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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 바다여.
참으로 오래간만에 고향을 가기 위해서 이른 조반을 먹고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차에 탄 사람마다 각기 입음새도 다르지만 얼굴 표정이며 머리 매무새 앉아있는 모습까지도 다 다르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기사가 자리를 확인하고는 이내 시동을 걸자 동시에 녹음기에서는 안전벨트를 매라는 신호를 보낸다.
바깥의 온도가 따뜻해서 그런지 차안은 후덥지근한데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의 은은한 목소리가 기류를 탄다.
상옥이가 고향까지 가려면 옛날에는 하루 종일 가도 날이 저물어야 집엘 들어갈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산지사방으로 거미줄처럼 고속도로를 깔아 놓아서 고향인 섬 지방까지 해가 지기 전에 갈수가 있게 되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시내를 벗어나자 길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들에는 농작물을 가꾸는 비닐하우스가 눈이 모자라게 늘어 서 있는가 하면 낡은 초가집들만 연이어졌던 마을마다에는 아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키 재기를 한다.
상옥이는 지난밤에 고향 갈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막상 차를 타고 나니 졸음이 솔솔 쏟아지는가 싶더니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그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아버지와 동생 석이 생각에 눈물이 얼굴을 타고 내린다.
상옥이가 자란 곳은 작은 섬마을로 하루에 배가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을 드나드는 어촌이지만 비바람이라도 부는 여름 장마철에는 파도가 높아서 하루 한번 다니기도 어려운 지역이다.
포구에는 60여 호가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주로 고기를 잡아서 살아가는 어부들이 대부분이지만 야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서 근근이 살아가는 집도 있다.
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버스는 마침내 항구에 닿았는데 통통배들이 연실 드나들고 오징어 덕장에는 갓 잡아 올린 오징어들이 줄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거린다.
바닷가에는 횟집이며 음식점의 낡은 간판들이 걸려 있으나 다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손님이라고는 별로 보이지를 않는다.
바다 건너 고향의 집까지 가는 막배가 떠나려면 아직도 1시간은 있어야 한다기에 상옥이는 그 시간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대합실 한쪽에 앉으니 막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차츰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뱃고동소리가 부웅 울리고 그 신호에 맞추어 배가 물살을 가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니 시원한 바닷바람을 쏘이려는 승객들이 배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배의 방향을 바로잡은 선장이 마이크를 잡자마자 이곳을 찾은 손님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말부터 건넨다,
그는 섬지방의 특색적인 음식과 풍경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도 외국 관광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고장이 많다면서 이 고장이 발전하려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주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배가 가는 반대쪽 방향으로도 다른 지역으로 가는 배들이 물살을 가르는가 하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항구로 들어오는 통통배들의 뱃머리에는 만선을 알리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어렸을 때 몇 번인가 엄마를 따라서 배를 타고 육지로 나올 때가 있었는데 한번은 배가 출발할 때는 조용하던 바다가 차츰 포구를 벗어나자 얼마나 파도가 높게 치는지 배안에 가만히 앉았는데도 속이 울렁거리는가 싶더니 옆에 앉았던 조그만 아이가 멀미를 하면서 먹은 것을 토해내는 바람에 상옥이도 고만 그와 똑같이 멀미를 하였다.
상옥이의 아빠는 그 이름도 멋이 있는 해병대의 일등상사로서 키도 크시지만 절도 있게 걸음을 걸으시고 얼굴은 항상 붉화하신 분으로 군대 생활이 몸에 배신 분이었다.
한번은 아주 오래간만에 아빠가 집엘 오신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몸이 건장한 병사 세분을 데리고 오셨다.
엄마는 모처럼 오신 손님이라고 해물로 매운탕을 푸짐하게 끓여서 대접을 하였는데 그때 병사 아저씨들은 엄마에게 상사님이 평소에는 너무 무서운데 집에서도 그러시냐고 묻는 것이었다.
“오상사님은요. 군대 일 밖에 모르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집에서는 가족에서 제처 놓을 정도인데 너무도 가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빠부대 병사들은 엄마의 말씀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를 않다가 돌아갈 때에는 “상사님은 그래도 언제나 멋지신 분이세요.” 하고는 치켜세웠다.
