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키
임정숙
아예 꿈쩍도 안 한다. 기력이 소진된 낌새가 요 며칠 반복되긴 했었다. 수리공은 제조 날짜를 살폈다. 백 살은 살았다고 한다. 기계의 1년은 사람으로 치면 10년이나 다름없단다. 수리공 말대로라면 이미 호호백발 노인이다. 결국 갓 태어난 아기처럼 뽀송뽀송한 새로운 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던, 손바닥만 한 번호키가 출입문에서 떨어져 나갔다. 비록 쇳조각에 불과하나 순식간에 폐물이 된 모양이 왠지 낮설다. 아니 씁쓸하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특별한 하루를 정해 살아보는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화려했던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인 사십 대 출연자가 여든 살 독거노인으로 변신한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하루를 미리 살아보기 위해서다. 갑자기 낯설기만 한 백발에 주름진 얼굴을 찬찬히 만져보던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이 힘차게 공을 차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회한에 잠긴다. 가족도 없이 홀로 밥을 먹는다. 자꾸 의기소침해지는 노년의 삶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미래 여행을 체험하며 돈이나 명예보다 잊히는 게 더 무섭다는 심경을 토로한다.
혼인 40주년 기념일에 77세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 삼십 대 연기자도 남편과 함께 노부부가 되었다. 특수 분장만 했을 뿐인데도 마주한 순간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런 아내를 남편은 ‘당신은 곱게 늙었다. 예쁘다’라는 말로 다독인다. 마음을 추스르고 찍은 영정사진은 입가의 미소가 고즈넉하다.
가상의 설정인데도 모두들 실제인 것처럼 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피해갈 수 없는 소멸의 과정을 곱씹게 한다. 그들 감정에 동요되어 내내 가슴 먹먹했던 나도 어느새 이순을 앞두었다. 막상 여자 나이 60에 이르니 기분이 묘하더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훗’하고 웃음이 났다.
스산한 초봄의 날씨처럼 어수선한 나이로 접어든 건 맞다. 꽃이 지듯 잎이 지듯 계절 사이사이 흘러가는 강은 되돌아올 순 없는 것. 내 안의 소녀는 아직 철들지 않은 그대로인데, 세월은 참 무심하기만 하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를 여읜 지 일 년도 채 안 되었다. 부모의 죽음은‘천붕’이라든가. 하늘이 무너진다는. 죽음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고통의 깊이는 각기 다를 것이다. 가족이란 존재는 곁에 있을 땐, 늘 있는 공기처럼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결국 부재의 상황이 되어서야 매 순간 그리움을 감내하는 것, 담담한 듯 살아내는 것이 남아 있는 자의 몫인가 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꿈꾸어 보지 않을까.
『트리갭의 샘물』이란 책을 처음 읽은 건 첫 아이를 키울 때였다. 그것은 내게 막연했던 미래, 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은 가볍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최선임을 깨닫게 해 준 동화로 기억되곤 한다.
‘위니’란 소녀는 우연히 터크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터크 가족은 신비한 숲속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터크 가족은 행복해 하기는커녕 지금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점점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상태로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은 재앙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 가장인 터크는 자신과 가족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다시 생명의 수레바퀴에 올라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위니 또한 영생의 샘물을 두고 갈등하지만, 결국 유한한 삶을 선택한다. 터크 가족을 지켜본 결정이었다. 변화와 움직임이 없이 정지된 시간을 산다는 건 길가에 놓인 돌멩이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이 꿈꾸고, 같이 힘들고, 서로 헌신하던 사람과의 먼 이별은 분명 쓸쓸하다. 그러나 꽃이 꽃일 수 있는 건 그것이 계절을 따라 피고 지기 때문이다. 삶의 대한 애착과 열정은 그것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고, 자라고 늙고 , 결국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순리. 죽음을 통해 다시 새로운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나의 생애는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리라. 소임을 다하고 버려지는 번호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