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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מִקֵץ 미케쯔" : 토라포션 알리야(Aliyah) in 5779
창41:1-44:17(To), 왕상3:15-4:1(Haft), 롬10:1-13(Brit), 눅9:1-12:59(신약), 대하17:1-22:9(Ke), 왕상1:1-4:34(Ne)
샤밭예배 (하누카 샤밭)
'하누카 싸메아흐'
여러분은 언제 기뻐하시는가?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기뻐하는가? 점점 영적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기뻐하는 것이 무엇에 기뻐하는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이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제가 어렸을 때는 눈깔사탕에 그렇게 기뻐했다. 히브리어로 아인, 비전 사탕이다. 그때부터 비전 교회를 할 데스티니가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눈깔 사탕 하나에 기뻐하다가, 어른이 되면 희한하다. 어렸을 땐 TV도 정말 기쁜 시간이 어린이 방송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정말 안 기쁜 시간대가 뉴스 시간대이다. 아빠가 그걸 왜 보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런데 지금은 만화 영화 이런걸 보라고 해도 안 본다. 무엇에 기뻐하는가에 따라서 사람의 성장이 달라진다. 그것을 싸메아흐, 기뻐하다, Happy라고 한다. 행복의 비밀이 도대체 무엇인가? 기쁨의 비밀이 뭔가?
סָמֶחַ 싸메아흐 : 행복, 기쁨, Happy
기쁨이 사람의 모든 관계와 모든 것을 형성한다. 그 사람의 삶에 기쁨이 있는가 없는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온다던지, 못 살겠다는 것등은 기쁨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경기가 안 좋아서 기쁠게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의 기쁨은 돈이라는 소리이다. 추워 죽겠는데 기쁜데 뭐가 있냐고 하면 따뜻한게 기쁨이고, 요새 몸이 안 좋아서 기쁘지 않다면, 건강이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구동성으로 자기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하그 싸메아흐. הג 하그가 나의 기쁨이다. 절기가 나의 기쁨이다. 유월절이 나의 기쁨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연약하거나 강하거나 상관없이 안 기쁜 사람이 없다. 우리는 딱 1월 1일만 기쁘다. 해피 뉴 이어. 그리고 일년 내내 364일 정말 힘들다가, 또 하루 기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유월절이 기쁘고, 오순절, 초막절이 기쁘다. 이 사이에 끼어있는 초실절이 그렇게 기쁘다. 무교절, 겨울철의 부림절, 하누카가 그렇게 기쁘다. 이 사이사이의 많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던 날은 다 기쁘다. 이 기쁨의 가장 큰 핵심이 하그이다. 도대체 하그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뭘 기뻐하는 것이냐?
חַג 하그는 생명(ח)을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삶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육신은 지긋지긋해서 삶 자체가 기쁘지 않고, 삶에서 뭔가를 소유해야, 내꺼가 되야 기쁨이라고 한다. 이 육신은 소유해야 이것을 기쁨이라고 한다. 너무 화가 난다. 사탄이 육신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한다. 하여튼간 소유해야 기쁨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삶 자체가 기쁨이다. 이것처럼 기쁜게 없다.
저는 항상 삶에 있어서 뭔가 의미가 있어야 기뻤다. 어딜 가던지 그 의미를 찾고, 뭔가 Something, 뭔가 은혜가 와야 기쁘고, 멋진 프로그램이 있어야 기뻤다. 정말 못 참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는 노닥거리는 것등, 정말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Hate했다. 그냥 할일없이 앉아서 두세시간 이야기하고, 성지에 와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 나 같으면 그날 배운거 밤에 공부할텐데, 자유시간만 주면 커피숍에 앉아서, 방에서 서로 노닥거리느라 바쁘다. 무슨 이야기 하나 보면 별 이야기도 아니다. 성지까지 와서 그래야겠는가?
그렇게 나에게 의미있는 것을 찾아서 인생을 보내봤지만, 저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저는 갈수록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나서 알았다. 생명을 기뻐하는 것이 기쁨이구나. 나는 다른 생명을 기뻐하지도 않고, 내 생명을 기뻐하지도 않았다. 나는 애초에 내가 왜 태어났는지, 차라리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내 자신에 대해서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내 생명 자체를 기뻐할 이유가 없었다. 이 육신을 내 생명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실 기뻐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육신은 내 생명이 아님에도, 이 육신을 생명이라고 하니까 기뻐할 이유가 없었다.
