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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장 배우자의 선택
결혼은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오는 세상에서 그대들의 생활에 일종의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는 길을 찬성하신다는 것을 알지 아니하고는 결혼 문제에 대한 그의 계획을 추진시키지 말 것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택하려고 하지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꼭 택하여 주셔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이 아니니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기쁘게 아니하신 까닭이다. 누구든지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자와 더불어 결혼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나의 말을 이해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죄가 된다. 그러나 공상이나 감정의 작용을 허용하여 멸망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마음과 최고의 애정을 요구하신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세우려 하는 가정의 성격과 끼치는 감화가 어떠한 것이 될까를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이 부모가 되면 신성한 의무가 그들에게 위탁된다. 자녀들의 이생의 복리와 내세의 행복이 그들에게 크게 의존된다. 어린 자녀들의 육체적 도덕적 특징은 그 대부분을 부모들이 결정한다. 그리고 사회의 상태는 가정의 성격 여하에 달려 있다. 각 가정의 감화력의 무게는 사회 상태의 상승 혹은 하강을 말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우정의 형성에 있어서나 배우자의 선택에 있어서 크게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지금 정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비금속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세속적 교제는 그대가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 장애물이 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영혼들이 그들을 고상하게 하거나 향상시킬 수 없는 이들로 더불어 사업이나 결혼을 통하여 불행한 연합을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였다.
그대와 생애의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생각하는 이의 온갖 정서를 저울질 해보고 모든 성품의 계발을 주목하여 보라. 그대가 바야흐로 내디디려는 발걸음은 그대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 성급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할지라도 맹목적으로 하지 말 것이다.
그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 것인지 혹은 조화되지 않고 비참하게 될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하라. 이 결합이 나로 하늘을 향하여 가도록 할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나의 사랑을 더하게 할 것인가? 또한 이것이 이생에서의 나의 유용성의 영역을 확대시킬 것인가? 라는 질문들을 해보라. 만일 이런 질문에 대한 반응이 아무 결점도 보여 주지 않는 경우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전진하라.
생의 반려자의 선택은 부모와 자손들의 육체적․정신적․영적 복리를 위하여 가장 안전하게 할 것이니 곧 부모와 자녀들이 이웃 사람을 복되게 하고 조물주를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선택이어야 한다.
장래의 아내에게서 구할 특질
젊은 남자는 생애의 부담을 나누어지기에 합당한 여성, 그의 감화로 남편을 고상하게 하고 순화시키며 그의 사랑으로 남편을 행복스럽게 하여 줄 수 있는 내조자를 찾도록 하라.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나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여기에 심사 숙고해야 할 문제들이 몇 가지 있으니, 그대와 결혼하려는 사람이 그대의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는 절약할 줄 아는 사람인가 혹은 결혼하면 허영과 모양내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기가 번 것뿐 아니라 그대가 번 것까지를 다 써버릴 것이 아닌가? 이 방면에 대한 그의 원칙들은 올바른 것인가? 그 여인에게는 의존할 만한 그 무엇이 있는가? 하는 따위다. …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에 정신이 빠져버린 남자들은 마치 이런 문제들은 가치가 없는 것처럼 무시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니, 그것은 이런 문제들이 그대의 장래의 생애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대의 아내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그의 성품을 살펴라. 그 여자는 참을성 있고 근실한 사람이 될 것인가? 혹은 그대의 부모들이 바야흐로 의지할 강한 아들이 요구되는 때에 그대의 부모에 대한 보호를 중지하지는 않을 것인가? 그리하여 자신의 계획과 자신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남편을 그 부모들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그들로 애정있는 며느리를 얻는 대신에 한 아들을 잃도록 하지는 않을 것인가?
