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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달빛 푸르게 내리는 밤
달을 보는 마음은 한마음
달빛의 눈길 따라
내 마음 활짝 널어놓고
여미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투명한 영혼에 입 맞춘다
고사 나뭇가지에 달려
주르르 내리는 달빛 조각
갖고 싶은 하나마저
슬며시 내려놓는다.
*사랑하는 쪽이 기다리는 것이다
봄이면 작은 나무들은 분주하다
큰 나무 그림자가 내리기 전에
빠르게 싹을 틔워야 한다
어둠처럼 펼쳐질 그늘을 그리며
낮은 것부터 새 세상을 만난다
큰 나무는 게으른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쪽이 기다리는 것이다
흙 위에 낮게 자리 잡은 나무부터
새싹이 따갑게 돋아날 때까지
그림자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봄 햇살에 키 작은 나무들의
반짝이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큰 나무는 그늘을 풀어헤친다.
새로운 봄의 탄생을 널리 알리는
하늘 가득 차게 싹을 내민다.
*벚나무 줄기
벚꽃은 늘 봄인 줄 알았다
벚꽃 인파에서 밀려난
꼬부랑 노파의 거친 손마디
고행의 흔적 벚나무 줄기
*채송화
꽃을 본다
고개 들어 올려보고
머리 돌리면 저만치 있고
허리 조금 숙이면 웃고 있는 꽃
요즘 꽃들은 대부분 서서 보는 꽃이다
사람들이 속없이 커지고
사람 사는 집이 높아지니
꽃대도 따라 큰다.
야트막한 지붕 안마당에
길게 누운 햇빛 툭툭 밀며
쪼그려 앉아
손으로 보고 눈으로 만지는
채송화는 어디서 만날까
*첫사랑
꽃은 늙지 않는다
성장의 아픔을 잊고
노쇠의 슬픔을 모르는 꽃은
평생 젊음으로 산다
꽃은 피어 자라지 않는 것처럼
꽃은 늙지 않고 떨어진다
꽃이 시드는 것은 늙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것이다
꽃은 늙어서 죽지 않는다
꽃은 죽어서 늙는다
피어난 그 자리
늙지 않는 그리움, 한 송이
그 꽃
*꽃은 웃고 있었다
목련꽃 활짝 피었던 하늘에
벚꽃이 신나게 꽃망울 터뜨린다.
봄날의 하늘을 하얗게 불태운다
꽃은 바람의 손끝을 먹고 자란다
사랑을 위해 온 몸을 드러내고
생명의 하늘에 환하게 웃는다
꽃은 햇살에 피고 구름에 시든다
목련꽃이 툭 하고 무너진 자리
벚꽃이 사뿐히 날아 앉는다
나는 잠시 웃음 지며 올려보지만
꽃은 떨어지는 순간을 위해
평생을 웃고 있었다
*운명
칼싸움은 오래전에 있었으나
칼집에서 칼은 빼지 않았다
칼집은 멀쩡해야 하지만
칼집 안에 칼이 시퍼런지
시뻘겋게 녹슬었는지
아니면 아예 칼이 없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
칼집 안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칼은 침묵하고
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릴 뿐
*강매산의 봄
지척에 있는 강매산에 오른다
가깝던 산이 점점 멀어진다
봄바람이 가늘게 부는 능선 너머
무덤들이 층층이 내려가고 있다
햇살이 고르게 기어 다니고
나는 여기 살아 있음을 맛본다.
봄이라고 새로운 것 있으랴만
죽은 자는 봄이 없다
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봄 햇살에 그리워하지 않는다
살아 있으니 봄이다, 이 봄날
억울하지 않은 무덤 있을까
진정으로 사랑과 용서, 삶의 의미
작별의 인사도 모르는 나는
저 무덤이 아프다
무덤들 사이 돌아내려 가는
가느다란 외길, 아직은 더
꼬불거리며 내려가야 하는데
*식지 않은 불꽃
찬바람이 불었는데 꺼졌겠지
아마, 벌써 꺼졌을 거야
호기심에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살며시 잿더미를 헤쳐 보았다.
