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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전도할 수 있습니다.
이 목소리는 왠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전도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좀 교회가 꽉 차 보이는 것 같아요. 감사하고 유아실에만 우리 아이들 부모들이 좀 많이 빠져서 조금 텅 비어 보이는데 자꾸 교회가 이렇게 차고 차는 것에 대해서 뒤에서 이렇게 보면 큰 기쁨이 있어요.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 눈이 좀 작아도 생각보다 예리하잖아요. 그래서 금방 이렇게 표시를 느껴요. 너무 감사하고 힘을 내어서 우리 전반기도 함께 열심히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 행축이라 그러죠. 행축은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여러분이 원래 가장 귀한 복음을 나로부터 다 함께라는 행축의 주제를 들었을 때 여러분에게 어떤 마음에 요동이 있었습니까? 전도는 목회자에게 큰 부담입니다.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엄청난 부담이에요.
왜 부담일까요? 목회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좀 때로는 힘든 일 아니면 왜 이렇게 교회가 전도하라고 할까 뭐 이런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고 그냥 목사인 제 개인의 삶으로 보면 전도는 제 목회에 대한 평가인 거예요.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서야 우리 교회 목사님이 너무 좋아 교회 와봐 했는데 목사가 안 좋아요. 그러면 이게 얼마나 절망이 되겠어요? 평가인 거예요.
평가 야 우리 교회 내려 와 근데 안 내려 와요. 그러면 이게 여러분은 그냥 쉽게 쉽게 말을 할 수 있지 모르지만 저는 그 모든 한마디가 평가처럼 들려요.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진짜 우리 교회가 은혜로운가 아니면 내가 정말 목회를 잘하는가 내가 정말 좋은 목사인가 이게 되뇌어요.
여러분이 흘려버린 말일지라도 저는 되뇌이고 길을 지나다가 하는 사람들의 말도 제가 다시 되뇌리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전도의 축제는 또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한 평가도 되고요. 또 한편으로는 앞에 말했던 것처럼 모든 시선이 목회자에게 집중되는 거예요. 다행히 몇 년 그동안 작년 재작년에는 우리가 결신자가 꽤 많았어요. 행축을 할 때마다 몇십 명이 꼭 등록을 해서 정말 감사한 일이었는데 그 이전에는 500명이 와도 등록하는 사람이 몇 명 되지를 않았어요. 그러니까 모든 게 저한테 이렇게 집중이 되는 거예요.
이런 거죠. 목사가 전도 축제를 할 때 새로운 가족이 많이 오잖아요. 설교를 잘해야 그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막 등록을 하잖아요. 그니까 모든 시선이 저에게 집중되니까 솔직히 목사도 때때로는 이거 안 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꽤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조금 평안했어요. 그리고 기대감도 저에게 조금 높아졌어요. 왜 그랬을까요? 전도 축제는 저에 대한 평가이자 우리 교회에 대한 평가이고 그리고 모든 시선을 오히려 목회자에게 더 집중시키는 행사가 전도 축제인데 왜 올해는 제가 조금 더 예전보다 평안하고 그리고 기대감이 왜 높아졌을까요?
그 이유가 이제 오늘 본문에 나와요. 큰 위로를 주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주문이나 요술이 아닌 순종을 통해서 나타납니다는 문장이에요.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문장을 이렇게 찾아냈어요.
근데 얼마나 이 문장이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내가 나의 능력으로 전도를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순종으로 전도를 하는 거구나. 전도란 어떤 교회가 능력을 가져서 하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어도 순종하면 할 수 있는 게 전도구나.
