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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마음으로
찾아 주는 친구
늘 첫 통화음은 같다.
뭐`~~해?
연락할 참이었어
이런 식 대화가 열린다
곧 행장을 차리고
나선다
승강장 늘 그 자리다
철마의 굉음이 들리면
지금 출발~ 적는다
여섯 번째 문이 열리면
이동식
철계단을 타고 오른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나무아래 마중 온
우정에게 미소로 답한다.
잠시 손을 맞잡고
흔든 후 풀고
걸어 도착한 밥 집
젓가락을 이용하여
보리밥, 야채, 고추장, 참기름
휘적휘적 비벼 삼킨다
4월 봄잔치가 끝 물인 숲
각시둥굴레가 곱게 핀
곳을 찾아 횡단할 계획이다
숲 앞잡이가 선행이다.
수직과 수평이 공평하지
않는 비율이 산이라면
활엽수 그늘이 좋은
4부 등고선 수평활 대
수평이 평이롭다
선택한 오름 형태의 길을 올라서니 종전과 다른 아름다운 숲이 다가섰다. 멀고 가까운 거리감이 느껴지는 원근, 생생함이 매력적이다 터널을 근사하게 정렬 짓고 있는 풀과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여름을 향해 달음박질을 발견하자 내 안에 난마처럼 얽힌 일들이 질서가 잡혀가는 것을 느꼈다.. 좋아하는 자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배가 아니라 생태의 한 점으로 녹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이 감정에 몰입하게 되면 떠오르는 물질이 있다. 바로 소금이다. 간을 맞추는 능력도 좋아하지만 내가 사모하는 이유는 형태적 겸손한 진실 때문이다. 완전한 겸손을 지닌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 인 것이다. 어떤 환경에 갖다 놓아도 물과 섞이면 흔적도 없이 녹아들며 간의 균형을 잡아준다. 그리고 부패를 막아주는 힘도 있다.. 심지어 참기름도 향을 뽐내고 마늘과 고춧가루도 흔적을 남기는데.... 소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소금을 생각의 스승으로 섬기기 시작한 것은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뜻을 얻은 곳은 달이 가득 찬 滿月庵 너머 望月寺 계곡에서 단초를 얻었다.
사소한 시작에서 반복되며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을 번뇌라 한다. 번뇌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아에 근거를 두고 집착이 만드는 괴로움이다. 무언가 자꾸 비교하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복기하며 ,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앞날에 대한 의문 등에 대한 집착이 번뇌를 불러 모으며 삶의 시간을 소모키는 것이다. 이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맑은 지혜뿐이다. 번뇌가 마음에 들불처럼 퍼져 나갔던 시기가 있었다. 미천한 지혜로 방패 할 수 없을 때 산에 오르고 바윗길을 오르고 올랐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극복과 집중력에게 유혹당한 결과가 자연스럽게 빗어낸 일이다.
손 둘, 발 둘 그리고 육감이 일체를 이루며 극복해 나가는 행위가 바로 암벽등반이다. 손으로 잡고 발로 딛는다. 이동하려면 4점 중 손이든 발이든 한 점을 이동 수단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리고 신체의 균형이 무너지면 추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삼각은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최소한의 안전한 균형은 삼각형태다. 두 손으로 잡고 한 발로 딛고 서면 균형은 유지된다, 순간의 이동 동작은 두 발로 지탱하고 양손 중 우측 손으로 바위면 상단에 잡을 만한 것(이것을 hold라 한다)을 찾아낸 후 움켜 잡는 순간 양발 중 한 발도 홀드로 사용했던 위치로 이동시켜 안전하게 균형을 확보해 가며 오르는 방식이 자유등반이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안전한 균형과의 싸움이기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극복은 바로 클라이머에게 또는 등반가에게 상징적인 자유의 개념이다. 오만이 그 틈을 파고들면 곧바로 재앙이 닥친다.