장래의 남편에게서 구할 특질들
여인마다 결혼 서약을 하기 전에 자기로 더불어 운명을 걸고 연합하려는 남자가 과연 존경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미리 알아봐야 한다. 그의 과거의 경력은 어떠하였는지? 그의 생애는 깨끗한지? 그의 사랑은 고상하고 품격을 향상하게 하는 사랑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한갖 감정적으로 귀여워하는 사랑인지? 남자가 자기를 행복하게 할 품성의 특질들을 가지고 있는지? 남편의 애정에서 참된 화평과 기쁨을 찾을 수 있는지? 아내로서의 자기 개성을 보존하도록 허용받을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내의 판단과 양심이 남편의 그것에 복종하고 제어되어야 할 것인지? … 구세주의 요구를 최고의 것으로 높일 수 있는지? 몸과 마음과 생각과 뜻이 순결하고 거룩하게 보존될 것인지? 이런 문제들은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모든 여인들의 행복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평화스럽고 행복한 결합을 희망하는 여인, 장래의 불행과 슬픔에서 피하기를 원하는 여인은 자신의 애정을 바치기 전에 이렇게 물어 보라. 나의 사랑하는 그이에게는 어머니가 계신가? 그 어머니의 품성의 특징은 어떠한가? 그는 과연 자기 어머니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는 과연 어머니의 소원과 행복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만일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소중히 여기지도 공경하지도 않는다면, 과연 그가 자기 아내에 대해서는 존경과 사랑과 친절과 관심을 보여 줄 것인가? 신혼의 기분이 지난 후에라도 그는 나를 여전히 사랑해 줄 것인가? 그는 나의 실수에 대하여 관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비판적이고 오만하며 독재적이 될 것인가? 참된 애정은 많은 실수들을 간과할 것이다. 사랑은 실수들을 가려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여인들은 순결하고 남성적인 특징의 성격을 소유한 남자, 부지런하고 진취적이며 정직한 남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남자만을 생애의 반려자로 맞도록 하라.
불경한 자들을 피하라. 태만한 자들을 피하라. 신성한 것들을 비웃는 자를 피하라. 천한 말을 쓰고 단 한잔이라도 술 마시는 일에 탐닉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피하라.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의 구혼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심령을 성화시키는 순수한 진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경외하지도 않으며, 참된 의의 원칙들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남자로 더불어 갖는 가장 유쾌한 친교를 끊어버리도록 그대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친구들의 결점과 무지를 참을 것이나 결코 그들의 비행에 참여하지는 말 것이다.
사랑은 예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이다
사랑은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받는 귀한 선물이다. 순결하고 거룩한 애정은 감정이 아니고 원칙이다. 진정한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무분별하거나 맹목적일 수 없다.
참되고 순수하고 헌신적이며 순결한 사랑이 거의 없다. 이 귀중한 요소는 매우 드물다. 정욕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다.
진실한 사랑이란 충동으로 일깨워진, 그리고 심한 시련을 만나면 갑자기 시들어 버리는 그런 사랑과는 성격상 전혀 다른 고상하고 거룩한 하나의 원칙이다.
사랑이란 하늘 분위기에서 자라는 식물이므로 이를 배양하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정다운 마음씨, 진실하고 사랑스러운 말은 가족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들의 감화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향상하게 하는 감화를 끼칠 것이다.
사랑은 … 무분별하거나 맹목적일 수 없다. 그것은 순결하고 거룩하다. 그러나 육신의 마음에서 오는 정욕은 전혀 다른 것이다. 순결한 사랑은 모든 경영하는 일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성령과 완전히 일치하는 반면에 정욕은 완강하고 경솔하고 무리하며 모든 제재를 무시하고 또한 그가 선택한 대상을 우상화 할 것이다. 참된 사랑을 가진 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날 것이다. 정숙함과 단순성과 성실성과 도덕과 신앙이 혼인으로 결연에 이르는 각 계단들을 특징지을 것이다. 이렇게 제어를 받는 이들은 피차의 교제에 골똘하여지지 않고 기도회나 종교적인 예배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로 주신 기회와 특권을 등한히 함으로 진리에 대한 열성이 식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관능적 만족에 그 기초를 둔 데 불과한 사랑은 완고하고 맹목적이며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명예와 진리와 모든 고상하고 향상된 정신력이 정욕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이런 열정의 사슬에 매인 사람들은 이성과 양심의 소리에 귀머거리가 되는 일이 너무 흔하다. 의논도 애원도 그들로 자신의 행동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할 수는 없다.
참된 사랑은 강열하고 불꽃과 같은 맹렬한 욕정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조용하고 깊은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외면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보며 품위 있는 성질의 것에만 끌리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으며, 그 충실함은 거짓이 없고 영속적이다.