엄마는 아빠가 한 달에 한번쯤이라도 집에를 오셨으면 하셨지만 군대에 몸담으신 이후에 아빠가 집에 오시는 날은 몇 달 만에 한번을 오셨는데 그때마다 술을 잡숫고 집에 들어오셔서는 엄마에게 왜 집에만 있고 부대에는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느냐고 핀잔을 주시었다.
“ 당신도 참말로 뭔 말을 그렇게 한 대요. 아. 내가 지금 한가하게 놀고먹는 여펜네인줄 아세요. 쌀 떨어지면 쌀을 사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 쌀을 살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날마다 바다에 나가서 품을 팔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보내주는 것으로 살면서 아무 소리도 하지를 않았더니 뭐 우리가 잘 먹고 지낸 줄 아셨어요.”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마는 아빠에게 싫은 소리라고는 한마디도 하시지를 않았는데 이날은 생전 처음으로 하지 않던 말씀을 하셨다.
엄마는 부자 댁의 맏딸로 자란 분으로 학교도 좋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언젠가 학교에서 펜팔 편지를 쓰라는 권고에 따라서 일선장병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 후에 알게 된 것이 당시의 이등상사로 복무하던 아빠였고 아빠의 외모와 그의 활달하고 남자다운 늠름한 모습에 홀려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상옥이를 배는 바람에 바로 결혼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서 시댁의 형편을 보니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처갓집은 지지리도 못살던 집이어서 실망을 하였지만 그렇다고 부모님께 그 말씀을 드릴 수는 없었다.
엄마가 따가운 말씀을 하시자 아빠는 그제서야 엄마에게 미안했던지 상옥이를 데리고 가겟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고르라고 하셨다.
상옥이는 가겟방 앞을 지날 때 마다 빵이 먹고 싶었지만 한 번도 사먹은 적이 없어서 빵을 사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날 상옥이가 먹고 싶어 하던 빵이 없었으니 며칠 만에 배편으로 들어오는 빵이 날씨가 좋지를 않아서 들어오지를 않았다.
모처럼 아빠에게 빵을 얻어먹을 줄 알았으나 빵이 없고 라면밖에 없다고 하자 아빠는 라면 한 봉지를 사서는 상옥이에게 주셨다.
그때만 해도 군인들의 봉급이라는 것이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보름동안은 그런대로 밥을 끓여 먹을 수가 있었지만 그 다음 보름간은 죽을 쑤어서 먹을 정도로 살림은 매우 어려웠다.
아빠는 술이 깬 다음 날에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그 말 이외에 아버지가 쌀을 구해 오시거나 밀가루를 사들고 오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를 못하였다.
엄마가 매달 아빠에게 얼마의 돈을 타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빠는 집보다는 부대의 사병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다는 얘기를 엄마는 몇 번인가를 하신 적이 있었다.
아빠가 살림을 전적으로 어머니에게만 맡기시니 어머니는 할 수없이 동네의 궂은일을 다 맡아서 하셨다. 동네에서는 1년에 두어 번씩 결혼식을 하였는데 그날 상옥이와 석이는 어머니가 싸다주시는 떡과 과질이며 부침 게까지 많이 먹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잔칫날이 지나고 나면 다시 집에는 먹을 것이 없다 보니 동생 석이는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배가 고프다고 매달리면서 무엇을 사달라고 하였지만 돈이 없으니 사주지를 못하였다.
엄마가 오시려면 늦은 저녁이 되어야 하는데 석이는 그때까지 징징 울면서 누나가 숙제를 하려고 해도 못하게 하였다.
엄마가 돌아오신 후에 그 얘기를 하면 엄마는 아빠가 돈을 적게 벌어 오시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서 돈 한 푼 주시지를 않았다.
상옥이가 여름방학을 하고 나자 엄마는 그물 뜨는 집에서 일을 하시다가 일감이 없어서 다시 어판 장에 나가서 고기를 고르는 작업을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찍 출근을 하신 아버지 부대에서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얼른 군인후송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연락을 받으신 엄마는 아빠에게 무슨 사고가 난 것 같다면서 급하게 병원엘 들어가자 부대장이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오상사가 고공낙하훈련을 하다가 낙하산이 펴지지를 않는 바람에 대퇴부가 파열되는 골절상을 입었다면서 당분간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살림이 어려운데 일을 하다 말고 병원에 가서 아빠의 간호를 해드리다 보니 돈을 전혀 벌수가 없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비를 처음에는 군부대에서 부담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본인 부담비가 늘어서 어려운 살림에 엄마는 빚까지 내게 되었다.
