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옛날에 비해 여유가 없고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많이 각박해졌다고 한다. 갈등은 많고 내가 옳다는 주의 주장들은 강력하다. 양보하면 지는 것이고 타협은 비겁의 산물로 본다. 봄은 화창하나 나라 경제와 국격을 생각하니 불안하다는 생각에 이 봄날의 햇살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얼마 전에 지인으로 부터 햇살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긴 줄의 러브체인 화분을 하나 선물로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꽃을 기르면서 그 자라는 모습을 좋아하는 편인데 모처럼 예쁘고 튼실한 러브체인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탐스럽게 잘 자란 러브체인 화분을 보고 '참 잘 키웠구나' 하고 부러워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이번 기회에 한 번 잘 가꾸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집을 떠나 연수를 다녀오게 되었다. 그래서 실내에서 키우던 러브체인 화분을 바람과 햇빛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 내어 놓고 미리 물도 넉넉히 주고 약하게 거름을 주는 등 조치를 하고 연수에 들어갔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잎들이 몰라볼 정도로 잘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왕성하게 자랐는지 긴 줄들이 서로 엉켜 글자 그대로 체인을 이루고 각 잎들은 초록의 태깔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엉킨 모습이 안쓰럽고 보기 좋지 않아 나는 엉킨 줄기들을 실타래 풀듯이 하나하나 손으로 정리해 갔다. 그런데 줄기들은 서로 떨어지기 싫은 듯 서로 꽉 붙들고 엉켜 있어서 나누기가 어려웠다. 억지로 나누는 중에 몇 개는 실수를 하여 아깝게 끊어지고 말았다. 나는 안타까웠지만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요령이 생겼다. 그것은 엉킨 러브체인의 가운데 부분을 잡고 슬슬 흔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엉킨 줄기들이 잘 풀어졌다. 그래서 나는 꽃이야 아파하든 말든 나 몰라라 하고 줄기 몇 개를 잡고 위에서 손사래 치듯 설렁설렁 흔드니 엉킨 체인들이 모두 잘 풀어졌다.
문득 오규원의 '만물은 흔들리면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잎인 것을 증명 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잎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들판의 고독 들판의 고통/ 그리고 들판의 말똥도/ 다른 곳에서 / 각각 자기와 만나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비로소 깨닫는 그것/ 우리도 늘 흔들리고 있음을 나는 긴 러브체인을 가지런히 흔들다가 오규원의 시처럼 만물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그 바람은 누구에게나 분다.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흔들리면서 커간다고 마구 꽃줄기들을 흔든 나의 생각이 조금은 거칠었다고 생각되었다. 원래 러브체인들은 서로 엉켜 가면서 이리저리 꼬이기도 하며 사이좋게, 아니면 다투어 가면서 자라는 게 그들의 모습이라고 보는데, 인간인 내가 일방적으로 나 보기 좋으라고 가지런히 정리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마구 흔들어가면서 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엉킨 것이 보기 싫으면 어떠한가? 꽃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생 자체에 있지 않은가?
요즈음 특수교육현장에서는 장애학생이 사회구성원으로 바람직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통합교육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통합교육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어 통합교육의 필요성은 거의 당위처럼 들린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은 서로 엉켜서 살아가는 러브체인들이다. 이들 모두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요구와 개성이 있으며 고유한 자아와 삶이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그들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흔들리면서 줄기를 내린다.
특히 중증의 발달장애학생들에게 통합교육은 준비가 되지 않은 가운데 획일적으로 강요되는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가 이들의 고유한 개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통합교육이 좋다고 일방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흔들리며 자라가는 꽃들을 억지로 풀고 가지런히 하여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장애학생들에게 주어진 통합교육의 현장이 또 다른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더디지만 나름대로 자유롭게 잘 자라고 있는 꽃들을 흔들다가 줄기가 뚝뚝 꺾어지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장애학생들을 대할 때에는 그냥 내버려 두어도 어떤 형태로든 성장하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흔들리며 보여주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는 제각기 잎을 엮어가는 이들과 함께 들판의 자유로운 바람을 가슴으로 크게 맞이하면 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첫댓글 가치관이 제 멋대로인 요즈음
희망과 교훈이 있는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