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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및 일반상식 스크랩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20) 비상구와 안전문
ginasa 추천 0 조회 91 15.02.17 00: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20)

비상구와 안전문

좌우지간에 마음 놓고 생각해 봐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게 나타난 이 교수가 들어오자마자 대뜸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화면을 터치하니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정이 예정보다 길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차 속에서 잠깐 녹음을 했다고 했다. 이 교수가 한숨 돌리는 사이 휴대전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노트북 자판을 두들겼다.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묘했다.

“나가는 문이나 들어오는 문이나 문은 하난데 영어로는 들어오는 문(entrance)과 나가는 문(exit)으로 각각 다르게 부르지. 우리 같으면 그냥 출입문이라고 하면 되는 걸 말야. 서양에서 들어온 고속도로인데도 나들목이라는 말은 순 한국산이지. 나가고 들어오는 곳. 문과 달라서 고속도로에서는 나가는 길과 들어오는 길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인데도 우리는 한꺼번에 싸잡아서 한마디로 불러. 어머니가 외출해도 ‘나들이 가셨다’고 하는 아이들은 모르면 몰라도 한국 아이들밖에는 없어. 서양에서는 ‘아우팅(outing)’이고 중국에서는 ‘촨먼(串門)’, 일본에선 ‘가이슈쯔(외출·がいしゅつ)’라고 해. 출입이란 말도 쓰는 모양이지만 우리의 나들이와는 경우가 달라.” 자동차 문 바깥의 소음까지 녹음된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나가고 들어온다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표현에서도 사용된다는 것이야. 예를 들어 ‘마음에 든다’는 말이 있지. 뭔가가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잖아. ‘정신나간다’는 말은 또 어때. 바깥으로 마음이 나갔다는 거지. 더욱 흥미진진한 말은 ‘마음 놓다’야. 이건 나간 건가 들어온 건가. 그렇지.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그 사이 지점에 마음을 ‘놓은’ 것이지. 한자말 방심(放心)하고는 달라. 그래서 한국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일생일대 운명이 걸린 시험장에 가는 아이를 붙잡고 ‘야, 마음 푹 놓고 잘 쳐!’라고 이상한 말을 하지. 그래서 ‘놓아둬’라는 말도 ‘버려둬’라는 말도, 이것이 버린 것이 놓은 것인지 잘 몰라. 비논리적인 것 같지만 세상에서는 ‘마음 놓고’ 하는 일이 있고 ‘버리면서 두어두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법이지.”

여기까지는 이 교수가 늘 하던 말이라 신기할 것이 없다. 그러나 지의 최전선에 오면 모든 말이 다시 새롭게 들린다.

“프랑스 혁명 때부터 좌우는 싸워왔지. 그런데 우리말은 어때. 한참 말 싸움하다가 ‘좌우지간(左右之間)에 말야’라고 뜸을 들여. 좌와 우 사이에서 뭔가를 찾자는 거지. 너와 나의 입장 사이에 싸움을 푸는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이야. 그러니까 한국말에는 ‘잘하다’와 ‘못하다’ 사이에 ‘잘못하다’라는 이상한 말이 있는거고. 100퍼센트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이 세상에는 없다. 좌우가 양극화하면서 잘 못하다는 말은 못하다의 의미로 기울어지고 말았지만, 분명 우리는 극단적 이항대립에서 벗어나 제 3항의 ‘거시기 머시기’를 찾으려고 했어. 말이나 논리로는 꼭 찍어낼 수 없는 세상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을 찾는 것이 창조적 삶이야.”

녹음된 분량이 끝났다.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고속도로에서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나가는 길을 찾고 진입하려는 사람은 들어가는 길을 찾는데, ‘나들목’이라고만 하면 어디로 가지요?”

녹음을 풀고 질문을 하자 이 교수가 ‘너 잡혔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고문실 비상구 표시등을 가리킨다.

“저 사람 남자야 여자야?” “남자네요.” “왜 남자지? 여자를 그리면 안 되나?” “그러게요.”

영어로 하면 남자라고 할 때에도 맨(man) 이고 사람이라고 할 때도 맨이다. 길거리 건널 때에 사인도 남자 모양이다.

“여자들이 발끈해서 비상문이나 횡단보도 아이콘을 여성 그림으로 바꾼 것도 있어. 그러면 아이들은 또 뭐랄까. 그래서 아이들을 그려놓은 픽토그램도 생겨났어. 비상시에는 자기밖에 안 보여. 문 안에 있는 나밖에 안 보인다고. 그러나 소방대원 눈에는 어떨까. 방 안과 밖이 모두 보이지. 방안에 있는 사람 시점에서 일본 사람은 그걸 비상구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거꾸로 안전문 혹은 태평문이라고 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전체를 놓고 보면 나들이가 되고 나들목이 되는 거야.”

더 질문을 하려 들자 이 교수는 에버노트에서 긁어온 세 개의 비상문 표지판 그림을 넘겨 주면서 일어섰다. “좌우지간에 마음 놓고 잘 생각해 봐.”

▲ 이어령의 서재에는 3m가 넘는 책상 위에 컴퓨터 모니터가 무려 여섯 대나 있다.

글 정형모 기자


    ● 출처 : 중앙SUNDAY 2015.02.01 / http://sunday.joins.com/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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