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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대 문화관광과 063-640-2344 사선대관리사무소 063-643-2575 섬진강 시인으로 통하는 김용택씨는 <꿈꾸는 섬진강>에서 섬진강 오백리길에서도 임실의 한자락을 흐르는 천담과 구담을 거쳐 장구목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가장 아름다운 물굽이로 꼽았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 <아름다운 시절>과 <춘향전>이 여기서 촬영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시절에서 주인공이 어린시절 친구와 몰래 만나 작전을 꾸미던 곳. 커다란 미루 나무 아래로 계곡이 내려다 보이던 곳 엄마는 미군의 빨래를 맡아와 강에 담궈놓고 아이는 옆에서 물장구를 치던 곳 개울에 걸린 돌담풍경. 이들이 전부 구담마을에서 촬영되었다. 임실군 덕치면 구담리 문화관광과 063-640-2540 광제정은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양돈(揚墩)의 호가 광제정인 점으로 미루어 그가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돈의 호는 매당(梅堂)과 광제정(光霽亭)이다. 그는 세조7년(1461년)에 출생하여 중종 7년(1512년)에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종 9년(1498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무오사화 때 아산방(현재의 봉현리)에서 은거했는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당시 사표(師表)가 되었다. 그 후 선생은 남효온(南孝溫)의 천거로 조정에서 불렀으나, 벼슬하기를 거부하고 여생을 조용하게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이 건물은 본래 삼계면 후천리 광제마을에 있던 것을 고종9년(1872)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 252-1 문화관광과 문화예술계 063-640-2541 사자산(522m)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신흥사는 백제 성황 때(529년) 진감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건물이 400 평에 이르고 3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던 대사찰이었다. 대웅전은 몇 차례 불탔지만 원형을 잃지 않아 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에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되어 신흥사로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법흥왕 때라면 삼국통일 140 년 전으로 신라가 백제 땅에 와서 사찰을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통일 후 신라 연대로 환산하여 적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유역면적 763㎢, 만수면적 25.5㎢, 총 저수량 4억3,000만 톤에 달하는 옥정호는 노령산맥 줄기 사이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물을 옥정리에서 댐을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시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한편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다목적댐이다. 옥정호는 운암대교, 벼락바위, 댐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가을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경관이 장관이다.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하운암출장소 063-643-8173 옥정호 순환도로
옥정호는 섬진강 다목적댐으로 인해 생겨난 호수로서 맑고 깨끗한 넓은 호반과 운암대교 그리고 주변 숲과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연출한다. 노선은 지방도 749호선이고 길이는 11km에 이른다. 특히, 옥정호는 일교차가 커서 물안개가 많이 발생하며 봄.가을에는 그야말로 풍경이 절정을 이루어 보는 순간 턱 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이 펼쳐진다. 옥정호 순환도로변 국사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특히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넓은 옥정호 호반에는 어족이 풍부하여 강태공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임실군 운암면 운암리 ~ 마암리(지방도 749호선) 상이암은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1-1번지, 성수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이다. 사찰로는 매우 이상한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사찰에서는 왕이 되리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백일기도를 끝내고 못에서 목욕을 하던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하늘로부터 용이 내려와 몸을 씻어주고 승천하면서 ‘성수만세(聖壽萬歲)’라 했다고 한다. 이곳의 산이름이 성수산인 것에 거기에서 유래된 탓일게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일 기도를 드렸으나 별다른 감응이 없자 이곳에서 3일을 더 맑은 계곡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려 비로소 관음보살의 계시를 얻게 되었다. 이 비석은 그것을 기념하여 자연석에 새긴 것이라 한다.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85번지 063-642-9740 임실군 관촌면 덕천리 산 52번지 관촌면사무소 063-642-0302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에 있는 남근석은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높이 2미터에 둘레 1.13 미터의 원추 사각형 석조물로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 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에 구전에 따르면 마을에 돌림병이 심해지고 인심이 흉흉해지자 마을 형상이 여성의 성 기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여겨 마을입구에 남근석을 세워 그 기운을 누르고자 세웠다고 전해진다. 철마면의 선돌과 성혈, 안양 삼막사에있는 남근석과 여근석 등 많은 곳에 민속 신앙물이 남아있다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 1019 문화관광과 063-640-2542 죽계리 세심자연휴양림