정욕과 충동의 영역에서 승화된 사랑은 정화되어 말과 행동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은 조급하고 초조함이 없는 성화된 상냥함과 사랑을 가져야 하며 거칠고 가혹한 태도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드러워져야 한다.
정당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기도와 성경 연구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의식으로서 결코 이기적인 정신으로 행할 것이 아니다. 이 단계에 나아가려고 하는 자들은 엄숙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혼의 중요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하며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권고를 구해야 한다. 이점에 대하여 주신 성경의 교훈을 주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늘은 성경에 주어진 지시에 일치하고자 열망하는 마음으로 성립된 결혼을 기쁨으로 주시한다.
만일 침착한 이성과 냉정한 판단으로 숙고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결혼 문제이다. 성경이 상담역으로서 필요한 때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평생동안 함께 매는 단계에 나가기 전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일반적인 경향은 감정이 지배하므로 너무 흔히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가 키를 잡고 파멸로 인도한다. 청년들은 어떤 다른 문제에서보다도 바로 이점에서 그들의 예지를 덜 보여 준다. 그들이 함께 의논하기를 거부하는 점이 바로 이점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지 않는다. 그들의 감각들은 속박되고 그들은 마치 그들의 계획이 누구에게 간섭을 받을까 두려워하듯이 비밀리에 전진한다.
많은 이들이 위험한 항구에 입항한다. 그들은 안내자가 필요하건만 그들 자신의 배를 조종할 능력이 있는 줄로 생각하고 또한 그들의 배가 감추인 암초에 부딪쳐 믿음과 행복이 파선할 지경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서 크게 요구되는 도움을 받는 일을 경멸히 여긴다. … 그들은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는 학생이 되지 않는 한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그들 자신과 남의 행복을 망쳐 놓을 중대한 과오를 범할 것이다.
만일 남녀들이 결혼을 생각하기 전에 하루에 두 번씩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혼을 앞둔 단계에 있어서는 하루에 네 번씩 기도하여야 한다. 결혼은 이 세상과 내세에 있어서 그대들의 생애에 감화를 끼치고 영향을 주는 어떤 것이다. …
우리시대의 대다수의 결혼과 결혼하는 방법은 말세의 여러 징조들 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남녀들은 고집이 세고 목이 곧아서 하나님을 도외시한다. 종교는 마치 이 엄숙하고도 중요한 문제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무시를 당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의 권면
결혼 때문에 그처럼 많은 불행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청년들은 슬기롭게 못할까? 어찌하여 그들은 연장자와 경험이 더 많은 이들의 충고를 줄 곧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거래를 하는 경우에 남녀들은 크게 조심한다. 그들은 어떤 중요한 계획을 할 때도 사업을 위하여 그들 자신을 준비한다. 그 문제에 대하여 시간과 돈을 바치고 세심한 연구를 함으로 그들이 착수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다면 후손들과 내세에 영향을 끼치는 결혼 관계에 들어갈 때는 얼마나 더 큰 조심을 해야 하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하는 대신에 희롱과 경박, 충동과 욕정, 그리고 맹목적이며 신중하지 못한 가운데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일이 흔히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해석은, 사단이 세상의 불행과 타락을 보기 좋아해서 영혼들이 거기 걸리도록 이같은 그물을 고안해 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단은 이 무분별한 사람들이 이 세상과 내세에서의 그들의 가정에 대한 즐거움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기뻐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충고와 판단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망과 기호에만 의존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그들의 부모의 소원이나 선택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또한 그들의 현명한 판단도 존중하지 않는 듯하다. 이기주의가 자식으로서 가져야 할 효성의 문을 닫아버렸다. 청년들의 마음은 이 문제에 대하여 깨우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계명은 허락이 붙어 있는 유일한 계명이지만 애인의 요구로 말미암아 무시당하기까지 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경시하고 아버지의 돌보심을 욕되게 하는 것이 많은 젊은이들의 이름 아래 기록되어 있는 죄목들이다.
이 문제와 관련된 가장 큰 과오의 하나는 젊고 경험이 없는 미숙한 자들의 애정 문제는 침해되지 않아야 하고 그리하여 그들의 사랑의 경험은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각 방면에서 검토되어야 할 문제가 일찌기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문제이다. 다른 이들의 경험의 도움을 받아 침착하고 조심성 있게 쌍방의 일들을 저울질하는 것은 매우 요긴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너무 가볍게 다룬 문제이다. 젊은 친구들이여,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부모들과 상의하라. 이 문제를 위하여 기도하라.
