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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석모도 보문사
2026년 09월 26일(토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입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席毛島)의 낙가산(洛迦山)에 있는 보문사(普門寺)는 남해 금산의 보리암(菩提庵)과 양양 낙산사(洛山寺) 홍련암(紅蓮庵)과 함께 한국 3대 관음성지이며 전등사(傳燈寺), 정수사(淨水寺)와 더불어 강화도를 대표하는 천년고찰입니다.
선덕여왕 4년( 635년)에 회정 대사(懷正大師)가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수행하던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연후에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하였습니다. 낙가산은 관음보살이 상주하며 설법한다는 인도 남쪽의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하고 보문사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사찰명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창건 이후 사찰의 내력이 명확하지 않고 『보문사 권선문』에 따르면 1812년(순조 12)에 홍봉장(洪鳳章)의 시주로 중창하고 고종 4년(1867)에는 경산 대사(京山大師)가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각을 건립하였습니다. 고종 30년(1893)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였다. 1918년에 대원(大圓)이 관음전을 중수하고 1928년에 절 뒤편 암벽에 높이 32척 너비 12척의 관음상을 조각하였습니다. 1932년과 1936년에 요사와 나한전을 주지 배선주(裵善周)가 중창하였습니다.
보문사 일주문
1칸 팔작지붕으로 된 건물입니다.
낙가산보문사(洛迦山普門寺) 편액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1927~2007)이 80세에 쓴 글씨라고 합니다.
여초 김응현 선생은 추사(秋史) 김정희의 필맥을 이은 소전(素荃) 손재형(孫在馨)과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이후 친형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과 함께 한국 현대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힙니다.
낙가산(洛伽山)은 관세음보살이 머무르신다는 인도 남쪽 보타락산(普陀洛山)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보타락산에 있는 가람(伽)이라는 뜻입니다.
보문(普門)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보문찻집
보문사의 역사와 공덕을 기록한 창건, 중창 공덕비와 사적비
은행나무
수령 : 400년, 수고 : 20m, 나무둘레 : 3m
예전 방문에는 없었던 용왕전의 황금거북, 황금잉어와 황금용이 거대할 뿐더러 화려함에 눈길을 끕니다
황금잉어
황금용
용왕전
용왕전(龍王殿) 편액
독특하게도 오방 용왕이라하여 다섯 방위 용왕을 모셨습니다.
동서남북과 중앙을 지키고 수호하는 오방용왕은 보문사를 중심으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강화도의 지리적 특징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용왕전 상량식(2021년 11월) 및 오방용왕 점안법회와 용왕전 낙성식(2022년 4월)을 봉행했습니다.
북방 흑룡신왕
서방 백룡신왕
중앙 황룡신왕
동방 청룡신왕
남방 적룡신왕
윤장대
팔모지붕의 아름답고 화려한 윤장대(輪蔵臺)
윤장대는 책장의 일종으로 안에 경전을 넣어 두고 글자를 알지 못하는 신자나 경전을 읽을 시간이 없는 불자을 위해 만들어진 불구로 양(梁) 나라의 선혜 대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윤장대(輪蔵臺) 편액
손에는 보주를 들고 거북이를 타고 있는 용왕상
뒤 벽에는 용왕탱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오백나한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 이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명이 않을 수 있다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오백나한은 2009년 와불전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되었습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입니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증독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보문사의 오백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나한님의 좌대에는 봉안에 동참하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오백나한 33 관세음보살 사리탑
2005년에 조성된 이 사리탑은 목조형식을 본 뜬 3층 석탑입니다. 탑신부 각 층마다 11분씩, 총 세른 세 분의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 있으며, 보살상 위에는 각각 용머리를 배치해 장엄함이 더 합니다.
보문사하면 떠오르는 곳이 절벽위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이지만 또 다른 유명세를 탄곳이 이곳 500 나한상입니다.
불교에서 나한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제자들을 의미하지만 이곳 나한상은 의미가 조금은 다른듯 합니다.
