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4장 6-13절. 너희는 배부르며 왕노릇 하는구나
1. 서언
(1) 4장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직분자란 교인들의 소유물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밝히면서, 그러기 때문에 직분자란 교인에게가 아닌 ‘그리스도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 그런데, 이제 사도 바울은 4장 6-13절에서 어조(語調)를 강한 힐책조로 바꾸어서 그리스도의 종인 교직자들( 바울, 아불로 등)을 마치 자기 교인들의 일꾼인 양 판단하고 있는 교인들의 교만한 자세를 여지없이 책망하고 있습니다.
6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these things, brethren, I have figuratively applied to myself and Apollos for your sakes, so that in us you may learn not to exceed what is written, so that no one of you will become arrogant in behalf of one against the other.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αῦτα δέ, ἀδελφοί, μετεσχημάτισα εἰς ἐμαυτὸν καὶ Ἀπολλῶν δι’ ὑμᾶς,
this things now, brothers, I adapted to myself and Apollos on account of you
직역하면, ‘형제들아, 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들을 나와 아볼로에게 적용했다’는 뜻입니다.
‘본을 보였으니’(μετεσχημάτισα)는 부정과거로서(I applied) 과거에 본을 확실히 보인 사실을 가리키며, 원형(μετασχηματίζω)은 ‘함께’(μετά)란 단어와 ‘모양’(σχῆμα)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모양을 바꾸다, 적용하다’(change in fashion, adap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ἵνα ἐν ἡμῖν μάθητε τό, Μὴ ὑπὲρ ἃ γέγραπται,
so that in us you may learn, not beyond what has been written
직역하면 ‘이는 기록된 것을 넘어가지 말라는 것을 너희가 우리 안에서 배우게 하려 함이라’는 뜻입니다.
‘기록된’(γέγραπται)은 완료 수동태로서(has been written) 이미 기록된 것을 가리키고, ‘배우게 하려’(μάθητε)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may learn) 확실하게 배우게 하려는 것을 뜻합니다.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ἵνα μὴ εἷς ὑπὲρ τοῦ ἑνὸς φυσιοῦσθε κατὰ τοῦ ἑτέρου.
so that not one for one you be put off over the other
직역하면 ‘이는 너희들이 서로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교만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교만하지’(φυσιοῦσθε)는 현재 수동태로서(you be put off) 교만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φυσιόω)은 ‘자랑하다’( puff up)는 뜻이고, 수동태는 ‘교만하다’(am puffed up, arrogant, proud)는 뜻입니다.
1. ‘이 일’이란 ‘그리스도의 일군인 청지기사역’(4:1-5)을 가리킵니다.
2. ‘본을 보였노니’란 한글 번역은 ‘모범을 보였다’는 뜻으로 오해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예증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 모든 일을 아볼로와 나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했노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새번역: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나와 아볼로에게 적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공동번역: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지금까지 이 모든 일을 아폴로와 나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I have used Apollos and myself to illustrate(아볼로와 나를 예로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3.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의 분쟁 사태는 역사상 많고 많은 교회 분쟁 사건에 대한 표준적인 해결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해결책이란 한 마디로 직분자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고, 각자가 주님 앞에 판단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교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직 주님 앞에서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4.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앞서 기록한 교훈의 한계를 넘지 말고 분수 지키는 것을 배우라’는 뜻입니다.
5.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1) ‘서로 대적하여’ 란 말씀은 ‘자기는 추켜세우고 다른 사람은 깔본다’는 뜻입니다.
(2)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바울파와 아볼로파는 서로 상대편은 무식쟁이나 마귀처럼 깎아내리고, 자기 편은 지혜자나 천사처럼 높였던 것입니다.
(3) 교회 역사를 볼 때, 이처럼 서로 대적하는 일은 유명한 지도자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같은 종교 개혁자들끼리도 루터는 쯔빙글리를 불신자라고 욕했고, 쯔빙글리는 루터를 카톨릭의 에크보다도 나쁜 사람이라고 욕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처럼 교회에서 서로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교만한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7절.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o regards you as superior? What do you have that you did not receive? And if you did receive it, why do you boast as if you had not received it?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
τίς γάρ σε διακρίνει;
who for you makes different?
직역하면 ‘누가 너를 구별하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즉 ‘구별하였느냐’(διακρίνει)는 실상 현재형으로서(makes different) 현재 구별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τί δὲ ἔχεις ὃ οὐκ ἔλαβες;
what now have you which not you did receive?