눈이 깜빡인다. 아직 살아있었다
저 밑바닥에 웅크린 빨간 불빛이
나를 원망하듯이 노려본다
손끝에 온기를 느낄 수 없이
불꽃은 재로 두껍게 덥혀 있지만
벌건 불기운에 가슴이 설렌다
묻혔던 망각의 시간을 돌아보며
죽은 친구 만난 듯이 반갑다
이 불로 밥이나 지을 수 있을지
시든 꽃잎 하나 태울 수 있을지
잠시 잊은 것이냐, 잃은 것이냐
멋대로 간 세월 탓만은 아니겠지
째깍째깍 멀어지는 발소리에도
가끔은 내 안에 나를 찾아야 했다.
내 삶의 밑줄에 녹아 재가 되느니
어둔 별처럼 식지 않은 불꽃으로
겨울 문턱 넘어 발끝 녹이며 간다.
*시간의 화살
시간의 화살이 날아간다
화살이 길 잃고 방황한다
시위를 당긴 자는 침묵하고
단단했던 과녁이 멀리 달아난다
과녁은 다시 다가서지 못하고
거미줄 과녁이 줄지어 일어난다
거미줄은 화살을 잡지 못하고
어디서도 화살은 멈추지 않는다
화살은 날아가는 의미를 잊었으며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정지할 줄 모르고 줄기차게
달려가던 화살이 멈췄다
거미줄을 친 거미의 등짝이
시간의 과녁이 되었다
화살은 땅위로 떨어지고
다른 거미가 과녁을 만든다
거미줄이 흔들리며 커지고
거미는 점점 작아진다
시간의 화살은 끝이 없다
*유월의 코스모스
꼭 그녀 같다
화장기 없이 깔깔거리던
철없는 어린아이의 눈빛 같은
해맑은 얼굴에 산들거리는 거나
성질 급해서 길게 목 뺀 거나
보고 싶은 것 많고
듣고 싶은 것 참지 못해
잡는 손 뿌리치고
계절을 훌렁 뛰어넘어
가출한 요정 같은
그래도 반갑다
시공을 초월해
가장 먼 여행지를 돌아
나를 보고 웃는 네가 예쁘다
*파도라는 그림
세월이 밀려가듯이
습관처럼 쓸려가는 물결
이랑과 이랑 사이의 불안한 삶
고랑과 고랑 사이의 힘찬 고독
줄기차게 밀고 당기며
터지는 아우성으로 그림을 그린다
갈매기 날개에 바닷물 어리면
서서히 물결을 키운다
그림 듬뿍 내려앉을
두루마리 길게 펼쳤다가 감고
멀리 던졌다가 끌어들이고
해안의 축제를 그린다
하얀 꽃가루 날리며 바위를 넘어
신바람 나게 미끄러지고
빠르게 붓을 세운다
멍 자국 남기며 달려온 물결이
모두 물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평선에 매달린 인고의 세월
다시 백지로 남을지도 모를
떠나가는 물결과 돌아오는 물살을
바다가 마를 때까지 그린다
*인연
짧은 너의 생은 하루가 열흘이겠지
한나절 만에 만난 바지 가랑에
앞발 번쩍 들고 신나게 매달린다
이산가족 만난 듯 팔딱거리는
내 팔뚝만 한 놈을 들어 올려
등을 살갑게 쓰다듬는다.