석이 동생은 아빠가 입원을 한 병원에 왔다가 다른 아이들이 무엇을 먹고 있으면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달라고 하였다.
엄마는 아빠 간호하랴 먹을 양식 구하기도 힘이 드는 판인데 동생이 자꾸 보채자 하루는 동생과 상옥이를 데리고 배를 타고 읍내로 나가시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읍내로 나간 적이 별로 없어서 상옥이는 엄마에게 어디를가느냐고 물어 보았지만 아무 말씀도 하시지를 않더니 배를 내린 다음에야 엄마는 상옥이에게 지금 아빠가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엄마가 일도 못해서 돈을 벌지를 못하니 1년 동안만 고아원에 가서 있으라는 것이었다.
“ 엄마 고아원이라는 데가 무엇을 하는 곳인데요.”
상옥이가 묻자 엄마는 거기를 가면 밥도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고 학교도 그냥 보내준다고 하셨다.
“ 밥도 먹여주고 학교도 보내준다고.”
“ 그렇단다. 그러니 오늘부터 네 동생과 거기 가서 살거라. 엄마는 한 달에 한번 씩은 너희들을 만나러 갈거다.”
상옥이는 엄마를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말에 겁이 덜컹 나면서 고아원에 안 간다고 몸부림을 치면서 울자 동생도 덩달아 울면서 매달리었다.
“ 상옥아. 너 엄마 말을 그렇게도 못 알아 듣냐. 네 말대로 집에 가야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아빠가 저렇게 아프신데 그럼 엄마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
엄마는 상옥이도 달래고 석이도 달래서 어떻게 하던지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데리고 나왔는데 아이들이 통 말을 듣지 않고 울기만 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 1년만 참으면 너의 아빠도 병이 낫고 엄마도 일을 하게 되어 돈을 벌 텐데 어이하누. 야.”
엄마는 바닷가에 앉아서 한없이 목을 놓고 우시다가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때가 상옥이가 3학년이고 석이 동생은 일곱 살이 될 때였다.
상옥이는 그런 일이 있은 다음에 엄마가 언제 또 다시 고아원엘 데리고 갈지 몰라서 학교를 갔다가 와서는 석이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서 파도에 쓸려오는 미역을 따서 날로 먹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기가 쓸려오면 그것을 구워서 먹기도 하였다.
석이는 처음에 누나가 바다를 나가자고 할 때는 가지 않겠다고 칭얼대더니 조개도 잡고 모래밭에 앉아서 땅뺏기 놀이도 가르쳐 주자 그 다음부터는 시간만 나면 바다로 놀러 가자고 하였다.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모터보트가 쏜살같이 물을 헤치고 나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어떤 때 는 아파트보다도 더 큰 배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면 무척 신기하기만 하였다.
“ 석이야 너 이다음에 선장이 한번 되어 볼래.”
누나가 말하자 선장이 무어냐고 묻던 석이는 저 배를 움직이는 대장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떡이며 대장 노릇을 하겠다고 하였다.
석이는 모래바닥에서 앉아서 놀다가 파도가 밀려 올 때면 파도를 따라서 뛰어가기도 하고 밀려오는 파도물에 신발이 젖으면 그것이 재미있다고 몇 번이고 파도와 술래잡기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아빠가 재수술을 하셔야 된다면서 그때는 병원에서 자고 올지도 모르니 동생을 잘 보라 하시며 모처럼 돈을 주시었다.
상옥이는 아빠가 수술을 하신다는 날 학교에서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주신 돈으로 빵을 한 개 사서 가방 속에다 넣고는 집으로 돌아오니 석이는 놀러갔는지 집에 없었다.
석이가 늘 바닷가에 가서 잘 놀기에 나가보니 석이는 친구와 같이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다가 누나를 보고는 반갑게 달려오고 있었다.
석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다가 빵을 주자 석이는 너무 맛이 있다고 먹더니 한쪽을 떼어서는 “누나도 먹어야지” 하고는 얼른 입에다가 넣어주었다.
상옥이는 동생이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도 기특하여서 석이를 모처럼 업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이틀 만에 병원에서 집으로 오시더니 아빠가 첫 번째 수술을 하였지만 잘못 되어서 재수술을 받아야 된다면서 걱정을 하시더니 다시 열흘 후에는 관절이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부득이 다리를 절단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리 절단만은 하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의사의 말을 듣고는 할수없이 수술을 받으셨다고 하였다.
