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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30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은 대부분 ‘사업부문의 현상유지’ ‘주요 사업부문이 중국의 추격을 받아 레드오션에 빠질 것’이라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1. 삼성전자의 지난 10년간 사업 포트폴리오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기업에서 변화가 없다는 것은 퇴보를 의미할 수 있다.
2. 게다가 사업부문이 하드웨어 중심이고, 대부분이 중국과 심하게 경합해야 하는 구조다. 앞으로 남은 것은 점유율 하락뿐이다.
3. 이 두 가지가 지금은 최고실적을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근거이다.
삼성전자의 작년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은 스마트폰 38%, 반도체 28%, 가전 18%, 디스플레이 12%, 기타 4%로, 10년 전과 큰 변화가 없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T·전자업계에서 계속 같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게다가 주요 사업부문이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죠. 스마트폰은 샤오미·화웨이·오포·비보, 가전은 하이얼·하이센스·TCL, 디스플레이는 BOE·CSOT 등이 이미 경쟁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고요. 시스템 반도체 설계는 중국이 오히려 강할 수 있고, 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수탁생산) 등은 삼성전자가 확고한 세계 1·2위이지만 중국이 막강한 자본력과 의지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LCD·가전 등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마당에, 같은 일이 반도체·OLED에서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요.
실적 상으로는 여전히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삼성전자 위기론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삼성전자 매출은 작년 237조원에서 올해(추정) 278조원으로 17% 증가, 영업이익은 작년 36조원에서 올해(추정) 53조원으로 47%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데도 말입니다.
회의론을 잠재울 방법은 한가지이겠지요. 삼성이 후발주자를 뛰어넘는 기술혁신으로 시장을 계속 선도하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사업 포트폴리오가 크게 바뀌지 않았던 삼성전자가 10년 뒤에도 지금 구조를 유지하며 성공을 지속할 가능성에 대해, 삼성의 당면 과제와 실질적 해결방법의 관점에서 차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 시스템 반도체의 돌파구를 M&A로 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전자가 M&A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은 120조원에 달합니다.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이 분야 성장 속도를 높이려면 M&A를 고려해볼 수도 있겠죠.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점유율이 단연 세계 1위. 파운드리도 TSMC에 이어 확고한 2위입니다. 시스템 반도체의 일부이긴 하지만 성장성이 높은 이미지센서에서도 소니에 이어 2위이죠. 이상의 분야에선 1위 수성, 혹은 1위 맹공의 전략을 유지하면 됩니다. 문제는 시스템 반도체를 직접 설계·제조하는 분야인데요. 이 부문의 큰 회사를 인수해 단숨에 매출을 끌어올리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 등을 인수하는 것일 텐데요.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회사들은 지역·국가의 공급망·산업안보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민간 차원의 딜이 쉽지 않고요. 딜에 성공한다고 해도, 주요국의 승인이 필요한데 여기서 제동이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퀄컴이 NXP를 인수하려다 무산됐고, 최근에 엔비디아가 ARM을 거의 다 인수한 듯 보였다가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죠. 게다가 괜찮은 반도체 회사의 몸값이 올라 수십조원 단위의 M&A 비용이 예상되는데다, 앞으로의 반도체 기술 흐름이나 삼성전자의 전략에 잘 맞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M&A에 능한 기업문화를 가졌는지도 생각해 봐야겠죠. 속단은 이르지만, 2016년 당시 국내기업의 인수자금으로 최대였던 9조원을 주고 샀던 하만이 아직도 충분한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 소프트웨어 분야의 확대, 자체 OS 구축 역시 마찬가지로 어렵다
삼성전자의 사업구조가 하드웨어 일색이니, 소프트웨어와 융합하는 쪽으로 구조를 바꾸면 어떨까요?
소니 모델은 어떨까요? AV·가전으로 세계를 제패했었지만 망할 뻔했던 소니는, 게임·음악·영화 등의 콘텐츠산업과 융합한 구독경제로 전환해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델을 삼성전자에 적용하긴 무리죠. 삼성이 콘텐츠 부문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핵심 사업군 자체가 너무 다르니까요.