그러면 앞으로 한 두 달 동안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설령 전도에 좀 자질도 없고 전도해본 적도 없고 전도 잘하지도 못해요. 주변에 전도할 사람도 없는 것 같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 두 달을 열심히 달려가면 아 할 수 있는 것이 전도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제가 마음이 조금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나의 능력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역사는 나의 힘에 비례해서 그러니까 내가 능력이 많으면 하나님의 능력도 내게 많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은 순종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거예요. 순종을 많이 하면 알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게 그 공동체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을 쓰지 않고 순종을 쓰신다는 이 말을 듣고 좀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평안해졌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행축을 함에 있어서 우리의 능력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뭐로 해야 될까요? 순종함으로 해야 돼요. 가장 귀한 복음을 나로부터 다 함께라는 이 행축의 주제에 맞춰서 우리가 두 달간을 열심히 움직이려면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순종으로 해야 이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나의 능력으로는 되지 않지만 순종으로는 가능한 일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없는 능력 사용하려고 하면 안 돼요. 여러분과 저에게 능력이 있나요? 우리 솔직히 같이 30년 40년 산 남편도 못 바꿨잖아요. 아내는 바꿨나요? 우리 씨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도 사람이 얼마나 교만하냐 하면 능력도 없는데 능력으로 살려고 하는 거예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으로 살려고 하면 추해져요. 능력이 없는 사람 뭐로 살아야 돼요? 순종으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본문에 등장하는 기적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이고 하나는 손에 나병이 생기는 기적이고 하나는 물이 피가 되는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주문을 외워서 요술같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진 기적인 거예요. 결국 하나님의 기적은 내 능력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기적이 모세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이 기적이 모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지로 행하는 것이 기적이고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기적인 거예요. 교회 부흥도 내 인생의 부흥도 내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사람이 참 어리석은 게 우리가 나이가 들면 힘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자기 능력으로 살려고요. 지금까지 내 능력으로 살아서 안 된 것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능력으로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의 능력은 내 능력으로 할 때 경험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순종할 때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내 능력이나 소유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앞에서 언급한 세계의 기적은 모세의 능력이 아닌 모세의 순종을 통해서 모세가 경험한 거예요. 그러니까 모세의 능력이 이 기적을 경험한 게 아니라 모세의 순종이 기적을 경험하게 한 겁니다. 자신의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실 때 던지자 뱀이 됐고, 뱀의 지팡이에 꼬리를 잡으려고 할 때 잡자 그 뱀이 지팡이가 됐습니다. 순종이 만든 기적인 거지 모세의 능력이 만든 기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손을 품에 넣으라고 할 때 넣으니까 나병이 생겼고, 다시 나병에 걸린 그 손을 또 품에 넣으라고 하니까 본래의 살로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모세의 능력이 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모세의 순종이 이 기적을 일으킨 겁니다.
나일강의 물을 조금 떠서 땅에 부으라고 할 때 모세가 그렇게 순종했기 때문에 그 물이 피가 된 것이에요. 모세가 순종할 때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설득할 때만 나타난 기적이었어요.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의지적으로 기적을 행하셨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세가 순종할 때만 하나님이 기적을 그에게 행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왜 교회가 드리는 예배들이 다를까요? 어떤 교회는 은혜가 넘쳐나고 어떤 교회는 냉랭하고 왜 교회의 사역이 다를까요? 어떤 교회는 정말 사역을 너무 이쁘게 하고 어떤 교회는 사역을 싸우면서 하고 왜 그럴까요? 바로 순종의 불량이 다르기 때문인 거예요. 예배의 은혜는 순종의 불량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순종만 같다면 예전에 선조들이 경험했던 은혜와 기적은 지금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기적과 은혜가 없다는 것은 예전만큼 순종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곰곰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순종하려는 생각으로 사셨는지 아니면 항상 다른 생각으로 사셨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전환은 순종하려고 살려고 할 때 일어나는 거예요.
