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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의 상징 구들방 '아랫목'
옛적 우리들의 한옥(韓屋) 온돌방에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었다. 여기서 '아랫목'은 아궁이에서 땐 불기운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인데, 대체적(大體的)으로 부엌 벽 쪽의 일정부분(一定部分)을 말한다. 그러니까 방안에서 가장 뜨끈뜨끈한 곳이 된다. 옛적에는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은 그 손님에게 이리 앉으시라고 '아랫목'에 앉기를 권했고, 손님은 괜찮다고 그 '아랫목'을 사양하는 게 예의(禮儀)였다. 따라서 '아랫목'은 윗사람이 앉는 자리, 그러니까 ‘상석(上席)’이라는 뜻도 되었다.
그러나 '멀방'이나 '건넌방'의 경우 부엌이 없고, 군불 넣는 아궁이만 있는데, 이 아궁이가 주로 문 쪽에 있어 가장 따뜻한 곳이 사람들이 방안에 들어서는 문 쪽이 된다. 이 경우는 좀 덜 따뜻하더라도 문 쪽이 아닌 서쪽 벽 쪽이 '아랫목'이 된다. 영남지방(嶺南地方) 한옥(韓屋)의 경우 대체적으로 부엌이 가옥(家屋)의 오른쪽에 설치되어 있고, 집은 거의가 남향(南向) 집이기 때문에 '안 체'의 방들은 모두 서쪽 벽, 동향(東向)인 '바깥 체'의 방은 남쪽 벽 쪽이 주로 '아랫목'이 되는 것이다.
전통가옥의 아랫목 위치
윗방은 출입문 마루밑에 있는 아궁이 쪽이 아니고, 마루방쪽 벽옆이다)
사극(史劇)의 드라마나 영화(映畵)에서 손위 사람이 방안에 들어서게 되면 아랫사람이 얼른 일어나 비워주는 자리가 아랫목이고 상석이다. 그러나 요즘엔 ‘보일러’라고 하는 온돌 혁명(革命)으로 방바닥이 구석구석 골고루 따뜻하다보니까 대관절 어디를 '아랫목'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고 있다. 방안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아랫목'인데, 온방이 모두 따뜻하니 굳이 말하면 '텔레비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 '아랫목'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지금은 옛적에 그토록 인기였던 ‘아랫목’이 사라진 셈이다.
어머니가 앉아서 바느질을 하시고, 아버지가 앉아서 큰절을 받으시던 그 '아랫목', 그 '아랫목'이 사라졌다면 상석(上席) 또한 사라졌다는 얘기이고, 상석이 사라졌다면 어른 또한 사라졌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 시절 안방 '아랫목'에는 겨울철이면 '요때기'가 늘 깔려있었다. 밖에서 연을 날리다가, 또는 팽이를 치다가 들어온 아이들이 빨간 단풍잎 같은 손을 '아랫목'에 깔린 '요때기' 속으로 쓰윽 들이밀면 그 따끈따끈함으로 꽁꽁 언 손이 금방 풀렸다.
아버님께서 장에 가서 늦게 오시거나 잔칫집에 가서 늦게 오실 때면, 어머니는 그 따끈따끈한 '아랫목' '요때기' 속에 밥그릇을 푹 파묻어 놓으신 후 손을 디밀어 밥그릇을 만져보시고 또 만져보시면서, 이제나저제나 아버님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곤 하셨다. 싸락눈이 창호지(窓戶紙) 문을 후두둑 두들기는 늦은 밤에도 어머니의 그 갸륵한 사랑이 있어 묻어 놓은 '아랫목' 밥그릇은 식을 줄 몰랐다.
아랫목의 위치
(보료가 깔려 있는 쪽이 아랫목이다)
그러나 저녁을 먹고 나면 남정네들은 그 좋은 '아랫목'을 놔두고, '마실'을 가고, 안방에는 아이들을 비롯해서 할머니와 어머니, 형수(兄嫂)와 누나들만 남는다. 이 경우 '아랫목'에는 당연히 할머님께서 앉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서열(序列)에 따라 따뜻한 곳부터 위치가 정해진다. 이를테면 지정석(指定席)이 있었다는 얘기다.
옛적 시골 초가집의 경우 엉성한 기술(技術)과 공구(工具)로 지었기 때문에 문짝이 제대로 맞는 경우가 드물었고, 벽체가 워낙 얇아 방바닥은 설설 끓는다 해도 외풍(外風)이 심했다. 이 때문에 이들 초가집에서는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불을 깔고 그 속에다 발을 엇갈리게 디밀고 가족(家族)들이 삥 둘러앉는다.
'아랫목'에는 할머니, 그 안쪽에는 어머니, 뒷 벽쪽 부엌문 쪽에는 형수(兄嫂), 앞문 쪽과 '윗목'에는 누나들, 그 사이사이에는 아이들이 눈치껏 끼어 앉는다. 물론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 녀석은 할머니 바로 옆자리를 차지한다.
온돌구조상의 아랫목 위치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가 이어지다가 아이들이 졸려 하품을 하기 시작하면, 할머니께서 “아가야, 배가 출출해온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경우 형수(兄嫂)님께서는 얼음이 서걱서걱하는 '동치미'를 떠다놓고, 삶은 고구마나 물렁물렁한 '홍시'로 밤참을 마련하신다.
때문에 형수가 앉아 있는 부엌문 쪽은 부엌 심부름을 도맡아하는 곳이고, 누나들이 앉아있는 '윗목'은 등허리가 썰렁해 오는 곳이다. 하지만 외풍(外風) 때문에 등허리가 썰렁하든 발이 시리든, 석유(石油) 호롱불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 안방에서 밤참을 먹는 풍경(風景)은 너무나도 훈훈하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안방도 내 차지, 부엌도 내 차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고초당초'보다 더 맵다는 시집살이를 하느라 옷고름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그 시절의 며느리들한테는 어서어서 안방과 '아랫목'을 차지해 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所願) 중의 소원이었다. 때문에 이들 며느리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안방 아랫목에서 시어머니가 되기 위한 수련(修練)을 곧잘 가졌다.