파나소닉 모델을 참고해 보면 어떨까요? 올해 파나소닉은 제조·유통업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미국 블루욘더(Blue Yonder)를 71억 달러에 매수했습니다. 블루욘더는 제품 수요·납기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로 고객사 공급망을 재정비해 수익력을 높여줌으로써 돈을 법니다. 작년 매출 10억 달러에 영업이익률 20%를 넘습니다. 삼성이 참고는 해 볼만합니다만,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OS 부재’는 어떨까요? 삼성의 작년 매출 비중 1위인 스마트폰의 경우 애플과 달리 자체 OS를 바탕으로 완제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한계가 계속 지적됐습니다. 애플은 OS와 앱마켓, 완제품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하드·소프트를 아우르는 완결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지요. 반면 삼성은 OS 등을 구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다, OS와 완제품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효율이 결국 애플의 사용자 체험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죠.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어떻게든 삼성이 자체 OS를 만들면 될까요? 많이 시도했었죠. 자체 OS 타이젠을 얹은 스마트폰을 내놓기도 했고, 갤럭시워치는 최근까지도 타이젠을 탑재했다가 지난 8월 출시된 갤럭시 워치4부터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바꿨습니다. 현재 상황은 삼성전자가 자체 OS를 강화하기는커녕, 그나마 유지하던 자체 OS마저 버리고 있는 상황이죠. 이유가 있을 텐데요. 삼성전자가 자체 OS로 시장을 장악한다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존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심한 경합을 극복하고 추가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데요. 애플의 약점, 삼성의 강점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더 살펴보겠습니다.
◇ 애플이 갖지 못한 부분 공략하기, 삼성의 강점 제대로 활용하기
전략의 기본은 나의 강점과 상대방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서 위로는 애플, 아래로는 중국폰에 끼어 고전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이미지, 고가제품의 매력을 유지해야만 하는데, 여기에서 애플에 밀리는 게 뼈아픕니다. 이를 깨기 위해 화면이 접히는 폰을 내놓았지만,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꽤 심각합니다. 아운컨설팅이 지난달 발표한 주요 40개국의 스마트폰 OS·기종 점유율 보고서(2020년 10월~2021년 10월)에 따르면, 세계시장의 기종 점유율은 애플이 전년보다 1.2% 오른 28.2%로 1위, 삼성이 전년보다 1.1% 떨어진 27.1%로 2위였습니다. 삼성이 그동안 줄곧 1위였지만, 그 차이가 서서히 줄어 이번 조사에선 애플이 삼성을 앞지른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애플의 최대 강점인 OS와 완제품의 완벽한 장악력은 삼성이 가질 수 없습니다. 안 되는 걸 한탄해봐야 소용없죠. 그럼 애플이 못 가진 삼성만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삼성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TV에서도 세계 1위입니다. 그리고 애플엔 없는 파운드리, 그것도 세계 2위 파운드리를 갖고 있죠. 이것을 활용해 삼성 스마트폰의 매력을 크게 높이고 반도체 매출·수익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인데요. 관건은 삼성이 가진 제품군을 얼마나 제대로 연결하느냐에 달렸을 것 같습니다.
◇ 삼성 제품 간의 심리스한 연결을 위해선 OS 통합이 필요하다
지금도 삼성은 스마트폰과 TV 등 가전의 연결성을 극대화해 양쪽 제품군의 매력을 동시에 높인다는 전략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좋은 전략이고 반드시 해야 할 전략이지만, 실행 측면에서 소비자에 각인을 시킬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전략이 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을까요? 가전과 스마트폰 사업부가 분리돼 있어, 전략수립·기획 단계부터 긴밀한 협업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전사 조직개편에서 가전과 스마트폰 사업부를 통합하고, 한 사람에게 지휘를 맡긴 것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OS 통합이 안 돼 있었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삼성이 갤럭시워치에서만큼은 자체 OS인 타이젠을 고수하다가 결국 안드로이드로 갈아탄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스마트워치만큼은 애플이 세계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죠. 그 이유는 아이폰과의 뛰어난 연동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폰이나 애플워치나 결국 애플의 하드·소프트 생태계 일원이니까요. 갤럭시워치는 그게 잘 안됐습니다. 안 그래도 OS와 제품이 쪼개져 있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태생적 한계가 있는데, 안드로이드폰 진영의 대표선수인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는 OS도 구글과 별도인 자체 OS(타이젠)를 쓰고 있었던 겁니다. 삼성으로선 어떻게든 자체 OS로 승부를 보려는 생각이었겠지만, 결과는 사용자 체험, 갤럭시폰·워치의 연결성에서 아이폰·애플워치만큼 매력을 주지 못했던 것이죠. 모바일 제품군의 매력을 높여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사용자 체험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갤럭시폰과 갤럭시워치의 OS 통합이 불가피했다는 겁니다.
◇ 구글과의 OS 통합, 갤럭시워치에 그치지 않고 가전 전반으로까지 이어질까?
