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일보=김상호 기자]지난달 27일 롯데그룹에서 벌어진 신동주·신동빈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재벌그룹 혈족 간 경영권 분쟁이 드문 일은 아니다.
재벌닷컴이 지난 2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50대 재벌그룹 가운데 18곳이 혈족 간 상속재산이나 경영권을 놓고 다툽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의 경우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두 아들로 하여금 너무 오랫동안 후계경쟁을 벌이도록 했던 것이 형제간 비극을 낳은 원인으로 지적된다.
우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현재 93세로 고령이다. 지난 27일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5명의 친족과 함께 전세기 편으로 비밀리에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을 제외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모두 해임했다.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해임 이사에 포함됐다. 신동빈 회장은 다음날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이사들에 대한 해임 조치를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 해임했다.
롯데그룹의 분쟁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라면사업을 두고 갈등을 벌였다.
신춘호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반대를 뿌리치고 1965년 롯데공업에서 라면사업을 시작한 뒤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꿨다. 2010년 롯데마트가 롯데라면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두 형제 간의 갈등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롯데그룹 분쟁과 가장 유사한 사례는 2000년대 초반 현대가에서 벌어진 이른바 '현대가 왕자의 난'이 꼽힌다.
지난 2000년 당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86세의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했다. 당시 차남인 정몽구 회장과 5남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었다.
갈등은 정몽구 회장이 정몽헌 회장 측 인사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경질하면서 비롯됐다. 그 뒤 정몽헌 회장은 정주영 회장을 만나 경질을 없던 일로 돌리고 정몽구 회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자 다시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서명을 제시하며 자신의 면직을 취소시켰다.
이후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의 정주영 회장 육성이 공개되면서 동생인 정몽헌 회장이 그룹 본체인 현대그룹을 갖게 됐고, 형인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물려받았다. 그 뒤 현대그룹은 6개의 소그룹으로 계열분리됐다.
정몽헌 회장은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에 따라 대북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쳤으나 그뒤 '대북송금' 사건에 휘말려 검찰조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가도 예외는 아니다.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서 후계자 자리가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대신 3남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뜻을 굳힌 뒤 장남인 이맹희 전 회장을 해외로 내보내는 등 일체 경영에 나서지 못하도록 강력한 방호벽을 쳐줬다. 이건희 회장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식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병철 창업주가 일찌감치 후계정리를 끝낸 덕분에 삼성그룹 승계는 큰 잡음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분쟁은 뒤늦게 시작됐다. 지난 2008년 삼성특검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차명주식 역시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012년 이맹희 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 상속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언론을 통해 거친 말을 쏟아냈고, 삼성 측이 이맹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미행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1·2심에서 연달아 패한 이맹희 회장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갈등은 마무리됐다.
두산그룹에서도 형제가 다툼은 벌어졌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창업주가 형제경영의 전통을 세웠다. 박용곤 명예회장이 그룹 총수를 지낸 뒤 차남인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이 회장직을 맡게 됐다.
하지만 박용오 회장은 2005년 동생인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총수로 추대되자 박용오 회장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형제들이 박용오 회장을 가문에서 제명했다. 박용오 회장은 2009년 자살로 생을 마감해 재벌가의 비극적 장면으로 남았다.
금호그룹에서도 박인천 창업주의 3남인 박삼구 회장과 4남인 박찬구 회장이 갈등을 벌이다 지난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나뉘어졌고, 현재까지도 법정에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금호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재무구조 개선과 2006년 인수한 대우건설의 재매각을 추진했다.
이때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만이라도 살리겠다’면서 분리경영을 추진했고 그룹 총수였던 박삼구 회장과 갈등이 벌어졌다. 둘은 지난 5월 장남인 박성용 회장의 10주기 추모행사도 따로 치를 정도로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박인천 창업주도 금호타이어의 전신인 삼양타이어를 둘러싸고 동생과 갈등을 벌인 바 있다.
효성그룹도 조석래 창업주의 아들 3형제가 갈등을 빚고 있다.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형인 조현준 사장, 동생인 조현상 부사장과 함께 경영에 참여해오다 지난해 1월 자신과 아들 명의의 회사 주식을 전부 팔아치웠다.
이후 조현준 사장을 포함한 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원 등 9명을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효성그룹은 조현준 사장과 3남인 조현상 부사장이 경영일선에 나서고 있는데 형제의 지분이 엇비슷하다.
이 외에도 조 전 부사장은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신동진,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노틸러스효성,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등 효성그룹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한국타이어그룹도 조양래 회장의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형제경영으로 갈지 혹은 그룹을 분할해 승계할지 주목된다.
현재 조현식 사장과 조현범 사장은 조 회장(23.59%)에 이어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을 각각 19.32%, 19.31%씩 보유하며 2, 3대 주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