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수록 풍요롭다>
1. 현재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근본적인 체제는 ‘자본주의’이다. 각국의 정치체제와 관계없이 모든 국가는 ‘자본주의적 목표와 행태’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적 원리는 시장중심이나 교환가치의 중시와 같은 교과서적 정의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이다. 자본주의가 중세의 농노제도를 무너뜨리고 근대적 경제체제를 시작했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반드시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 최근 역사학자들의 연구에서 나타났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중세의 농노제도를 무너뜨린 평민들의 저항과 그들이 만들어낸 농촌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등장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확산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은 ‘희소성의 강요’와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서였다. 평민들의 세력이 강해지자 귀족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에 위협이 되었고 이들 지배세력은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그들의 정착지를 파괴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 자본주의의 이익과 성장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분명 인류의 삶을 개선시켰다. 기술이 발전하였고 부의 크기가 확대되었다. 자본주의는 산업주의와 결합하여 절대적인 빈곤을 해결하는데 명백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성장’은 근대 인간을 상징하는 가장 명백한 표지였다. 하지만 성장의 댓가는 컸다. 끊임없이 지속할 줄 알았던 성장의 흐름은 점차 지구 전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기온이 상승하였고, 해양과 육지가 황폐화되었으며, 수많은 생물들의 멸종이 나타났다. 점점 지구의 위험 한계선에 가까워진 것이며 어쩌면 인간의 손에 의해 지구에서 또다른 ‘대멸종’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성장’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가 지구 전체를 지배한 결과였다. 탐욕에 사로잡힌 자본가들은 생태계에 대한 고려없이 자연과 인간을 약탈하고 소유하였던 것이다.
3. 생태경제학자 제이슨 히켈은 『적을수록 풍요롭다』에서 지구의 끔찍한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녹색성장이나 자원과 에너지의 효율적 활용과 같은 피상적 방법이 아닌 근본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성장주의’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고 ‘탈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탈성장’이라는 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불안과 위협을 가하는 공포를 제기한다. ‘성장’이 멈추면 공황이 닥치고 사람들의 삶이 황폐화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의 많은 부분은 성장주의자들의 교묘하게 만들어낸 선전과 홍보효과에 기인할 수 있다. ‘탈성장’이 반드시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생활의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성장’은 필요하다. 그것은 절대적 빈곤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정한 정도로 성장하게 되면 그 이후의 성장은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을 강요할 수 있다. 지금 서구의 부유한 국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성장의 형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하여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지금은 성장이 아니라 적절한 균형과 절제가 필요한 시기이다.
4. 지금 지구의 위기는 ‘성장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위협에서 파생한다. 성장주의는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녹색성장’이나 ‘자원과 에너지의 대안’을 기술적으로 개발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번스의 역설’처럼 에너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혁신하면, 생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기술을 더 많은 성장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어떤 기술적 혁신도 결국은 생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생산과 성장으로 향하는 동력을 만들어낼 뿐이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폐기물을 만들어낸다. 지구의 ‘정상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을 파괴하는 것이다. 성장의 또다른 문제는 공공재를 탈취하여 사적재산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성장은 ‘희소성’에서 활력을 얻는다. 무언가 부족할 때 그것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며 사적재산축적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현재 선진국 특히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 필요한 것은 성장보다는 불평등을 해결하고 부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생활의 질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5. 우리는 ‘성장’에 대한 개념을 다시금 고려해야 한다. ‘성장’의 목표는 ‘성장 그 자체’일 수 없다. 성장은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 인간의 행복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삶의 개선이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생태계의 보호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도구’가 목표로 환원되어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면 ‘성장’은 결국 소수의 수중에 자본을 집중시키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부의 불평등을 확산시킬 뿐이다. ‘성장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탈성장’이 결코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한 이상을 꿈꿀 수 있고 우리를 위협하는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6. 저자는 ‘탈성장’을 통해 추구하는 ‘포스트 자본주의’ 체제하의 경제를 다음과 같이 상상한다. “사람들이 유용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경제,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정보에 기반하여 상품을 선택 구입하는 경제, 사람들이 노동력에 대해 공정하게 보상받는 경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경제, 화폐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사이를 순환하는 경제, 혁신으로 더 좋고 오래가는 제품을 만들고 생태계 압력을 줄이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인간복지를 향상시키는 경제, 경제가 의지하는 생태계의 건강을 무시하지 않고 응답하는 경제” 포스트 자본주의는 만들어진 욕구가 아닌 필요에 의해 운영되며 인간만이 아닌 비인간적 존재들과의 공존과 연대를 통한 지구시스템을 고려하는 일종의 ‘애니미즘’적 태도를 중시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구체적인 실천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어쩌면 대멸종으로 가고있는 지구의 심각한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첫댓글 * 성장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폐기물을 만들어낸다. 지구의 ‘정상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을 파괴하는 것이다.*
ㅡ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보이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