직역하면 ‘네가 받지 않은 무엇을 네가 가지고 있느냐’는 뜻인데, 한글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받지 아니한’에서 동사(ἔλαβες)는 부정과거로서(you did receive) 과거에 확실히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네가 가지고 있느냐’(ἔχεις)는 현재형으로서(have you)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네가 받았은즉
εἰ δὲ καὶ ἔλαβες,
if now also you did receive,
직역하면 ‘만일 네가 받았다면’이란 뜻입니다.
‘받았은즉’(ἔλαβες)은 부정과거로서(you did receive) 과거에 확실히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τί καυχᾶσαι ὡς μὴ λαβών;
why boast you as not having received?
‘받지 아니한’에서 동사(λαβώ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eceived) 확실히 받지 아니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자랑하느냐’(καυχᾶσαι)는 현재형으로서(boast you) 현재 자랑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누가 너를 상대방보다 더 우수한 사람으로 구별시켜 주었느냐’는 뜻입니다.
이것은 당파를 짓는 인간들 자신이 스스로 교만한 자세를 가지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고 상대편을 멸시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벧전 5:5, 약 4:6)
2.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1) “혹시 네게 자랑할 만한 점 예컨대, 아볼로파처럼 성경적 지식이나 우수한 웅변술 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너희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냐?”라는 뜻입니다.
(2) 우리의 가진 건강, 우리의 가진 두뇌, 우리의 가진 재물 얻을 능력, 우리의 가진 가정, 우리의 가진 생명, 우리의 가진 구원, 하나님 자녀된 특권, 천국 구원에 대한 보장, 성령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신앙이 좋은 사람이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서,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감격하였습니다(삼하 7장 18절)
시편 116편에서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미가라는 선지자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라고 했습니다. (미가 6:6-7)
누가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인은 죄 용서함을 받고서, 생명과도 같은 향유를 주님 발에 부어드렸습니다.
3.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1) 아불로파가 성경 지식과 뛰어난 웅변술을 자랑하는 것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2) 우리도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할 때, 사람들이 칭찬하더라도, 주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하면서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공로라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8절.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 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ou are already filled, you have already become rich, you have become kings without us; and indeed, I wish that you had become kings so that we also might reign with you.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ἤδη κεκορεσμένοι ἐστέ·
already having satiated you are
직역하면 ‘이미 너희가 배부른 상태에 처해 있으며’란 뜻입니다.
‘너희가 배부르며’(κεκορεσμένοι ἐστέ)는 두 개의 동사로 되어 있는데, 앞의 동사(κεκορεσμένοι)는 완료분사로서(having satiated) 이미 배부른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하고, 뒤의 동사(ἐστέ)는 현재형으로서(you are) 이미 배부른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미 부요 하며
ἤδη ἐπλουτήσατε·
already you become rich
‘부요하며’(ἐπλουτή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become rich) 이미 확실하게 부요하게 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χωρὶς ἡμῶν ἐβασιλεύσατε·
apart from us you reigned
‘왕노릇 하였도다’(ἐβασιλε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reigned) 과거에 확실히 왕 노릇 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καὶ ὄφελόν γε ἐβασιλεύσατε,
and I wish that really you did reign
직역하면 ‘너희가 참으로 왕노릇 하기를’이란 뜻입니다.
두 번째 단어(ὄφελόν)는 감탄사이고 동사가 아닙니다.
‘왕노릇 하기를’(ἐβασιλεύσατε)은 부정과거로서(you did reign) 확실히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ἵνα καὶ ἡμεῖς ὑμῖν συνβασιλεύσωμεν.
so that also we you we might reign with
‘우리가’(ἡμεῖς:w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함께 왕노릇 하기’(συνβασιλεύσωμε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might reign with) 확실히 함께 왕 노릇 하기를 바라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1.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은 벌써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한 것처럼 이미 배부르고, 부요 하며, 남을 지배하는 왕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여기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는데, 이처럼 비꼬는 투의 말과 역설( sarcasm and irony)은 바울 서신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마음이 격한 가운데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왕 노릇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조들처럼 이 세상은 나그네 인생인 줄로 알고, 그날이 가까울수록 하늘에 있는 본향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거 하면서,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히 11:13-16)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히 11:25).
바울은 자기가 담대히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고후 5:8)
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세상에서 상을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3)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직분자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칭찬과 상급을 다 받을 생각을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면서,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을 생각을 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서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새운 공이 있더라도 주님의 은혜인 줄로 알고, 자신을 낮추고 주님만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욱 사람들의 마음에 존경심이 생기고, 주님의 교회는 평안히 성장할 것입니다.
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1) 성도들이 참으로 왕 노릇 할 때는 종말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이 지금 왕 노릇 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2) 다음에 보겠지만, 바울 사도는 오히려 만물의 찌끼같이 멸시를 당하면서 주의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찬송가 355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처럼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는 마음 자세로 충성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9절.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끝으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think, God has exhibited us apostles last of all, as men condemned to death; because we have become a spectacle to the world, both to angels and to men.
