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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 성경의 어휘 연구를 계속합니다. 성경의 어휘를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앞에서 자주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성경에 사용된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통하여 본문의 이해를 정확하게 하고 마침내 올바른 신학을 수립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한 중요한 단어를 통하여 성경에 나타난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오늘은 일흔아홉 번째 시간으로, 구약을 기록한 히브리어 동사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히브리어에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참 많아요. 그중의 하나가 '바라(Bara)'입니다. 히브리어 동사 바라와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아사(Asah)'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다가 영어처럼 로마자로 썼지만, 원래 히브리어 글자는 형태가 다르죠. 좀 이따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두 동사는 비슷한 면이 있고 또 서로 다른 면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다른 면에 대하여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 두 동사가 히브리어 성경에 얼마나 자주 쓰였는지를 보려면 콘코던스(Concordance), 즉 우리말로 '성구 사전'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단어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나를 단어와 함께 어느 책 몇 장 몇 절에 쓰였는지 본문이 쭉 나와 있는 사전을 말합니다. 구약 성구 사전인 이것은 아브라함 에벤쇼산(Avraham Even-Shoshan)이 만든 것인데, 1985년에 나왔지만 그 이후로 이보다 더 정확하고 자세하며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는 성구 사전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최대의 것이고 최고의 구약 성구 사전입니다. 속표지를 보면 새로운 구약 성경 낱말 사전이라는 뜻의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굉장히 유용하고 아주 두꺼운 책입니다.
이 사전에서 우리는 어느 단어가 어디에, 그리고 몇 번 사용되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아주 편리합니다. 이 성구 사전에서 찾아보면, '바라'는 구약 성경에 총 48회 사용된 것이 딱 숫자와 함께 그 구절들이 다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아사'는 2,627회 사용되었습니다. 아사가 훨씬 더 많이 사용되죠.
이 두 단어의 뜻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는 '창조하다(to create)'라는 뜻이 가장 중심되는 의미입니다. 이 동사의 주어는 항상 하나님입니다. 물론 이것이 수동태로 쓰이면 어떤 물건이 창조되었다고 하겠지만, 능동태 동사로 쓸 때는 그 주어가 예외 없이 항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독독한 일이 바로 창조(바라)입니다.
그다음에 '아사'는 그냥 '만들다(to make)'라는 뜻입니다. 이 '만들다'라는 동사는 아무나 주어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어느 누구든지 내가 무엇을 만든다 할 때 내가 주어가 될 수 있고 아사를 쓸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이 지휘봉을 가리켜 "내가 이것을 바라(창조)했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것을 창조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렇다면 창조라는 게 무엇입니까? 바로 '무로부터의 창조'입니다. 라틴어로 하면 '크레아티오 엑스 니힐로(Creatio ex nihilo)'라고 합니다. 니힐(nihil)은 무(無)를 뜻하죠. 없던 상태에서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을 표현할 때 '바라'를 쓰고, 보통 나무를 가져다가 탁자를 만든다든지, 고무로 신발을 만든다든지, 천으로 옷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처럼 기존의 재료가 있을 때는 '아사'를 써야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재료를 가지고 만드셨다고 해서 아사를 못 쓰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은 '바라'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라라는 말이 사용된 성경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잘 알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창조하시니라가 바로 '바라'입니다. 여기다 아사를 쓰면 안 되느냐 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있게 하셨다는 창조의 의미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창세기 1장 27절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 여기 나오는 두 번의 창조가 다 히브리어로 '바라'입니다. 없던 인간을 새롭게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에 가 보면 천지 창조를 다 마칠 때의 기록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바라) 만드시던(아사)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여기서는 두 단어를 연달아 썼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창조)도 하시고 아사(만들기)도 하셨다는 뜻입니다. 창조의 주간 동안 먼저 없던 물질을 만들어 놓으시고, 또 그것을 재료 삼아 다른 것을 만드실 수도 있기 때문에 두 동사를 다 언급했습니다. 비슷한 의미의 동사를 연달아 쓰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일반적인 문학 형식이기도 합니다.
