영화 안 시대상황
영화 속 시대배경 : 1961년 프랑스 파리
-제 5공화국 (대통령: 샤를 드골)
-알제리 전쟁(1954-1962) 중
-‘영광의 30년’에 해당하는 시기
-우파가 1958-80년까지 집권
영화 개봉 년도는 1962년으로 영화 속에서 다룬 시기는 이와 시차가 없다. 시대상황을 알아채는데 크게 튀는 단서로 제시되는 것이 알제리와의 교전, 테러, 휴가 나온 군인 등으로 현재 프랑스가 전시 상황임을 알려준다. 영화 속 시대 배경을 1961년으로 특정할 수 있는 근거는 라디오 뉴스에서 전달하는 비엔나회담(미․소 정상회담) 소식 때문이다.
●알제리와 프랑스가 전쟁하는 이유?
프랑스는 16세기부터 식민지 개척에 나서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 많은 식민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상당수 식민지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샤를 드골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승전국의 지위를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국 식민지 국가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연합국인 미국과 소련이 식민지 체제의 유지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1946년 10월 27일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을 공포한 제헌의회에는 반(反)식민지주의를 지지하는 사회당 등 좌파 정당이 다수 참여하고 있었다.
->내외부적으로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권한 약화
이 같은 탈(脫)식민화 분위기 속에서 제정된 4공화국 헌법은 프랑스 식민지의 지위를 변경하는 내용을 담았다. ‘프랑스인은 자의적인 식민지 체계를 배격하고 해외 인민에 대해 인종이나 종교의 차별 없이 평등의 기초 아래 연합을 형성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프랑스는 1946년 10월 영연방을 모방해 프랑스 식민지들에 대해 프랑스와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고, 프랑스 본국과 식민지, 보호령 등을 통일연합체 형태로 묶었다.
프랑스연합에는 알제리, 마다가스카르, 튀니지, 모로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기니 니제르 코트디부아르 모르타니 말리 세네갈 베냉 부르키나파소 등),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가봉 콩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토고 차드 등),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식민지 국가들은 프랑스연합에 머물지 않고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알제리 자유민족전선(FLN)은 1954년 11월 1일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독립을 요구했다. 프랑스는 “알제리는 프랑스공화국의 일부”라며 최정예 공수부대를 투입해 탄압했다. 그러나 프랑스 안팎에선 탈식민지, 반제국주의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알제리 전투에 발목이 잡힌 프랑스 제4공화국이 무너지고 은퇴했던 샤를 드골 장군이 1958년 제5공화국 수립과 함께 정계에 복귀했다.
드골은 프랑스연합에 소속된 각 식민지에 대해 독립과 자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제5공화국 헌법은 프랑스연합을 계승한 프랑스공동체(Communauté française)의 출범을 규정했다. 공동체 대통령을 겸하는 프랑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각 자치공화국들이 연방 형태로 결합한 것이었다. 1958년 9월 제5공화국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독립을 선택한 기니를 제외하곤 대다수 식민지들이 대폭적인 자치를 인정받은 공화국으로 프랑스공동체에 남기로 했지만, 진정한 민의가 반영된 결과는 아니었다. 이후에도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는 1960년 완전 독립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그 결과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가봉 콩고 등 대다수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1960년 독립했고, 알제리도 1962년 독립을 쟁취했다. 샤를 드골 대통령은 1962년에 알제리 독립을 인정하는 에비앙 협정을 각각 국민 투표에 의해 가결함으로써, 약 7년에 걸친 알제리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였다.