도봉산 선인봉, 주봉 등은 직벽 올라야 하는 암장이다. 개인적으로 삼각산 인수봉은 모성적 바위라 하였고 선인봉은 부성적 암장이라 생각하며 올랐었다. 연휴나 방학 때는 산중 생활이 길어졌다. 선인봉 표범길을 끝 낸 후 볼트에 카라비너를 걸고 자일을 통과시킨 후 테라스(terrace)까지 연결되는 슬랩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고도와 직벽의 영향으로 공포감을 몰고 오지만 느낄 겨룰 이 없다,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테라스에 도착하자 동안 숨 조절까지 긴장 안에 숨기고 올랐던 숨을 몰아내고 깊고 긴 숨을 여러 차례 마시고 다시 뺃어내었다. 이완이 주는 편안함은 극복 후에 얻는 기쁨이다. 그리고 볼트에 안전확보 줄을 걸어 놓고 후 등자인 자일파트너에게 신호를 보내 출발하라 알렸다. 자일을 조금씩 미세하게 후 등자의 움직임에 맞춰 감각으로 나의 확보줄 위에 가지런히 살려나갔다. 드디어 후 등자의 모자 부분이 일출 해처럼 바위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후 등자는 능숙하게 테라스로 올라섰다. 테라스에 머물며 행동식과 물을 나누고 머물렀다. 수락과 불암산 아래로 펼쳐진 마들평야와 중랑천과 노원이 가깝게 다가온다. 미아리 너머 이 길은 원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중랑천이 시작되는 갈대숲에 호랑이들 숨어 진을 치고 있다 인간을 습격하는 경우가 많아 많은 원을 세워 사람들을 쉬고 먹게 한 후 사람을 모아 다시 길을 떠나게 한 지역이라 원이 많았던 지역이다. 노원, 다락원, 장수원, 특히 호원이란 지명은 호랑이 출몰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잠시 휴식 후 40m 크랙(crack)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거의 직벽이다 바위면에 갈라진 틈을 이용하여 오르는데 담력과 손 힘이 좋아야 한다. 상단으로 오르수록 수직에서 서서히 바위면 누워 오르기가 편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20m 정도의 굴뚝 즉 침니(chimney)가 나온다, 굴뚝같은 공간으로 들어 가 양다리를 앞과 뒤로 나누어 딛고 등은 벽에 붙인 후 양손으로 밀며 조금씩 올라가는 등반행위를 해야 하는 곳이 침니구간이다. 이 치니구간이 끝나면 선인봉 정상이다. 정상에서 옆에 있는 만장봉으로 횡단( traverse) 한 후 하강하면 암벽등반은 종료된다. 아니면 테라스까지 등반한 후 그곳에서 하강하는 방법도 있는데 대부분 이곳에서 하강을 시도한다. 선인봉 암벽등반을 끝낸 후 만월암을 넘어 망월사 계곡으로 자리를 옮겼다. 滿月이나 望月은 가득 찬 달을 의미하는 단어다. 보름달을 말하는 것이다. 만월에서 또는 망월에서 보는 보름달은 넉넉하고 가득 찬 모습으로 다가온다, 암자와 절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수궁이 될 정도다. 보름달은 불가에서 소원성취를 의미한다. 완전한 해탈의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달이 들어가는 절 이름이 많은 이유다.
두꺼비 바위는 인공암장을 하기 좋은 장소다, 그리고 그 아래 담(潭)이 아름답게 형성되어 camp side 로서 최적의 장소였다. 당시에는 야영을 하는데 제약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곳에서 오버행(over hang)에 매달려 인공등반을 끝내고 나면 늘어졌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큰 암벽등반이었다. 어느 학승과 만남이 이루어졌고 마음공부에 좋은 법구경을 비롯하여야 여러 권의 책을 전해 받게 된다 그리고 교류가 이어졌었다. 훗날 자리를 설악산 비선대 위 금강굴로 거처를 옮기신 덕분에 외설악에 갈 때마다 등반 후 비선대 산장에 머물며 교류를 이어갔었다 학승과의 인연에서 채굴된 법구경을 통해 익힌
의도가 모든 경험을 만든다.
의도가 먼저이고
모든 것은 의도로 이루어진다.
만약
맑은 의도로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행복이 그를 따른다.
