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한 부엉이, 숲속 품에 안기다
기억과 추억 사이/수필·산문·에세이
2006-05-09 21:08:41
▲ 숲으로 돌아간 솔부엉이.
ⓒ 유진택
부엉이가 회사의 유리창을 받고 기절한 사건이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오르면서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 구별이 모호하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기절한 부엉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단순히 부엉이가 기절한 사건만 기사화하려 했으나 반응이 뜨거워 그 이후의 소식도 알려주는 것이 기자로서의 의무일 것 같아 두 번째 기사를 올리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부엉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나와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금수지만 그렇게 관심을 갖다보니 툭하면 동물병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부엉이의 건강상태를 묻게 되었다.
부엉이가 구청을 경유하여 동물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은 다음날(2일) 우연히 그 곳에 들러 부엉이의 건강상태를 확인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데 병원으로 후송된지 4일째 되던 날 부엉이를 숲 속으로 날려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속이 확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쌓인 체증이 한 순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다.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떠나고 나면 서운해지는 것은 금수에게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부엉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월요일(1일) 대낮에 회사의 유리창을 받고 기절한 부엉이가 당직실에 보관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부엉이와 맺어진 인연
사실 그 때만 해도 내가 집에서 부엉이를 키워 볼까 하는 욕심이 있었다. 안 그래도 우리 집은 변두리 지역이라 마당도 확 트이고 나무들도 많은 단독주택이라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를 키우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가축들은 마당에 내놓아도 알아서 잘 크지만 생전 처음 본 부엉이를 아는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동료들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애완동물이라면 사죽을 못 쓸 것 같은 여직원에게 키워볼 것을 권했지만 "싫어요, 부엉이는 먹이로 쥐를 잡아 주어야 하는데" 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동료 한 사람이 구청 공보관실에서 부엉이를 가지러 온다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구청에서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당직자가 구청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부엉이를 키우라고 알려준 것은 아닐까. 나는 그 때까지도 구청 직원 중 한 사람이 집에서 키우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사실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구청직원이 부엉이를 가지고 간 것을 알고 그 길로 구청으로 달려갔다. 나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구청 직원이 하는 말.
"천연기념물은 집에서 키우면 안 됩니다. 법적으로 걸려요. 우리도 확인만 하고 바로 지정병원으로 보냈어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괜히 무식을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웠다. 천연기념물을 잡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엉이가 천연기념물이란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그 때 구청직원도 내가 몹시 미안해 하는 눈치를 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자세한 것은 동물병원에서 알아보세요. 산성동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보냈거든요."
그러나 집에서 맘대로 키울 수 없다면 동물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그냥 하룻밤을 넘겼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길에 우연히 산성동 사거리 부근에 있는 동물병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
결국 솔부엉이로 판명나다
막상 동물병원에 들렀지만 서먹서먹 했다. 맡겨놓은 가축도 아니고 더구나 치료받고 있는 부엉이를 할 일 없이 보러 다니는 것 같아 몹시 쑥스러웠다. 내가 동물병원에 간 이유를 말하자 원장은 병원의 한쪽 구석에서 부엉이를 직접 꺼내왔다. 부엉이는 한 눈으로 봐도 놀랄 만큼 기운이 회복되어 있었다. 단 한쪽 눈은 여전히 충혈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 당시 충격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날개도 푸득거렸다.
원장은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던 부엉이를 다시 병원의 한쪽 구석에 집어넣더니 차트 한 장을 꺼내 보여주는 호의까지 베풀었다. 부엉이 종류를 포함, 다른 새들이 가득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
"구청에서 가지고 온 부엉이가 바로 이놈입니다. 솔부엉이죠."
원장은 부엉이와 닮은 새들을 가리키며 조목조목 설명했다. 올빼미와 소쩍새를 구별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세 놈은 맨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닮아있었다. 특징 하나를 잡고 보지 않는다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부엉이와 소쩍새는 귀깃이 있고 눈이 주황색인 반면 올빼미는 귀깃이 없고 눈동자가 검지요. 그 대신 솔부엉이는 귀깃이 없습니다. 솔부엉이는 여름철새인데 배에 흰색, 갈색의 세로 줄 무늬가 있고 다른 새들보다 꼬리가 긴 편이죠. 공통되는 특징은 똑같이 부엉이 종류라는 사실이지요."
"완전히 치료되면 숲 속으로 날려 보냅니까?"
"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날려 보내지요. 저희 맘대로 하지도 못해요. 맘대로 집에다 키울 수 없듯이 구청에 신고하고 숲으로 가서 직접 방사시키지요. 천연기념물이라 어쩔 수 없어요. 처벌 받거든요."
우연히 들른 동물병원에서 부엉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처벌이 단순히 엄포용이 아니라 상당히 무겁다는 것도 알았다. 문화재청 직원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 처벌의 강도를 알 수 있었다.
"문화재청장 허가를 받으면 가능하지만 불법 사육일 때는 징역 5년 이하, 벌금 5천만원 이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처벌이 무거운들 지키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연을 좋아하고 숲을 사랑하지만 숲의 주인인 새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하다. 나 역시 그렇다. 실생활에 관한 법만 알고 있을 게 아니라 자연에 관한 법도 상식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랬더라면 나는 부리나케 구청으로 달려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무식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엉이, 숲속 품에 안기다
동물병원 원장으로부터 동물병원에 있던 부엉이를 날려 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지난 목요일(4일)이었다. 궁금증이 도져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원장이 뜻밖의 소식을 전해준 것이다.
"오늘 부엉이를 사정공원 뒷산에서 날려 보냈어요. 구청 직원도 함께 했어요. 숲으로 날아가는 부엉이 사진도 몇 장 찍어 놨거든요."
병원으로 후송된 부엉이가 치료를 받은 지 4일째 되던 날이었다. 우연히 시작된 부엉이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났다. 좀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창을 받고 기절할 정도로 상태가 심했는데 쉽게 날 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깊고 험준한 야생의 산에서 단련된 체질 탓이리라.
사정공원 뒷산에서 부엉이를 날려 보낼 때 함께 했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엉이가 날개짓을 하며 높고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자유를 함께 맛보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들이 갈망하는 자유와 또 같은 것이리라. 숨막히는 도시를 탈출하여 각자 태어난 고향의 품에 안기는 자유와 하등 다를 바 없으리라. 나도 그렇게 아늑한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보니 경전같은 글귀가 내 마음속으로 쏙 빨려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아무리 낯설게 보일지라도 나도 다른 생을 존중해야만 한다. 나의 생보다 더 고귀할 수도 있고, 더 비천할 수도 있는 모든 생을. 인간사이의 관계에 매여있는 윤리는 제한된 윤리이다. 우리는 동물까지도 포함하는 무한한 윤리를 필요로 한다." - 슈바이처 박사 <우리만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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