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이시다"라는 고백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계속해서 이런 필요성은 교회로 하여금 신앙 고백과 요리 문답을 제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주님의 물으심에 답하여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처럼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해야 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교회의 인원으로 받아들이려 할 때, 우리 가운데서 신앙을 고백하여 신앙의 내용을 분명히 해야 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음을 나타내고 주께 나아오도록 할 때, 이단을 분별해 내려 할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 간에 연합을 이루고자 할 때가 그러합니다.
그리므로 신조는 신자들의 본성입니다. 신조와 신앙 고백이 없는 신자는 위험한 신자입니다. 교회가 요약한 신앙 고백과 교리 문답은 성경의 중요한 교리들을 요약해서 성경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
을 주어 신자의 믿음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단의 공격에 맞서 진리를 수호함으로 거짓된 교훈과 생활을 막아 주는 데 공적 표준으로서 방패 역할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체계적인 신앙 고백과 교리가 없는 교회나 신자는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 나가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되며, 나아가 이단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신조는 우리가 참된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정체성을 확립해 줍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교회원이 된다는 것은 예수께서 시작하신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요 15:1-10; 17:20-21). 그러므로 신조란 우리가 어느 신앙, 어느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알려 주며, 그것은 곧 우리가 유사 종교, 유사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유사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증거하는 가치를 발휘합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회는 여러 신조와 신앙 고백을 통해 분열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정통성에 도전하고 허물려는 포도원의 여우에게서 교회를 수호하고 지켜 왔습니다. 기독 교회는 역사적으로 신조와 신앙 고백을 통하여 순수성을 보전하고 적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으며,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 왔습니다. 참된 기독교, 즉 복음은 교리적 믿음에 기초하며, 이 교리는 복음에 적합한 응답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표현대로 하자면, 교리는 마치 인간의 몸에 힘과 형태를 부여하는 뼈와 같아서 교리가 없으면 신앙은 형태가 없고, 약하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교리 없는 기독교는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매우 그릇된 것이요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조와 교리를 무시합니다. 사람들은 교리가 한국 교회 분열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혼란이 발생한 원인은 신학적 엄밀성을 싫어하는 시대적 문화도 하나의 요인이지만, "신조는 필요 없고 성경만 있으면 되고, 교리는 필요 없고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는 식의 극단적인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만으로 충분할 뿐, 신조나 교리는 인간이 만들어 성경에 덧붙인 인간적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실로 많은 이가 바로 "교리 없는 기독교"의 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매우 무지하고 순진한 발상입니다. 교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스 박사의 표현대로 성경 전체가 교리를 가르칩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선재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삼위와 일체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신론에 관한 교리를 가르칩니다. 그러니 성경만 믿으면 되지 교리가 왜 필요하냐는 말처럼 어리석은 말이 없습니다.
신앙 고백서나 요리 문답은 바로 이런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신앙의 조항들(Articles of Faith) 또는 교의(Dogma)라고 부릅니다. 신학(Theology)이란 이런 교의들을 성경적으로, 교의적으로, 역사적으로, 실천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교리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이고, 교의란 그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의 체계적인 요약이며, 신학이란 그 체계적인 요약을 학문적인 방식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만 있으면 되지, 교리가 왜 필요하냐고 말한다면, 교의도, 신학도, 신학교도, 나아가 교회도 필요 없다는 말이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기에 교리도, 교의도, 신학도, 교회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덧붙여서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의 설교는 교리의 전파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딤후 4:1-2). 그것은 바른 말, 바른 교훈, 즉 교리입니다(딤전 6:3; 딛 2:1). 설교자는 평생 말씀을 붙들고 바른 교리와 교훈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순경 중이든 역경 중이든 말씀의 교리를 주해하고 해설하며 설명하고 선포하며 호소하고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과, 성경에 기초한 교리와 신조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하등의 모순이 없습니다. 성경이 교리와 신앙 고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칼 트루먼은 "성경 자체가 신조의 필요성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신조를 부정하고 성경만 소유한다는 주장은 비논리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트루먼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면 신조와 신앙 고백서만이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분명 사도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그리스도인이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선택한 규범이다. 신조를 부정하고 성경만 유일한 신조로 내세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자랄 수 있다는 증거는 역사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예배당에 사람들을 가득 채우기 위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른 교리의 말씀을 가르쳐 그들을 회개케 하고 교리의 절정이신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해 설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의 총체인 교리는 바른 복음 선교의 보화입니다. 선교자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교리에 천착할 때 한국 교회는 훨씬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신호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