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의 그네 (제2회 / 정광희)
은경이는 발표 이틀 전에 맹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오늘 낮에 은경이네 집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은경이가 미술 대회에서 전국 사 학년 학생 중에서 이등으로 입상되었다는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을 받자 할머니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은경이를 간호하시던 어머니와 은경 이는
숨차게 달려오신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숨이 차서 겨우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자 침대에 누워 있던
은경이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은경이 어머니도 은경이를 끌어안고 기뻐하십니다.
시상식은
10일 후에 나라 신문사 강당에서 한다고 합니다. 은경이는 상을 타러 서울에 가기 전까지는
몸이 나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상식을 하는 6월 15일이 되었습니다. 은경이 아빠는 아침 일찍 할머니와 엄마랑 은경이를 차에 태우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송희도 외할머니와 엄마 아빠와 같이 시상식 전날 서귀포를 떠났습니다.
나라 신문사 강당은 입상한 어린 화가들과 부모님들, 선생님들 또 여러 손님들로 빈자리가 없이 꽉 찼습니다. 상을 받는
어린이들은 앞줄부터 학년 별로 앉았습니다. 소란스럽던 강당 안이 사회자가 단에 올라가자 조용해졌습니다. 엄숙하게 시상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후에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앞에 앉아 있는 어린이들은 아주 의젓해 보였습니다. 나라 신문사
사장님의 칭찬과 격려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일 학년부터 단에 올라가서 상을 받았습니다. 상은 일등 이등 삼등과 장려상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사 학년 입상자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은경이는 이름이 불리자 공연히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그렇지만 태연한 얼굴로 단에 올라가서 상장과 부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은 어린이들이 단을 내려갈 때 사회자는 은경이에게 내려가지 말고
사회자 옆에 서 있으라고 귀엣말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내려갔고 은경이만 사회자 옆에 서 있습니다. 이번엔 오 학년 입상자들이 단에 올라왔습니다. 오 학년 입상자들이
상을 받고 내려갈 때 사회자는 송희에게 내려가지 말고 은경이 옆에 서 있으라고 귓속말을 했습니다. 은경이가
보니 노래 자랑할 때 고향의 봄을 불렀던 제주도에서 온 어린이였습니다. 단 위에는 두 소녀가 함께 서 있습니다.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회자를 바라봅니다. 이때 사회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육 학년 시상을 하기 전에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두 어린이는 제주도의 서귀포와 강원도의 춘천에서 왔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학년이 달라서 각각 다른 장소에서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린 그림이 거의 같았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후 아래층에 있는 전시실에 가 보시면 모두 놀라실 것입니다. 그림의 내용이 동화같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 두 어린이를 위해서
큰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강당 안은 잠깐 동안 박수 소리로 요란했으며
송희와 은경이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육 학년 입상자들이 단에 올라오면서 송희와
은경이는 단에서 내려와 자기 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시상식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아래층에 있는
전시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림들은 학년 별로 전시되어 있었지만 송희의 그림과 은경이의 그림은 사 학년과
오 학년 사이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송희의 그림은 소나무에 매어있는 그네 위에 두 소녀가 함께
마주 서서 그네를 타는 모습입니다. 그네 줄은 예쁜 분홍색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네 안장은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그림 제목은 (외할머니의 그네)였습니다.
은경이의 그림은 소나무에 매여 있는 그네에 한 소녀가 앉아 있고 한 소녀가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는 모습입니다. 그네 줄엔 예쁜 분홍색 리본이 매어있고
그네 안장은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또 그림의 제목은 (할머니의
그네)였습니 다. 송희네 가족은 그림 앞으로 와서 그림을
보자 외할머니는 송희를 얼싸안았고 아빠랑 엄마는 잘 그렸다고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조금 후에 은경이네
가족이 그림 앞으로 왔습니다. 은경이네 가족도 은경이의 그림을 보다가 송희네 가족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송희 외 할머니와 은경이 할머니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언니”
은경이 할머니가 소리쳤습니다.