->알제리와 전쟁까지 하게 된 이유는 알제리와 프랑스와의 관계가 여타 프랑스연합국가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알제리 문제가 훨씬 복잡하였던 이유는 알제리에는 프랑스 거류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다가 프랑스의 협상단체인 국민해방전선(F.L.M.)이 프랑스 거류민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을 결심하고 알제리에 병력을 파견할 수 밖에 없었다. 1958년 9월 28일 제 5공화정 탄생하고 드골은 알제리의 프랑스 거류민들을 프랑스로 귀환시켜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문제 해결하였다. 1950-60년대까지 약 130만 명의 사람들이 모로코와 튀니지, 알제리로부터 프랑스로 귀환하였다. 이들을 한동안 피에 누아르(검은 발)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상 출처 <이야기 프랑스사-청아출판사>
●당시 프랑스 경제 상황 ->부흥기
프랑스는 1945년부터 197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증유의 경제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 기록은 프랑스와 경쟁했던 다른 어떤 나라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경제학자 쟝 푸라스티에의 표현에 의하면 이 기간을 영광의 30년이라 부른다. 18세기 이래 처음으로 프랑스 인구는 급속히 성장하여 1958년 말 5천만 명에 육박하였다. 1946년 경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농업 인구는 1950년대 중반 30퍼센트 아래로 내려갔고 1960년대 말 16퍼센트로 그 비중이 줄어드는 이촌향도현상이 발생하였다. 1950-70년대 중산층 봉급생활자의 구매능력은 2배로 증가하였다.
cf.1 =19분 28초~35초
스카치 위스키로 만든 샴푸가 머릿결을 살려준다는 광고-> 고급 술로 만든 호화로운 고가의 샴푸를 구매할 만한 경제력을 가진 소비자가 있음. 불황을 모르던 ‘영광의 30년’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고 단신.
/이상 출처 <케임브리지 프랑스사-시공사, 이야기 프랑스사-청아출판사, 프랑스를 아십니까? -어문학사>
cf.2=끌레오의 소비패턴 (11분 45초~12분 45초)
-의사의 진단이 두려워 기분 전환 위해 모자쇼핑. 여름에 필요도 없는 털모자를 사는 모습.
끌레오는 소비하는 것에 매우 익숙함. 이는 가수라는 직업적 특성 외에도 사회분위기 자체가 물질주의에 휩싸여 있던 시기였다. 주요 이동수단도 택시 타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의 미모에 집착하는 끌레오의 내면은 자기 자신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끌레오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평가하고 미모가 상하지 않도록 위장병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클레오는 호황기의 부를 제대로 누림.
경제성장의 여파로 사회전반에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지나친 상품화가 만연하였다. 끌레오는 이런 사회분위기에 취해 있었다고 보여진다. 1950년대부터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지식인을 중심으로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조리 연극이나 누보 로망, 누벨 바그를 통해 일상생활의 인습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1968년 5월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이상 출처 이야기 프랑스사-청아출판사>
소비주의적 경쟁에서 모두가 덕을 본 것은 아니다.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도 있었다. 고정된 급료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950-60년대 내내 인플레이션의 압박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물질적인 생활은 바닥은 친 상태로 전쟁 중에 부서진 많은 집들은 개발 계획 초기에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형편 없는 상태였다. 예를 들어 1960년대에는 전체 주택의 반이 욕실이나 샤워실을 갖추지 않았고 거의 절반의 집에 실내 화장실이 없었다. 도시 변두리의, 말 그대로 판자촌(bidonvilles)에서 집단으로 거주했던 이민 노동자의 생활 조건은 최악이었다. 노동자를 위한 주택, 특히 HLM(임대료가 저렴한 주택)은 대개 보잘 것 없는 상태였고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으며 아무렇게나 방치되었다. 소비사회의 즐거움은 불공평하게도 부자들에게 주로 돌아갔다.
<이상 출처 케임브리지 프랑스사-시공사>
새로운 물질주의는 지식인 내부에서 반성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프랑스 문화의 상품화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일어나 미국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들이 주된 타겟이었다.
그러나 문화 수입은 프랑스 고급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1950년대 이후로 시작된 연극의 부흥은 이오네스코(루마니아), 베케트(아일랜드), 피터브룩(영국)등 프랑스에 살고 있는 외국 작가들 덕분이었다. /이상 출처 <케임브리지 프랑스사-시공사>
cf.=65분 16초~ 66분 17초 소외된 사람들
끌레오가 차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행인들을 쳐다본다. 그들은 행색이 남루하고 화려한 차림을 하고 차에 탄 끌레오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행인들은 당대 소비주의적 경쟁 속에서 끌레오처럼 충분히 그 부를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다.1960년 자동차보유율은 전체 가구 중 30%정도였다. →끌레오는 그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고 빨리 가자며 친구를 재촉한다.
