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부부가 서로를 구해주자고 떠난 미국에서 자녀를 낳고, 아이들을 돌봐줄 할머니까지 합세하면서 전개되는 가족이야기가 그 골자이다. 무엇보다 실제 사실에 근거한 각본이라는 점, 드라마 <미나리>는 정 감독의 유년시절 성장기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주가 보통으로 알고 있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그야말로 확 바뀌는 5인 가족은 아칸소 주(Arkansas) 프랭클린 카운티의 오자크(Ozark Mountains)에서 새로 시작하는 삶의 불안정과 도전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가족의 회복력과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자연친화적인 시골에서 커다란 농장을 일구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진하는 아빠와 그의 동반자인 엄마, 그리고 둘의 갈등 속에서 치유제 역할을 하는 막내 아들과 딸, 손자손녀를 위해 만리타향행을 감행한 할머니, 이들의 희망, 기대, 평온, 불안, 동심, 신앙 등의 다양한 감정을 악보에 담아낼 음악을 위해 정 이삭 감독은 작곡가 에밀 모세리(Emile Mosseri)와 손을 맞잡았다. 에밀은 피아니스트이자 가수, 제작자까지 겸비한 신예 유망 작곡가, 그의 애정 어린 스코어는 부드럽고 소소하지만 정말 매력적이다. 온기로 가득해 포근히 마음에 와 닿는 한편, 종종 아주 약간의 불협화음에 대비해 대조를 강조하는 사운드를 생성한 방식이 흥미롭다. 표면적으로는 일종의 작은 행복감을 구현해내지만, 그 배후에는 뭉근한 감동이 있다.
그중 가장 명징하게 오는 음악은 배우 한예리가 한국어로 부른 노래, ‘Rain Song(비의 노래)’라는 자장가와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Wind Song(바람에 바람)’이 있다. 주제가 되는 ‘테마’에 노랫말을 덧붙인 곡으로 두곡 다 매혹적이다. ‘비의 노래’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동심을 불러내는 차분한 곡조가 몽환적인 전자음향효과와 어울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문 리버(Moon River)'의 현실계와 '트윈 픽스(Twin Peaks)'의 몽상계를 교차하는 묘한 감흥을 불러낸다. ‘바람에 바람’은 일정(C-Am-Dm-F-Fm)코드를 반복해 연주하는 어쿠스틱 기타 리듬과 전자음악의 융합이 노래와 함께 대 자연의 농장을 주요무대로 한 극의 정감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영화에서 극의 내러티브적 기재로 사용된 '사랑해'도 정감 넘치긴 마찬가지. 남녀혼성듀오 라나에로스포가 1971년 발표한 노래로 야곱(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가 한국에서 즐겨부른 사랑가다.
영화 전반에 쓰인 음악은 이상의 각 주요 테마에 가사를 넣은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어쿠스틱 기타(Gibson L2)를 통한 자연적인 포크(Folk)와 피아노(Upright Yamaha Piano), 목관악기(Woodwinds), 금관악기(Brass) 등을 통한 클래식(Classic)을 결합해낸 목가적인 악풍이 가장 두드러진다. 거기에 전자악기를 혼용해 시대적 분위기를 강화했다. 구체적으로 1980년대 들어온 코르그 신디사이저(Korg Monopoly Synthesizer)를 이용해 테레민(Theremin) 풍의 음향효과를 낸 것이 그러하다.
스코어의 중심은 ‘Grandma Picked a Good Spot’(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고르셨구나)으로, 전체적으로 클래식 피아노 솔로가 현악으로 뒷받침되며 변주를 통해 극적인 감동과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곡. 대부분의 지시악곡들과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명상적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새 보금자리가 될 하우스트레일러로 가족이 차로 이동하는 동안 영화를 반주하는 ‘Big country’와 다른 한편에서 일정한 화음을 반복해 연주하는 악구가 특징. 스코어에 편성된 주요악기인 피아노와 기타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명징한 선율을 자아내는 ‘Garden of Eden’과 함께 영화의 극적 핵심을 관통하는 음악이다. 작곡가는 몇가지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다른 멜로디와 코드진행을 이용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우우'거리는 여성 허밍 가창이 인상적인 ‘Big country’를 서두로 모세리는 때로 무언의 보컬을 결합해 큰 효과를 낸다. ‘Jacob’s Prayer(야곱의 기도)’와 ‘Paul’s Antiphony’(폴의 교창), ‘Find it Everytime’(매번 찾아내지)는 그 범례. 매우 아름답고 황홀하다. 전자음악은 때로 일종의 최면효과를 만든다. 여러 면에서 음악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를 위한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의 음악을 상기시킨다. <트윈 픽스>(Twin Peaks)처럼 꿈을 듣는 것과 같다. 하이라이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Minari Suite’(미나리 조곡), 피아노와 허밍 보컬을 위한 메인 테마의 정감 넘치는 버전을 들려준다. <미나리>에 쓰인 음악은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감성적 인지를 얻는 독특한 악보로, 영화의 내용적인 일면을 보충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미나리>의 음악은 2021년 제 74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BAFTA)에서 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작곡가 에밀리 모리세는 정이삭 감독과의 공작에서 느낀 소감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미나리에서 이삭 정과 함께 작업한 것은 가장 순수한 협업이었습니다. 아이작은 어린 시절에 대한 멋진 영화를 만들었고,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본능적이고 감정적으로 가득 찬 무언가를 음악적으로 캐릭터화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처음이자 꿈이었던 영화 제작과정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내 음악이 그의 매우 정직하고 민감하며 깊이 시적인 영화에서 안식처를 찾은 것에 감사합니다.”
이삭 정 미나리 감독은 이에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미나리에서 제작이 시작되기 5일 전인 2019년 7월에 에밀이 음악 스케치를 보내 줬습니다. 그는 '저는 두 세계 사이를 매끄럽게 맴돌며, 약간의 불협화음과 투쟁이 있는 악보가 마음에 듭니다.'라고 썼습니다. 작품을 들으면서 나는 그가 이 시적 의도를 완벽하게 포착한 방법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그의 음악은 내가 영화에서 바라던 모든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따뜻함, 마음, 불협화음, 투쟁. 나는 제작 중에 음악을 너무 자주 들었죠. 때문에 영화의 세계에는 음악이 포함되고, 음악의 세계에는 영화가 포함됩니다. 그의 악보에 옮겨낸 뛰어난 음악을 들으면 그가 말한 것처럼 두 세계 사이를 매끄럽게 오가게 될 것입니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01.Intro(도입)
02.Jacob and The Stone(야곱과 돌)
03.Big Country(대 서부)
04.Garden of Eden(에덴 정원)
05.Rain Song (feat. Han Ye-ri)(비의 노래)
06.Grandma Picked A Good Spot(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잡으셨네)
07.Halmeoni(할머니)
08.Jacob‘s Prayer(야곱의 기도)
09.Wind Song (feat. Han Ye-ri)(바람에 바람)
10.Birdslingers(한방날리기)
11.Oklahoma City(오클라호마 시)
12.Minari Suite(미나리 조곡)
13.You’ll Be Happy(행복할 걸세)
14.Paul’s Antiphony(폴의 교창/성가)
15.Find It Every Time(매번 찾아내지)
16.Outro(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