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蘇국립공원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 10분에 아소산(阿蘇山) 관광을 떠났다. 일정이 벅차서 일찍 떠난다고 한다. 아소(阿蘇)는 우리말로 읽어도 '아소' 다.
오이타(大分) 현을 벗어나서 구마모토(熊本) 현으로 들어서자 이내 광활한 아소국립공원이 전개된다. 일본에는 국정(國定)공원은 곳곳에 많이 있지만 국립(國立)자가 붙은 공원은 몇 곳이 안되는데 '아소'는 그중의 하나라고 한다.
광활한 초원이며 울창한 밀림지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날, 이 아소 시(阿蘇市)는 옛 분화구 자리라고 한다. 분화구가 얼마나 컸으면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놀랍기만 하다. 그밖에 나는 화산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한 번 폭발했던 분화구의 자리는 마음 놓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일본에서는 '미까라데다사비'라는 속언이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쇠붙이는 제풀에 녹이 슬어서 망그러진다'는 뜻인데 '자승자박'이니 '자업자득'으로 전의(轉意)되는 경우가 많다.
지구도 스스로 내뿜는 '석유' 때문에 종당에는 '온난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또 화산과 지진으로 파괴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고 보면 지구는 태생적으로 '자업자득', '자승자박' 의 운명을 지닌 것 같다. 살아있는 소우주(小宇宙) 소지구(小地球)니 하는 별칭으로 불리는 우리의 '육체' 또한 그 운명에서 크게 벗어 날 수 없는 것 같아서 유감이다.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병마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남의 나라 국립공원에 와서 잠시나마 미망(迷妄)에 빠진 자신을 추스른다. 이런 기우도 주책 늙은이의 ‘자업자득’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이드 양윤정 양은 자기는 직업상 일본의 구석구석을 안내하고 다니지만 가장 매력적인 곳을 들라면 단연코 이곳 아소국립공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설마…….
하기는 분화구는 지금도 화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날씨나 유황가스 분출에 따라서는 분화구는 관광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행이 여건이 허락이 되어서 분화구에 근접할 수가 있었다. 화산은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악바리처럼 용출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은 지구가 끓는 현상이어서 즐거워할 일도 아닌데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저것이 가이드가 말하는 매력인가보다.
전에 백두산 천지에서도 그랬고 한라산 백록담이나 이곳 아소산, 일본 알프스,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등 가는 곳마다 날씨 덕을 톡톡히 본 편이다. '인생역정은 별 수 없는 위인이 관광운 하나는 잘 타고 났다"고 자부하고 있다.
안내책자에 따르면 아소산은 세계 최대의 '칼데라 복식' 화산이라고 적혀 있다.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나는 화산에 대한한 먹통인 셈이어서 '복식'의 뜻은 대강 짐작하겠는데 ‘칼데라’ 가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일일이 캐묻는 것도 멋쩍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뚝눈으로도 분화구의 규모나 용출량이 엄청나서 '될 대로 되라', '갈 데까지 가라' 면 뜻이 통할 듯 싶어서 자의적인 해석을 해버리고 말았다. 될 대로 되라 화산, 갈 데까지 가라 화산으로.
아소의 방대한 경관이나 시설물들을 짧은 시간에 관람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일 듯싶다. 그대로 돌아오기가 서운해서 나는 매점에서 아소대도감(阿蘇大圖鑑)이라는 그림지도를 한 장 샀다. 집에 와서 펼쳐놓고 보니 가이드가 아소국립공원이 일본에서 가장매력적인 관광지라고 추켜세운 뜻이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웬만한 관광지 열이나 스물을 합친 것만치나 장대하다.
아소휴게소에서 즉석 냄비요리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서 구마모토(熊本) 시로 향했다.
(2005. 12. 15)
첫댓글 元種麟 隨筆文學全集 5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