교회의 변화도 성도들이 순종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것이고, 내 인생의 변화도 내가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교회마다 예배가 다른 것은 준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거에 앞서서 순종이 다르기 때문인 거예요. 예배를 준비하는 것과 순종하면서 준비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우리 교회도 예배 준비자들이 많아요. 이 예배 준비자들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것과 저도 저 뒤에 서서 하나님 내게 주신 말씀만 선포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고 순종한 마음으로 이따 올라오는 것과 내가 의지력으로 이 말씀을 선포해야지 내가 이 말씀을 막 크게 해야지라고 할 때와 설교도 달라지고 예배도 달라져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순종하려고 하면서 예배드리는 것과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로 예배드리는 것은 은혜의 수준이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 없다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말이에요. 거기에는 엄청난 평가가 다 열려져 있어요. 은혜 없다. 그 교회가 은혜 없다는 말도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순종의 태도를 못 가졌습니다는 말도 되는 거예요.
은혜 없다는 말에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는 거죠. 나는 지금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어서 저런 은혜 없는 삶을 삽니다라고 남들에게 돌려서 고백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예배가 다른 것은 순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마다 사역이 다른 것은 재능이 있는 성도들아 맞느냐 재능이 있는 성도가 없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사역을 다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순종의 불량이 갖춰져야만 우리 교회에게 나타나고 나에게도 나타나요.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해야 될 순종의 불량을 내가 채우면 내 삶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교회가 해야 될 순종의 불량을 순종할 때 교회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다리면 때가 온다는 말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해요. 무작정 기다린다고 해서 결코 때는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종의 불량이 다 찼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기다리면 때가 옵니다가 아니라 순종의 불량이 다 차면 때가 옵니다가 맞는 말인 거예요. 문제는 이걸 깨달을 때까지 여러분과 제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왜 시행착오가 많냐 하면 순종하지 못할 환경이 여러분과 저에게 너무 많아요. 예전에 신앙생활과 삶의 패턴들은 되게 단순했어요. 단순한데 고난과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이 단순하고 고난과 어려움이 많은 삶은 예수 믿기에 되게 좋은 삶. 예수님께 순종하기에 되게 좋은 삶의 형태인 거예요.
근데 지금은 삶이 아주 복잡해졌어요. 그래서 순종하려고 하면 삶이 단순하지 않으니까 걸리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당장 노후도 걸리고요. 자녀도 걸리고 집안의 부채도 걸리고 회사도 걸리고 다 걸려요.
여러분 순종하려고 할 때 걸리지 않는 것이 있는 분들이 있던가요? 없어요. 사역자인 저도 조금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에 깨달음에 순종하려고 하면 당장 걸리는 게 많아요.
저도 제 노후도 걸리고 자녀도 걸리고 다 걸리더라고요. 예전에는 다 가난하고 그리고 다 삶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물려줄 유산도 없고 인생은 온갖 문제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훨씬 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지금은 오히려 순종하기에 더 어려운 시대입니다. 삶은 수월했지만 수월해졌지만 순종은 어려운 시대를 사는 거예요. 옛날에 어른들보다 삶은 훨씬 더 수월해졌어요. 밥을 짓는 것도 수월하고 우리가 직장을 가는 것도 수월하고, 제가 살던 동네는 시장을 가려면 한 20리에서 25리 정도 8km에서 한 10km를 걸어야 돼요. 그러니까 식으로 해서 고추나 이런 것들을 메고 지게 지고, 10km를 걸어가서 팔고 또 비료나 이런 것들을 사서 또 10km를 걸어와야 돼요.