빈집에서 쓸쓸했지
산다는 것은 누구나 외로운 거야
산책길 풀숲에 코를 묻고 지긋이 눈감는
너이고 싶은 때가 있다
때로는 인간으로 착각도 하지만
사람 아닌 게 다행인 줄 알아라
강아지가 들었는지 내 가슴에
얼굴을 팍 묻는다
*검은 양파
양파는 깔수록 작아지나
깔수록 커지는 양파가 있다
깔 것이 없는 매끈한 몸매
벗겨봐야 헛발질이라는 믿음에
영혼을 배신한 푸른 기왓장
동여맨 매듭 실마리 찾아내자
기생 치맛단보다 쉽게 벗어진다
몇 꺼풀 벗기면 알맹이가 톡
튀어나올 것 같으나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는 속살
벗고 나면 시원할 텐데
점점 더 커지는 시커먼 속내
부끄러움마저 부끄럽지 않은
악취로 일그러진 명예의 끝자락
이제, 이 땅에선 찾을 수 없나
한 꺼풀만 벗어도
눈부시게 하얀 속살
양파는 벗길수록 하얘지나
벗길수록 검은 양파가 있다
*술
손 따로 발 따로
눈 따로 귀 따로
입 따로 혀 따로
몸 따로 마음 따로
따로 따로
마른 욕먹으며
미움주고 사랑받는
만능 재주꾼
영원한 짝사랑
*대청소
창대비여 소나기여 내리거라
더도 말고 석 달 열흘만 내리거라
작지만 잘 여문 이 땅
백두부터 한라까지
살과 뼈가 덮이도록 내리거라
손바닥만 한 땅덩이
석 달 열흘이면 잠기리라
김씨 이씨 박씨 노씨 문씨부터
이념 사상까지 싹 지워버리고
허리 자른 철조망부터
공포정치 썩은 정치 말끔히 씻어
시끄런 땅덩이 조용히 잠재우고
핵폭탄 미사일부터 싸드까지
태평양 멀리 가라앉거든
창대비여 소나기여 멈추거라
고요한 이 땅에
새 바람 새 풀꽃 맨 얼굴로 피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줄지어
봄꽃 따라 북으로 백두산에 오르고
단풍 따라 남으로 한라산에 내리는
반짝이는 햇살 고루고루 나누리라
*전생의 나를 보았다
해인사에서 시오리, 계곡 따라 오르는 곳
고불암의 조주원 방 한 칸 빌어
난생처음 암자 생활은 시작되었지
인간의 원초적 본능적인 생활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매체는 바람뿐이었으니
아무것도 없으니 나도 없는 것이다
마음 단단히 다잡았지
약속한 한 달의 첫날도 아니고
두 번째 날 밤이었어
은폐된 자유의 날개를 달고 모처럼 찾아온
홀가분한 시간을 값지게 쓸 궁리를 하며
창문에 걸려 환히 들여다보는
달빛 흐르는 쪽으로 머리를 두었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거야
하얀 무명 한복에 남색 조끼를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더벅머리 총각이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나를 빤히 내려 보고 있는 거야
깜짝 놀라 눈을 떴어
꿈이었어. 너무나 생생했어.
잠시 두리번거리며 지워지지 않은 그를 찾았지
나를 보는 그의 눈망울은 깊었으나
기쁘거나 슬픈 감정은 보이지 않았어
아무런 말과 표정 없이
사진 속에서 밖을 보듯이
담담하게 바라보기만 했지
나는 불쾌하거나 두려운 맘이 아니었어.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이방의 원 주인이 나타난 건가
부탁의 인사가 절로 나오더군
아직 멀리 가지 않은 달이 웃고 있었지
다시 자리 잡고 누우며
위에서 내려 보는 것이 찝찝해서
옆으로 누웠지, 서로 옆에서
마주 보는 것은 괜찮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그 총각은 나타나지 않았어
한 달의 하루 이틀 열흘이 저물어 가도
그 총각의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어
무언가 해줄 말이 있었는데
담을만한 그릇이 안 되는 놈이라 여겼나 봐
그러나 별빛 쏟아지는 밤이면 가끔
이명처럼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지
헝클어진 지푸라기로는
단단한 새끼줄을 만들 수 없다고
자유란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자에게
가치 있는 거라고
인간은 본래 외로운 존재이니
홀로, 하루, 하루의 인질이 되어 보라고
고불암의 한 달 동안
꿈속의 그 친구가 나의 화두였어.