결코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위의 경이 마음의 표준이 되는 정경(正經)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늘 찾은 숲은 90여 년 전 인공조림으로 이루어진 숲이다. 당시에 인공조림의 목적은 경제림(經濟林)이 목적이었다. 탄광갱목을 비롯하여 건축 시 발판용 비계목으로 활용도가 많았기 대문이었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낙엽송이라 부른다. 일본이 원산지로 산속에 분포한다. 키는 30m까지 자라며 5월에 가지 끝에 암, 수꽃이 동시에 피며 노란색은 수꽃이고 담홍색으로 피는 꽃은 암꽃이다. 일제에 의하여 1914-27년 사이 우리 강산에 들어와 심어지기 시작하였다. 5년 전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극상림을 대하는 듯한 기쁨을 얻을 수 있었는데 2-3년 사이 여름마다 폭풍이 몰아치면 속절없이 꺾이고 뿌리째 쓰러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일부러 솎아낸 것처럼 볼품없이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강관 파이프가 비계로 대신하고 줄어드는 탄광갱목의 수요로 인하여 경제림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어 벌목이 이루어지지 않아 주어진 수인 80-90년을 다한 후 쓰러져 가고 있는 중이다. 벌써 낙엽송 아래로 같은 소나무과지만 다른 종의 개체가 발아되고 있어 5년 안에 다른 모습의 숲이 조성될 것이라 예견된다. 그날을 기대해 보며 고도를 높여야 하는 등고선에 도착하였다. 참 가파른 곳과 마주친 후 호흡을 가다듬고 서 있었다. 올해부터 조금씩 틀어지는 균형감각과 호흡의 맥도 늘어지는 것을 보아 가파름을 이겨내는 일은 벅차 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으면 앉은뱅이 신세이니.... 이를 염려하며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 걷지 않는 자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난마처럼 얽힌 나무뿌리들이 거추장스럽다. 잘못 딛고 서면 균형 잡기가 어렵다. 오히려 우측으로 터진 기슭이 안전해 보였다. 우회하여 협곡 같은 지형을 빌려 숨을 몰아 쉬며 등고선 두줄을 넘어서자 숲 속의 빈터가 나왔다. 심장이 거칠게 뜀박질이다. 그만큼 산소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잠시 서서 양팔을 벌리고 두발의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체조 하며 심호흡으로 안정을 찾았다. 쓰러진 고목, 누군가의 손에 의하여 장의자처럼 놓인 것으로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긴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곳이다. 야채 크래커와 커피를 따라 마시며 잣나무에 기대어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친구의 요청을 기준으로 사진을 몇 장 찍어 전송해 주고 자화상으로 삼을 사진을 스스로 찍었다. 내가 나를 찍는다?. 참 어색하지만 종종 그렇게 찍어 온지가 참 오래되었다. 거울 또는 그이와의 반사경을 이용하여 카메라로 찍었지만 요즈음은 스마트폰 덕분에 직접 빛의 방향을 선택하고 구도를 잡은 후 손쉽게 찍는 편이다. 시계를 보니 움직일 시간이다. 모든 일정에는 Time Schedule이 뒤 따라야 제대로 된 일정이 되는 것이다. 잣나무 숲을 벗어나면 밤나무 숲이 이어진다.
이어서 오동나무도 꽃을 흔들며 우리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 딸과 오동나무,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한그루를 심었다는데 그 이유는 시집보낼 때 장롱 만들어 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습기에 강하고 변형되지 않고 결이 고와 여러 용처로 애용되며 진가를 밝히 하던 재목이다. 특히 거문고등 악기를 제작하는데 좋은 나무다. 또한 벽오동이란 나무도 있다. 이름만으로는 같은 과의 나무라고 알기 쉽지만 전혀 다른 나무다. 오동나무는 베어내기 위하여 심는 나무지만 벽오동은 뚜렷한 목적에 의하여 심는 나무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옛 노래에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인데 전설의 새, 봉황은 벽오동에만 둥지를 틀고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한다. 봉황이 우리들 곁으로 날아들면 바로 그날이 바로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는 날이라 한다. 그날을 기다리며 심는 나무가 바로 벽오동이다. 오동나무가 4월 말에서 5월 초순경 꽃을 피운다면 벽오동은 6월이 되어야 꽃이 핀다. 색도 다르다. 오동은 보랏빛이고 벽오동은 황록색 꽃이 핀다.