아빠는 그 후 한 달 만에 제대특명과 함께 병원에서 퇴원을 하셨는데 차에서 내리시는 아빠는 목발을 짚고 내려오시다가 한참동안이나 한 자리에 서서 계시더니 눈물을 흘리셨다.
아빠야말로 항상 보아도 그렇게도 자랑스럽고 늠름하시던 아빠였는데 병사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시면서 오시는 모습이 너무도 처량해 보였다.
상옥이가 아빠한테 다가가자 아빠는 허허 웃으시면서 아빠가 비록 목발을 짚긴 하였지만 앞으로 목발연습을 하게 되면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빠는 그리고는 아빠의 몸이 불편할 때가 많을 것이니 동생 석이를 잘 돌봐주라고 하셨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에 아빠는 집에만 계시고 간혹 신문을 읽으시기는 하였지만 어디 나가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우두커니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시거나 어떤 때는 뒤란의 대추나무 밑에 의자를 갖다 놓고는 내내 앉아 계셨다.
엄마는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시자 어떤 때는 한낮에도 집으로 오셔서는 아버지에게 아침에 쑤어놓은 죽이나마 차려드리고는 다시 일을 나가셨다.
엄마가 나가시는 일터는 그물을 뜨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배에서 들어온 고기를 고르기도 하는 곳인데 고깃배가 들어올 때마다 관광을 온 분들이 생선을 골라 사려고 우르르 몰려 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판 장에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상냥스런 얼굴에 담배 빨 뿌리를 건성으로 물고 다니는 멋쟁이 한분이 이따금씩 나타났는데 여자들은 그의 목소리가 캥캥거리는 암캐를 따라다니는 수캐 같다고 해서 흉들을 보았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어판 장을 드나들면서 배가 들고 날 때면 손 신호를 하면서 배를 선착장으로 인도를 하였다.
오 정호라고 하는 이 사람은 다른 때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다가 술이 한잔이라도 목구멍에 들어가기만 하면 취기가 돌고 입이 걸어지기 시작을 하여 여자들이 그 옆엘 가지를 않았다.
어판장이라는 곳이야말로 고기가 나올 때마다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오 정호는 그 시간에 맞추어 구경을 온 사람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때도 있었다.
“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관찰컨대는 오늘 오신 손님들이야말로 지금까지 이 고장을 찾아오신 그 어떤 분들보다도 제일 멋지고 잘 생기신 사장님과 사모님들만 오신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참으로 재수도 좋으신 분들입니다. 기왕지사 이렇게 운이 좋게 당도를 하셨으니 우선 어제 저녁에 술을 잡숫고 해장을 아직 못하신 분은 방금 잡아 올린 해산물로 회를 떠서 잡수시기를 권합니다. 돈 뒀다가 뭘 합니까. 특히 이곳에서 나는 해삼을 잡수시면 달포 간을 들어 누웠던 거시기도 벌떡 일어나서 두리번거리지요. 솔직히 말을 해서 하루저녁에 좋은 여행을 하실 수가 있다 그겁니다. “
“ 이 어판장이 언제부터 저 자의 세상이 되었어. 누가 한 대 주워 갈겨 주기라도 하였으면 좋겠어. 저 자 때문에 어판 장에 사람들이 접근을 하지 못한다니까 그래.”
“ 저 자가 요즘에는 송경화씨의 뒤꽁무니를 이따금 따라다니는 것 같던데 반반한 여자를 보면 미치는 병이라도 도지는 것은 아니야. 저 자가 너무 송경화씨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어. 그의 남편이 원래 해병대 상사였는데 낙하산 훈련 때 낙하산이 풀어지지를 않은 채 떨어지는 바람에 대퇴부를 다쳐 결국에는 왼쪽 다리를 절단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만일 그런 말이 그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아마 뼈도 추리지 못할 걸,“
“ 그러게 말이야. 송경화씨가 지금 여기 나오는 것은 병원비로 해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인데 우리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드려야 한다고.”
“ 아암 그래야지. 아무튼 그의 남편을 보아서라도 우리가 일자리를 잘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저 자가 자꾸만 찝쩍거리려고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그때 송경화씨가 막 어판 장으로 들어오자 오 정호가 금방 송경화의 앞을 가로막더니 갑자기 끌어안는 바람에 송경화씨가 깜짝 놀라서 뒤로 나가자빠지는 바람에 고기함지가 물에 빠지고 옷이 다 젖고 말았다.