삼성전자가 가진 최대 강점 얘기로 돌아가 봅니다. 스마트폰부터 웨어러블은 물론, 스마트TV, 냉장고·세탁기·청소기까지 심리스하게 연결해 소비자 체험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삼성전자가 갤럭시워치만큼은 타이젠을 고수하려 했지만, 결국 안드로이드로 바꾼 것과 같은 고민이 가전제품군 전반에서 똑같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성 스마트TV는 자체 OS인 타이젠을 쓰고 있습니다. 타이젠OS는 상대적으로 빠르고 가볍게 작동 가능하고, 자체 OS이므로 삼성이 원하는 대로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삼성이 갤럭시워치에서 맞닥뜨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워치 등과 삼성의 가전을 높은 완성도로 매끄럽게 연결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확장성, 기기 간 연결성을 고려할 때, TV·가전에서도 갤럭시워치가 안드로이드로 통합된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겁니다.
즉 삼성이 타이젠OS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해 돈 버는 게 잘 안 됐고 앞으로도 쉽지 않다면, 아예 전체 제품군이 안드로이드 OS에 올라타는 게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심리스한 연결, 고급스러운 사용자 체험을 위해선 OS 통일이 불가피하다는 거죠.
이미 MZ 세대의 경우, 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맥북·아이맥 등으로 이어지는 완성도 높은 연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과거 삼성이 타이젠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국외 시장에 출시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MZ세대 눈높이를 맞추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 구글의 차세대 OS 퓨시아(Fuchsia). 안드로이드와 크롬OS를 대체하는 구글의 차세대 OS이자, 모바일·PC는 물론이고 가전과 각종 기기를 포함하는 IoT 시대, 나아가 스마트카까지 염두에 둔 전방위 통합 OS다. 지난 8월 네스트허브(구 구글 홈 허브) 업데이트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 business2community
◇ 구글의 차세대 OS ‘퓨시아(Fuchsia)’가 삼성전자 제품 경쟁력의 전기(轉機)가 될지도 모른다
삼성 TV·냉장고·세탁기·청소기가 갤럭시폰·워치와 연결되려면, 결국 안드로이드로 가야 하지 않을지 말씀드렸는데요. 이게 또 정확지 않습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에서 차세대 OS로의 큰 변화를 준비 중이거든요.
사실 안드로이드 OS는 구글이 처음부터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사들여 다듬은 것이죠. 개발 기반에 다른 회사인 오라클의 자원을 썼다는 이유로 오라클과 오랫동안 거액의 소송전에 휘말리기도 했고, 안드로이드 OS 자체가 음성인식 등이 중요한 IoT 기반의 OS로서 기능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구글은 2017년에 차세대 OS 퓨시아(Fuchsia)를 공개했는데요. 안드로이드와 크롬OS를 대체하는 구글의 차세대OS이자, 모바일·PC는 물론이고 가전과 각종 기기 등을 등을 포함하는 IoT 시대의 OS, 나아가 스마트카까지 염두에 둔 전방위 통합 OS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 출시 이후 구글이 급하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준비해 지난 10년간 써온 것이 안드로이드라고 한다면, 퓨시아는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완전히 새로 설계한 차세대 OS라고 할 수 있습니다.