500개의 나한상 모두 다른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나한전
자연 암반 아래에 생긴 동굴로 아치형 출입구 3개을 만들고 위쪽에 법옥궁이라고 음각하였고 석굴안에는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목조건축물 형태로 평방과 소로, 용두, 연등형 조각을 하고 도리를 올렸습니다.
법옥궁(法玉宮) 편액
나한전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0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입니다. 천연 동굴을 이용하였으며 입구에는 3개의 무지재 모양을 한 문을 만들었습니다.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나한상을 모셨습니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때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석실은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안에 23개소의 감실을 마련해서 석가모니불을 비릇한 미륵, 제화갈라보살과 나한상들을 안치했습니다.
보문사석실안에 봉안된 세분의 삼존상과 송자관음보살, 관세음보살상과 18분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눈썹바위의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대표적 성보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보문사가 관음신앙의 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 때문입니다.
맷돌
맷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지름 69cm, 두께 20cm로 보통의 맷돌보다 2배가량 큽니다.현존하는 대부분의 맷돌은 윗돌만 남아 있으나, 이 맷돌은 윗돌과 아랫돌이 제짝을 이루고 있어 본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정확한 제작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을 보이며, 보문사 승려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와불전
석가모니 모습의 와불이 모셔진 와불전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조성된 와불전이 있습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당시의 모습을 자연석에 섬세하고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봉안하였습니다.
와불전(臥佛殿) 편액
와불 전에 거대한 부처가 오른손으로 머리를 베고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습니다. 열반하는 부처의 모습으로 길이 13.5m, 높이는 2m에 달하며 천인대 바위에 1980~2009년에 걸쳐 조성됐다고 합니다.
와불전의 와불은 열반하는 부처님의 누워있는 형상으로 보문사의 와불 부처님은 너비 13.5m, 높이 2m입니다.
아난에게 사라(sara)나무 밑에 침상을 준비하라고 이르시고 부처님께서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얼굴은 서쪽을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고요히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 자정 무렵 여래는 열반에 들리라고, 나는 이제 팔십세가 되었구나. 비유컨대, 낡은 수레가 움직일 수 없음과 같을지니라. 육신이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만큼, 늘고 병들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내가 이미 가르치지 않았던가,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은 다 사라져 없어지리라고. 그러나 여래는 육신이 아닌 깨달음의 지혜이니라. 내가 가르친 진리는 언제나 너희들고 함께 하리라' 제자를 돌아보시면서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습니다.
신중탱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당우에 삼성각의 편액을 달았습니다.
삼성각(三聖閣) 편액
법당 내부에는 치성광여래탱을 중심으로 산신탱과 독성탱을 안치하여 불단을 꾸몄습니다.
칠성여래탱
산신탱
독성탱
극락보전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에 극락보전의 편액이 걸렸습니다. 12지신상과 인왕상이 새겨진 높다란 기단 위에 날렵한 처마선과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한 4분합 꽃살문이 아름다운 보문사의 중심 법당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자태가 눈길을 끈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편액
극락보전 편액은 학정 이돈흥(鶴亭 李敦興 1947~2020) 선생의 글씨입니다.
학정 선생은 송곡 안규동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고,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 송곡 안규동으로 이어지는 호남 서예를 대표하는 21세기 한국 10대 서예가 중 한 분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법당 내부로 들어서면 수미단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양편으로 옥돌로 조성한 관음보살 3천 불을 안치하고 중단에 신중단, 하단에 지장단을 함께 조성하였습니다.
주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불로 관음세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습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가파른 419개의 돌계단을 올라가야만 눈썹바위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 영접할수 있습니다.
마애석불이 있는 눈썹바위 올라가는 길
경사가 가파르고 419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는 계단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도 합니다.
모두들 계단을 오를때 간절한 염원을 담는듯 합니다.
옥으로 된 불상들이 모여있는데 동전을 안고 있습니다.
신도들이 소원을 빌며 동전을 하나씩 안겨주었나봅니다.