그때 어판장의 여자들이 “악” 소리를 지르면서 우르르 몰려서는 손으로 고르고 있던 고기들을 오 정호에게 냅다 던지자 오 정호는 금방 고기세례를 받으면서 코피가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 세상에 점잖은 여자들이 앉아서 일을 하는 장소에서 그렇게 성적으로 노골적인 말을 하고 더구나 송경화씨에게 저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어촌계장님 우리 저 사람이 나타나면 일을 전면 거부할 테니 그리 아세요.”
여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자리를 뜨자 어촌계장이라는 사람이 길을 가로 막으면서 말을 하였다,
“ 저 사람 원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술 한 잔만 들어가면 지랄병이라도 도지는지 저렇게 안하무인이니 낸들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이라 이해하시고 화들을 참으세요. 참는 자에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니 할 말로 미친개가 한번 짖었다고 생각하세요.”
“ 여기가 무슨 코미디 장소에요. 모두가 점잖으신 분들인데 그러는 데가 어디 있어요.”
“ 아주머니. 그것은 조금 모르시는 말씀이세요. 속담에 점잖은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점잖은 아주머니도 밤저녁이 되면 점잖 뺄 새가 없이 사내에게 덤벼든다던데요. 안 그래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의 휘지 근하게 생긴 자가 어판 장을 돌다가는 실실 웃으면서 한마디를 뱉고는 바닷가 쪽으로 휘청거리며 나가자 모두는 어리벙벙해지는 것이었다.
“ 살다 살다 별 허제비 같은 사람을 다 보겠네.”
“ 투전판에 오입쟁이만 모인다더니 이 어판 장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지는 거지요.”
“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흐령물을 지우듯이 오 정호란 자가 원인 이예요.”
“ 여러분. 오늘 어떻게 하다 보니까 분위기가 좀 이상한 곳으로 흐른 것 같은데 오해를 풀어내기 위해서 이 어촌계장이 술 한 잔 사 올리겠습니다. 송경화씨 어디 가셨나요. 간혹 남자들 중에는 여자를 보기만 해도 눈이 뒤집히는 색자가 들은 자도 간혹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나도 어떤 때 술이 좀 취하게 되면 이 어판 장에서 일을 하는 아주먼네들이 백조같이 아름다운 천사로 보인 때도 있었거든요.”
이날 송경화는 몹시 흥분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에게 시중을 들다가 공연히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 이젠 그물을 뜨는 일도 없고 김양식장의 일감도 없어서 굶어 죽게 생겼으니 당신이라도
나가서 벌이를 해야겠어요.”
“ 날더러 벌이를 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 반장을 보던 박 서방은 다리를 절면서도 돈벌이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래요.”
송경화씨야말로 이제껏 한 번도 남편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던 여자인데 어판장에서 받은
충격이 그만큼 컸던 모양이었다.
“이 마누라가 밖으로 나 돌더니 이제는 남편이 눈에도 차지 않는 모양이지.”
오상사도 쌩 하고는 마누라에게 자기도 모르게 쓰지 않던 상소리를 뱉고 말았던 것이다.
" 그렇지 않고요. 새끼를 낳았으면 벌어서 먹여 살려야지 어떻게 나만 부려 먹으려는
거예요.”
오상사는 아내가 자꾸만 따지고 들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더니 한마디를 하였다.
“나는 어차피 버려진 몸이야. 일을 할 수도 없으니 당신 마음대로 해요. 내가 싫으면 사내
를 얻어가도 좋고 .”
“사내를 얻으라고요. .”
송경화씨가 남편에게 속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은 오늘 당한 수치심으로 인한 분풀이였다.
오상사는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집에 석이만 남겨 놓고는 어디로 자꾸만 나갔다.
상옥이는 학교를 갔다 와서 동생과 같이 바닷가로 나가서 미역을 건지려 하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런지 바다는 잔잔하여 미역이 나오지를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동생이 배가 고프다고 하여 찬장을 열어보았으나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빠가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를 않아서 방문을 열어보니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는데 방안에서는 술 냄새가 풍기었다. “ 아빠. 아빠.”
상옥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셨는지 아빠가 벌떡 일어나시다가 벽에 탕 부딪치시었다.