옛적에는 비록 안방에 시어머니가 안 계신다 해도 며느리는 안방 '아랫목'에 앉지 않는 게 우리네 가정법도(家庭法道)였다 그러나 소망이 간절(懇切)하다보면 무슨 짓인들 못할까. 시어머니가 뒤 꼭지 예쁘게 보여주면서 '마실'이라도 가시면, 때는 이때다 싶어서 시어머니가 되기 위한 며느리의 수련(修練)이 그 안방 '아랫목'에서 펼쳐진다.
“실시!” 이불이 깔린 '아랫목'에 쏘옥 들어가서 90도로 돌아누우면서, “아~!” 빵틀에서 구워지는 붕어빵처럼 360도로 한 바퀴 빙그르 돌아누우면서, “아~!”
이렇게 조교(助敎)도 없이 머릿속에 입력된 교본(敎本)만으로 수련(修練)을 갖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당시의 안방 '아랫목'은 며느리들한테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고 이상향(理想鄕)이었고 '유토피아'였다.
우리 옛말에는 “아랫목만 따뜻해도 면례(緬禮)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면례’라는 건 '무덤을 옮겨서 장사(葬事)를 다시 지내는 일', 즉 집안에 동티가 생겨서 조상(祖上)의 무덤을 옮겨야 하는 일이 생겼다는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아랫목'이 따뜻하면 집안에 아무 탈이 없고, 그래서 만사태평(萬事太平)이란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는 가옥(家屋)에서 온돌을 중요시(重要視)하는 온돌 문화가 만들어낸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온돌방이라고 해서 다들 설설 끓었던 건 아니었다. “이 집도 '냉골'이구나. 이노무 '구들장'이 사람 덕 보게 생갰구마.” '구들장'이 사람의 덕을 본다? 사람의 등이 '구들장'의 덕을 봐야만 정한 이치(理致)인데, 오히려 '구들장'이 사람의 덕을 보려고 한다는 얘기다. '구들'을 잘못 놓아 불을 많이 때도 뜨거워지지 않거나, 땔나무가 모자라 충분(充分)하게 불을 지피지 못하면 방은 싸늘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는 '아랫목'도 별게 아니었다.
군불 때는 군불아궁이
어쨌든 지난 시절, 우리들은 온돌방에서 이 '아랫목'이 갖고 있는 상석(上席)의 의미를 어렸을 적부터 배워 알고 자랐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정신없이 숙제(宿題)를 하다가도 밖에서 어른들의 “에헴!” 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아랫목'을 내드렸다.
이처럼 우리네 온돌방 '아랫목'에는 단순히 따뜻한 곳이라는 의미(意味)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거기에는 위아래를 가릴 줄 아는 질서(秩序)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들의 안방 '아랫목'에는 진하디 진한 어머니들의 사랑이 샘솟고 있었다.
얼음 같은 찬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며 방안으로 밀려 들 때는 따뜻한 '아랫목'에 아기를 뉘시고, 당신은 썰렁한 앞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누워 바람을 막으면서 젖도 물리고 잠도 재우셨다. 그렇게 칠 남매, 십 남매를 키우면서 썰렁한 한기(寒氣)를 막아주시던 것이 어머니의 등허리였다. 그러나 그 찬바람 때문에 남보다 빨리 어머니의 등허리는 구부정하게 굽어지다가 끝내는 꼽추가 되어버리신다.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을 막다가 꼽추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어머니
밥맛도 어머니께서 '아랫목'에 파묻어 두셨던 밥이 훨씬 따뜻했고 맛이 있었다. 전기(電氣)가 데워주는 지금의 전기 보온(保溫) 밥통과 따뜻한 '아랫목'의 온기(溫氣)와 더불어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이 깃든 손으로 데워지던 그 '아랫목'의 밥이 같을 수 있을까. 정감(情感)으로 따지더라도 '아랫목'의 밥이 한 수 위였다.
전기(電氣) 밥통에서 밥을 담아줄 때마다 그 시절 '아랫목'에 밥그릇을 파묻어 놓고 아버님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 거기에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精誠)이 알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랫목에 묻어두던 그 시절 밥그릇
'아랫목'도 '윗목'도 없고, 상석도 말석도 없는 지금의 중앙난방식(中央煖房式) 콘크리트방에는 가족의 서열(序列)도 사라졌고, 상경하애(上敬下愛)의 정도 실종(失踪)되고 없어졌다. 혹시 남아 있다 해도 건드리면 터져버리는 불안(不安)한 것이거나 내 집에서만 지켜지는 이기주의적(利己主義的) 규칙에 불과하다. 저마다 자기 방이 따로 있고, 무슨 세대차(世代差)니 뭐니 하면서 한 방에 같이 앉으려 하지도 않으니 '아랫목'이 필요할 리도 없어졌다.
이제는 영원(永遠)히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 그 시절 온돌방과 '아랫목'이 너무나 그리워진다. '요때기' 깔고 그 밑에 다리모아 앉을 가족(家族)조차 뿔뿔이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세태(世態), 어쩌다 2-3대(代)가 같이 모여 산다 해도 저마다 자기 방이 따로 있어 이웃사람 만나기보다 더 어려운데다 아무리 가족(家族)이라해도 함부로 문을 밀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생활양식(生活樣式)이 너무나 서글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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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원김가 원문보기 글쓴이: 수원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