이 육신의 별명 중 니그로가 있었다. 좀 까무잡잡하니까, 엄마가 뱃속에 있을 때 약을 드셔서 좀 탔다고 하더라. 내가 까맣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는가? 크면서 육신이 보여지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별명들이다. 그리고 또 고구마가 있었다. 좀 이상하게 생겼다고 해서, 너 왜 고구마같이 생겼냐.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앞에서 발표하고 있는데 너 왜 고구마같이 생겼냐고 하는 것이다. 제 삶에 딱히 잘하는 것도, 인정받을만한 것도 없다. 딱 하나 살고 싶은 것은 행복한 가정인데, 또 사실 니그로에 고구마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사랑에는 늘 실패하고, 내 삶을 기뻐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삶이 도대체 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고3 때 가출을 했다. 대학을 가야할 이유도 모르겠다. 그래도 삶이 뭔지는 알아보자, 가출해서 태백산을 향해서 정처없이 걸어갔다. 결국 태백산에 다다라서 도를 닦으려고 인적없는 바위에 앉아서 목욕하고 앉아서 도 닦다가 무슨 기구한 운명인지 스님 친구가 오더니, 두분이 이야기하는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출한 얘 옆에서 효도가 진정한 도라는 것이다. 효도를 해야 도를 닦는다고 하니, 그날로 일어나서 도 닦으려고 집에 왔다. 태백산에서 한밤중에 내려오니까 간첩으로 오인받아서 경찰서에 끌려갔다. 도대체 인생 좀 알겠다고 하는데 왜 도와주질 않는가?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효도를 해야겠다고 하는데, 그게 되는가? 삶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얻어야, 육신이 내 생명이라고 했을 때 인간은 아무것도 안된다. 여러분의 삶 자체가 가치이고, 삶 자체가 기쁨이다.
저는 이번에 이스라엘에 가서, 주님이 토라 안에 우리를 집어넣으신 다음에 이스라엘에서 많은 날을 보냈지만, 이스라엘에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존재했었다. 내 삶을 나은데로 이끌기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하고, 나를 영적으로 만들고자 깨우치려고 하고,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면 주님 오셨을 때 우편에 앉으려고, 어떡하면 주님 오실 길 예비하는가,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야한다. 무수하게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았다. 그럼에도 내 속에서 느껴지는 공허와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속의 공허함과, 내 속의 채워지지 않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삶을 기쁨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그런데 채워지질 않는다. 진정한 싸메아흐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 주님이 토라 안으로 집어넣으신 후, 저는 이스라엘을 갈 때마다, 물론 이스라엘에서만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에서 그런 마음을 주시는 이유가, 내 사랑하는 이웃들과, 그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기쁨이라는 것을 저는 매번 깨닫는다. 거기서 영적인 것을 배워서도, 은혜를 배워서도 아니고, 가장 영적이고, 가장 큰 은혜는 그 생명 자체와 Together, 에하드, 함께하는 것이다. 그게 너무나도 큰 기쁨이고 행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 하그 싸메아흐라고 한다. 그들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은 같다. 그냥 생명이 함께 together하는 것이다. 절기 때 올라가면 대박나는 것이 아니다. 절기 때 올라가면, 하나님이 일년을 축복해 주신다는게 아니다. 주님께 헌금하고, 절기에 뭘 하면 완전히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생명끼리 Together, 호흡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이것을 하그라고 한다. 생명 자체에 기쁨이 있다. 그러면 생명들끼리 이것을 기뻐하면서 뭘 하자는 것인가? 이것을 김멜이라고 한다
ג 김멜 : 자유의지
진정한 기쁨은 자유의지이다. 자유의지는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인데,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선택한대로 다 된다. 자유의지는 놀랍다. 결정한대로, 선택한대로 다 된다. 인간들이 자유의지를 물질적, 문자적으로 표현한 것을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마술램프, 자유의지는 이런 것과 비슷하다. 슥슥 하면 숑 나와서 다 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도깨비 방망이이다. 어렸을 때 우리의 최고의 장난감이 도깨비 방망이었다. 다 하나씩 갖고 싶었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나와라 하면 다 나온다.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한다.
