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76
시장은 똑똑하다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가 3일 만에 철회했다. 소비자안전을 고려하여 80개 품목에 대해 KC(국가통합인증마크) 인증이나 신고·승인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14개 정부 기관이 모여 ‘해외 직구 종합 대책 TF’를 구성해 내놓은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이번 소동은 정부의 시책이 소비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드문 사례로 남게 되었다.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선의에 기반했다. 배경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관세청장과의 간담회에서 해외직구에 의한 피해를 호소했고 대한상공회의소도 직구 제품의 KC 인증 의무화를 요구했다. 때마침 일부 수입 제품에서 유해성 물질이 검출된 것은 해외직구를 규제하려는 정책에 그럴듯한 명분이 됐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규제에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온정주의와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산 직구 플랫폼들의 약진에 대한 경고였다. 국내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는데 대놓고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수주의에 기댄 자국 기업 보호 또한 제법 약발이 먹혔던 경험칙이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해외직구규제를 두고 소비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탁상행정의 본보기가 되고 만 해외직구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 관료들은 소비자들이 기술과 문화의 변천에 얼마나 빠르게 편승하는지를 몰랐다. 다시 말해 소비자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결과다. 온라인을 통한 해외직구의 효용성과 이용 동기에 대해 좀 더 살폈더라면 이런 따위의 어설픈 정책을 섣불리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외직구가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이 적지 않다.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다. 해외 시장에만 존재하는 상품이 있기 마련이고 다양한 제품을 비교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도 해외직구의 매력이다. 때론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상품을 구입하거나 알림으로써 쇼핑의 쾌락을 느끼기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 쇼핑은 소비자들에겐 축복이다. 늦은 시간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달음질하던 워킹맘들의 노역을 해방구로 인도했다. 그들만이 아니다. 누구나 애써 발품을 팔지 않아도 클릭 한 번이면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제품을 노랑머리가 만들었는지 검은 머리가 만들었는지는 상관없다. 자신의 필요와 능력만큼 물건을 사면 그만이다. 이렇게 쓸만한 유통시스템을 왜 막겠다는 것인가. 해외직구를 규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근대적이고 반 문명적이다. 소비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들의 자유의사에 맡기면 될 일이다.
기술과 문화의 변화는 럭비공과 같다. 구르는 공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방향성이 있다. 진보다. 직설하면 전자상거래는 가트너(Gartner, Inc.)의 하이프 사이클에서 분석했듯이 이미 환멸기를 지나 성숙기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한 해 일억 건이 넘게 이뤄지는 해외직구가 이를 증명한다. 이것이 기술과 문화의 진보이고 유통혁명이다. 도도한 문명의 진화를 억지로 막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막을 수도 없다.
이번 일을 두고 정책입안자들의 충정은 이해된다. 최근 중국산 직구 플랫폼들의 기세라면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마켓 점유는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통계청 자료는 이러한 우려가 공연한 엄살이 아님을 말해준다. 작년에만 해외직접 구매액이 6조 7천억원이 넘는데 그중 절반을 중국에서 사들였다. 편중이 심한 정도가 아니다. 코로나를 퍼트려 솜털도 벗지 못한 아이들까지 전자상거래를 하게 만들더니 자기네 물건을 야무지게 팔아먹는 왕서방이 얄밉기도 하다. 그렇다고 트럼프처럼 해안선에 장벽을 만들 수도 없고 비행 금지구역을 선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정부에 권면한다. 첫째는 순리를 지키는 것이다. 순리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문명의 진화에 순응하는 것이다. 절대 신이 우주와 삼라만상을 법칙에 따라 창조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현상계는 보기보다 무질서하지 않다. 법칙을 벗어나면 억지가 되거나 어김없이 매를 번다. 과학이 그렇고 인류 의지의 총합이 그렇다. 반문명적 정책은 결국 실패한다는 철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는 개방성이다. 문을 걸어 잠그면 먼지가 쌓이지만 열어젖히면 바람이 통하고 밝은 햇살이 들어온다. 역사가 수없이 증명한 사실이다. 개방의 필요는 개체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조직과 국가도 열린 사회로 나가야 미래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에게 배신자 소릴 들으면서도 한미 FTA를 체결했다. 많은 언론과 학자라는 사람들까지 나서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의 결단은 집권자로서 국가를 위한 신념의 훼절이었을 것이다.
셋째는 혁신의 주도자가 되는 것이다. 먼저는 역직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중국 직구 플랫폼들은 저렴한 판매수수료와 빠른 배송을 위한 물류체계 효율화에 진력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와 민간이 함께 우리 상품의 해외 전자상거래를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직구 물품에 대한 통관이나 품질보증, 안전 등 소비자 불만에 관심을 두고 제도적 개선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넷째는 정책의 진중함이다. 대파가 야당 후보였다고 회자 되는 마당에 소비자들이 물가에 얼마나 민감한지 몰랐다면 문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부는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한다. 양치 소년이 사는 동네에서는 사람들이 창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고언이다. 설익은 경제정책을 숙성시키는 곳은 시장밖에 없다. 좋은 정책이라면 시장에 있는 발효통에서 보글거리는 소리가 나게 되어있다. 그것이 시장의 법칙이고 위대함이다. 시장에 맡기라는 말이다. 네거티브방식으로 규제를 앞세워서는 결코 중소기업이 보호되지 않는다. 창조성은 사라지고 혁신이 되지 않을 뿐이다. 경쟁 없이는 구조조정도 산업고도화도 난망하다. 전국에 널려있는 재래시장통의 거미줄이 말해준다. 혁신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면 바퀴벌레조차 짐을 싼다. 정부 당국자들은 미래에 유통혁명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진화할지 주먹구구 셈이라도 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