공덕비
소원등
마애관세음보살상은 1928년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에 조각된 불상입니다.
마애석불좌상(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석불좌상은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李華應)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사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것입니다. 불상은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으며,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습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관음 신앙의 3대 성지로서 중요한 곳입니다.
마애석불 좌상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의 승려인 이화응이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정으로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입니다. 이 석불의 조각 연대는 약 100년전인 1928년입니다.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에 조각된 마애석불인 관세음보살
불상은 전체적인 균형미나 예술성은 다소 뒤떨어지지만 거대한 암벽에 조각한 점과 일제강점기 때 불교 조각의 연구와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차양처럼 튀어나온 눈썹바위가 마애불좌상을 눈비로 부터 보호해
자연적인 마모를 보호하는 기묘한 형국이니 부처님의 조화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관음성지 보문사를 아래에 품고 멀리 서해를 바라보는 위치에 조성되어 있으니 수많은 불자들이 참배와 향화(香火)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거대한 눈썹바위 아래쪽 암벽에 방형 얼굴에 이마에는 백호(白毫)을 조각하고 초승달 모양의 눈썹에 길쭉한 두 눈은 눈초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로 묘사했습니다. 뭉툭한 코에 어깨까지 맞닿은 기다란 귀를 조각하고 머리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진 보관(寶冠)을 쓰고 있습니다. 목은 매우 짧고 가늘게 삼도를 표현하였습니다.
광배(光背)는 두광과 신광을 나누어 조각하였습니다. 두광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인 '옴마니반메홈'을 음각하고 신광(身光)에는 가늘게 선각(線刻)의 화염문을 가득 새겼습니다.
각진 어깨를 감싼 통견의는 어깨와 손목에 대칭적으로 평판적인 주름을 묘사하고 가슴에는 卍 자가 큼직하게 새겼다. 양손은 위치를 바꾼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그 위에 정병을 올려놓았습니다.
신광에는 가늘게 선각의 화염문을 가득 새겼습니다.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에 오른쪽 발바닥만 묘사하고 연화 대좌에 안치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화엄회상팔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
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
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이라 글씨가 세줄로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향좌에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이 후원했음을 알 수 있는 두 줄의 명문 '
불기이구육사년정축오월일佛紀(二九六四年丁丑五月日)
병오생전형필분향근배(丙午生全鎣弼焚香謹拜)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1937년 5월에 1906년생 전형필 향을 사르며 삼가 절합니다.
왼쪽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낙가산 보문사를 둘러보고 마애석불좌상에서 내려다보는 서해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하고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은 가볍기 이를 데 없습니다.
방성길여사서(方成吉女史書)" 라고 암벽에 새겨진 글씨는 방성길 여사께서 글을 썼다는 의미 일 텐데 굳이 자신의 이름을 새겨야만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낙서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은 나만의 느낌일까요?
뒤돌아본 마애석불 관세음보살
무설혜중전
종무소와 강당이 자리 잡고 아래층은 공양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무설혜중전(無說惠衆殿) 편액
운포 정병철(雲浦 丁炳哲)의 글씨입니다.
건물의 난간에 서서 아래를 보면 도열해 있는 장독대의 질서정연함에 눈길을 뗄 수 없고 축대의 끝선으로 조성된 전각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선니다.
법음루
법음루(法音樓)란 편액이 달린 팔작지붕 누각이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에는 거대한 법고와 목어, 운판이 매달려 있습니다
법음루(法音樓) 편액
범종각
범종각(梵鐘閣) 편액
인천지역에서 활동하신 서예가 동정 박세림(東庭 朴世霖, 1924~1975)의 글씨입니다.
관음성지낙가산보문사황금대범종
총중량 : 1,333관(약5톤) 신고 : 2,121mm(7자), 구경: 1,515mm(5자), 총높이 : 2,550mm(8자반)
2025년 11월에 범종의 울림이 자비의 파동이자 지혜의 빛, 깨달음의 길이 되기를 축원하였습니다.
황금거북과 십이지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