●9분 18초~9분 53초 연인들의 대화 ->프랑스의 동거문화
새벽 두시에 헤어지는 데에 지쳤다며 남자가 새로 집을 얻었다는 여자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그러나 프랑스가 동거에 대해 관대해진 시기는 70년대 이후다. 영화상 배경이 되던 시기의 프랑스는 결혼제도에 대한 강력한 믿음으로 유지되던 사회였다.
전체 부부에 대한 동거비율 1962년에 2.8%, 1968년 2.9%에 불과했고 동거율은 70년대 이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주로 대도시에서 두드러지며 봉급생활자. 간부급, 자유직업종사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났다. 따라서 연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위 대화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 이상 출처 <프랑스를 아십니까?-어문학사>
70년대 초부터 가장 저조한 출생율과 결혼의 현저한 감소, 급격한 이혼의 증가, 괄목할만한 동거의 확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십년동안 가족제도의 일반적인 약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여성의 지위 향상에 많은 기여를 했던 시기이다.(교육수준의 향상, 사회활동의 대거 참여, 임신율 억제) 프랑스 여론 조사 협회가 피가로 매거진을 위해 시행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의 절반이 결혼을 전적으로 필수 불가결하거나 혹은 부부의 결합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응답했다. 이중 47%는 물론 결혼이 어쩌면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거나 아니면 확실히 필요치않은 것이라고 여겼다. 젊은 남녀가 결혼 않고 함께 살기로 결심하는 것을 정상적으로 여기는 비율이 58%(10년 전 라 크르와 여론 조사협회의 설문조사에서는 37%였음)
1976년에 35세 미만의 남자로 구성된 커플의 수만 추정해본다면 5%에 불과.
1976년에 동거인의 수가 겨우 50만에 불과하여 전체 커플의 4%에 불과했었음.
●15분 47초~22분 여자 운전수 -> 여성의 사회진출
씩씩하게 일하는 여자 운전수에게 매력을 느끼나 22분 14초~20초 ‘대단한 여자야’, ‘나도 놀랐다니까’, ‘담이 크다’는 식의 대화를 나누는 끌레오와 앙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음.
21분 45초~21분 52초 여자낙하산병에 대한 생각 나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함. 집에만 매여있던 여성들의 적극적 사회생활에 대한 호감.
●라디오 (16분 55초~22분)
프랑스 라디오 방송은 1982년부터 민영방송국이 허용되었으며 그전까진 모두 국영방송뿐이었다. 라디오프랑스앵테르나시오날. 프랑스엥테르, 프랑스퀼튀르,프랑스뮤직 정도가 대표적인 국영방송사다. 따라서 사람들이 택시에서 듣고 있는 라디오방송은 국영방송사에서 송출한 것이다. 또한 음악 전문 라디오의 경우 프랑스어 가요인 샹숑을 40%이상 선곡하여 틀어야만 했다. / 이상 출처 <프랑스문화읽기-학문사>
●20분~20분 13초 농민들의 시청점거
드골이 이끄는 제5공화국의 농업을 다루는 방식에 반대하여 일어난 시위다.
→중공업최우선정책
●20분 31초~40초 프랑스 국외 세계정세
세계사적 관점에서 이 시기는 냉전시대였다. 러시아 정상 후르시초프와 미국 정상 존 F. 케네디가 비엔나에서 회담했다는 소식은 미소정상회담을 전하는 것이다. 라디오 뉴스에서 말하는 미소정상회담은 1961년 6월 3일부터 4일까지 비엔나에서 이루어졌다.
여러 국제 현안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처음 대화를 재개했다는데에 의미가 있었다.
●20분 57초~21분 7초 장 네빌리에 역 사고
이미 프랑스는 1900년대 초부터 파리에 지하철을 개통했다.
●호황기였던 5-60년대 외국인의 대량유입(노동력 공급)으로 외국인 수가 크게 증가.