상옥이가 얼른 들어가서 아빠를 부축을 하자 아빠는 상옥이를 바라보시다가 눈물을 흘리셨다.
“ 아빠가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부딪치는 구나. ”
아빠는 한숨을 푹 쉬시더니 목발을 짚으시고는 대문 밖으로 나가시었다.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오기 시작을 하던 날 상옥이는 점심 후에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을
하여 조퇴를 맡고는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있어야 할 동생이 보이지를 않아서 사방을 찾아다니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
는데 부엌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 같아서 부엌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던 것이니 석이가 부엌
바닥에 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옥이가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서 석이를 일으켰으나 동생은 축 늘어진 채 맥이 없었다.
상옥이는 아빠가 잘 나가시는 바닷가로 뛰어나가서 아빠를 부르니 아빠는 포장마치에 계시다가 문을 열고 내다 보셨다.
“ 아빠 석이가 이상해요.”
아빠는 왜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물으시고는 상옥이를 따라서 집으로 오셨는데 부엌을 들여다보다가 석이가 쓸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는 얼른 석이를 끌어안으셨다.
“ 석이야 이게 웬일이냐 .”
아빠는 그 말 한마디를 하시고는 엉엉 우셨다.
아빠의 우시는 소리를 들으신 옆집의 아주머니가 웬일이냐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오시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 응, 석이가 죽다니 .”
하면서 아주머니도 통곡을 하셨다.
동네 사람들 여럿이 오더니 부엌 바닥에 토한 것을 보고는 쥐약을 먹고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상옥이네 집에는 쥐가 많아서 박카스 병에다가 쥐약을 사다가 찬장위에 두었었는데 그것을 석이가 마셨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석이의 소식을 듣고 뛰어 오시더니 석이를 끌어안고는 통곡을 하셨다.
“ 아이고 우리 석이가 죽다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이냐. 만날 배가 고프다고 하고 쌀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이번에 쌀을 사다가 밥을 해주려고 했는데 아이고 야 차라리 고아원에나 갔더라도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고, 불쌍해라 아이고 불쌍해 .”
엄마는 석이를 안고서는 한없이 넋두리를 하시면서 우셨다.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사람들이 엄마 아빠를 부축하면서 어른들이 잘못해서 아이가 잘못되었다는 말들을 하셨다.
해가 지자 동네 사람들은 한사코 엄마가 끌어안은 석이를 빼앗다 싶이 하고는 하얀 보자기로 석이를 싸서 널 속에 넣어서는 지게로 지고 해변 가 야산으로 가시었다.
“ 아이고. 우리 석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살릴 수 있으면 제발 살려 주세요 ,네.”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통곡을 하자 동네 사람들이 쪄 잡아서는 방으로 모시고 들어왔다.
석이가 하늘나라로 간 후에 엄마는 한동안 일도 나가시지 않고는 석이의 이름을 부르셨다. “ 석이야. 엄마가 너무나 잘못을 하였구나. 네가 원하는 밥도 실컷 먹이지도 못하고 너를 하늘나라로 보냈으니 엄마는 어떻게 산단 말이냐. 석이야.”
“ 여보 . 이제는 석이를 떠나보냅시다. 제 운명이 고것 밖에 되지를 않는 것을 어찌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가 있겠소. 너무 석이를 생각하다가는 당신 몸이 상할 테니 제발 이제는 석이를 놓아줍시다.”
날마다 한차례씩 엄마는 석이를 부르고는 어떤 때는 석이가 놀던 바닷가에 가서는 파도치는바다를 바라보다가는 석이를 불렀다.
아빠는 엄마가 그렇게 날마다 미친 사람처럼 석이를 부르면서 다니자 하루는 배를 타고 읍내로 나가셨다.
아빠는 나가시면서 상옥 이에게 엄마를 병원에 당분간 입원을 시키겠다고 하셨다.
아빠의 말씀이 그냥 엄마를 놔두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시면서 나가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자 엄마는 아빠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병원에 계신 것이 효험을 좀 보셨는지 그 다음에는 석이를 부르지도 않고 아침 일찍 다시 일을 나가시기 시작을 하셨다.
하루는 엄마가 상옥이를 부르시더니 아빠가 다리가 아프시니 아빠의 심부름을 잘 해 드리라고 하셨다.
여름장마가 지고 태풍이 불어온다는 예보가 나오자 엄마는 태풍이 불면 미역과 다시마가 많이 바다로 떠내려 온다면서 날마다 바다를 나가시더니 많은 미역을 주워 오셨다.
