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는데요.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하면, 구분선 아래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문)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패역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까?
답)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또한 그의 형상대로, 곧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마음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삶으로써 그에게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은 오로지 최초에 사람에게 그것을 부여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아서만 이루어진다. 생명을 주시는 분과 그것이 상실되었을 때에 다시 회복시키시는 분이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통하여 이 형상을 회복시키신다. 왜냐하면 그가 그 아들을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고전 1:30). 아들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그리고 성령께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또한 성례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그 일을 계속 수행하시며 완전케 하신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그러나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일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곧, 영혼에 관하여는 현세에서는 믿는 자들에게 생이 끝나기까지 그저 시작되고 굳건해지고 계속 진행되어 가는 것뿐이고, 전인(全人)에 관하여는 몸이 부활할 때에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회복을 이루시는 주체가 누구시며, 그 방식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p.45.
첫댓글 본문의 밑줄 친 부분에 특히 공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과거에는 칭의이고 현세에서는 성화이며 미래에는 영화입니다.
네, 그게 핵심 내용인 것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GODpia 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하나님의 형상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고귀한 인간 본성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과 구속받은 자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충만히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언급하는 중심구절은 창 1: 26이며,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히. '체렘' 참조. 27절, 5:3;9 : 6)을 따라 그의 모양(히. '데무트';참조. 5: 1, 3)대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많은 학문적 설명과 사색의 주제가 되어왔다. 성경의 다른 문맥에서 '형상'이라는 말의 사용은 지위, 닮음, 유사성과 같은 구체적인 진술의 의미를 수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해석은 소홀히 처리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며 어떤 물질적 형식으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석사에서는 대체로 구체적 또는 물질적 해석이 거절되어 왔고 인격성, 자의식, 불멸성, 합리성, 의지의 자유, 도덕적 기관 또는 창의성과 같은 다양한 영적 해석이 옹호되어 왔다. 그러나 순전히 영적인 해석은 인간 찬성을 항상 정신과 신체의 통일성으로 보는 히브리 인간론의 일원론적 기본 성격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형상을 합리성만으로 보는 것은 히브리적 강조점보다는 오히려 헬라적 강조점을 반영하는 것이 된다. 후자에서 이성, 마음, 의지 작용, 도덕적 감수성은 분리될 수 없는 단일 실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단지 특별한 기능 또는 능력에서 찾아져서는 안 되고, 도리어 그것들 모두가 제공하는 한 본성, 다시 말하면 구체성을 포함하나 그것에 제한되지 않는 인간 본성 전체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견해 내에, 인간의 다양한 특성들이 포함될 수 있고, 그 중 몇 가지가 '형상'과 '모양'에 대한 성경의 다른 사용에서 넌지시 암시된다.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인간본성의 육체성을 포함한 총체성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은 그의 부친 아담의 모양 곧 그의 형상과 같았다(창 5:3).
여기에서 아담을 닮았다고 하는 셋의 인간성은 신체적 닳음을 제외시킬 수 없다. 더욱이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금지된다(9: 6).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 생명의 신성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하나님 앞에서 있음이라는 보다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살인은 적어도 육체적 침해의 측면을 포함하는 것이 틀림없다.
생명의 신성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창 1 : 26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과 관계될 수 있다. '형상'은 27절에서 반복해서 언급되며, 남자와 여자의 구별로 이어진다. 다음 구절(28절)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에 대한 통치권에 관해 언급하며, 이 주권은 종종 하나님의 형상에서 조금 더 전진된 요소로 간주된다(참조. 시 8:5-8).