바로 케뎀에서 나오라고 하면 다 나온다. 그래서 겁나게 기쁜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은 진짜 기쁘다. 많은 기독교 인들이 무조건 다 죽어야 하는 줄 알고, 인상쓰고 다니는 것이 기독교인인 줄 안다. 나는 십자가에 달려야하고, 날 위해서 살지 말아야 한다, 이게 기독교인인 줄 안다. 기독교인들은 자유의지, 김멜이 있어서, 얘는 겁나게 부자이다. 김멜은 자체가 엄청난 부자이다. 하나님의 모든 후원, 서포트가 있는 것이 김멜이다. 그래서 자유의지는 케뎀에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모든 것을 나오게하는 것이다. 케뎀에서 금이 나오라고 하면 금이 나온다. 케뎀에서 하나님이 성취해놓은 것을 다 나오게 하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금을 나오라고 한다면, 진짜 나온다. 금은 신성이다. 문제는, 육신이 이 자유의지를 물질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는데 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하면, 이것은 절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 오던지간에,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려고 할 때, 그것은 다 이루어진다. 누군가가 나를 정말 화나게하고, 정말 나한테 잘못했고, 그러면 안되는데 그런 짓을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귀싸대기를 때린다? 십자 꺽기를 한다? 머리를 부순다? 용서한다? 정말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화내고, 말이다. 인간이 그럴 수 없다. 몇번인가?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자유의지인 줄 안다. 이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다. 이건 육신이 그냥 하는 짓이다. 육신은 그 짓밖에 못한다. 그게 선택인 것 같지만, 십자꺽기나 귀싸대기나 다 똑같은 이야기이다. 수영한다 할걸, 자유형, 개헤엄, 배형, 다 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다 수영이다. 다 육신의 짓이란 말이다. 그것을 선택하고 자시고자 있는가. 그건 선택이 아니다. 육신은 자유의지를 사용 안 해도 그 짓을 한다. 미워하고, 짜증내고, 화낸다. 그게 무슨 선택인가. 그건 선택이 아니다. 선택은 정말 자유의지를 사용해야 한다. 용서하는 것에는 정말 자유의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하면 된다. 이게 김멜이다
어떤 상황이 오던지간에 우리가 선택하면, 창세 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성품이 내려온다. 하나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게 김멜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김멜을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번 절기 때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교회 다니는 것을 선택하는게 아니다. 교회 나오는걸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하나님의 선택하는 자유의지들이 모여있을 때, 이게 기쁨이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하는 것은, 그냥 이 8일 동안에 Everyday 자유의지가 보인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게 우리의 행복이고 기쁨이다. 70명이 다니는데, 너무 기쁘다. 육이 안 나타나기 때문이다. 육이 나타나도, 그걸 가지고 또 하나님을 선택한다. 고덕진 장로님, 고순희, 또 갈릴리에서 한판 붙었다. 그 주님의 채취가 가득한 곳에서 왜 붙는가? 거기서 붙고 안 붙고가, 우리 삶에 싸움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싸움이 있을 때 자유의지가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 자유의지가 나타나서 고순희 권사님이 여보 미안해 있다는거 아닌가? 그러자 고덕진 장로님이 너 진짜 변했다. 모든게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물 한병씩 버스에 돌리는 일이 벌어졌다.
온통 자유의지들만 보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는가? So happy. 쿠웨이트 팀까지 해서 110명이 되었다. 110명 데리고 다니는게 상상이 되는가? 그런데도 불평없고, 불만없고, 그냥 자유의지들만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싶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자유의지들만 있다. 여기는 안 가요? 뭐 먹고 싶어? 안 들려. 이런 소리도 안 들린다. 물론, 불평, 불만이 꿍얼 나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오고 안 나오고가 아니라, 그때 선택을 무엇을 하는가이다. 불평, 불만이니까 노! 말 안 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이게 행복이다.
하누카 싸메아흐, 하누카의 시작은 כִסְלֵיב 키슬레브 월에 있다. 이 달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많다. 카싸라고 하면 숨겨져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숨겨져있다. 그래서 드러난 것을 가지고선 이 세상은 그것을 인정하고, 드러난 것을 실제라고 하니까, 이 키슬레브 사람들은 숨겨져 있는 데스티니라, 세상에서는 별볼일 없는 것이다. 겉으로는 다 아무것도 아니다. 숨겨져있다.