내가 생각건대
δοκῶ γάρ,
I think for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는 뜻입니다.
‘생각건대’(δοκῶ)는 현재형입니다(I think).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끝으머리에 두셨으매,
ὁ Θεὸς ἡμᾶς τοὺς ἀποστόλους ἐσχάτους ἀπέδειξεν
the God us the apostles last exhibited
‘두셨으매’(ἀπέδειξεν)는 부정과거로서(exhibited) 확실하게 두신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ἀποδείκνυμι)은 ‘증거를 보이다, 드러내보이다, 공포하다’(show by proof, demonstrate, proclaim)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ὡς ἐπιθανατίους,
as appointed to death
‘죽이기로 작정한 자’(ἐπιθανατίους)란 단어는 ‘위에’라는 접두어와 ‘죽음’( θάνατος)이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우리는 세계 --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ὅτι θέατρον ἐγενήθημεν τῷ κόσμῳ
because spectacle we have become to the world
‘되었노라’(ἐγενήθημε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 have become) 확실하게 구경거리가 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곧 천사와 사람에게
καὶ ἀγγέλοις καὶ ἀνθρώποις.
and angels and to men
1. 고대 헬라 시대에 가장 악한 죄수들은 사형을 시킬 때, 원형극장에서 사람들에게 구경시킨 다음에 처형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지만, 아직 이 세상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므로, 이 세상에서는 가장 천한 죄수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비천한 모습은 왕인 것처럼 교만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고린도 교회 분쟁자들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보여주면서, 왕처럼 행세하는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바울 사도의 풍자적인, 비꼬는 투의 표현( sarcasm)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2.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전 우주를 하나의 원형극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0절.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e are fools for Christ's sake, but you are prudent in Christ; we are weak, but you are strong; you are distinguished, but we are without honor.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ἡμεῖς μωροὶ διὰ Χριστόν,
we fools on account of Christ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ὑμεῖς δὲ φρόνιμοι ἐν Χριστῷ·
you however wise in Christ
우리는 약하나
ἡμεῖς ἀσθενεῖς,
we week
너희는 강하고
ὑμεῖς δὲ ἰσχυροί·
you however strong
너희는 존귀하나
ὑμεῖς ἔνδοξοι,
you honored
우리는 비천하여
ἡμεῖς δὲ ἄτιμοι.
we but without honor
동사는 없으나 좋은 번역입니다.
1. 역시 가혹한 풍자적인 표현(sarcasm)입니다.
본 절에는 이와 같은 풍자적 대조가 세 번 나옴으로써, 의미가 아주 강조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만 전하고 겸손했기 때문에, 세상적으로는 미련하고 천한 사람 같이 되었고, 아볼로파 신자들은 십자가의 도(道)마저도 철학적으로 이해하면서 지혜자로 자처했던 것입니다.
2.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바울의 처신법(處身法)은 대적자에게 마주 대항하지 않고, 차라리 참고 수모를 당하는 처세법이었기 때문에, 세상적으로는 나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분쟁자들은 상대방과 대항하여 이기기 위해서 세속적으로 강한 모습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3.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고린도 교회 분쟁자들은 자신이 왕인 것처럼 처신했으나, 바울은 만물의 찌끼처럼 비천한 대접을 받아가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11절.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o this present hour we are both hungry and thirsty, and are poorly clothed, and are roughly treated, and are homeless;
바로 이 시간까지
ἄχρι τῆς ἄρτι ὥρας
as far as the present hour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καὶ πεινῶμεν καὶ διψῶμεν
both we hunger and we thirst
‘우리가 주리고’(πεινῶ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hunger) 우리가 현재 주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목마르며’(διψῶμεν)도 현재형으로서(we thirst) 현재 목마른 상태를 가리킵니다.
헐벗고,
καὶ γυμνιτεύομεν
and we are poorly clothed
‘헐벗고’(γυμνιτεύομεν)도 현재형으로서(we are poorly clothed) 현재 헐벗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매맞으며,
καὶ κολαφιζόμεθα
and we are roughly treated
‘매 맞으며’(κολαφιζόμεθα)는 현재 수동태로서(we are roughly treated) 현재 매 맞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정처가 없고
καὶ ἀστατοῦμεν
and we wander homeless
‘정처가 없고’(ἀστατοῦμεν)도 현재형으로서(we wander homeless) 현재 정처가 없이 방황하면서 지내는 모습을 가리키며, 이 단어는 부정의 전치사(ἀ)와 ‘서 있다’는 단어(ἵστημι)의 합성어입니다.