여러분 상상이 되나요? 그때보다 지금은 훨씬 더 수월해졌습니다. 근데 순종은 더 어려워졌어요. 어쩌면 평안하고 편안한 삶은 신앙의 독일일 수도 있습니다. 쉬운 삶, 수월해진 삶은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순종하기 어려운 어떤 조건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순종하기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순종하는 자리에 나가는 여러분들에게 능력을 베푸실 것입니다. 복잡하다는 것,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너무 믿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각이 많은 것 그 자신을 믿고 있다는 의미도 돼요. 저도 생각이 되게 많은 사람이에요. 단순하게 사는 것 같지만 머리는 정말 복잡한 사람이에요. 근데 이런 생각이 많음 속에는 나를 믿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내 생각이나 내 아이디어가 내 인생을 열 것이다. 내 목회를 열어갈 것이라는 이런 믿음이 있어요. 나는 생각이 많아서 다른 사람보다 아이디어가 더 좋아. 난 생각이 많아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일을 난 할 수 있어 이 일이 내 목회를 열어갈 거고 내 삶을 열어갈 거라는 허황된 믿음을 갖게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생각이 많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복잡하다는 것, 생각이 많다는 것, 자신을 믿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인들 중에 고민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되게 많아요. 진짜 고민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자기의 시간과 삶을 끌어가기 위해서 고민하는 거예요.
여러분 고민한 결과가 순종인 경향이 있던가요? 별로 없어요. 왜 고민하느냐 불순종할 거리를 찾기 위해서 고민하는 거죠. 자신의 생각으로 무엇을 해보려는 의지로 여러분과 저는 지금 가득 차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환경을 너무 신뢰하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수록 우리의 삶은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수록 어지럽지 않고 우리의 삶은 깨끗해집니다. 함의 능력을 신뢰할수록 내 생각은 쉽게 정리가 됩니다.
하나님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살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양에 바로 들리지 않고 40년 동안 또 광야를 유랑하게 하셨을까요? 순종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나안 땅에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 순종이었기 때문인 거예요.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지키는 것도 순종인 거고, 그 가나안 땅에서 거인족들을 이길 수 있는 길도 순종인 것이고, 철기 문화를 가진 이 가난한 족속들과 싸워서 전쟁에 이길 수 있는 것도 순종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400년 동안 순종을 가르치고 그것도 모자라 또 40년 동안 또 순종을 가르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 살려고 하시죠 그래서 인생이 어려워요. 이때 아멘 해주면 되게 감사한데 그렇죠 여러분의 힘으로 살려고 하시죠 아멘 하면 정말 은혜가 되는데 실제니까 암멘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 힘으로 살려고 하시잖아요. 근데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살면 망하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인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자신의 힘으로 우리의 힘으로 살려고 우리를 만드셨나요? 아니잖아요. 아담과 하하가 자기의 힘으로 살려고 하다가 죄를 짓고 범죄하게 되고 그 죄가 인류로 우리에게 물려지게 된 거잖아요. 우리는 순종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인 거예요. 그래서 순종할 때 최고의 가치가 되고 순종할 때 최고의 사역을 하게 되고 순종할 때 최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야 애굽도 이기고 광야도 이기고 가나도 지킬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김과 지킴의 힘은 곧 순종인 거죠. 이길 수 있는 힘도 순종해서 나오고 우리 가정을 지키는 힘도 순종해서 나와요.
여러분이 뭔가를 많이 세이브 한다고 해서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순종해야 여러분의 가정이 지켜지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지는 거예요.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는 특출하게 뛰어나서 앞에서 막 일하는 분들은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좀 어렵지만 순종하려고 하는 분들이 곳곳에 있었어요. 코로나가 끝나고 식당도 다른 교회는 막 이 식당 때문에 막 싸우고 난리가 난 거예요.
근데 우리 교회는 한 번도 큰소리가 없었어요. 권사님들하고 우리 집사님들, 여자 성도님들이 다 알아서 순번을 맞춰서 다 짜놓고 한 잡음도 없이 지금까지 그 일들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는 순종하려고 하는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도들이 많은 거예요.