“아우야”
송희 외할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은경이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두 할머니는 엉엉 울면서 부둥켜안았습니다. 송희
부모님과 은경이 부모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서로 그리워하면서 살아오신 할머니가 서로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나라 신문사 기 자가 두 분 할머니를 모시고 나갔고 송희
엄마와 은경이 아빠가 사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두 집 가족이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시실에 있던 많은 사람도 함께 즐거워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튿날 나라 신문엔 전국 초등학교 미술 대회가
이산가족을 만나게 했다는 기사와 함께 송희와 은경이의 그림과 쌍둥이 할머니의 이야기가 커다랗게 실렸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지만 38선을 경계로 이북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이남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으로 남과 북이 갈라졌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이북의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남쪽의 대한민국으로 쳐들어오므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공산주의 정부로부터 고생하던 많은 이북에 살던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때 갓 결혼했던 쌍둥이 할머니의 부모님은 황해도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쌍둥이 할머니의 부모님도 피난 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남쪽으로 왔습니다. 전라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남의 집 농사일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자 언젠가는 부모님이 계시고 내 집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쉽도록
지금은 38선이 아니라 휴전선이 가까운 파 주군에 있는 작은 마을에 그동안 번 돈으로 집을 사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동네 어른들을 부모님 같이 섬기고 동네 분들을 식구같이 사이좋게 지내면서 쌍둥이 부모님은 이젠 피난민이라는 생각을 잊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쌍둥이 자매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뻐했고 두 딸을 기르는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두 딸을 위해서라면 몸도 마음도 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쌍둥이 할머니들이 10살이 되던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딸들을 위해 온 가족이 강원도 속초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바다를 보고 즐거워하는 딸들과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모래 속에 파묻혀서 모래찜질도 하면서 사흘을
지냈습니다. 내일 하루를 더 놀고 모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식구들이 의논하고 산 밑에 있는 민박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서 놀았기 때문에 식구들은 몹시 피곤했습니다. 민박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옆방에 든 젊은 사람들은
밤늦도록 게임도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날 밤 밤중에 민박집 뒷산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마침 바람까지 불어서 소방 대원들이 열심히 불을 끄느라고 노력을 했지만 도깨비불 같은 불똥들이 이리저리 날아가서
불은 점점 퍼져 갑니다. 불행하게도 민박집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일찍
잠이 들었던 쌍둥이 부모님이 잠결에 연기 냄새를 맡고 제일 먼저 잠이 깨었습니다. 모두들 피곤했는지
집주인도 다른 여 행객은 아무도 아직은 잠이 깨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쌍둥이 부모님은 딸들을 안고
밖으로 나온 후 뒷산을 보니 산 전체가 불길에 싸였고 민박 집도 부엌 지붕에 불이 붙었습니다. 쌍둥이
부모님 은 방마다 방문들을 두드리며 불이난 것을 알렸고 이 방 저 방 물건들을 꺼내는 것을 도우시던 중 집 이 무너지면서 쌍둥이 부모님과 민박집
주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척이나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쌍둥이들은 보육원으로 보내졌습니다. 보육원에 온 지 일 년쯤 되었는데 그 보육원에 사정이 생겨서 문을 닫게 되자 불행하게도 쌍둥이들은 각각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지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란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제주도로
가서 해녀가 되었습니다. 해녀가 되어 혼자 살면서 동생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릴 때 헤어졌기 때문에 막막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언니는 고민하고 그리워하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 딸 혜영이가 태어났으며 혜영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외손녀 송희를 낳자 언니는 외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동생 경원이는 춘전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에 남아서 주방 일도 도우면서 보모로 일하다가 보육원을 나와 독립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데도 없어서 막막했습니다. 작은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다가 음식 만드는 것도 도우면서 돈을 저축해서 아주 작은 김밥집을 운영하다가 결혼을 했고 아들 성호를 낳았고 성호가 결혼해서 은경이가 태어나면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두 분 할머니들은 손녀들이 태어나서 자라는 것을 보면서 어릴 때는 어렸기 때문에, 보육원을 나와 서는 살기 위해서 생각지 못했던 것 바로, 자신들이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아버지가 매어 주신 그네 생각을 하면서 헤어진 동생을, 동생은 헤어진 언니를 잊지 못했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언니
할머니는 항상 어디에 살고 있을까? 또는 살아 있기나 하는지 모르는 동생을 그리워하면서 딸 혜영이에게, 이젠 손녀 송희에게 그네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송희 엄마나 송희의 머릿속에도 그 그네가 환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동생 할머니도 언니 생각이 날 때면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 성호나 손녀딸 은경이에게 이제까지 수없이 해온 그네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언니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외국으로 입양을 가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으로
할머니는 마음에 병이 되었습니다. 효자인 아들 성호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야트막한 동산 밑에 있는
집을 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아들 성호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대로 뒷동산에 그네를 매어 놓고
리본도 그넷줄에 매고 안장에 분홍색 칠도 했습니다.
손녀딸 송희나 은경이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했고
할머니의 그네가 송희 자신이나 은경이 자신의 그네가 된 것입니다. 이 그림을 통해서 50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그리워했던 쌍둥이 할머니가 만나게 된 기회가 된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두 할머니의 기쁨이 되었고 한이 풀렸으며 송희와 은경이는 6촌 자매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라 신문에
실렸고 이 이야기를 읽은 많은 사람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은경이가 그림 그리기 대회가 끝나고 집에 와서
할머니와 엄마에게 덕수궁에서 노래자랑에 나 왔던 제주도에서 온 어린이가 낯설지 않았다는 말도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송희는 동생이 생겼고 은경이는 언니가 생겼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할머니들이 떨어져 살면서 그리워했지만 송희와 은경이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면서 6촌이지만 친 자매처럼 예쁘게 살아 갈 것입니다.
|
|
첫댓글 정 선생님의 동화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심과 함께 평온한 나날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미숙 회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