이성, 자유, 의지 등이 하나님 형상의 구성 요소가 된다고 하는 전제는 본문의 증거로부터 유래된 것이기보다도 조직신학적 또는 철학적 반영으로부터 유래된 것임이 틀림없다. 해석상의 두 번째 문제점은 형상과 모양이 서로 구별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성경의 용법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신학의 역사는 다양한 이론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형상은 자연적 이성과 동일시되고 모양은 초자연적 은혜 또는 원의(原義, original righteousness)와 동일시된다. 구약과 신약 모두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였다고는 하지 않는다(창 9:6; 고전 11:7 ; 약 3:9 모두 형상이 지속한다고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죄에 의해 근본적으로 왜곡되었으나-흐려진 기능, 깨어진 관계,
포학케 된 통치권- 전부 상실되지는 않았다는 데 일치한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형 상(헬. '에이콘')과 모양. (헬. '호모이오마', '호모이오시스')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골 1 : 15),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시며(히 1: 3), '하나님의 형상'이신(고후 4: 4) 예수 그리스도라는 측면에서 재정의된다. 각각의 경우에서 형상에 대한 언급이 신성인 것임은 틀림없다. 그것은 원래의 것과 틀림없이 동일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충만'이 거하시며(골1:9;2:9), 그는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선재하셨다(빌 2 : 6).
다른 한편,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은 성육신에서 가시화되었다. 요한복음 서론은 말씀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성을 취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 1 : 4,9,13-14).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라면, 사람이신 예수님은 완전히 그렇게 된 존재이시다(14절 ; 14:9).
어떤 신학자들은 그런 고찰로부터 추론하기를 육화(肉化)된 말씀은 사실상 온 인류의 원형(原形)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몸조차도 하나님의 형상에 속하는 것이며, 더욱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상의
종말론적 회복과 영화에서 몸의 궁극적 변화(빌 3: 21)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의 빛 아래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은 위에 논의된 구약의 주제들로 요약된 그의 직분, 곧 지식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계시하는 선지자(참조. 골3:10), 거룩함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계시하는 제사장, 의와 주권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계시하는 왕이라는 그의 직분과 관련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다루는 목적은 구원론적인 데 있다. 그것은 타락한 인류의 구속과 회복을 겨냥한다. 이리하여 믿는 자들은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고후 3 : 18).
그때 구속받은 자는 새 인간성을 갖게 된다. 그들은 새 피조물이며(5 : 17),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롬 8 : 29).
이리하여 새 사람은 하나님의 참 형상을 본받게 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리스도의 본성에 근거하여 참예하는 것,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을 내포한다(벧후1: 4 ;참조.벧전 5 : 1).
바울은 때때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하고(빌 2: 5;참조. 고후10: 15),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까지
새롭게 되며(골 3 : 10),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받게 된다는(엡 4:22-24 ;골 3: 9-11) 갱신에서 이성적·윤리적 요소를 강조한다. 인간에게서 하나님 형상의 통일된 차원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서도 제시된다. 비록 갱신이 이미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이 현세에서 새롭게 된 형상과 옛 형상간의 갈등, 왜곡된 '아담적' 형상은 지속된다 .비록 실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조차 그 갈등은 그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데서 나타났다(롬 8:3;참조. '종의 형체' 빌 2: 7 ;참조. 히 2:17).
그러나 신약은 갱신된 형상에 관한 모든 약속의 종말론적 완성을 주장한다. 마침내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다(고전 15:49).
이 약속이 주어진 문맥은 몸까지도 갱신된 형상에 참예케 되리라는 부활의 약속에서 나타난다. '우리의 낮은 몸' 이 '그의 영광된 몸의 형체와 같이'될 것이다(빌 3:21).
이 형상은 '그의 계신 그대로' 그리스도를 궁극적으로 본다는 데 기초하고 있다.
※ 참고 문헌G. Berkouwer, Man : The Image of God. Studies in Dogmatics(Grand Rapids : 1962) ; F. Horst, “Face to Face : The Biblical Doctrine of the Image of God,” Int 4(1950) : pp.259-270; G.Kittel, G.von Rad, H. Kleinknecht, TDNT 2(1964) : 381-397.
@장코뱅 주석의 설명으로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니 좋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영적 인격적 도덕적 거룩성과 의로움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강조되어 왔으나, 신체적인 면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 합당한 것 같습니다. 죄로 인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할 수 있게 되었고, 부활을 통해서 신체적인 면도 온전하게 회복할 것이라는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종말에 가서 비로소 인간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는 문장이 와닿습니다.
@코람데오 네, 공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 회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고, 위에 댓글처럼 칭의 성화 영화에 모두 걸쳐있는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