산중복 이하는 리기다소나무 30년생 내외의 조림지(약 50ha)이며, 기타 지역은 침·활 횬효림지로 ha당 107㎡ 으로 임상이 좋은 편이며, 계곡부에는 수원이 풍부하고 기암괴석 등 경관이 수려하다. 또한 휴양림상류에 농촌용수 확보를 위한 댐이 완공되면 휴양림기능이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실군 삼계면 죽계리 산 23번지 외 1필지 임실군청 산림축산 산지개발담당 063-640-2425,2426 소충사
소충사는 구한말 정재 이석용 장군을 주변으로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28의사를 배향하는 사우로서 항일투쟁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순절하신 충의열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시설로 항일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으로 많은 참배객이 다녀가고 있는 임실군의 대표적인 보훈시설이다.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산 130-1 일원 소충사 관리사무소 063-642-2655
1985년 12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모여든다. 섬진강 상류인 오원천변에 있는 사선대는 네 신선이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명승지이다. 옛날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면 운수산의 두 신선이 관촌 강변에 모여 놀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까마귀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렸다. 나중에 홀연히 네 선녀가 내려와 네 신선들을 호위하며 사라졌다. 그 후로 이곳을 사선대라 하고 이 강을 오원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선대 주변은 기암절벽과 수풀, 맑은 물이 어우러져 승경을 연출하며, 사선대 위쪽의 울창한 숲속에는 운서정(지방유형문화재 135호) 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취를 돋운다. 1928년 김승희라는 사람이 부친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며 일제 때 각지의 우국지사들이 모여 망국의 한을 달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던 곳이라고 한다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 전주-남원간17번국도 옆
구담마을
예부터 구담마을은 오지중 오지였다. 빨치산의 마지막 세력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회문산이 지척인 것만 봐도 여실히 알 수 있는 바다. 지금도 구담마을은 여전히 오지다.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다. 천담마을까지만 차가 들어온다. 섬진강과 붙어 살다시피 하는 천담마을 앞의 커다란 느티나무와 정자를 옆으로 끼고 섬진강 자락을 따라도는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가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작은 마을 하나가 나온다.
봄이면 강을 따라 매화가 피는 운치 하나만큼은 최고의 길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마을엔 10여세대 스무명 남짓한 주민만이 산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은 마을회관. 회관에서 바로 뒤쪽의 커다란 느티나무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가면 언덕 위에 공터가 있고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라고 쓴 기념비가 나온다. 아래로는 섬진강 물줄기가 영화에서처럼 굽이치며 흐른다. 그런데도 뭔가 덜 본것 같은 미진함이 많이 남는다. 공터에서 마을회관쪽으로 되나오면 회관앞에서 강쪽으로 내려 가는 길이 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제법 널찍한 강변이 나온다. 강이쪽과 저쪽은 요즘 어지간한 시골에서도 보기 어려운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정겨움이 살아있다.
징검다리 아래로로는 청석바위 위로 얕은 물이 흐르고 아래는 물놀이하기 딱 좋을 정도의 개울이 펼쳐진다. 바로 아래는 순창땅인 장구목이다. 김용택시인의 시어처럼 아름답다. 강변에서 올려다 보면 그제서야 구담마을의 전부가 보인다. 정확히 산중턱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데 빨갛고 파란 지붕 들이 초등학교 때 상상으로 그렸던 풍경화랑 너무 닮았다. 마치 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오롯한 시골풍경 구담마을은 누구나에게 마음속 고향으로 남겨 두고 싶은 그런 곳이다.
광제정 (光霽亭)
이 건물의 특징은 정자 한가운데에 온돌방이 하나 있는 점이다. 3단의 계단식 축대 위에 정자가 위치해 있으며 한가운데에 계단식 통로가 마련돼 있고 뒤로는 산을 등지고 옆으로는 내(川)를 끼고 있다. 온돌방 입구에는 매당이라는 현판이 있고, 정자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의 글과 기정진(奇正鎭)의 광제정 중건기(光霽亭重建記) 등이 걸려있다. 이 광제정은 선생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보존, 관리하고 있으며 선생의 별세 후 향민들이 추모하여 아계사(阿溪詞)를 짓고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신흥사
임실군 관촌면 소재지에서 방수리 쪽으로 8km쯤 들어가면 신흥사를 찾을 수 있다.