저는 이 순종이 이번에 좀 행축때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제 아내가 100명 하는 순간 저는 가슴이 떨어졌습니다. 저 100명을 내가 전도해야 되나? 아내가 하나님을 믿고 백명했을까? 남편을 믿고 백명했을까? 그래서 막 가슴이 철렁했어요. 어떻게 100명을 데려오지 구미대학 애들을 다 쓸어서 와야 되나 온 생각을 다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해주니까 제가 너무 힘이 되는 거예요.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순종이었습니다. 가난은 순종해야 지킬 수 있는 땅이고 순종해야 살 수 있는 땅이었어요. 그래서 순종을 긴 시간 동안 가르쳤던 거예요. 출애굽 당시 애굽은 뱀을 숭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뱀은 바로의 권력을 상징하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뱀으로 변한 지팡이를 잡았다는 것은 모세가 바로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준 거예요.
모세가 바로보다 더 큰 능력과 권세를 가졌다를 공식적으로 이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려고 하는 모세에게 바로보다 더 큰 권세를 주셨던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순종하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이 권세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교회의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전도에 대한 설교를 듣는 즉시 막막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다 팔아도 이제 전도할 사람이 없어요. 아무리 찾아도 VIP가 보이지 합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순종하면 하나님이 VIP를 주시고 영혼 구원에 저와 여러분을 동참시키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개척한 교회가 있어요. 우리는 이번 주에 주보 전도를 했는데 그래도 많이 놀 때마다 18명씩 나와서 이렇게 전도를 하는데, 이 교회는 개척한 지 좀 시간이 됐지만 개척교회 자체가 성도가 작고 대부분 바쁜 성도들이라고 그러니까 전도가 안 되는 거예요. 이 목사님이 무인 전도대를 만들었어요. 무인전도대를 정말 좋은 아이들이 혹해서 가져갈 만한 제품들로 무인 전도대를 만들어놓고 멀리서 이렇게 지켜봤대요.
사람들이 가져가는지 요즘 교회가 뭘 주면 잘 안 가봤다고 하잖아요. 무인 전도에도 없고 배너를 이렇게 설치해 놨더니 어린이 요즘 이단도 그렇게 하잖아요. 근데 이제 교회라는 걸 명확하게 밝히고 그렇게 딱 해놨더니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와서 다 가져가더래요. 세 번 물건을 교체했대요. 세 번 이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목사님 저는 성도가 없어도 우리 교회는 멋진 전도대가 있습니다. 무인 전도대 다음 주에는 2호를 만들 거고 그다음 주문은 3호를 만들 겁니다.
여러분 교인 한 명도 없어도 전도대 3개를 만들 수 있어요. 막 순종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아이디어를 주세요. 아무리 전도 대상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종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을 내게서 찾으면 안 됩니다. 방법을 나에게서 찾으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능력도 주시고 방법도 주십니다. 할렐루야 따라합니다.
하나님은 능력도 주시고 방법도 주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모세에게 내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어요. 우리 손에 어떤 것이 들려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형편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순종하면 그것을 사용하셔서 능력을 만드세요.
여러분이 아는 사람이 한 명일 뿐일지라도 여러분이 순종하면 그 한 명을 통해서 또 한 명을 데려오고 또 한 명을 데려오게 할 수도 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예요? 순종하는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앤드류 메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교로도 많이 알려졌고, 신학자이고 또 기독교 기도에 대해서도 책을 많이 쓰셨어요. 이렇게 써놨습니다.
순종 없는 거짓 믿음을 버려라.
그러니까 순종이 없는 것 거짓 믿음이라는 거죠. 순종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오 죽은 믿음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에는 순종은 기도를 통해 완성된다. 할렐루야
여러분과 저의 순종이 기도로 완성되어져 갈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삶의 회복을 원하십니까? 순종해야 됩니다. 교회 회복을 원하십니까? 순종해야 됩니다. 세상의 문제를 이길 힘을 원하십니까? 순종하셔야 됩니다. 삶의 열매를 맺고 싶으십니까? 순종하셔야 됩니다. 넘어야 될 산이 있습니까? 순종해야 그 산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넘을 수 있습니다. 그어야 될 문제가 가정에 있습니까? 순종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능력 없는 나를 능력 있게 살게 하는 도구입니다.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