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김민하 http://blog.naver.com/pencils3
일본인 쳐놓고 고시엔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중부지방 니시미야西宮시의 조그만 동네가 어찌 그리 유명한가? 야구장 덕분이다. 그렇다고 도쿄돔처럼 전천후 첨단 구장도 아니다. 이유는 그저 하나, 그곳에서 한 해 두 번, 고등학교 야구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고시엔은 1924년에 건설된 프로야구 한신阪神 타이거즈의 홈 구장이다. 야구장이 완성된 해가 갑자년甲子年이어서 고시엔으로 명명되었고, 동네 이름마저 고시엔으로 바뀌었다.
프로야구 출범 후 인기마저 시들하나 한국에서는 어지간한 신문사가 죄 고교 야구대회를 주최한다. 야구팀이 4,200개에 달하는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이 봄과 여름에 나누어 여는 단 두 차례의 전국 대회밖에 없으며 둘 다 고시엔 구장에서 치러진다.
그만큼 열기가 뜨겁다.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의 모든 게임을 공영방송 NHK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생중계하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매 게임마다 이긴 팀의 교가가 구장에 울려 퍼진다. 진 팀 선수들은 눈물을 훔치며 열심히 운동장의 흙을 봉지에 쓸어 담는다. 49개 출전 팀에 뽑혀 고시엔에 나선 것만으로도 큰 영예이며, 흙은 평생 간직할 기념물로 삼는다.
전국 고교생 만화 경연대회를 버젓이 ‘만화 고시엔’이라고 부르듯, 고시엔의 인기를 드러내는 일화는 숱하다. 2006년 이른 봄, 홋카이도의 삿포로 역 앞에 「아사히신문」 호외가 뿌려졌다. 고시엔에 나가기로 된 지역 고등학교 야구팀이 출전을 포기했다는 뉴스였다. 졸업식을 마친 야구부 3학년 학생들이 술집에서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된 탓이었다. 그렇다고 신문이 호외까지 찍어?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해프닝이 있었다. 한 후보자가 홍보 자료에 ‘고교 시절 고시엔 4번 출전’이라고 썼다. 그가 당선된 뒤 언론에 의해 거짓말이 탄로 났다. 고시엔 출전은 3번뿐이었다고 했다. 그것도 후보선수였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 갖고 이제는 어엿한 의원님을 망신 준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어떻게 고교 야구팀이 4,000개가 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전국 규모의 대회는 딱 두 번밖에 없을까? 대략 5,500개의 고등학교 가운데 순수한 취미 활동으로 야구를 택하는 곳이 많아 숫자만 늘었다. 게다가 아무리 전국 대회라지만 정규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려다 보니 봄방학과 여름방학만 이용한다. 야구는 겨울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또 다른 일화! ‘여름의 고시엔’을 향한 지역 예선전에서 전무후무한 신기록이 세워졌다. 7회 콜드 게임, 스코어는 122대0. 무참하게 패배한 팀은 한적한 북쪽 어촌의 고등학교, 워낙 학생 수가 적어 간신히 9명의 배터리를 채운 팀이었다. 86개의 안타, 33개의 포볼, 76개의 도루를 허용했단다. 자신들이 친 안타는 제로, 삼진만 16번을 당했다.
이 대목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 진 팀은 중도에 게임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긴 팀은 적당히 봐줄 수 있었지만 끝까지 진지한 자세로 몰아붙였다. 이견도 있었으나 이를 두고 “스포츠 정신의 진수였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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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대회에 출전하여 아쉽게 시합에 진 선수들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열심히 구장의 흙을 담아가 평생의 기념물로 삼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