부모들은 아들이나 딸의 마음이나 감정에 구애됨이 없이 그들의 반려자를 선택해야 하는가? 하고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묻겠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런 조치가 부모들의 행복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야 말 터인데 아들이나 딸이 부모와 먼저 의논 함이 없이 배우자들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또한 자녀가 부모의 충고와 탄원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택한 길을 고집해야 할 것인가?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다. 결혼하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계명은 그런 행동을 금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기에 주께서 그 순종하는 자들에게 확실히 성취시킬 허락이 있는 계명이 있다. 지혜 있는 부모들은 자녀들의 소원을 고려함이 없이는 그들의 배우자를 결코 선택하지 말 것이다.
부모들은 청년들의 애정 문제에 관하여 잘 지도하고 그들로 적당한 배우자와 짝을 짓도록 하는 것이 그들에게 부과된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을 받아 그들 자신들의 가르침과 모본으로 자녀들을 가장 어린 시절부터 순결하고 고상하며 선하고 참된 것에 관심을 두도록 꼴 짓는 일을 하나의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끼리끼리 좋아하고 끼리끼리 이해한다. 어려서부터 진리, 순결 그리고 선량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자. 그리하면 청년들은 이런 특성들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를 찾아 구할 것이다.
결혼을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청년들은 대체로 너무 충동에 의존한다. 그들은 너무 쉽게 본심을 드러내지도 말 것이며 애인의 매력적인 외관에 너무 쉽사리 홀리지도 말 것이다. 이 시대에 계속되고 있는 구혼은 하나님보다 영혼의 원수가 훨씬 더 많이 관여하는 기만과 위선의 책략이 되고 있다. 상식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여기에 필요하다. 그러나 실상 이 문제에 있어서는 상식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공상과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는 마치 문둥병을 대하듯이 경계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도덕적 덕행이 결여된 많은 결혼기의 청년 남녀들이 있으니 그들은 크게 경계를 받아야 한다. … 고결한 품성을 보존할 자들은 설사 다른 바람직한 특징은 결여되어 있을지라도 참된 도덕적인 가치는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상 청년들의 종교적인 경험에는 다분히 이 저급한 감상주의가 혼합되어 있다. 내 자매여,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변화되기를 요구하신다. 내가 간원하노니 그대의 애정을 고상하게 하라. 그대의 체력과 정신력을 그대를 사신 구주의 사업을 위하여 바쳐라. 그대의 생각과 감정을 성화시켜서 그대의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라.
사단의 천사들은 밤 시간의 많은 부분을 연애하는 일에 바치는 이들을 계속하여 주목하고 있다. 그들이 눈을 뜰 수 있다면, 그들은 한 천사가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건강의 법칙과 정숙은 침해를 받았다. 결혼하기 전에 사용되는 얼마의 구혼 시간들은 결혼 생활을 통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구혼 기간에 나타나는 모든 정성은 결혼으로 끝이 나는 것이 예사이다.
사단은 그가 취급해야 할 바로 그 요소들을 안다. 그래서 그는 영혼들을 함정에 빠뜨려 파멸시키고자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의 극악한 지혜를 편다. 그는 각 단계들을 주목하고 많은 의견들을 제시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권면보다는 오히려 이런 의견들이 흔히 지지를 받는다. 이 정교하게 짜여진 위험한 그물은 젊고 부주의 하는 자들이 걸려들도록 교묘하게 준비된다. 이것은 흔히 빛으로 위장될 수 있으나 그것에 희생되는 자들은 많은 슬픔으로 사무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영락한 인간들을 도처에서 보게 된다.
불합당한 행동
마음으로 희롱하는 일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작은 범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젊은 여인들에게 좋아하는 태도를 보여서 그들의 애정을 구한 다음에는 그들의 길을 가고 그들이 한 말이나 끼친 영향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새 얼굴이 그들을 끌면 그들은 전과 같은 말들을 반복하고 그 같은 정성을 바친다.