퓨시아가 구글 제품에 첫 등장한 것은 지난 8월쯤입니다. 네스트허브(구 구글 홈 허브)에 OTA를 통해 업데이트됐습니다. 아직은 조용한 시작에 불과하지만, 퓨시아가 점차 영역을 넓혀나갈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고, 이와 관련해 조만간 구글의 공식 발표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퓨시아OS가 성공한다면, 스마트카(자율주행차까지는 아직 아니더라도 소프트웨어로 차량의 모든 기능을 제어하고 OTA도 완벽하게 가능한 차)의 OS 표준 중 하나로 발전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만 된다면 구글이 모바일 생태계를 장악한데 이어 IoT와 모빌리티 생태계까지 장악할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물론 스마트카 OS의 표준 전쟁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구글은 웨이모라는 산하 자율주행전문회사를 통해 가장 오래 가장 깊게 자율주행을 연구해 왔고요. 이미 안드로이드폰과 차량을 연결하는 안드로이드 오토, 차량 자체를 안드로이드폰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 등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퓨시아가 보급된다면, 이 모든 OS 즉 모바일부터 PC·가전,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OS가 퓨시아라는 단일 OS로 통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퓨시아가 탑재된 모든 기기의 상품성이 극대화될 수 있을 텐데요. 디바이스 제조사 가운데 가장 먼저 혜택을 보는 기업이 삼성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 구글이 삼성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삼성에 매력적인 반대급부 제공할 수도
구글이 퓨시아를 본격 도입한다면, 사용자들이 이 새로운 OS를 쓰도록 할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겠죠. 소비자에게 전방위 제품군을 제공하는 기업과 협업해 초반에 이 기업에 많은 혜택을 줘야 할 겁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쓰고 만족해 퓨시아로 다들 넘어올 테니까요. 여기에서 삼성전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삼성 입장에서 가전 OS까지 구글에 넘겨주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일 겁니다. 사실 구글은 퓨시아 OS의 시범 탑재를 중국의 화웨이랑 협업했었습니다. 그랬다가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무산됐죠. 트럼프 전 정권이 구글 전용 서비스의 화웨이폰 탑재를 차단하자, 화웨이는 ‘하모니’라는 자체 OS를 선보였는데요. 화웨이는 이 OS가 안드로이드에 대항하는 게 아니라 안드로이드를 뛰어넘는 IoT, 나아가 스마트카 시대까지 염두에 둔 차세대 통합 OS 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모니 OS는 화웨이가 구글과 퓨시아 시범 탑재를 위해 협업하는 과정에서 구글 전략을 속속들이 파악했기 때문에 빨리 나올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죠. 즉 화웨이의 하모니 OS는 구글의 현 OS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구글의 차세대 OS 퓨시아에 필적하는 개념입니다. 화웨이가 이것을 내민다면, 구글이 삼성 등과의 밀월을 통해 반격에 나서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겁니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구글이 퓨시아 우선 탑재를 위해 택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는 삼성일 겁니다. 따라서 삼성 입장에선 구글의 상황을 잘 활용해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퓨시아로 전면 이행한다 해도, 단계를 거칠 테고요. 기존 안드로이드와의 호환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진행될 겁니다. 다만 기존 안드로이드 진영, 혹은 신규 기업들이 퓨시아로 갈아타도록 하려면 삼성의 스마트폰·워치·TV 등이 퓨시아 기반에서 얼마나 멋지게 연동하는지를 보여줘야 하겠죠. 세계 인구의 25~30%가 삼성 제품을 일상적으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 많은 소비자에게 삼성제품군의 연동성이 기존에 없었던 만족과 매력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삼성의 스마트폰은 물론 가전까지 더 많이 더 비싼 값에 팔릴지 모릅니다. 새로운 OS, 퓨시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질 테고, 그렇게 되면 삼성 이후에 다른 스마트폰·가전 메이커들이 차례로 구글의 새로운 OS 진영에 합류하게 되겠죠. 삼성과 구글 모두 윈윈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OS는 구글 몫이라 해도, 스마트폰 초기보급 단계에서 삼성이 얻었던 이익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이익을 삼성이 얻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구글 입장에서도 삼성전자에 더 많은 혜택을 일정기간 독점적으로 주더라도, 퓨시아를 빠르게 널리 보급해야 할 다급한 사정이 있습니다. 구글은 모바일 생태계 장악에 그치지 않고, IoT 와 이를 넘어 모빌리티 생태계를 장악하겠다는, 즉 세상을 지배해 보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안드로이드를 넘어서는, 다음 세상을 위한 OS 도입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것을 성취하려면 단계가 있는데요. 우선은 모바일에서 안드로이드 우위를 더 확고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빌리티 생태계를 장악하려면, 기존 모바일 생태계와 연동이 필수이고, 모바일 생태계에서 70%(애플이 대략 30%)를 장악한 현재 상황에서 절대 애플에 더 밀리면 안 됩니다. 특히 프리미엄 시장, 앱에 돈을 많이 쓰는 소비자층을 잡아야 하는데, 여기에서 애플에 밀리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안드로이드가 가진 태생적 불완전성·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OS가 꼭 필요합니다. 이 새로운 OS를 통해 스마트폰 자체의 매력도 높이고, 웨어러블은 물론 특히 TV 등 가전과의 연결성을 극대화해 구글 생태계의 매력을 더 높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빌리티 생태계에서도 구글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구글로서도 퓨시아라는 차세대 OS 보급이 절실히 필요하고, 퓨시아 보급의 불을 댕겨줄 파트너 즉 삼성전자가 꼭 필요한 것이죠.