미역을 많이 줍는다는 소리에 그날은 아빠도 바다엘 나가볼까하니 엄마는 몸도 불편한 분이 어찌 나오느냐면서 만류를 하셨다.
그날은 공휴일이기도 하지만 태풍도 덜 분다고 하여 엄마는 갈고리를 가지고 바다로 나가시자 아빠는 엄마가 나가신 후 한참이나 후에 바다로 나가셨다.
“ 엄마가 만날 혼자 나가서 미역을 따오니 오늘은 아빠도 나가서 미역을 따고 싶다. ”
“ 아빠. 엄마가 아빠 나오시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는데 나가세요.”
“ 아빠도 이제는 목발을 짚는 연습을 많이 하였으니까 아무 일이나 하면서 살아가야지 않니.”
아빠는 그 말씀을 하시더니 천천히 바다로 나가셨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빠도 일을 할 결심을 하신 모양이었다. 아빠야말로 대한민국의 애국자요. 귀신 잡는 해병으로서 누구보다도 열정이 넘치는 군인이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다리를 자르는 고통을 당하시고는 본의 아니게 집에만 박혀 계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고 또 얼마나 활동을 하고 싶으셨겠으랴!.
아빠가 바다로 나가신다고 하자 상옥이도 따라서 바다로 나가는데 바다멀리 산더미 같은 파도가 끝도 없이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것이 바라다 보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파도를 구경을 하고 있는데 엄마만이 미역을 갈쿠리로 건지고 계셨다.
아빠가 그것을 보고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시었다.
“ 여보. 파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 같으니 얼른 나와.”
아빠가 소리를 질렀지만 엄마는 들리지를 않는지 계속해서 미역을 건지시는데 좀 깊은 곳으로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커다란 파도가 점점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채 엄마가 미역을 건지자 아빠가 목발을 집어던지고는 외발로 뛰어서는 엄마를 잡아끄는 순간 엄마는 파도에 휩쓸려 들어오고 아빠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집채 같은 파도에 휩쓸려 나간 채 보이지를 않았다.
“ 오상사가 떠내려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바닷가로 뛰어나가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아빠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함빡 모여들었으나 파도만 점점 거세어질 뿐 이었다.
파도에 휩쓸려 정신이 없던 엄마 귀에 아빠가 떠내려갔다는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나서는 아빠를 찾았지만 아빠가 있을 리 없었다.
“ 여보 내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나왔단 말이요. 아이고, 어이할꼬. 나 어이할꼬.”
엄마는 통곡을 하면서 자리에 쓸어졌다
여자들이 부추겨 안고는 해변가로 나왔다.
“ 이놈의 바다야. 왜 무엇이 미워서 우리시구들을 둘이나 데리고 갔단 말이냐. 차라리 나를 데리고 가지. 당신이 나 대신 갔구려. 아이고 불쌍해라 , 불쌍해 . 우리 남편.”
아빠의 시체는 태풍이 살아진 다음 날 사고가 난 지점에서 1km나 떨어진 해변까지 떠내려가서 모래에 반쯤 묻혀 있었다. 얼굴은 많이 부어 오른 상태였고 상처가 너무도 많이 나 있었다.
그로부터 40년. 엄마는 매년 한 번씩 아빠가 가신 바다를 찾아서는 술 한 잔씩을 부어드리곤 하셨는데 지난해부터 건강이 좋지를 않아서 가지를 못하신다.
“ 상옥아. 아빠가 가신지 몇 년이나 되었냐. 석이가 아빠하고 같이 있을까. 엄마도 이제 아빠 곁으로 갈 날이 멀지 않았지?”
“ 엄마 그런 말씀이랑 하지 마세요. 제가 엄마를 이렇게 잘 모시고 있지 않아요. 엄마가 가시면 이 딸이야말로 외로워서 어찌 살라고요.”
“ 딴은 그렇긴 하구나. 엄마가 가면 너는 외톨이가 되니 엄마가 그럼 얼마나 더 있으면 좋겠니.”
“ 엄마. 아이들 적에 네 활개를 벌리면서 이만큼 할 때처럼 엄마도 그만큼만 더 오래 사셔요. 아셨지요.”
“ 아빠가 너무 오래 기다리시는 것 아니니.”
김 두 수 14. 2. 6 7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