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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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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천하제일의 茶 |
대표 작품 2 | 명사십리의 물결 |
수상연도 | 2008년 |
수상횟수 | 제27회 |
출생지 | |
[수상 작품]
천하제일의 차(茶) / 김혜숙
결혼을 앞둔 둘째 아들이 차를 준비하겠단다. 다회(茶會)를 즐기시자며 내가 적극 개입하니 ‘어머니를 위한 차’를 준비 하겠다며 제 손으로 우려내겠다고 봐 달라고 한다. 우리 모자는 차 마실 때의 행복감을 공유해 왔던 터라 아들의 바빠진 손놀림을 지켜보며 미소를 보낸다.
다행히 집에는 여러 가지 차가 준비되어 있다. 순천 수제작설차, 아홉 번 덖은 백운산 수제차, 하동 쌍계사녹차, 보성 우전수네녹차, 한라산설록차 등등. 유기농으로 생산된 야생차도 있고 개량차도 있다.
손으로 잘 덖은 야생차가 상당히 비싼 편인데도 차만큼은 좋은 차로 호사를 누리는 편이다. 마음을 편히 다스리는 특효약이라면서. 탁월한 항암 작용도 입증되고 노쇠 억제 효과는 토코페롤보다 열여덟 배 이상 강하다니 불로장생제에 가깝지 아니한가. 내가 경험한 바로는 피로예방과 정신을 맑게 깨우는 효과는 분명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수도 정진하는 절집 부근에 가면 야생차 밭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하동 쌍계사 주변의 야생차밭은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펼쳐져서 십리 벚꽃길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고 강진 백련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둔(흥)사 등에서도 정겨운 차밭을 볼 수 있었다.
아들은 끓인 물을 다과에 붓는다. 물을 조금 식힌 후, 작설차를 넣고 이분 쯤 지나서 찻잔에 차를 따른다. 차의 농도를 조절한다며 조금씩 이쪽저쪽 찻잔에 번갈아가며 따르는데 제법 익숙한 자세다. 직장생활 하며 집안 일 바쁘게 꾸려가는 어미가 제 결혼 준비하느라고 힘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감사함을 찻잔에 담아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안는다. 아들의 섬세한 마음에 취하고 차향에 취하여 마시기도 전에 “천하제일의 차구나!” 하고 화답한다. 차 한 잔으로 모자간의 정도 돈독해지고 안락감에 싸인다. 차를 마실 때는 눈으로 색깔을 보고. 코로 차향을 느끼며, 귀로는 차 끓는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맛을 음미하며, 마음으로는 차의 참뜻을 새기라고 했는데 오감을 자극하지 않아도 서둘러 나의 차 품평은 이미 마무리 된다.
차의 맥을 이은 초의 선사가 ‘천하제일의 차’ 라고 극찬한 일화가 있다. 해남현의 서처사라는 이의 평생 소원은 다선(茶仙)이라고 일컫는 초의선사와 다회(茶會)를 한 번 갖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을 헤아린 스님은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응했다. 처사는 귀한 분을 모셔두고 긴장해서 물을 엎지르고, 땀방울이 찻잔에 떨어지며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차 맛은 쓰고 떫었다. 허나 초의는 “그 차는 쓰고 떫었지만 내겐 실로 천하제일의 차였다. 차란 외경의 마음이다.” 라고 했었다. 어머니를 위해서 차를 끓여낸 아들의 마음이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차를 세 번에 걸쳐서 나눠 마신다. 아들의 차는 감로수였고 그윽한 난향이었다. 코와 입으로 느껴지는 맛이 아니라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고 있다.