신발 끈 한 번 단단히 묶어보지 못하고
멍석 둘둘 말아 세운 삶
젊은 시절의 꿈이 강물 따라 흘러가고
슬퍼도 슬퍼하지 못하고
기뻐도 기뻐하지 못하는
무거운 원망의 시간들
그 총각은 전생의 나이었을 거야
깊은 눈망울에
더벅머리 질끈 동여맨
*한일회담 반대운동
-너 때문이야-
고등학교 입학하고 두 달도 채 안 되는 풋내기 1학년 초였다. 1교시 끝나는 종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갑자기 3학년 선배가 뛰어 들어와 한일회담 반대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하더니, “학생운동에 전통 있는 우리 학교인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학교 학생 모두 나가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한다. 3교시 시작하는 종이 울리면 운동장으로 모두 나와라” 하고 소리치며 교실 문을 나갔다. 우리 반 학생들은 잠시 술렁거리고 몇몇 학생은 “모두 나가자”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2교시 수업 중에 긴장이 되어 선생님 말씀이 귀에 걸리지 않았다. 2교시가 끝나고 드디어 3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나는 종이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스프링 튕기듯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에는 벌써 수백 명의 학생들이 나왔고, 뒤 이은 학생들이 줄지어 뛰어나오고 있었다. 3학년 선배의 “나가자” 하고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우리는 교문을 향해 뛰었다. 교문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선생님들이 교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만류에 우물쭈물하거나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나는 일부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들을 사이를 비집고 교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은 사오백 명 정도였으며 대열을 정비하고 큰길로 나섰다. 대방동 삼거리에서 3학년 선배가 “시청 앞으로 가자.” 하고 외치는 소리에 대열을 그쪽 방향으로 틀어 한강 인도교를 향해 뛰어갔다. 시청을 가려면 인도교를 건너는 길 밖에 없었다. 선배의 선창에 따라 ‘한일회담 반대’, ‘한일회담 결사반대’를 목에 피가 나도록 외치며 오와 열을 맞춰가며 질서 있게 뛰었다. 속도가 우리보다 별로 빠르지도 않은 전차가 종을 치며 지나가고 일부 시민은 우리 옆에서 손뼉 치며 함께 뛰었다. ‘
저 멀리 길이 막힌 노량진 삼거리가 보인다. 경찰이 도로를 꽉 메우고 곤봉으로 내려칠 자세를 취하고 도열해 있었다. 우리 데모대는 맨 몸으로 경찰과 부딪혔다. 경찰의 곤봉이 타작하듯 내려치는데 맨주먹인 우리는 일방적으로 밀렸다. 나는 앞에 서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앞에서 선도하던 선배들은 먼지가 나도록 맞았다. 결국 우리는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골목으로 일단 몸을 피했다.
교문을 어렵게 뛰어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시청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인도교 쪽으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 큰길에 나가면 바로 잡힐 것 같아 뒷골목으로 인도교를 향해 가는데 똑같은 처지의 우리 학교 학생 두 명을 만났다. 전쟁터에서 아군을 만난 듯이 반가웠다. 그 두 명은 모두 2학년 배지를 달고 있었다. 우리는 시청에 제일 먼저 태극기를 꽂을 듯이 달렸다. 뛰다 보니 숨도 차지만 갈증이 못 견디게 다리를 잡아, 걸어가며 ‘한일회담 반대’를 외쳤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주머니들이 물이 넘치게 담긴 바가지와 양재기를 들고 우르르 나와 고생한다며 마시고 가라고 건네주는 것이다. 우리는 물을 받아 허겁지겁 마시고 아주머니들의 박수와 격려에 힘을 얻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뒷골목, 뒷골목으로 땀을 훔치며 뛰어서 인도교에 가까이 왔을 무렵, 다리를 건너기 위해 큰 길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일회담 반대’를 크게 외치며 큰길에 나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의 그물에 걸려들고 말았다.
