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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3년 나바르왕국(=현재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지역) 에서 앙리 드 나바르 왕자가 태어난다
카톨릭의 영세를 받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개신교로 개종한다
나바르왕국의 엔리케3세 왕으로 즉위한 후 프랑스 왕족이자 카톨릭 신자인 마그리트 드 발루아와 정략결혼을 한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에서 결혼한다 그러나 신랑인 엔리케3세가 개신교이기 때문에 성당 안에 들어가지 않고 성당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 며칠후 장모 (=카트린 드 메디치 왕비)와 카톨릭의 세력가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개신교(=위그노) 인 콜리니 장군과 결혼식 하객으로 온 교인들을 집단살해한다 이때 신랑은 강제로 감금되면서 살해는 면한다 유명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다
서로 보복하는 피의 학살이 수개월 계속되며 수천명 또는 수만명의 인명이 희생된다
17년이 흐른 후 왕위 계승 순위에 따라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여 부르봉 왕조를 시작한다 그러나 카톨릭이 지배하는 프랑스의 대부분 지역 특히 파리는 개신교인 앙리4세 왕을 거부한다
같은 개신교인 잉글랜드왕국의 엘리자베스1세여왕의 지원을 받으며 왕위를 유지하던 그는 스스로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파리로 입성한다 '파리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되뇌이면서
카톨릭신자가 된 그는 즉위 5년만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즉위식을 갖는다
다시 4년 후 '... 카톨릭교 이외의 다른 종교는 엄벌에 처하고 이들을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몰수한 재산의 1/4을 준다... ’ 라던 이전의 왕명을 폐기하고
'... 위그노의 예배를 허용하고 재산권과 공직권 그리고 위그노들의 마을을 인정하며 특별법정단에 참여하도록 한다... ' 라고 새로운 왕명을 내린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그 유명한 <낭트칙령>이다 1598년이다
서로 미워하고 학살하는 종교분쟁을 끝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다 주로 상공인들인 위그노를 인정하면서 경제안정도 추구한다 물론 카톨릭의 불만도 높아진다
이웃인 프로이센왕국에서는 30년 가까이 종교전쟁까지 벌어지는 즈음이다
이때 유명한 말을 한다 '신이 허락한다면 프랑스인들이 매 주일마다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 종교가 무엇이든 풍족한 생활을 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결혼 초기부터 별거하던 부인 마그리트 드 발루아와는 자녀가 없다 마리아 드 메디치와 재혼한다
카톨릭신자인 마리아 드 메디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부호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로 시집올 때 엄청난 재산과 함께 이탈리아의 앞선 문물을 많이 가져온다
그녀는 앙리4세왕의 천성적으로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항상 주변에 몰려있는 여인들 - 일설에 의하면 50명이 넘었다고 한다 - 과 그들의 혼외자식으로 늘 불화에 시달렸으나
둘 사이에 자녀를 많이 낳고 장남은 나중 루이13세왕이 된다
프랑스국민들로 부터 칭송을 받던 앙리4세 왕은 계속된 종교간의 갈등으로 결국 57세에 암살 당한다
어린 장남이 루이13세 왕으로 즉위하고 섭정하는 어머니 마리아 드 메디치는 위그노를 배척한다 루이13세는 43세에 병사할 때까지 카톨릭 세력과 함께 왕권을 유지하고
그의 아들인 루이14세 역시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 받으나 여전히 카톨릭 추기경들이 세력을 가진다 '짐이 곧 국가다' 라며 77세까지 절대왕권을 외치는 태양왕 루이14세는 낭트칙령을 폐기한다 87년만에 위그노들을 다시 공식적으로 억압하겠다는 뜻이다
위그노들은 기술과 재산을 가지고 잉글랜드왕국이나 네덜란드왕국 등으로 피신한다 이 때문에 나중 프랑스왕국이 재정난에 빠지게 된다는 평가도 있다
다시 앙리4세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는 본인이 개신교임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으로 개종도 하고 개신교를 인정하는 낭트칙령도 엄명하면서 종교화합을 시도하고 경제안정도 이루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은 프랑스 왕이다
후대 학자들은 앙리4세에게 '선량한 왕' 이라는 별칭을 붙힌다
참조 : Wikipedia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