나는 여행지에서 좋은 찻집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발길을 멈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강진 백련사의 찻집이었다. 어느 여름 날, 만경루 아래 찻집 풍경은 잘 그려진 동양화 한 폭이었다. 찻집 앞뜰의 250년 된 배롱나무가 피워낸 화사한 꽃봉오리와 저멀리 바라보이는 구강포의 장관을 보며 차를 대했다. 우리는 그 순간 만큼은 복잡한 세상사 잊고 차를 즐겼다. 다선일여(茶禪一如)를 실천한 초의선사를 흉내 낼 수는 없었지만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었다. 추사나 다산과 같은 다인(茶人)들의 정신적인 예지도 본받고 싶었다. 추사는 막역한 우정을 나눈 초의선사에게 지체하지 말고 차를 챙겨 보내라는 장난기 어린 편지를 보낼 정도로 초의선사의 차를 원했다. 제주도 유배지에서의 삶이란 한(恨) 그 자체가 아닌가. 차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한을 삭이지 않았나 싶다. 추사에게 차란 생명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또한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상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은 백련사의 혜장선사에게 ‘나그네는 요즘 차를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줌 보내주오’란 편지를 썼다. 유배지에서의 곤고한 삶을 차를 통해서 치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날 백련사 찻집의 여주인은 우릴 귀빈으로 맞이했고 좋은 물과 잘 덖은 야생차, 기품있는 도자기 찻잔으로 우릴 차 세계에 푹 빠져들게 했었다. 그 감미롭고, 그윽하고 오묘한 차맛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갑사 계곡의 찻집, 장흥 보림사 찻집, 대둔사 찻집의 차맛도 깊은 맛과 그윽한 향이 차삼매에 빠질만 했다. 서울에서는 삼청동의 ‘차마시는 뜰’에서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이젠, 공해와 스트레스에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차 한잔의 여유를 찾아줄 때다. 그들이 차를 통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더 많은 걸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머지않아 결혼할 아들과 며느리에게 줄 다구(茶具)와 잘 덖어진 야생차 한 봉지를 따로 챙겨둔다. 차의 덕(德)을 새겨보라며 전할 것이다.
내 몸의 세포를 깨운 천하제일의 차맛이 감로수 되어 세월을 보듬어 가리라.
명사십리의 물결 / 김혜숙
택배로 받은 상자는 제법 컸다. 정씨 성을 지닌 사람의 이름이 씌어 있고 주소지는 안산이다. 아무리 갸우뚱대고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궁금증이 일어 내용물을 뜯어내자, 김 다섯 톳이 들어있다. 지금까지 가르쳤던 제자, 친척, 친구, 이웃 등등. 되짚어봐도 송부해 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주소지를 다시 살펴보니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이 많은 김을 보내어 올 정도면 나를 잘 아는 사람일 텐데, 내 기억력이 무디어진 것을 탓하며 전화를 건다. 상대방이 정성스럽게 보내온 선물인데, 당신이 누구냐고 다짜고짜 물을 수가 없다. 대화를 조심스럽게 이어가다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일 년 전, 우리부부는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어머니가 계신 해남에 갔었다. 긴 기다림 속에서 우릴 맞은 어머니는 우릴 얼싸 안았다. 이내 남편은 어머닐 등에 업고 실내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무겁다고 내려달라는 어머니를 어르면서 우린 한 덩이가 되어 뜨겁게 회포를 풀어냈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어머니의 눈시울이 젖어있었다. 몇 해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지쳐 있었다.
그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수 십미터 저 편으로 나뒹굴어졌던 어머니는 통증 앞에서 삶의 의지와 활력이 소진되어 있었다. 그 후 통증은 완화됐지만 아흔의 어머니는 막을 수도 거를 수도 없는 세월 앞에서 더욱 무기력해져 최근에 “지루하다, 가고 싶다.”를 가끔 읖조린곤 했다. 어머닌 우리 팔남매에게 서운하거나 언짢은 감정을 드러내셨던 적이 거의 없었다. 너무나 자존심이 강했던 분인데 속내를 저렇게 드러내 보일 때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어머닐 생각할 때마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믈을 억지로 삼키며 나는 결심했었다. 이번 방학이 시작되면 어머니께 곧바로 달려가서 재롱잔치를 벌이겠다고. 어머니가 기뻐하실 일이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그러나 해남에 도착한 이후에 우리의 재롱잔치 내용은 너무나 빈약했다. 행동반경을 넓혀 보려고 해도 어머닌 멀미가 나고 힘이 없어서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린 어머닐 달콤한 말로 달래서 완도에 갔었다. 회, 전복죽을 드시게 하고 ‘장보고 공원’을 산책했다. 수석과 잘 다듬어진 나무를 관심있게 살펴보신 어머니는 관리를 잘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어서 신지도에 있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찾았다. 한려수도의 맑은 물빛을 보며 고향에서 지냈던 옛날을 떠올리고 우린 이곳 겨울 바다를 온 몸으로 끌어안았다. 어머닌 오길 잘 했다며 좋아하셨다. 우리들 이외엔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에서 우린 소리 높여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외쳤고 어머닐 가운데 모시고 우리 내외가 손을 맞잡고 하트를 그렸다. 이순이 넘은 딸과 사위의 모습이 하도 기막혀서 껄껄 소리내어 웃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덩달아 우리도 하늘에 닿을 만큼 큰소리로 속이 후련하게 웃어댔다.