이 성벽은 결혼 생활에 나타날 것이다. 결혼 관계가 언제나 변하기 쉬운 마음을 굳게 하고 요동하는 것을 확고하게 하며, 원칙에 진실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정절에 싫증을 낸다. 그리하여 깨끗하지 못한 생각은 깨끗하지 못한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그들의 마음의 띠를 잘 동이고 그들의 행동을 경계함으로써 사단이 그들을 정직한 길로부터 미혹해 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젊은 여인과 교제를 즐기며 그의 우정을 얻는 젊은 남자가 그 여자의 부모에게 은밀히 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 여자에게나 또는 그 여자의 부모에게 대하여 고상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만한 행위가 아니다. 은밀한 교제와 밀회를 통하여 혹 그 여자의 마음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하나님의 자녀마다 가져야 할 심령의 고결함과 성실함은 나타낼 수는 없다. 그들은 목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솔직하고 공개적이지 못하며 성경의 표준을 따르지 않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신실한 후견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들 자신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을 입증한다. 그런 영향하에 약정된 혼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인으로 하여금 저희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백하고도 단호한 명령에 대하여 그 생각을 혼란하게 하고 여인으로 그의 의무에서 떠나게 하는 남성은 결혼의 제반 의무들에 대하여 진실하고자 하는 자가 아니다. …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돌비에 쓰신 것이지만 애정에 대한 얼마나 많은 은밀한 도적질이 행하여지고 있으며 또 용인되고 있는가! 기만적인 구애가 계속되고 비공개적인 교제를 유지하다가 드디어 경험도 없고 사태가 어떻게 되어 나갈지도 모르는 그런 여자의 애정을 그의 부모에게서 다소라도 빼앗아 옴으로써 그가 추구한 바로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는 여자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인정을 받게 되어 버린다. 성경은 온갖 종류의 부정직을 정죄한다. …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며 그 생애는 성실함으로 특징 지워졌고 온갖 다른 문제에는 민감한 듯이 보이는 이들이 이 점에서 무서운 과오를 범한다. 그들은 이성이 이를 변하게 할 수 없는 단호하고 결정적인 의지를 나타낸다. 그들은 사람의 감정과 충동에 아주 매혹되어 버려서 성경을 상고하거나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관계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십계명 중의 한 계명을 범하면 타락의 계단들이 계속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여인의 정절의 방벽이 한 번 무너지면 가장 비열한 방종이라도 심한 죄악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슬프다,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서 여인의 악한 감화로 생기는 얼마나 무서운 결과들을 볼 수 있는가! 음녀들의 유혹 때문에 허다한 사람들이 감옥에 수감되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남의 수명을 짧게 만든다.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내려 가나니하고 기록한 영감된 말씀은 얼마나 진실한가!
사람들로 위험한, 금지된 장소로 접근하는 일을 막도록 인생행로의 사면팔방에 경고하는 봉화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성의 명령에 배치되고 하나님의 율법을 돌아보지 않는 그 치명적인 길을 택하고 하나님의 벌하심에 도전한다.
신체의 건강과 활발한 지력과 건전한 덕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들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여야 한다. 우리 중에서 머리를 드는 그 대담하고 외람된 부정들을 막기 위하여 열심과 결정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자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모든 자들로부터 미움과 중상을 받을 것이나, 그들은 하나님께 칭찬과 보상을 받을 것이다.
제 19 장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
그리스도인과 불신자들과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대하여 아주 놀랄만한 냉담함이 그리스도교계에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권면보다도 그들 자신의 마음의 경향을 따르기로 선택한다. 이생과 내세를 위하여 두편의 행복과 안녕에 중대한 관련이 있는 문제에 있어서 이성과 판단과 경건한 마음은 제쳐놓고 맹목적인 충동과 고집스런 결심과 같은 것이 이를 조종하게 한다.
다른 일에는 민감하고 양심적인 남녀들이 이 일에는 충고에 귀를 막고 친구들과 친척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의 호소와 탄원에 귀머거리가 된다. 경고와 경계의 표현은 주제넘은 간섭으로 여겨지고 충고를 할만한 성실한 친구들은 원수로 취급된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원하는 바이다. 사단이 그의 마력으로 사랑의 심령을 얽어매면 사람은 매혹되고 정신이 빠져 버린다. 이성은 욕망의 목에 매인 자제의 고삐를 푼다. 그리하여 너무 늦게 거기에 속은 사람이 불행과 노예의 생활에서 깨어나기까지 거룩하지 못한 정욕이 지배한다. 이것은 상상으로 그린 장면이 아니라 사실들에 대한 자상한 설명이다. 하나님께서 명백히 금지하신 그런 연합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윤허를 받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 주변의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들로 더불어 잡혼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이라.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연합의 결과를 미리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함으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이라.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하셨다.