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준다면, 이후 구글의 IT플랫폼은 ‘구글카’로까지 순항할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그리고 그 구글카에서 삼성이 가져갈 몫도 많아질 수 있겠죠.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궁극적으로 구글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여줄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 정부나 화웨이가 중국판 퓨시아인 하모니OS를 전격 보급할지도 모릅니다. 화웨이뿐 아니라, 오포·비보·샤오미 등의 제품도 하모니 OS로 통합시키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이게 성공하면 중국의 스마트폰·가전 나아가 스마트카는 구글 생태계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겠죠. 중국으로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지만, 구글로서는 세계최대 시장을 잃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 제품군의 매력이 퓨시아를 통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면, 중국 업체들이 적전분열을 일으키고 구글 진영으로 투항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에 올라타 성공한 지난 10년, 퓨시아를 통한 앞으로의 10년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아이폰 등장 이후 지난 10년간 삼성이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올라타 성공을 거뒀듯이, 앞으로의 10년은 퓨시아에 올라타 두 번째 성공을 이뤄낼 수도 있습니다. 삼성이 모바일의 성공에 이어 가전과 IoT 부문, 최종적으로는 구글 모빌리티 생태계 하에서 스마트카 비즈니스에서도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구글의 퓨시아 OS가 탑재될 모든 디바이스에는 그에 최적화된 프로세서가 필요하게 될텐데요. 최근 구글이 자체 스마트폰 ‘픽셀6′에 독자 개발 프로세서인 ‘텐서’를 탑재한 것에서 보듯, 퓨시아OS용 프로세서도 자체 개발하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삼성의 참여 비율이 커질 가능성은 있죠. 퓨시아OS 개발에도 삼성전자가 일부 참여하고 있다는 루머도 있고요. 특히 칩 설계는 삼성전자가 참여할 여지가 꽤 있어 보이고, 칩의 수탁생산(파운드리)은 삼성전자가 도맡는 구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삼성의 자동차용 고성능 통합제어 반도체 진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물량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 통합제어 프로세서의 경우, 연간 물량이 많아야 몇백만개죠. 1억개 단위로 만들어 경쟁력을 창출하는 고성능 프로세서 제조 비즈니스에서는 적극적으로 뛰어들기가 난감한 면이 있습니다.
즉 삼성이 퓨시아 OS에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연간 1억개, 10억개 단위의 관련 프로세서 생산, 삼성이 염원해 왔던 ‘소품종·초(超)대량 생산’을 할 수만 있다면 삼성의 파운드리 혹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가 더 크게 성장할 수도 있겠죠. 게다가 로직칩과 메모리는 한 세트니까요. 메모리 1위 삼성으로선 메모리 매출·수익을 더 높이고, 또 세계최고의 메모리 기술을 활용하는 제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게 잘 되면,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 회복도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시장에서 삼성폰이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올리려면, 애플도 따라 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기 연결성, 매끄러운 사용자 체험을 제품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워치,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청소기를 연동해 써봤더니 너무 편하고 만족스러워 도저히 다른 제품 못 쓰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가 아니면 점유율이 크게 오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 소프트웨어 진출의 과제는 더 지켜봐야
확실한 것은 아직 없습니다. 다음 주 예정된 CES 2022와 삼성전자 4분기 실적발표·컨퍼런스콜에서 어떤 실마리가 나올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이른 얘기일 수도 있고요. 지금까지 설명드린 내용도 가정에 불과하니까요. 다만 삼성전자 입장에서 자체 OS를 갖고 소프트웨어 서비스 비중을 늘리는 게 과제이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체 OS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고 꼭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미국 출장에서 구글 본사를 찾아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를 만났는데요. 다양한 분야의 공조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질 뿐 구체적 내용은 발표된 게 없습니다만, 위에서 언급한 문제에 대한 협상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삼성 전 제품군을 안드로이드 OS, 장기적으로는 퓨시아로 이행하는 것에 협력한다는 조건으로, 더 많은 혜택을 구글에 요구할 수도 있을 테고요.
물론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부문 매출과 이익률 증대라는 과제는 앞으로도 지켜볼 부분입니다. 다만 삼성과 구글 양쪽의 입장이 맞아떨어진다면, 삼성·구글 동맹이 스마트폰·워치에 이어 TV·가전·IoT·스마트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삼성이 가진 시장 장악력, 스마트폰·TV 세계 1위라는 지위를 충분히 활용해, 자사의 모든 제품을 매끄럽게 연결하고 여기에 새로운 서비스를 더해 소비자에게 감동과 만족감을 안겨준다면, 앞으로도 경쟁자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수탁생산을 포함한 반도체 사업도 한층 도약할 수 있고, 구글카까지 삼성의 사업을 확장하는 기반이 되어줄 가능성도 있겠지요.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