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목의 작품세계]
ㅡ인사동에서ㅡ
매주 수요일이면 인사동 거리가 평소보다 더욱 붐빈다. 새로운 작품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마음까지 분주하다. 근래에 들어 여성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좋은 현상이다.
동양화와 달리 주로 서양화는 원근법을 잘 살리면 그림의 효과를 얻는다. 서예는 필체에 힘이 담겨야 한다. 왕희지체를 선호하는 서예가와 추사체에 빠진 작가의 성품을 발견하게 된다.
근래에는 각자가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어 쓰고있는 추세다. 목간체를 선호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서예의 조예가 깊을수록 필체에 매료된다. 한동안 금문과 호태왕 글씨체에 빠지기도 했다. 2015년 특허청에 '한자 글자체' 출원으로 다음해에 특허를 받았다. 글씨체도 다양한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내가 서예를 접하게된 동기가 있다. 일중 김충현 형제인 여초 김응현의 제자인 환산 정덕훈 선생으로부터 수년간 필체를 수련했다. 필체에 활력이 넘치고 정도를 벗으나지 않아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예서로부터 해서, 행서를 거쳐 초서에 접어들면서 코로나가 붓을 놓게 만든다. 독학은 한계가 있어 멈춘 상태에 있다.
말복이 지나도 낮기온의 열기는 대지를 달군다. 전시장마다 열기를 더한다.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3층 문을 열고 들어서본다. '월간 서예문화'에서 주최하는 'KOCAF 筆墨의 世界화展 초대' 전이다. 전국 각지 12작가의 작품을 8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한 자리에서 보는 기회다.
액자에 담긴 먹향이 피부로 느껴진다. 대작가들의 작품이 눈을 멎게 한다. 창원에 거주하는 여목(如穆) 이귀은(李貴銀) 선생의 작품들이 맞은편에 걸려있다. 첫눈에 마주친 맹자구孟子句인 시우時雨가 가슴을 뛰게한다. 때맞추어 내리는 단비라는 의미이다. 깊은 뜻이 담긴 문구마다 시간을 빼앗는다.
작가노트 중간에서 한 구절 읽어본다.
"벽(癖)
벽이 있기에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그 도전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도 하며 벽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있다."
"이것이 나의 이상향이면서 붓글의 화두이다."
선인이 던져준 법도 중에 다섯 가지를 노트했는데 벽이 시선을 끈다. 벽이 없으면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 화두를 염두에 두고 붓을 잡았기에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서예는 예와 도를 갖추어야 한다. 역입과 회봉, 중봉, 일필삼절의 기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경지에 이른 서예가는 예법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다. 먹을 가는 법칙도 벗어나면 도에 어긋난다. 액자에 담긴 명구를 읽으면서 상상한다. 맑은 정신 세계에 접어들어 붓을 잡는 준비 과정은 마치 신을 대하듯이 해야 좋은 필체가 펼쳐진다.
여목 선생의 작품이 서울 나들이에서 일주일 동안 많은 관람객과 눈을 마주할 채비다. 다양한 글씨체를 섭렵한 작가의 모습은 21세기 신사임당으로 칭한다. 구구절절한 칭찬은 생략하기로 한다. 성품이 화선지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친부(甫農 李圭燁)가 지난해 전시 도록에 격려의 글을 남겼다. 몇구절 옮긴다.
"오직 열정 하나로 이겨내면서 부단의 노력을 기울인 창작활동을 축하하고, 그 정신은 빛나고 값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예는 문자를 떠나 인간의 미적감수성과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심신 수양의 수단으로써 깊고 그윽한 삶의 향기가 있는 서ㆍ예술이다."
부전여전이기에 뜻이 같고 생각이 깊다.
여목 선생은 서양화에서 서예로 전환한 작가다. 나와는 반대 현상인걸 보면 서도의 매력에 빠져들어 있다. 정갈하고 고요하며 차분한 성격과 일치해서 적성에 맞아보인다.
작가와의 짧은 시간에 나눈 대담에서 성품을 훔친다. 한동안 놓았던 붓을 다시 잡아보려는 유혹이 생긴다. 여목(李貴銀) 작가가 옮긴 명구를 새삼 새기며 묵향에 젖어본 시간은 저만치 가고 있다.
2023.08.19.
첫댓글 그냥 그림 보듯 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