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문방구점
ㅁㅁ국민학교는 교문을 새로 개설된 4차선 도로변으로 옮겼다. 새 도로는 폭이 훨씬 넓고 뻥뚫린 것처럼 훤하고 시원해보였다. 거기에 새 도로에 맞게 대흥교를 4차선으로 넓히고 새로 놓아 건너다니는 이들이 인도가 있는 다리에서 대전천을 내려다보며 좋아했다. 기존의 좁은 도로를 확장하고 새로 포장을 하여 깨끗해 보이니 낡은 학교이지만 훨씬 돋보였다.
그렇다 새로 멋진 도로를 개설해줬는데 학교 담벼락이 도로를 외면하고 차단하고 있는 모양새도 그다지 좋은 전경은 아니었다. 또한 복잡하게 붐비는 시장과 바로 옆에 있는 큰 교회에다가 등하교 학생들로 넘치는 교문은, 흐름이 원활한 위치로 옯겨주는 방법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순리적 해법이었다.
교문설주 두 기둥을 크고 폭 넓게 새로 세우고 철로된 새 교문을 달았다.
그리고 한자 교명판에서 멋지게 한글로 된 대전원동국민학교 라고 새겨진 8자 교명판을 교문설주에 박았다.
그러나 문방구점은 도로 확장 때에 교문 건너편에 있는 기존 건물들을 헐었기 때문에 학교 교문 앞으로 옮겨올 만한 마땅한 건물이 없었다. 아무튼 4차선 도로를 아이들이 번거롭게 건너다니는 것도 위험한 일이어서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또한 굳이 옮기지 않아도 아쉬운 건 우리들이니까 오라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변함 없이 단골 문방구점엘 잘도 찾아갔다.
특히 문방구점에는 뽑기라는 것이 있어 아이들의 흥미를 더 했다. 달력만한 벽걸이 형태의 곽종이에 풍선을 비롯한 갖가지 상품이 장난감 권총, 작은 피리, 사탕, 하얀 테의 안경, 공작용품 등등이 종이판에 가득 꽂혀있었다.
하단에는 뽑기 번호가 감추어진 손톱만한 동그라미가 빽빽히 나열 되어 있었고 10환을 내고 동그라미를 선택하여 떼어내면 뒷면에 상품 번호가 적혀 있었다. 심지어 꽝이라는 것도 나와 아이들을 헛웃음도 짓게도 하고 어이 없게도 했다. 아무튼 요즘 문방구 앞에 널려있는 여러가지 뽑기상자통만큼이나 당시의 어린이들을 즐겁게 유혹했다
그런 즐거움외에도 우리들이 6년간 문방구점에서 구매한 품목은 대충 아래와 같다.
화판, 크레파스, 크레용, 도화지, 물감, 서예 붓, 그림 붓, 물통, 색종이, 가위, 스케치 북, 습자지, 먹, 먹물, 벼루, 공책, HB연필, 미술연필, 책받침, 칼, 지우개. 필통, 소형 프라스틱 연필깍기, 하얀 종이. 누런 종이, 16절지, 8절지, 켄트지, 주판, 삼각자, 분도기, 콤파스, 30cm 대나무 자, 20cm 투명 프라스틱 자, 모형 시계, 공작용 두꺼운 곽 종이, 2단 망원경, 모자, 모표, 이름표, 교복 단추, 빛나는 일등병 딱지, 반장 뺏찌(badge), 부반장 뺏찌, 압정, 옷핀, 축구공, 고무공, 풍선, 유리구슬, 쇠구슬, 고무줄, 줄넘기, 잠자리채, 공작용 수수깡, 바람개비 재료, 모형비행기 재료, 꼬리연, 방패연 재료, 피구공, 종이 껍질 빨간 색연필, 검은 색연필, 청군 백군 (모자, 빤쓰) , 무쇠 아령, 전과와 수련장, 건전지와 꼬마 전구 등 무려 70여 가지가 넘는 학용품을 사러갔다. 심지어 탱자도 팔아 호기심에 한 번 사서 시큼한 맛도 보았다. 그리고 일식을 관찰한다는 검은 사각유리 조각도 샀다. 이외에도 선생님들이 필요한 등사 잉크, 등사 원지,철필, 철판, 칠판 지우개, 백묵, 적묵, 청묵, 등 기억나지 않는 혹은 모르는 품명도 있겠다.
우리가 눈 뜨면 밀접하게 의존해야할 가지 수가 많은 문방구에서 동아연필과 문화연필이 주종을 이뤘지만 다이아몬드 세 개를 벌려 삼각형 모양의 로고(logo)가 찍힌 미쓰비시 일제 연필과 금빛 잠자리 로고가 찍힌 역시, 일제 톰보우 연필을 사서 쓰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일본은 음(陰)으로 양(陽)으로 한국에 만루에 밀어내기 번트(bunt)식으로 전 분야에 걸쳐 자국 상품의 한국 진출을 도모했다. 이런 방식의 상품 유입은 산업분야와 일상생활에 일본문화의 광범위한 침투를 의미했다. 우린 너무 어려서 2차 세계전쟁에 져 항복하고 망했다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경제 뿐만 아니라 우리들 생활 속에도, 그리고 학용품으로 학교까지 쳐들어 오는 걸 몰랐다.
단지, 우리나라를 삼키고 우리민족을 개돼지, 노예로 핍박하고 취급한 그 일본의 물건을 사서 써야하나 하는 배척감에 내키지 않는 낯설은 손을 놓았다. 일례로 일제 자전거 유입에 3,000리 자전거가 타격을 받아 고전을 했었고 일제 코끼리 전기 밥솥의 유입에 대원 전기 밥솥이 나름 분전을 했었다.
6.25 한국전쟁에서 엄청난 군수용품을 판매하고 경제부흥을 이룬 일본이 힘ㄹ 얻어 다시 경제 침략을 하여 한국을 일본에 종속되는 경제구도를 만들어 내었다. 그 뿌리 깊은 강렬한 여파는 2020년대에 이르러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핵심 분야를 꼭 쥐고 아직도 다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조선 식민지 35년을 포함, 오늘날까지 100년이 넘도록 빨대를 꽂아 한국을 열심히 빨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일본은 대한무역흑자국, 한국은 영원한 대일무역적자국이 되었지.
나이만큼이나 멀어진 문방구 앞을 가끔 지나며 당시, 연필과 잉크와 펜대, 펜촉을 쓰던 때에는 없던 볼펜도 몇 자루사고 빨강, 파랑, 검정색 유성 매직, 카터 칼, A4용지 등도 사 들고 온다. 아, 가끔 어쩌다 액체 투명풀, 딱풀도 필요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