나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경찰은 두 팔을 비틀어 끌고 가서 인도교 앞에 내동댕이쳤다. 거기에는 이미 동댕이쳐진 이십여 명이 있었다. 이마가 아스팔트에 닿도록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바짝 꿇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곤봉이 멋대로 춤을 추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그동안 십여 명이 더 무릎 꿇린 후, 경찰트럭에 짐짝처럼 실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트럭에서 하차한 곳은 영등포경찰서였다. 곤봉의 지시대로 줄을 맞춰 유치장 안으로 들어갔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복경찰들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기본적인 것을 묻고 대답하는데, 내 앞에 사복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진다. “일 학년 놈이 무얼 안다고 데모 질야.” “여기 일 학년 놈 또 있어?”하고 좌우를 훑어본다. 조용하다. 놀란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여기에 잡혀온 사십여 명중에 일 학년이 나 하나뿐일 줄은 나도 몰랐다. 혼자뿐인 일 학년이라 욕만 실컷 더 먹고, ‘싹수가 노랗다’는 말까지 덤으로 들었다. 조사가 끝난 유치장 안은 조용했다.
지저분한 유치장 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앉으니 슬슬 불안한 마음이 생겨난다. 교문을 못 넘게 말리는 선생님들을 뿌리친 일, 학생부에 끌려가 벌 받을 일, 담임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여기에 얼마나 더 억류되어 있어야하나? 이런저런 생각 중에 반 친구들에게 섭섭한 생각이 올라온다. 목소리 높여 소리친 놈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나는 고 1, 2학년 때 친구가 없다. 추억을 공유하거나 나눌만한 사건, 사고도 없었다. 중학교 3년 동안 운동선수로 수업을 빠지거나 잘라먹은 적이 많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학교 끝나면 곧 바로 집으로 가서 책 읽은 기억밖에 없다. 책이 없어서 못 읽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입학 당시 맨 밑바닥에 깔려 있던 성적이 3학년 진급 때, 천정 5%안에 매달렸으니, 그때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가끔 1, 2학년 친구가 없는 것이 아쉽게 생각될 때에는, 내 성격이나 형편이 문제였지만 1학년 초 한일회담 반대 사건이 떠올려지곤 한다.
양 어깨에 번쩍거리는 계급장을 단 서장이 점잖게 훈계를 하고, 사복들이 훈계 반 겁박 반의 말을 뱉고 나간 후, 한동안 조용했는데 갑자기 김석원 장군이 특유의 걸음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장군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아는 얼굴 보듯이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마주 보고선, 나가기 전에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수고했다”라는 예상치 못한 한마디 말을 남겼다. 얼마 후에, 사복의 마지막 훈계를 끝으로 우리는 풀려났다.
5월의 해는 아직 넘어가지 못하고 반 쯤 걸려 있었다. 부자유의 몸이 된 지 7시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유치장 동기들은 삼삼오오 나뉘어 헤어졌다. 나는 홀로 학교까지 터덜터덜 걸었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졌다. 아침에 뛰어넘었던 교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나 학교는 조용했다. 황급히 달려간 우리 반 교실은 잠겨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교무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교무실은 썰렁하게 텅 비어있었다. 다시 나가려는 데, 맨 끝 구석에서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이 보인다.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나를 기다린 김재영 담임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나 때문에 퇴근도 못하고 혼자서 남아계신 것이다. 잔뜩 긴장하여 엉거주춤 다가섰는데, 다른 말은 없으시고 책상 옆에 내 가방을 들어 주시며 "수고했다" 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신다. 울컥하는 눈물을 참고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기분 묘한 선물을 던져주신다.
“내일부터 일주일간 휴교다”
“너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