그다음에 이사야 40장 26절을 보면,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하십니다. 온 우주의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음을 보라는 뜻으로 바라가 쓰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65장 17절, 18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라고 하십니다. 여기 나오는 창조라는 표현들은 전부 바라의 현재분사형태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새롭게 창조하시는 일을 나타낼 때 이 바라 동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사 동사를 보십시다. 창세기 1장 31절 창조 주간의 마지막 절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십니다. 여기서는 '지으신', 즉 만드신 모든 것을 뜻할 때 '아사'를 썼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도 만드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에서도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며(바라) 만드시던(아사) 모든 일을 마치시고"라고 하여, 없던 것에서 있게 하신 창조와 있는 것을 가지고 새롭게 다듬어 만드신 일 모두를 마쳤다는 의미로 두 단어가 풍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다음에 또 다른 용례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6장 6절, 7절 홍수가 시작되려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여기서 "사람 지으셨음을" 할 때는 '아사'를 썼고, 뒤이어 "내가 창조한 사람을" 할 때는 '바라'를 썼습니다. 서로 다른 단어를 교차하여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히브리 문학의 '이의어 결합(또는 대구법)' 표현입니다. 지으셨음은 아사이고 창조한은 바라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 제사 계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여기서는 창조했다고 번역해도 무방하지만 원문은 만들고, 즉 '아사'를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번역도 '만들고'라고 옮긴 것입니다 분명히 아사라는 넓은 개념 안에는 바라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5장 이하로 가면 모세를 통해 광야 성소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여러 가지 기물을 만들도록 하시는데, 25장 13절에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7절에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고"라고 합니다.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순금이라는 기존의 재료를 가지고 다듬어 만드니까, 무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때는 전부 '아사'를 씁니다. 조각목으로 채를 '바라(창조)하시고'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고, 순금으로 속죄소를 '창조하시고'라고 해도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25장 25절, 26절에도 "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 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라고 하여,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가지고 기물을 제작할 때 전부 '아사'를 사용합니다.
31절의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어리로 연결하고"라는 구절에서도 아사가 쓰였습니다. 출애굽기 25장에 나오는 모든 성소의 기물을 만드는 과정에는 전부 아사가 쓰였다고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야 문맥에 걸맞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동사는 전혀 다른 동사일까요? 아니면 한쪽이 한쪽을 포함하는 관계일까요? 두 동사 바라와 아사는 단어의 의미가 유사한 '유의어(Synonym)'입니다. 유의어의 유자는 '비슷할 유(類)' 자를 씁니다. 뜻이 서로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단어입니다.
반면에 '동의어'라는 것은 의미가 완전히 똑같은 것입니다. 뜻이 서로 같은 말이죠. 예를 들어 '책방'과 '서점'은 똑같은 대상을 가리키므로 동의어입니다. '희망'과 '소망'도 동의어입니다.
그러나 같기는 한데 성격이 미묘하게 다르고 비슷한 단어는 유의어라고 합니다. '책'과 '서적'을 예로 들면, 서적에는 책이 포함되지만 서적은 문서나 인쇄물 등 더 넓은 범위의 자료들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옷'과 '의상'도 비슷한 뜻이지만 의상은 조금 더 격식 있거나 특정 목적을 위한 옷을 뜻하는 유의어 관계입니다. 아사와 바라도 의미상의 공통된 중복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바라는 '무로부터의 창조'에 초점이 있고 아사는 '기존의 물질을 다듬어 만드는 일'에 초점이 있으므로 유의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벤 다이어그램 같은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사와 바라라는 두 영역 사이에 공통으로 겹치는 영역이 있고,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적 행위에 독립적으로 쓰이며, 아사는 재료를 가지고 형상을 만드는 인간과 신의 행위 모두에 쓰인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바라'가 나오면 "아, 이것은 주어가 오직 하나님이시며 없는 것에서 존재를 부르시는 신적 권능이구나"라고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화면에 보이는 것은 제가 예전에 발표한 <창세기 1장 1절의 번역과 의미>라는 신학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저의 저서인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라는 신학 논문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논문집의 119쪽부터 128쪽에 걸쳐 창세기 1장 1절의 번역적 특성과 깊은 신학적 의미를 깊이 연구하여 논문으로 쓴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구절은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신학적 깊이가 굉장히 크게 차이 납니다.