임실군 관촌면 상월리 360 063-643-2178
옥정댐
임실읍에서 16km 지점의 강진교를 거쳐 오른쪽으로 꺾어져 5km 쯤 올라가면 섬진댐이 나온다. 한편 전주에서 완주군 구이면 쪽으로 28km가면 예전에는 낚시터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옥정호 상수원보호 구역 지정으로 인하여 낚시는 불가하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옥정호의 막은 댐이 나온다.
상이암
다음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니 하늘에서부터 “앞으로 왕이 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렇게 성수산 상이암은 고려와 조선의 태조가 왕이 될 것을 예언하는 소리를 들었기에 산 이름과 절 이름을 얻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태조 이성계와 인연이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절 입구에 태조 이성계가 쓴 “삼청동(三淸洞)”이라 새긴 비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라를 세우려는 인간의 큰 뜻도 부처님의 가피력이 있어야만 실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상이암에서 또한 옛날과 다르지만 이러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공부를 많이 한 주지스님이 계셔서 보살과 처사들의 인연에 맞추어 부처님의 진리를 쉽게 설명해주시곤 한다.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상이암의 규모에 걸맞게 여러 전각도 새로 지었을 뿐만 아니라 오고가는 나그네에게조차 부처님의 존재를 각인시켜주는 곳이 상이암이다.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과 함께 부처님의 법을 듣고 궁금한 것을 묻고 논하고 싶을 때 상이암을 찾아가길 권한다.
운서정
운서정은 관촌면 오원천(烏院川)변의 사선대 위에 건립되었는데, 울창한 수목들에 둘러싸여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이 운서정은 당대의 부호인 승지 김양근(金瀁根)의 아들 승희(昇熙) 공이 부친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1928년 쌀 3백석을 들여, 6년간에 걸쳐 건립하였다.
정각과 동·서재 그리고 가정문(嘉貞門)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조선조 본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거대한 목재와 석축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케 하고 있다. 건립 후 일제하에 경향의 우국 지사들이 모여, 한을 달래던 곳으로도 유명한 운서정은 관광지 사선대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어있다. 특히 운서정으로부터 백제 무왕 때 축성된 것으로 비정되는 성미산성(城嵋山城)에 이르는 등산로는 산개나리 군락과 함께 지역 주민의 건강과 화합을 다지는 곳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사곡리남근석
나무나 돌로 남근모양을 조각하거나 비슷하게 생긴 돌이나 나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삶는 것 은 다산과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 신앙물로 흔히 선돌은 남성을 상징하고, 성혈은 여성을 상 징한다. 이곳 사곡리 외에도, 남해 다랭이 마을의 숫바위와 암바위, 경북 영주와 부산 기장 군
* 구역면적 - 101.45 ha
임실군에서는 충.효.열의 정신을 선양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임실군민의날 행사를 소충제라 정하여 매년 개최하다가 사선녀의 아름다운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지역문화행사인 사선문화제와 1999년8월에 통합한 소충.사선문화제를 매년 양력 10월5일을 전후하여 관촌사선대 및 임실군 일원에서 개최하고 있으며 이때 소충사를 찾아 헌화 분향하고 충의열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 정재 이석용 의병장
성수면 삼봉리에서 태어나 17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한 출충한 인물이였으나 을사조약으로 일제가 침략의 야욕을 노골화하자 성수산 골짜기의 상이암에 동지를 규합하여 1907년 8월 28일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장의 동맹단' 을 결성하여 의병장으로 추대 되었는데 당시 의병의 수가 5백여명에 이르렸다. 그후 2년에 걸쳐 진안에 주둔한 왜군을 격파하고 영광,고창,용담 등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신식 무기로 무장한 왜군에 당하지 못하고 1908년 4월 임실에서 크게 패하자 의병들을 해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후 정동석의 배반으로 1913년 일경에 체포되어 1914년 전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37세를 일기로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였다. 정부는 1962년 3월1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매년 7월7일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1957년 7월 이승만대통령의 소충사(昭忠祠)휘호와 이박사 친제의'조의단(弔義壇)28의사 추념문'을 받아 비에 새겨 놓았다.
※ 면적 - 67,107m² (20,300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