이내 어머니의 지팡이를 빌린 남편은 명사십리 바닷가 모래위에 ‘홍태임여사 만수무강(洪太任女史萬壽無疆)’이라고 한자로 써 내려갔다. 우리 내외의 소망을 담은 이 짧은 편지가 물결에 씻겨 내려갈 것을 아쉬워하며 어머니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겨울바다의 매서움은 어머니의 볼을 새파랗게 얼렸으나 마음은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사위 손을 꼭 붙잡고 놓질 않았다. 이때까지도 명사십리 바닷가는 우리의 독무대였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을 에워싸고 삼대(三代)의 여인들이 출현했다. 대여섯 명으로 기억되는 그들은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듯했다. 우리의 독무대에 등장한 그들에게 남편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먼저 제의했다. 그들은 사진기를 갖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 정겨워 보여 우리 사진기로 몇 장을 찍었다. 등장인물 모두, 할머니와 어머니, 모녀간, 조손간, 또 하트모양 등 연출담당까지 맡았다. 그들과 우리 모두는 그 바닷가에서 십년지기처럼 마음껏 웃음을 날리며 추억의 탑을 쌓았다.
그 후, 난 그들에게 사진을 보냈고 그러고 나선 인연은 끝이 났었다. 일 년 전쯤의 일이니까 내 기억에선 그 일이 잊혀질 법도 했다.
그런데 명사십리에서 만났던 그 어머니가 고향 완도에서 부쳐온 김을 다섯 톳이나 내게 보내온 것이다. “적지만 마음부터 받아주세요. 그동안 무엇인가 보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에 이제야 보내게 되었다.”고 예쁜 목소리로 마음을 전한다. 또한 그녀는 좋은 추억을 지니게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내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말로 전화를 끝맺는다. 넉넉하고, 아름답고, 결 고운 이 어머니의 음성이 계속 귓가를 맴돈다. 세상이 각박하다고들 말하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런 분들이 있어서 살맛나는 세상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남편은 친가, 처가 합쳐서 모두 네 분의 부모 중에 오직 어머니 한 분만 계신다고 늘 아쉬워한다. “있을 때 잘해”란 유행가 가사가 가슴을 파고드는 날이 있다고 한다. 그 날 명사십리를 찾았던 그들의 효도 실천 모습이 하도 보기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어서 보내줬을 뿐인데 이렇게 큰 사랑과 나눔으로 돌아왔다고 역시나를 강조한다.
정해년 신년 벽두에 찾아온 이 아름다운 선물을 친척모임에 가서 얘깃거리로 제공하며 햇김을 나누니 온기가 전해져 온다며 모두들 기뻐한다. 김 다섯 톳이 가져다 준 훈훈한 정을 이웃에게 전하겠다는 내 피붙이들의 말에 내 가슴은 화롯불처럼 데워진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배우자. 가장 중요한 대상은 사람이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심신이 허약해진 어머니께 재롱잔치를 벌이겠다고 나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그 사람들을 통해서 사랑과 나눔을 배웠다. 그게 우리 남매와 내 자녀에게 전해지고 그 배움이 이웃에게 뿌리내려 퍼져 나가지 않겠는가.
명사십리의 겨울 바닷가를 훈훈하게 달구어 준 추억의 물결들이 내 안에 밀물되어 파고든다.
[작가 프로필]
광주교육대학 졸업, 방송통신대학교육학과 졸업. 서울초등문예창작연구 회원. 전) 서울 역촌초등학교 교사. <한국수필>(1996)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 수필집 젊어지는 샘물(2001), 인연의 굴레 사랑의 고리(2007).
김혜숙 교단 수상 지금도 나는 초록빛으로 산다(2007)
김혜숙 세상 구경 나는 늘 여행을 꿈꾼다(2007)
[작품 심사평]
순리에 따른 마음의 경지와 깨달음 / 정목일
김혜숙 수필가는 ‘젊어지는 샘물’을 펴낸 이후 6년 만에 한꺼번에 세 권의 수필집을 동시에 출간하였다. 회갑을 기념하여 낸 세 권의 수필집 중에서 인연의 굴레 사랑의 고리를 선정하였다. 작자는 ‘책을 내면서’라는 서문을 통해 솔직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저는 문학을 통해 새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문학과 사색과 기도의 시간이 돼주었고, 펜과 원고지는 친구가 되어 외로움까지 몰아냈습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도 즐겁고 ,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의 밭을 갈며 글쓰기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써 내려갔습니다. 때로는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지요. 서정의 샘이 고갈되어 몸살을 앓을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맑은 샘물을 조금씩 흘려보낼 때는 얼마나 시원하고 후련했는지요.”
이 대목을 보더라도 이 작가의 작품을 쓰는 태도와 진지성, 문학의 터전이 서정임을 알 수 있다. 김혜숙의 수필은 서정수필이고 서정의 근간은 ‘사랑’이다. 사랑은 인생의 영원한 주제어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숨쉬게 만들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원동력이다.
