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성 명
갈라바다 아라찌게 수바스 아산크 GALABADA ARACHIGA SUBATH ASANKA
생년월일
1980 . 03.29 . (양, 음)
E-mail
g.Asanka21@yahoo.com
휴대폰 : 010-2660-4553
가 족 사 항
□미혼 : 부, 모, 형제( 남 녀 중 ) □기혼 : 부, 모, 배우자, 자녀:2
최 종 학 력
1999 . 11 . 스리랑카 k/ ovitigala high school ( 고등학교 졸업 )
교 회 : 대구평화교회
교회주소 및 전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 4동 3052-7 도남목용탕 3층
직분 및 출석기간
서리집사, 200년 월부터 2012년 9월 현재까지
LMRB(스리랑카) 2000~2002 상품 방문 조사,
스리랑카 적십자 2002~2004 수해피해 지역 방문 지원, 자원 봉사,
스와니 호텔 (스리랑카) 2003~2004 요리사
2004.4~2012.9 현재 이주노동자로 근무 (주물, 이불회사,용접일)
자기 소개서
저는 스리랑카의 kaluthar(칼루트르) 지역의 matugama(마투거머)시 walekatua(웰리케티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ovitigala 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3살 때부터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 혼자서 저를 양육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적은 월급으로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머니 수고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 15살부터 학교를 마치고 강 속 물에 들어가서 모래를 퍼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이 일들을 오후 2시부터 6시, 7시까지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일해서 제가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 뿐만 아니라, 가난한 다른 친구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활하고 지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낮에 일을 하다 보니 저녁이면 피곤해서 졸다 공부를 많이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또한 대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여 시험 성적이 잘 나오지 못하였고, 결국 대학을 가지 못하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저는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1999년부터 3개월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외국 요리사 일을 배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3개월의 공부를 마쳤지만, 학교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영어를 잘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호텔에서 일자리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결국 요리사로 취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2000년부터 LMRB 라는 회사에 취직하여 일을 하였습니다. 이 일은 다른 지역을 방문하여 새로운 상품을 써 보도록 하고 추천하고, 제품의 평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하루 일당제로 일했고, 다른 제품 사업이 나와야만 일이 생겼기 때문에 일이 자주 없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월급도 많이 적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스리랑카 kaluthar(칼루트르) 적십자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사례비는 받지 않고 교통비만 받으며 일을 하였습니다. 일이 없을 때마다 적십자 봉사원으로 섬겼고, 이후 요리사로 근무하면서 한국에 노동자로 올 때까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이 일들을 하였습니다.
스리랑카 kaluthar(칼루트르) 지역은 원래 비가 많이 오는 지역입니다. 강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가 많이 오다 보니 수해를 입고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저는 이들 지역을 방문하여 수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 하는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해 피해를 당한 지역이 있으면 그 지역을 방문하여 수해 지원 물품을 전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2003년부터 호텔 요리사로 취직하여 6개월 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한 달 4,500루피 정도 월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뿐 아니라 친척 분들도 너무도 가난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저는 돈을 벌어서 우리 가족과 이웃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와서 기와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월급 50만원 밖에 받지 못했고, 일이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이후에 주물공장, 이불공장 등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대구시 달성의 한 공장에서 기계 제작 및 용접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2005년 2월경 다산 주물 공단에서 일을 하였는데, 길거리에서 한 중국 노동자를 만나서 대구평화교회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노동자와 함께 대구평화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전도사님과 목사님이 저를 따스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이후에 일자리가 없게 되어, 대구평화교회 고경수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고, 목사님께서 교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교회 쉼터에 와서 중국, 필리핀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주일예배, 수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말을 잘 몰랐지만, 좋은 말씀들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예배를 참여하였습니다.
그렇게 평화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2005년 8월 17일 대구평화교회 고경수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2007년 11월에 대구평화교회에서 함께 생활하였던 중국에서 온 정해연씨와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해연씨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었습니다. 한국에 온지 얼마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생활 적응에 너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해연씨에게 격려도 해 주고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계속 가지다 보니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 저는 해연씨와 이야기하기 위해 중국어도 조금 배워서 이야기하고, 영어, 한국어를 섞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전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저희들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고, 서로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키우며 2008년 7월에 대구평화교회에서 모든 교회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라 너무도 특별한 결혼이었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참여하시지 못하는 결혼식이었지만,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 너무 기뻤습니다. 또한 해연씨 배 속에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아기가 함께 있어 너무 행복하였습니다.
그 해 12월에는 예쁜 남자 아기 쟈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올 해 5월에 예쁜 딸을 출산하였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스리랑카에 있는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스리랑카의 가난한 아이들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하루 한끼 밖에 못 먹고 학교 간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옷, 신발도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저의 마음 속에 떠오르며 가슴이 너무 아파 왔습니다.
또한 대구평화교회와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우리 이주노동자 가정을 돕기 위해서 어린이집을 만들어서 일을 하였습니다. 아기로 인해서 일을 하러 가지 못하다 보니, 많은 이주노동자 가정들은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얼마 안 되어서 자신의 고국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아빠와 헤어져서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마음 아프게 여긴 목사님들은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하여 교회 내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들도 이 곳에 아기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아기와 헤어지지 않고 한국에서 같이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을 보며 스리랑카에 있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09년에 스리랑카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kaluthar(칼루트르) 지역의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을 조사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4살부터 15살까지 11명의 아이들을 추천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가정은 한 달 수입이 한국 돈으로 4~6만원 정도였습니다. 이 돈으로는 한 달 생활도 힘들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10만원을 월급 받아도 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가난하게 살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조금이라도 수입을 얻기 위해 나쁜 술을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스리랑카 친구들과 함께 이 이들을 해보고자 계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도 가난하게 살다 보니 모두가 돈을 절약하는 상황이었고,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다 보니 함께 뜻을 모으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이 아이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고, 한 달에 10만원정도 두 번 보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월급이 적고, 스리랑카에 계신 어머니께도 생활비를 보내 드려야 했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 안 쓰는 옷, 문구류 등을 대구평화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이 아이들에게 보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이 아이들을 계속 도와주지 못하지만, 귀국하게 되면 이 아이들을 계속 돕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는 스리랑카에 귀국하여서 어린이들을 돕고 세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기아봉사단 훈련을 잘 받아서 아이들을 잘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서 스리랑카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함께 이러한 뜻을 품고 그들을 세워 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국제기아대책기구의 기아봉사단 훈련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소개:
본인 아산그(1980년생, 스리랑카)
아내 정해연(1981년생, 국적-중국)
아들 쟈이(2008년생, 한국에서 출산)
딸 니라(2012년생, 한국에서 출산)
Email : g.asanka21@yahoo.com
Address : walikatua, matugama, kaluthara. south. Sri lanka.
Cell No : 94 72 385 8120
◯ 기아대책 훈련기간:
2012년 10월8일부터 11월17일까지 훈련받음
◯ 스리랑카에서 사역내용:
스리랑카에 있는 한국 선교사님을 통하여 3년 훈련을 받으며 봉사합니다.
150여명 어린이들을 돌보는 봉사합니다.
2013년도부터 봉사하기위하여 이제 출국을 준비하며, 후원과 파송예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원요청내용 :
월600$ + 가족4인 항공요금5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