오늘 창조하다라는 단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이 구절을 간단히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원문은 네 단어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첫째, 이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엘로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격으로서 모든 역사의 시작점이 되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언제 행하셨는가 하면 '태초에(베레시트)'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어휘 연구 제1번 강의에서 태초에 대하여 이미 깊이 연구한 바 있습니다. 태초는 언제이며 창세기의 태초와 요한복음의 태초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공부했었죠.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하던 시간의 시초를 뜻합니다.
셋째, 무엇을 하셨는가 하면 '창조하셨다(바라)'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를 행하셨습니다.
넷째, 무엇을 창조하셨는가 하면 '천지(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즉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 문맥 속에서 '천지'라는 표현은 단순히 공중의 하늘과 흙으로 된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망라하여 총칭하는 표현임이 신학적으로 입증됩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하나님이 온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선언이 창세기 1장 1절의 위대한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Creation ex nihilo', 즉 무(nihil)로부터의 창조를 선언하는 구절이며, 기독교 신앙의 장엄한 출발점을 이루는 제1장 1절입니다.
오늘 일흔아홉 번째 연구로서 히브리어 동사 바라와 아사에 대한 단어의 차이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성경을 읽으실 때 비록 번역본을 보느라 히브리어 원어를 직접 구별하지는 못할지라도, '창조'라는 개념을 만날 때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독독한 주권적 권능이며, '만들다'라는 것은 재료를 다듬는 일임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섬세한 어휘적 구별을 통해서 우리 창조주 하나님이 정말 어떤 존재이신지를 더욱 구체적이고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여덟 번째 시간으로 또 다른 중요한 단어들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구약 성구 사전(Concordance)의 권위:
아브라함 에벤쇼산이 편찬한 구약 성구 사전은 특정 히브리어 단어가 구약 성경 어느 책, 몇 장 몇 절에 몇 번 사용되었는지를 정확한 용례 본문과 함께 보여주는 최고의 학술적 자원임.
히브리어 동사 '바라(Bara)'와 '아사(Asah)'의 차이점:
바라 (Bara - 구약 48회 사용): '창조하다(to create)'라는 뜻으로, 주어는 항상 '하나님'으로만 제한됨. 라틴어 '크레아티오 엑스 니힐로(Creatio ex nihilo)'가 의미하듯 재료가 없는 상태에서 존재를 불러오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뜻함. (예: 창세기 1장 1절 천지 창조, 1장 27절 인간 창조, 이사야의 새 하늘과 새 땅 창조)
아사 (Asah - 구약 2,627회 사용): '만들다(to make)'라는 뜻으로,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도 주어가 될 수 있음.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재료를 다듬고 가공하여 새로운 물건을 형성하는 '유로부터의 제조'를 뜻함. (예: 창세기 1장 31절 지으신 모든 것, 출애굽기 성소의 조각목 채와 순금 등잔대 제작)
신학적 및 문학적 의의:
바라와 아사는 의미상의 공통 영역을 지니면서도 고유의 초점이 다른 '유의어(Synonym)' 관계임.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는 단순히 하늘과 땅 공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 전체를 총칭하며, '바라' 동사를 통해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신적 권능에 의해 무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기초를 형성함. 창세기 6장 등에서 두 단어를 교차 사용하는 것은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대구법적 기법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