수필집을 읽는다는 것은 픽션 류의 작품집을 읽을 때와는 다르다. 문장을 통해서 인생과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수필의 경지는 곧 인생의 경지, 마음의 경지와 일맥상통한다. 인생이란 악기가 좋아야만 소리가 좋을 것이며,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도 향기가 나는 법이다.
김혜숙 수필가의 인연의 굴레 사랑의 고리에서 드러나는 삶의 지향점은 ‘인연에 대한 사랑법’이다. 가족을 비롯하여 친지, 동창, 이웃, 동료 등 여러 인연과의 원만한 소통을 위한 사랑과 배려, 조화와 균형을 얻어내는 슬기와 노력을 보여준다. 이 바탕엔 따뜻한 휴머니즘이 흐르고 있다. 삶을 둘러싼 대립, 갈등, 단절을 없애고 화해, 포옹, 융화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인생 성숙과 깨달음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김혜숙의 수필은 물 흐르듯 모든 인연과 관계가 막힘없이 상통하고 합류하여 더 큰 바탕을 이루는 상생의 세계이다. 순리에 따르며 진정성을 지녀서 인연의 굴레와 사랑의 고리를 원만하고 조화롭게 풀어가는 인생 경지를 보여준다.
배려, 경청, 봉사, 겸허. 정성이 굴레와 고리를 풀어가는 열쇠가 되며, 이런 삶의 태도와 정신이 그의 수필세계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김혜숙의 문장은 자연스럽고 담백하다. 순수하고 맑아서 맑힘이 없고 거슬리지 않는다. 이런 문장은 순수한 마음의 경지에서 나온다.
「천하제일의 차」, 「사진 속의 어머니」, 「명사십리의 물결」,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며」, 「손이 큰 여자」 등에서 주조를 이루는 테마는 삶의 미학이며, 구체적으로 작자의 추구는 진, 선, 미에 닿아있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의 거울이셨다. 팔순의 나이에 바바리가 어울리고, 자식들에게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존심 강한 어머니의 거울에 비친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리라.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물어온다면 서슴지 않고 “나의 어머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세월이 훌쩍 지나 30년 후, 나의 아이들도 ‘우리 어머니’를 가장 존경 한다’고 하게 될는지 두려워진다.
어머니를 닮은 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내게, 사진 속의 어머니가 환한 미소를 보낸다.
「사진 속의 어머니」 일부
「사진 속의 어머니」에 나타난 작자의 삶은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어머니의 삶을 본받고 이어가려는 생활 태도를 보여준다. 자녀들에게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계승하려는 마음을 담고 있다. 현대에 와서 존경받는 어머니상, 아버지상이 깨어지고 효에 대한 개념이 점차 희박해져 가는 현상 속에 효사상의 계승과 실천을 통한 한국 가정의 정체성을 살려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김혜숙의 수필은 그의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의 꽃이다. 어떻게 최선의 노력으로 삶을 의미의 꽃으로 피워 놓느냐 하는 데, 수필쓰기의 목적이 있다. 그는 근면과 노력, 성실과 봉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통해 삶의 미소와 향기와 빛깔을 빚어낸다.
이런 조율과 화합을 얻어내기 위해 순리와 이치에 순응하며 숨결을 맞추고 있다. 전통과 자연에서 배운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이 자리잡고 있다..
김혜숙의 문장은 자신의 인생 경지에서 흘러나오는 청계수처럼 막힘이 없다. 정의 따스함과 배려의 미소와 손길이 있다. 한마디로 그의 수필세계는 모범적인 인생 미학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좋은 인간, 좋은 인격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전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김혜숙의 수필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제나 소재 면에서 신변잡사, 특히 가정과 가족 등 인간관계에 국한된 듯한 느낌과 문장이 천편일률적으로 흐르고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게 오히려 답답한 맛을 준다는 점이다. 장점이 많은 반면 단점이 있으므로 더 진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지만 독자성, 전문성, 개성을 통해 본격적인 작가의 면모를 살려나갔으면 한다.
처녀 수필집을 낸 이후 6년 만에 수필집 3권을 한꺼번에 묶어낸다는 일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수필에 대한 치열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김혜숙 수필가 60년 회갑 인생의 깊이와 성숙을 음미하고 ‘인연의 굴레’와 ‘사랑의 고리’에 얽매여 굴종과 고통으로 지내는 삶이 아닌, 그 속에서 인생을 발견하고 관계와의 소통을 통해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얻어낸 삶의 미학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수필문학에 대한 꾸준한 정진과 성과를 인정하여 심사위원회는 금년도 한국수필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