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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8장>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
그래서 사도행전이 작성된 시기에는 사도바울과 예수를 가르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고 사도행전 마지막장이였던 28장 31절에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이들은 결단코 탄압받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1차 독립전쟁은 66년부터 70년까지 이루어 졌습니다. 당연히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지만 유대를 배신한 예수교도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민족을 배신하고 권세있는 로마를 위해 설교를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독립전쟁을 피해 여러지역으로 피해다녔을 것입니다. 그곳은 로마와 프랑스등 일 것은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의 2차 독립전쟁은 115~117년사이에 발발하게 됩니다. 이 때에도 유대를 배신한 예수교인들은 독립전쟁에 가담하지 않으며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나팔을 불지말 것을 주장하며 로마의 편에서 로마를 위한 설교(선동)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이제 여러분은 역사적으로도 유대인과 예수교도들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혹시 이러한 내용이 믿기지 않는다면 관련 역사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로마황실은 오랜시간동안 예수교를 통해 부를 축적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로마황실 사람들은 예수교를 반대했을 수 있지만 역사의 편은 예수교를 지지하는 로마황실의 사람들이였습니다. 이들은 결국 예수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로서 로마황실과 교황은 신의 이름으로 타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사도들이 작성한 예수교의 교리가 타락한 로마황실과 교황에 있어서 너무나 딱 맞는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약의 악독한 설교를 로마가 그대로 사용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이는 로마황실이 절대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외였지만 그 누구도 로마에 대항 할 수 없었고 로마는 유대인과 자신들의 백성에게 이야기하고 싶었하는 그 내용 그대로를 성경에 올려 놓은 것입니다.
“로마의 권세를 따르라 이것이 너희 신이 준 권세이며 이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죽음 뿐이다”라고 말이죠. 이 말이 하고 싶었고 적었던 것입니다. 또한 “비판하지 말고 교회와 거리에 모이지 말고 반란을 일으키지 말고 그들(바리새인)들을 멀리하고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라”라고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는 사도들의 내용을 착한 내용으로 변경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내용이 있다면 악하게 수정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가 멸망후에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왜 유럽에서 사악한 교리를 그대로 사용했는가? 하는 의문점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은 이 말 한마디에 해소될 것 같습니다.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렇습니다. 로마멸망 후에도 교황은 있었고 각각의 나라마다 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면죄부판매, 마녀사냥등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예수를 악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마녀로 몰리고 전 재산을 빼앗게 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을 보던 사람들은 신도들에게 설명할 때에 그 내용을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그러한 해설집이 현재까지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며 유럽의 종교적인 역사는 현재까지 왜곡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봐라. 내가 성경을 해석했다. 내가 진정한 예수쟁이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진실에 눈을 떠야하며 이야기 해야 합니다.
이는 완전히 거짓입니다. 신약의 내용은 알기 쉽게 되어있습니다. 다만 역사적인 사실이 잘못 적혀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사도들을 탄압한 왕이 헤롯이 아니라 아그립바1세라는 것이며 사도바울을 재판한 아그립바는 아그립바2세라는 사실입니다. 이 두가지 이유로 헤롯이 유대인을 핍박하였다고 잘못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는 아주 평이하고 소설처럼 이어지는 쉬운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엇이 어렵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신약의 내용에 저질적이며 악독한 내용들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원수가 되라' 혹은 '골방에 들어가 조용히 주기도문을 외워라'등의 내용이 그러한 것입니다.
위와 같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예수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성경 내용은 완전히 달랐으니까요. 다시말해서 성경의 내용이 어려웠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랑의 예수로 만들기 위해 '이건 이런 내용이야' 이라며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 것일 뿐 입니다.
이로서 신약성경은 한마디로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민족을 배신한 예수의 전쟁이다.'
예수교도들은 신약성경을 비유와 상징이라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비유와 상징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유적인 설명에 신경쓰지 못하게 하고 비유와 상징을 따라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비유와 상징이라는 것은 분명한 비유와 상징으로 예수의 설교입니다.
그래서 비유와 상징은 예수교에게 중요한 것이며 비유와 상징을 예수교도들은 따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유와 상징은 비유일 뿐이라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의 비유와 상징을 외면하는 것이고 예수교도들 스스로가 예수의 설교를 외면하고 이는 결국 예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비유와 상징이라는 외치는 예수교도들은 예수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비유와 상징을 따라하면 예수교가 사탄숭배교임을 알게되고 인정하게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결코 비유와 상징을 따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교도들은 지금이라도 예수가 말한 비유와 상징을 따라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싫다면 예수교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그 자체가 이미 여러분은 인류에게 대단히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 죄값을 치르는 것은 예수가 말한 무조건적인 죄사함이 아니라 세례요한이 말 한 것으로 그에 합당한 의를 행하여 그 죄값을 치뤄야 합니다. 예수교도들이 해야 할 의라는 것은 예수의 사악함을 증거하여 예수를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진짜 죽여야하고 그 때 비로서 예수는 새롭게 해석되어 사탄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진짜 의를 찾아 다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수교도들이 용서 받는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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