어제 내린 비의 영향인지 작은 개울마다 맑은 물이 소담하게 담긴 담(潭)이 졸졸거리며 이어졌다. 백개의 담이 있다 하여 붙여진 백담계곡 내설악 절경이 겹쳐졌다. 자연의 모습은 사람의 이름을 짓고 건물의 이름도 지어 놓는다. 자연의 닮으려는 의도이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 행동은 다른 것이 인간이다. 자연을 닮으려는 힘 보다 지배하려는 의도가 많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소담 옆으로 만들어진 징검다리를 넘어서자 풀 사이로 각시 얼레지가 보였다. 얼레지 꽃을 보기 위하여 잎을 뒤집어 보니 아직 미완의 봉오리가 줄줄이 달려 있었다. 초롱꽃도 잎 뒤로 숨지만 얼레지꽃도 잎 뒤로 숨어 맺고 핀다. 그래서 각시라는 문이 붙는 모양이다 아주 천천히 잎을 놓아주고 다시 걸어 나갔다. 습관대로 얼마나 걸었을까? 확인해 보니 14,600 보였다. 가슴과 등줄기가 축축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아 틀림없는 숫자였다. 거의 목표지점에 도달한 위치에서 잠시 섰다. 계곡 사이로 펼쳐진 풍광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해의 다락논처럼 층층 펼쳐진 밭과 그 아래 꽃 행렬과 계곡에 모래와 돌멩이로 담을 만들어 물고기 산란처를 만들어 놓고 산란을 돕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인공수초들이 너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반대편에는 지형과 지세에 따라 남향으로 산기슭이 흐르듯 펼쳐진 건물의 이음과 이음 그리고 그 이음을 감싸고 있는 꽃무리들, 그것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아름다움을 펼쳐 놓은 극치였다. 가만가만 걸어 내려가 눈높이로 다시 확인해 보니 감동이 몰려왔다. 큰 영웅을 모시고 있다는 대웅전(大雄殿)이 있는 불가였다. 보는 것으로 감동이 느껴진다면 그 속도 감동이라는 확신은 배반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 너무 보기 좋은 모습이 나의 모든 것을 정화시켜 주고 있었다. 원점회귀를 하려면은 버스를 이용해야 했지만 걷기로 하고 걸어 나갔다. 봄 꽃들은 산과 들을 지나 담장 안 까지 넘어와 만개를 이루고 있었다. 아~~ 봄이 완성되는 5월이 펼쳐지는구나 하는 순간 어느새 우리의 걸음은 원점에 와 있었다. 다시 손을 맞잡고 흔든 후 서로의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갔다. 사실 우린 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목적에 대하여 완성을 목마르게 요구하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이미 진행된 완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 적이 많다. 그 선을 넘으면 너무 과하여 넘치는 것 순간부터 심각함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집착과 탐욕이 억누루고 있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귀가를 서두르며 하나의 깨달음에 대한 견해가 봄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정신은 맑지만 몸은 피곤해 지기 시작하였다. 시작과 동시에 조금씩 변성이 생기고 그 변성을 원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탈이다. 탈이 깊어지면 침묵이다. 이 진리를 잊고 사는 것이 사람들의 어리석움이다. 미세먼지들이 바람결에 흩어졌는지 하늘이 조금 맑아졌다. 향기가 깊고 너르게 다가온다. 꽃향기다. 언제 마주쳐도 반갑고 기쁘고 상쾌해 꽃을 닮고 싶었지만 늘 포기하고 살았다. 연약하게 느껴져 여성형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소나무를 선택했었다. 추사선생의 영향도 있었지만 서북주능 끝청에서 발견한 우리나라 고유의 소나무 귀품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落落長松 즉 기개와 지조가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소나무가 지니고 있는 쓸모가 좋았기 때문이었고 늘 소나무가 지닌 청정한 향기가 늘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또 하루가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한 때는 하루가 활기차고 소중한 시기가 길게 있었다. 시간은 때에 따라 다 다른 성질로 다가 온다. 지금은 염치없이 고요속으로 붙잡아 두려는 시기일 뿐이다. 점점 철이 없어지는 사고(思考)인 것 같다. 무엇을 헤아리고 궁리한다는 것
..... 생각을 접는다. 쉬고 싶어서다.
https://youtu.be/DHQsPNxdzHQ?si=_xepviWFf4TjAW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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