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과 얼마나 다른가. 1996년 국내 번역돼 나온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생리학)의 <제3의 침팬지>는 인간을 ‘대형 포유류의 일종’이라고 접근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다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지은이에 따르면 인간의 유전자는 침팬지나 피그미침팬지의 유전자와 98.4%가 같고, 단지 1.6%만 다르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상의 동물을 DNA에 따라 구분한다면 틀림없이 인간을 ‘제3의 침팬지’로 분류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나 이 1.6% 안에는 직립자세, 말하는 능력, 독특한 성생활 등 호모 사피엔스 고유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인간을 침팬지로부터 결별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언어의 사용이다. 야생 베르베트원숭이 등이 특정한 몸짓과 울음소리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오래된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복잡한 언어의 발성을 위해서는 후두와 혀, 그리고 여기에 연결된 각종 근육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아쉽게도 현존하는 화석은 이런 섬세한 진화의 흔적까지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인간의 라이프 사이클과 성행위 행태는 다른 동물에 비해 특히 기묘하다. 인간은 다른 동물의 암컷과 달리 배란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배란기가 아닌 때에도 성행위가 가능하다. 지은이는 이 ‘은밀한 배란기’가 인간의 ‘은밀한 성교’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만이 지닌 어두운 일면도 있다. 인간은 음주·흡연·마약 등 화학물질을 남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영토 확장욕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종족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인간이 종족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기존의 학설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침팬지나 고릴라의 경우도 집단적인 ‘투쟁’을 벌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다만 동물과 달리 인간은 기술의 진보를 통해 대량 살상의 능력을 끊임없이 길러왔다. 지은이는 18세기 말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주한 영국인들이 자행한 태즈메이니아인 등 원주민에 대한 대량 학살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인간의 공격성이 사회에 의해 제어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인간이 어떤 동물인지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 분자생물학, 동물행동학, 진화생태학, 언어학, 고고학, 심리학, 환경과학 등 다방면의 방대한 문헌과 지식을 동원한 이 책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많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제3의 침팬지’가 자멸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깨닫도록 유도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난 1994년 미국의 과학 전문잡지 <디스커버>에 한글의 우수성을 논한 글을 발표한 인연으로 1995년 방한한 바 있다. (김정흠 옮김/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