케뎀, 영의 세계는 다 숨겨져있다. 자유의지란 그 숨겨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숨겨져 있는 것을 선택하면, 대단하다. 최범호 집사님이 대종상을 탈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봐라. 그런데 저기 후배 하나가 있는데, 이 녀석이 대종상을 그렇게 타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내가 주연하면 대종상은 따논 당상인데, 이 후배에게 이 주연을 딱 양보하는 것이다. 이게 자유의지이다. 이게 키슬레브 월이다. 이게 숨겨진 것을 사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성공한 것이 뭐가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마호메트는 엄청나게 성공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초라하게 죽었다. 카싸는 덮다,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키쎼, 잔이 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고, 숨겨져 있어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키슬레브 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아무런 인정도 못 받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왜 아무것도 없는거야 하는 한, 너무 고통스럽다.
이 키슬레브 월은 베냐민인데, 대표하는 것이 늑대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기 전에는, 이 키슬레브 월 사람들은 너무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키슬레브 월의 모든 데스티니는 숨겨져있는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 이것을 알게해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줘야하지 않는가? 살기도 어렵고, 아내는 돈 가져오라고 하는데, 마침 또 대박이 나서 1억이 생겼다. 또 옆 후배가 너무 어려운 일이 생겼다. 그런데 심장병 걸린 아이에게 이 1억을 주겠는가? 그게 자유의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범호 1억원 기증이라고 크게 써서 주고, 사진도 찍고, 아내도 옆에 세우면 얼마든지 한다.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사람은 얼마든지 한다. 문제는 그냥 밤에 뒷담 넘어가서 툭 놓고 오는 것, 이렇게 하면 우울증에 걸린다. 내가 한건데, 신문에 누군가가 그랬다고 계속 나는데, 내가 한건데!! 또 연예계 후배들이 형은 뭐하고 사는거에요?라고 툭 던지면, 어제 신문에 난거 나인데.... 우울증 걸려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게 키슬레브 월 사람들이다. 자기의 데스티니가 숨기는 것이란 것을 모를 때 정말 어려운 삶을 산다. 그런데 키슬레브 월 사람들이 자기의 데스티니가 숨기는 것임을 알게되면, 이 사람들은 엄청난 일을 한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인데, 늑대는 한번 문 것을 놓지 않는다. 즉, 오른손의 아들이 태어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키슬레브 월에 빛으로 오는 것이다. 한 어린 아이가 나타나고, 어린 아이 속에 모든 것이 다 숨겨져있다. 왜 이 생명을 기뻐하는게 기쁨이냐면, 생명이란 다 어린 아이이다. 어린 아이 속에 하나님의 모든 가능성이 숨겨져있다.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모든 가능성이 아들 속에 다 숨겨져있다. 생명이란 다 아들이다. 하나님의 생명이란 것 속에 다 숨겨져있으니, 그 생명이란 같이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이냐? 미치도록 기쁜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자기의 지금 보여지는 겉모습을 누리려고 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살아내겠다고 자유의지를 가동시킬 때,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겠다고 자유의지를 사용할 때 이거같이 큰 기쁨이 어디있는가? 하그 싸메아흐이다. 이런 생명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어쩔 줄 몰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개입해주신다. 이번에 이스라엘에서도 하나님의 개입하심, 손이 막 보인다.
우리 아라 선교사도 요르단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여자 혼자 택시를 타야하는 것이다. 이상한 소문을 많이 들은게 있으니, 얼마나 또 마음이 졸였는지 모른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왔는데, 그냥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했더니, 마침 여행사 직원이 국경에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택시비 낼테니까 오라고, 하니 직원이 고맙다고 오고, 때마침 요르단 수도까지 가는 여행팀이 있어서 버스타고 들어갔다. 제가 10분만 늦게 전화했어도, 그 여행사 직원은 버스타고 갔다. 이런 하나님의 개입이 일만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개입하신다. 그게 바로 기쁨이다. 하나님의 손은 하그에 나타난다. 하그를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그 생명과 자유의지를 기뻐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늘 함께하시고, 빛으로 나타나신다.
