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물 들이며
소정 하선옥
얼마전 가깝게 지내는 동생이 봉숭아꽃과 잎을 따다 주며 '언니 심심하니까 손톱에 꽃물 한번 들여봐' 하며 꽃잎이든 작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왈칵 반가운 마음에 받아 들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내 나이에? 나이가 칠십인데... 그래도 한번 해볼까?
결국은 작은 종지 그릇에 담고 소금 조금 넣고 짓이겨서 조금씩 떼어 손톱에 올려 놓자 옛 생각이 찾아들었습니다. 어릴적 우리집 마당가 우물 옆을 따라서 채송화, 봉숭아가 곱게도 피였드랍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었던거지요.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 노래를 흥얼거리며 봉숭아 꽃을 따서 몽돌 위에 올려서 짓이겨서 손톱에 올려놓고 앞, 뒷 문 열어놓고 대청마루에 누워서 손톱에 꽃물 들기를 기다리던 나. 그때, 나는 너무 작고 어렸습니다. 풋풋한 풋내나는 어린 가시내는 세월을 얼마나 얼마나 거슬려 먹었는 듬성듬성 머리 카락이 빠졌고, 얼굴과 몸엔 주름이 그득합니다. 임플란트도 벌써 열개나 심었고, 심혈관 기형으로 잠시 왔다 가버린 뇌경색으로 대학병원을 드나들고. 동네병원도 월례 행사처럼 드나들며 살고 있네요. 잠깐인 것 같았는데 언제 여기 까지 왔을까요? 어디,아는 분 계신가요?
나는 채송화의 통통한 잎과 낮게 피며 화려하고 고운 색감 빨강, 노랑, 분홍을 좋아합니다. 봉숭아는 새각시 같은 수줍은 느낌의 순한 빨강, 분홍, 흰색의 꽃 색깔을 사랑합니다. 아쉬워서 집 장독대 뚜껑에다 흙을 채워다놓고 채송화를 옮겨 심어놓고 씨앗 주머니가 맺히면 마당가에 흩뿌려서 내년을 기약 했습니다. 봉숭아 씨앗도 툭 터트려 놓구요. 조금 떨어진 외곽으로 가다 보면 보이는 채송화 봉숭아가 너무 너무 반갑고 정겹습니다.
흘러간 세월 앞에 폭풍같은 인생 앞에 벌거숭이로 살아낸 시간들이 였지만, 꽃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해서 피고지고를 반복할테지만 사람은 한번 가면 끝인 생이라서 더 치열하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네 삶은 잠시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삶이기에 우리는 과거를 그리워 합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흘러갔습니다.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는 빛날것이고 과거는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조용히 자문 자답해 봅니다.
나는 손톱에 꽃물을 들이고 그 위에 투명 메니큐어도 발랐습니다. 곱게 꽃물 든 내 손톱은 마음은 어릴적 소녀 그대로 입니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여여하니 인생사 그대로가 행복이랍니다. 내년에도 꽃물을 들일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2023년 8월 17일 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