1. 사도와 다른 교인을 판단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질책하는 바울의 비꼬는 투의 말씀(sarcasm)은 이제 한 단계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왕처럼 처신하면서,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바울은 이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바로 이 시간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본서를 AD 55년경 에베소에서 쓰고 있었는데,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당시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전도하면서, 아데미 숭배자들의 폭동으로 말미암아 죽을 뻔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12절.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e toil, working with our own hands; when we are reviled, we bless; when we are persecuted, we endure;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καὶ κοπιῶμεν, ἐργαζόμενοι ταῖς ἰδίαις χερσίν·
and we toil, working with the own hands
직역하면 ‘또 우리 자신의 손들로써 일하면서 우리가 수고하며’란 뜻입니다.
‘수고하여’(κοπιῶ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toil) 현재 수고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일을 하며’(ἐργαζόμενοι)는 현재분사로서(working) 현재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λοιδορούμενοι, εὐλογοῦμεν,
being reviled, we bless
직역하면 ‘모욕을 당하면서 우리가 축복하고’란 뜻입니다.
‘모욕을 당한즉’(λοιδορούμενοι)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reviled) 현재 모욕을 당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축복하고’(εὐλογ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bless) 현재 우리가 축복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박해를 받은즉 참고
διωκόμενοι, ἀνεχόμεθα,
being persecuted, we endure
직역하면 ‘박해를 받으면서 우리가 참고’란 뜻입니다.
‘박해를 받은즉’(being persecuted)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persecuted) 현재 박해를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참고’(ἀνεχόμεθα)는 현재형으로서(we endure) 현재 우리가 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3절.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we are slandered, we try to conciliate; we have become as the scum of the world, the dregs of all things, even until now.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δυσφημούμενοι, παρακαλοῦμεν·
being slandered, we entreat
직역하면 ‘비방을 받으면서, 우리가 권면하니’란 뜻입니다.
‘비방을 받은즉’(δυσφημούμενοι)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slandered) 현재 비방을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권면하니’(παρακαλ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entreat) 현재 권면하면서 간청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것과--같이 되었도다.
ὡς περικαθάρματα τοῦ κόσμου ἐγενήθημεν,
as scum of the world we became
‘되었도다’(ἐγενήθημε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 became) 아주 완전히 세상의 더러운 것 같이 되어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지금까지 -- 만물의 찌꺼기
πάντων περίψημα, ἕως ἄρτι.
of all dregs, until now
1.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바울이 천막 장사를 하면서 전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행 18:3 등).
그런데, 당시에 헬라인들은(고린도교인들도 헬라인이었음) 육체노동을 천시했으므로, 손으로 천막을 만들어 판매하며 전도하는 사도 바울도 천시했을 것입니다.
2.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여기에 나오는 동사들은 모두 현재분사형으로서, “모욕을 당하면서 축복하고, 핍박을 당하면서 참고, 비방을 당하면서 권면한다”는 뜻입니다.
즉, 의미가 더욱 실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인종(忍從)적인 처신법은 고린도 교인들의 왕자처럼 군림하는 처신법과 대조됩니다.
그런데, 고린도인들을 포함한 헬라인들은 기가 충만하고, 호연지기가 있는 태도를 좋아하고, 사도 바울 같은 굴종적 처신법을 멸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0장 25-28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지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3.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여기서 ‘더러운 것’(페리-카타르마타, περικαθαρματα)은 실내를 청소해서 모은 ‘쓰레기’를 뜻하고, ‘찌끼’( 페립쎄마, περιψημα)는 사람의 몸이나 물건에서 밀어내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남에게 주는 최대의 모욕을 ‘페리-카타르마타’(περικαθαρματα), 즉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했답니다.
또한, 고대 헬라 사회에서는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바다에 집어 던지는 극악한 사형수를 ‘페립쎄마’(περιψημα), 즉 ‘만물의 찌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섬기면서 복음 사역을 했는가를 여실히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남을 지배하려는 자세로 살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4. 결론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세속적인 처세법과,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섬기려는 처세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섬기는 자세만 가지면, 바보 취급을 받고, 손해만 보는 것 같이 생각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과 같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구경거리가 되고, 세상의 쓰레기와 같고 만물의 찌끼 같은 성도들을 우리 하나님만은 알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만 바라보지 말고, 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처럼, 바울처럼 아름답게 섬겨가는 진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히려 주님이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유한 자가 잘 된다고 했고, 늘 꾸어주고 베푸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37:11, 26)
5.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대로 저희들은 주의 몸 된 교회에서 왕자처럼 군림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섬기는 성도들이 다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봉사로 말미암아 몸 된 교회가 부흥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가 한층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게 해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