신약 성경에도 그리스도인이 경건하지 못한 자로 더불어 결혼하는 데 대하여 금지하는 이와 비슷한 말씀들이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그의 첫째 편지에서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하였고, 다시 그의 둘째 편지에서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금지된 지역에서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되지 못한 마음이 그 욕망을 따라 하나님께서 재가하시지 않는 결혼을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이 까닭으로 많은 남녀들이 희망도 하나님도 없이 이 세상에 산다. 그들의 고상한 포부는 죽고 그들은 환경의 사슬로 사단의 그물에 붙잡힌다. 정열과 충동으로 지배된 자들은 이생에서 불행한 수확을 거둘 것이요. 그들의 행로는 영혼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진리를 공언하는 자들이 불신자로 더불어 결혼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짓밟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총애를 잃고 회개하기에 쓰라린 일을 저지른다. 불신자가 훌륭한 덕성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그렇듯 큰 구원을 등한히 하였다는 사실이 그런 결합은 이상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의 품성은 예수께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하고 말씀하셨던 청년과 비슷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필요한 한 가지이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
때때로 그 불신자는 종교에 호의를 가졌고 다만 한 가지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 밖에는 모두가 다 반려자로서 만족할 만한 남자라는 구실을 말한다. 비록 불신자와 일생을 위한 연합을 하는 것이 부적당하다는 신자의 더 좋은 판단이 제의된다. 할지라도 열건 중에 아홉건은 자신의 경향대로 한다. 결혼 서약이 이루어지는 순간 영적 타락은 시작되고 종교에 대한 호의는 둔하여지며 신앙의 요새들은 계속하여 하나씩 파괴되어 두 사람이 나란히 사단의 검은 깃발 아래 서게 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결혼 잔치에 있어서까지라도 세속적 정신은 양심과 신앙과 진리를 누른다. 새 가정에서 기도 시간은 존중 되지 않는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는 선택하였으나 예수는 버렸다.
믿지 않는 자는 아마 처음에는 그 새로운 관계에 대하여 반대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나 성경 진리의 주제가 제시되어 주의와 고려를 촉구할 때에는 그대는 내가 어떠한 사람인 것을 알고 나와 결혼한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권리를 침해받고 싶지 않다. 이제부터는 그대의 특이한 견해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두기로 하자라는 감정이 일시에 일어난다. 만일 신자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어떤 특별한 열성을 나타내 보이는 경우에, 그리스도인 경험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한 듯이 보여질 것이다.
신자는 자신의 새로운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선택한 짝에게 다소간에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교적이요 세속적인 오락들이 장려된다. 처음에는 이런 일을 함에 있어 크게 싫은 기분이 들지만 진리에 대한 관심은 점차 적어지고 드디어 믿음은 의심과 불신으로 바꾸어진다. 굳세고 양심적인 신자요 헌신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지금처럼 의심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 그 변화는 지혜롭지 못한 결혼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세속적 결연을 맺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단은 많은 젊은 남녀가 결혼하는 것을 목도하는 그 때가 바로 그들의 종교적 경험과 유용성을 끝마치는 때임을 잘 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잃어버린 바 된다. 그들은 혹 얼마 동안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나 그들의 모든 노력은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강한 힘의 저항을 받아야 한다. 전에는 그들의 신앙과 소망을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특권과 기쁨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운명을 함께한 이가 그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음을 앎으로 그 주제를 말하기가 싫어지게 된다. 그 결과 귀한 진리에 대한 믿음은 마음으로부터 사라지고 사단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 주위에 회의론의 피륙을 짜 놓는다.
두 사람이 합의하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그러나 다음의 광경은 얼마나 이상할까? 그처럼 밀접하게 연합한 이들 중에 하나는 신앙 가운데 있는데 다른 하나는 냉담하고 무관심하다면, 하나는 영원한 생명을 찾고 있는데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가는 넓은 길을 가고 있다면 말이다.
