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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뉴스울산 박정관 편집장
- 국민일보 문서선교사
- 언론인 홀리클럽 회원
- 중구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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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들과 연날리기나 말타기를 하고 다방구 놀이와 구슬치기나 자치기 정도를 할 무렵 어느 날 여천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슬라이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영사기에서 흘러나온 빛이 스크린에 영상으로 재현되는 장면은 당시 내게는 깜짝 놀랄 문화충격이었다. 그 시절에는 돈 드는 놀이를 할 수가 없었고, 따로 문화를 향유할 만한 여유도 없었다.
톱으로 나무를 켜 굵은 철사 한 가닥 덧대 뚝딱뚝딱 썰매 밑에 박아 얼음을 지쳤고, 논밭에서 메뚜기를 잡아 구워먹고,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개울가에 지렁이를 캐 미끼로 준비하고 명촌 다리나 장생포에 가서 대낚시를 드리우면 던지기가 무섭게 꼬시래기가 엄청 잡혔다. 낚시하다 배가 고파 샤니와 삼립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물 한 컵을 들이키면 그 맛이 바로 꿀맛이었다. 그 낚시의 손맛은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짜릿한 여운을 남긴다.
동네 친구 집에 어느 날 텔레비전 수상기가 설치되고 옥상에 커다란 안테나가 설치됐다. 그 친구 집에서 ‘마루치 아라치’, ‘로보트 태권브이’ 등의 만화 영화를 동네 꼬맹이들과 함께 엄마가 찾아 올 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텔레비전에서 김일 선수의 레슬링이 나오는 날이면 마을은 잔치가 벌어질 정도였다.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밀리다가 김일 선수가 나와서 머리를 힘껏 뒤로 젖혀 상대편 이마에 박치기를 가하면 상대는 단방에 벌러덩 나가떨어지곤 했다.
삶에 지친 가난한 국민들을 달래는 길에 스포츠만큼 영향력을 끼치는 방편이 없어서 옛날에는 프로레슬링과 권투가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고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선수들의 경기가 생중계되면 전 국민이 열화와 같은 응원을 보탰고,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귀국하면 영웅대접을 받고 카퍼레이드를 펼쳐주곤 했다.
어느덧 각 가정마다 거의 텔레비전이 보급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상순과 최불암이 나오는 ‘수사반장’을 지켜보느라고 시간가는 줄을 몰랐고, 나시찬이 출연한 ‘전우’도 그렇게 인기를 끌었었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타잔 시리즈’의 인기도 천정부지였다. 텔레비전으로나마 문화를 향유하던 그때 주말의 명화에서 세계 각국의 영화를 시청할 수 있었고, 그것은 여린 감수성의 대지에 내리는 촉촉한 문화의 단비세례였다.
경제 사정이 조금 나아진 사람들의 다음 단계는 스크린으로 접하는 영상문화였다. 필자의 청소년기를 지날 무렵 극장가의 돌풍은 허리케인처럼 드셌다. 지금 성남동·옥교동 주변의 ‘젊음의 거리’에 시민극장, 천도극장, 태화극장이 경쟁하며 세계 각국의 영화를 퍼 날랐고, 극장은 상종가의 인기를 구가했다. 각 학교마다 단체관람도 많았었다. 고교시절에는 인디아나 존스를 단체 관람하기도 했다.
이제 극장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기존 극장에서는 만족하지 못해 자동차 극장을 찾는 마니아들도 있다. 울산은 두 곳이 운영되다가 이제 정자에 한 곳만 남았다. 어둠이 커튼처럼 내리고 밤이 이슥해지면 자동차 극장으로 차량불빛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출입구 매표소에서부터 라이트를 끄고, 지정 주파수에 채널을 고정하고,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주차를 시켜야 한다.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매점에서 오징어·컵라면·커피나 음료수와 과자류를 준비해도 좋다. 그리고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가 연기한 영화의 세계로 첨벙 다이빙하면 이 또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멋진 추억의 기록이 될 것이다. 휘영청 달이 뜨고 별빛이 쏟아지는 밤 하늘아래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와 함께 감상하는 영화는 필시 잊지 못할 낭만을 선사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