/이상 출처 <케임브리지프랑스사-시공사>
cf.=42분 53초~43분 6초
한자가 적힌 유리창, 동양식 처마 지붕은 아시아이민자가 유입되어 정착한 흔적, 혹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유럽패션에 동양적 요소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처럼 건축에도 동양풍을 적용한 사례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53분 39초
‘우회전 하게 팔 내밀어’ 차량 운전 중 방향전환 할 때 운전자 간 신호체계가 당시에는 팔을 내미는 것이었음.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고 차도에도 보행자들이 잘 지나다님.
●77분 59초
라울이 일하는 영화관 상영작
<엘머 갠트리> 감독 리처드 브룩스 /제작국가 미국 1960년
아카데미 3개부문 수상(남우주연, 각본, 여우조연)
1920년대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부흥회를 이끌고 다니는 전도사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종교의 상업주의와 선동주의를 적나라하게 비꼼 : 물질 상품화에 빠졌던 당시 프랑스와 무관하지 않음
●샹송은 멜로디보다 가사를 더욱 중시
●프랑스에서 카페의 용도와 기능
1)삶의 안식처, 만남과 사교의 산실 2)정치적토론과 교육 및 실천의 장 3)문학, 예술, 철학, 창작의 공간
●당대의 패션 트렌드
프랑스패션계는 기성복인 프레타포르테와 맞춤복인 오트쿠튀르가 함께 공존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타포르테가 50년대에 점점 강세를 보이더니 60년대 이르러서는 오트쿠튀르를 고집하던 이들도 프레타포르테를 선보이며 이 둘을 함께 발표하기 시작했다. / 이상 출처 <프랑스문화읽기-학문사>
5시부터 7시까지 끌레오의 행적 정리
타로 점->카페->모자가게->위겐 가(끌레오의 집)->카페->화실->누드모델친구와 차타고 파리15구에 위치하고 있는 몽파르나스 역,터널 지남->데빠뛰르 역 향함->라울 만남->몽수리공원->베를렌(파리교외지명)이란 이름의 정류소 역 지남->이탈리 가->생마르셀메트로에서 하차->병원
●카페 르 돔
->1930년대 아르테코 양식의 내부. 카페 겸 레스토랑
에꼴드 파리파로 활동하던 칸딘스키, 파스킨, 마티스, 샤갈 등이 이곳을 모임 장소로 애용했고 특히 모딜리아니는 이곳에서 손님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골 카페였다.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 김연아 선수도 2009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에릭 봉파르에 참가했다가 갈라쇼 마친 후 르 돔에서 저녁식사 했다고함.
끌레오와 군인이 버스에서 내린 생 마르셀(Saint-Marcel) 지역은 대학가 주변이라고 함.
Ⅵ토론
•페미니즘 논쟁에서 볼 때,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클레오를 부르주아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는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보고나서 인상 깊었던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
•엔딩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영화 안에 나타난 흑/백의 대비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영화에서 보이는 추와 미의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떤 것이 있을까?
•클레오가 세상을 보는 시선의 변화에 관해서 토론해보자.
*참고문헌
『유지나의 여성 영화 산책』 유지나 저, 생각의 나무, 2002
『세계영화사』 저자 Kristin Thompson, David Bordwell저, HS Media 번역팀 역, 지필미디어, 2011
『Agnes Varda』 Alison Smith 저, St.Martin's Press, 1998
『이야기 프랑스사-골 지방의 선사 시대부터 20세기 프랑스까지』 윤선자 저, 청아출판사, 2006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콜린 존스 저, 방문숙 옮김, 시공사, 2001
『프랑스 문화 읽기』 김경랑, 최내경 저, 학문사, 2010
『시크릿 파리』 정기범 저, 시공사, 2014
『프랑스 영화의 이해』 김호영 저, 월인, 2003
『누벨바그』 미셸마리 저, 신광순 역, 동문선, 2008
*참고논문
학술논문 <기다림, 변화, 사유 : 아녜스 바르다의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심은진, 프랑스 문화 예술 학회/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11
*참고 사이트
두산백과> 국제정치> 외교 및 국제 관계> 프랑스 연합
두산백과> 문화예술> 영화> 영화작품> 외국영화작품> 엘머 갠트리
네이버 기관단체사진 : 정치행정분야> 프랑스 연합
네이버 사전> 아네스 바르다의 연대기적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