허다한 사람들이 아직 교회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로 더불어 결혼함으로 그리스도와 하늘을 희생시켰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가련한 인간과의 교제를 택할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교제가 그처럼 작게 평가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과연 귀하신 구주를 사랑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위하여 하늘의 기쁨을 걸고 모험하고자 할 만큼 하늘을 하찮게 평가하는가?
불신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답
종교적 원칙의 정당함을 시험하는 괴로운 처지에 놓이게 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 그는 확고한 태도로 나는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주일중 제칠일을 성경상의 안식일로 믿는다. 우리의 신앙과 원칙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함께 행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더욱 완전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계속하여 나아간다면 나는 점점 더 세상과는 같지 않을 것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에 더욱 동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지 아니하고 진리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대는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을 사랑할 것이요 나는 그대가 사랑할 수 없는 하나님께 속한 사물들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영적 사물들은 영적으로 분별된다. 영적 식별력이 없이는 그대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들을 깨달을 수 없을 것이요 또한 내가 섬기는 주님께 대한 나의 책임을 깨달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종교상의 의무로 인하여 내가 그대를 등한히 한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대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요 그대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애정 때문에 질투할 것이요, 나는 나의 종교적 신념에 있어서 혼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대의 견해들이 변하고 그대의 마음이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며 그대가 나의 구주를 사랑하기를 배우게 되면 우리의 관계도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신자는 그와 같이 자신의 양심이 인정하는 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희생한다. 그것은 그가 그것을 걸고 모험하기에는 영생을 너무 귀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예수님보다는 세상을 택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하는 자와 자신의 인생의 중대사를 연결시키기보다는 결혼하지 않은 채 있는 것이 낫겠다고 느낀다.
현명하지 못한 약혼은 파혼하는 것이 더 낫다
그대가 결혼하려고 하는 이의 성품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비록 약혼 단계에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그 약혼 때문에 꼭 결혼 서약까지 해야 한다거나 또 사랑할 수도 존경할 수도 없는 이에게 그대 자신의 일생을 얽어매야할 절대 불가피한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이다. 조건적인 약혼 단계에 이르는 일에 대하여 아주 조심성 있게 할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하듯이 결혼 후에 이혼하는 것보다는 약혼을 파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대는 혹 내가 이미 약속을 했는데 이제 와서 그것을 취소한단 말인가? 라고 말하겠지만 그대가 만일 성경의 원칙에 위배되는 약속을 하였다면 지체 하지 말고 반드시 취소할 것이며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그런 성급한 맹세를 하게한 경솔을 회개하라. 그런 약속은 그것을 지킴으로 그대의 창조주께 욕을 돌리기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취소하는 일이 훨씬 낫다.
결혼 관계에 이르는 모든 계단은 겸손, 단순, 신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열렬한 목적으로써 특징 지어져야 할 것이다. 결혼은 이생에서나 내세에서를 막론하고 후일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시지 못하실 그러한 계획을 세우지 말 것이다.
마음은 사람의 사랑을 사모한다. 그러나 이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을 대신할 만큼 충분히 강하거나, 충분히 깨끗하거나 충분히 귀하지 못하다. 아내 된 자는 오직 구주 안에서만 인생의 염려와 책임과 슬픔에 대응할 지혜와 힘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힘과 인도자로 삼아야 한다. 여인은 자기 자신을 세상의 아무런 친구에게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에게 드릴 것이요 이 일에 방해가 될 상대와는 관계를 맺지 말 것이다. 참된 행복을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그들이 가진 모든 소유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하늘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매우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에 고통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까닭이다. 나의 자매여, 그대가 만일 그늘이 전혀 걷혀지지 않는 가정을 갖기를 원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원수로 더불어 연합하지 말라.
결혼 후에 홀로 귀의하게 된 자에 대한 권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결혼 관계에 들어간 남자가 후에 회심했을 경우 그는 그들의 종교적 신앙에 대한 견해가 아무리 다를지라도 아내에 대하여 신실해야 할 더 강한 의무하에 놓이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요구는 비록 시련과 핍박이 따른다 할지라도 모든 세속적 관계보다도 높은 데 두어야 할 것이다. 사랑과 온유한 정신으로 하는 이같은 정절은 믿지 않는 자로 믿게 하는 감화력을 가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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