하누카의 티칭을 한 마디로 하면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이다. 제자도는 다 그것을 가르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게 뭐냐?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영생이라고 하는데, 그걸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계속 가르친다. 그래서 사탄은 그것을 Practice 못하게 하고, 잘못된 아버지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사실 키슬레브 월의 아들들이 이것을 뚫어낸다. 마치 마카비 형제들처럼 엄청난 전투력을 숨기고 있다. 모디인이라는 조그만 동네의 시골 제사장이다. 그래서 키슬레브 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조금 촌스럽다.
이 아들들이 굉장한 아들들이다. 그래서 진정한 빛,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의 빛을 가져온다. 그마만큼 그걸로 나오기가 쉽지가 않다. 일단 나왔다고 하면 이들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체가 다 하나님 아버지의 세계를 맛보게 하는 셋팅이다. 나 영적으로 되게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한번 맛보면, 하나님께서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신다. 그러면 하그 싸메아흐, 그 기쁨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다. 삶 속에서 뭘 소유하려고 그렇게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 이 생명들, Family, 가족들과 에하드되어서 한 몸을 이루어서 그냥 살면 된다. 뭘 하는 것은 한 세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 한다. 우리는 세포이다. 세포가 뭘 하려고 하면 안된다. 세포는 그냥 결합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이 한다. 몸이 되자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세기의 결혼을 하고, 에하드를 선포하고 왔다.
예루살렘은 온 열방을 에하드되게 할 수 있는 열방의 하마콤이다. 거기선 온 열방을 하나되는 에하드의 기름부으심이 부어진다. 몸이 되니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기쁨을 온 열방에 전할 수 있는 케뎀의 문을 계속 열 수 있는 Door를 예루살렘에 세우기로 하였다. 예루살렘에 그 문을 세워서 언제든지 그 케뎀의 문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것을 받을 수 있도록 베이스를 세우려고 남어계신다. 이제는 온 열방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그 에하드의 기름부으심을 받을 수 있는 비전 하우스가 그곳에 세워지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란다. 정말 놀랍다. 부부싸움하면 그거 때문에 상처받았네 할 필요 없다. 그 다음날 티켓 끊어서 비전하우스로 가는 것이다. 거기서 다시 케뎀의 에하드를 받아서 다시 와서 에하드되고, 얼마나 좋은가? 히브리어 배우다가 안되면, 그 다음날 가서 한달만 히브리 대학에서 배우면, 여기서 3년 배우는 것보다 많이 배운다. 청년, 청소년들도 고 목사님이 마사다, 헤롯의 자기 사랑, 일출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양 되심을 온 몸으로 학습하니까, 여기서 인카운터를 해야겠다. 놀라울 것 같지 않은가? 옛 사람, 마사다 성벽에서 떨어뜨려버리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마사다에서 옛 사람을 독수리가 쪼아먹게 만들고, 청년들을 데려다가 거기서 인카운터하고, 주님의 제자로 거듭나게해서, 온 열방을 하나되게하는 에하드의 기름부으심을 푸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몸이 되면, 몸이 하는 것이다. 이게 키슬레브 월의 파워이다. 키슬레브 월의 빛은 우리를 하나되게 한다.
우리가 하누카 시즌에 정말 여러분들에게 에하드가 얼마나 실제이고, 에하드만이 온 우주를 다스리는 파워와 능력이 나온다. 여러분들은 정말 그런 권위와 권세, 파워, 능력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시시껄렁하게 살면 안된다. 맨날 아닌데요 아닌데요 하면서 말이다. 쑥스러워하고 이러면 안된다. 이제는 당당하게, 파워와 능력을 가지고, 어둠에 있는 자를 구해내고, 파워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몸을 건설해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사람들에게 지혜와 계시를 가지고 가르치고, 이것을 해내야한다. 영향력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우리 고현정 자매가 그 결혼식장에서 짧은 머리를 하고, 흰 블라우스를 입고, 눈에서 막 불이 나온다. 강력한 파워와 능력을 가지고선, 그 결혼식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시키는 그 결혼식장을 진두지휘할 고현정을 상상해보라. 실제로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유기체적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비드리 목사|작성자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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