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중심지인 전주. 전주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한옥마을과 푸짐한 전주 한정식, 비빔밥,
국악과 영화의 고장 등 예술과 문화 맛과 멋이 꽃핀 지역이라는 것일게다.
전주한옥마을은 몇백년을 거쳐 조성된 양반들의 집성촌으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한옥마을 입구, 경기전 건너편에는 전라도 순교의 중심이자 고풍스런 건물로 관심을 끄는 전동성당이 있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로마네스크풍의 성당 건물이며 약 20여년동안 천주교 전주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었다. 성당 자체의 분위기도 뛰어난 편이라 영화 촬영이나 웨딩 촬영지로도 자주 이용된다.
이곳에서 약속과 전우치도 촬영했다. 충주 수안보의 성당처럼 이곳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수호 성인으로
삼고 있다. 이 조용한 전동성당에서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한 권상연, 유항검 등 호남지역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했던 순교성지였음이 참 가슴아프다. 전라도는 예전부터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한 민란이 많이 일어났으며 유배와 전란이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100여년의 전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석조기둥과 둥근 돔이 있는 전동성당 예배당의 모습.
전동성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본당이 마련된것은 1891년 즈음이지만 지금과 같은 멋진
성당건물로 탈바꿈한것은 1931년이다. 1908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한 철권통치로 망해가던 시절,
명동성당을 건축했던 프와넬 신부가 설계자로 참여해 성당건축이 시작되었다. 외관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7년 여 만에 완성되었지만 계속 내부와 보강공사를 마쳐 1931년에야 본모습이 드러났다.
성당 건물 하나를 완성하는데 설계를 하고서 무려 23년이나 걸렸다.

전동성당 입구에 있는 마리아와 예수의 석고상은 숭고한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성당 입구에는 한국 최초의 순교터라는 비석이 있다.
천주교란 말도 담지 말아야 했던 조선 정조 때, 서학과 천주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고
처절한 순교를 택했던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풍남문 밖 지금의 성당자리에서 참수당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1889년 전동성당의 초대 신부인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보두네 신부가 들어와 본당이 설립되었지만
당시에는 외국인에 대한 경계와 감시가 눈초리가 매서웠고 역사의 변혁기여서 파란눈의 외국인신부는
늘 눈에 띄는 구경거리였다. 전주로 바로 들어오지는 못했고 전주 인근의 대성리에 머물면서 점차
교세를 퍼트리며 전교를 하였다. 한국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였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정조 대 신해박해로
순교한 지 100년만인 1891년에야 비로소 작은 본당을 이곳에 마련했다.
본당이 들어선지 120년째인 유구한 전통의 성당이다.


둥근 돔의 종탑과 12개의 창문이 있는 성당의 중앙부와 옆면 수호상이 눈에 들어온다.
1957년 전주 중앙성당이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면서 평범한 성당으로 변했지만 순교와 교화의 중심지로
상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81년에는 성당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288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성당의 외형을 보면 중앙부 종탑과 양쪽 계단에 비잔틴 양식의 뾰족한 돔을 올렸고 내부에도 석조 기둥이
줄지어 있는 비잔틴 풍의 모습이 서려 있다. 한국 성당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동양적인 곡선미와 서양적
직선미가 잘 조화된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12개의 창이 있는 종탑부와 팔각형의
창을 낸 좌우의 계단의 돔은 성당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게 만드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전동성당 본당의 모습과 그 옆 사제관이 보인다. 사적 288호로 지정된 성당은 역사의 흔적과 풍상이 녹아있다.

성당은 아름다운 정원과 사제관, 성심유치원이 있는데, 정원 곳곳에는 성물과 순교 장면을 보여주는
조형물이 있어 한가롭게 거닐다 보면 이곳의 순교역사와 성당의 내력을 읽을 수 있다.

본당은 스테인글라스로 화려하게 보이는 창문과 정숙해야 할 것만 같은 엄숙함이 흐르는
둥그런 기둥과 벽돌 아치가 성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주춧돌은 화강암을 사용하였고 외부는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건축 당시 일제의 지배를 받던
시절인지라 애석하게도 전주읍성 풍남문 인근의 성벽 돌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붉은색 벽돌들도 헐린 성벽에서 나온 흙을 구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의 성벽의
돌로 서양식 성당을 건축했던 것. 한국적인 재료로 서양의 모습이 가득한 성당을 만들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한국전쟁 중에는 인민군이 성당을 전북 인민위원회 및 차량정비소,
보급창고로도 사용했고 1980년대 철의 통치가 시작되었던 암흑기에는 민주화의 성지로
많은 사람들의 집회와 결사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어두컴컴한데, 조각상이 안쪽에 들어있는 작은 전구의 불빛들이
그 어두움을 평화로움으로 바꿔주는 듯하다.
세상을 밝혀주는 작은 빛이 때론 강렬한 태양보다 더 따사롭게 다가올때도 있다.

옆에서 바라본 전동성당은 왠지 끼익 문이 열리며 신부님이 나올듯하다.
전주읍성의 성벽 흙을 구워 만들었다는 벽돌외벽이 오래된 건물임을 단박에 알려준다.
건물과 회색의 문은 좀 어울리지 않는것 같다.

지하 100m에서 나온다는 생수인 "치정생수"에서 바라본 전동성당.
어느덧 날도 어둑어둑해지면서 노오란 가로등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을 묵묵히 안고 있는 성당의 모습이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100여 년전 성당을 처음 이곳에서 지을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전동성당 본당 왼편에 있는 사제관도 그 건축양식의 독특함과 세월의 힘으로 유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서양의 귀족들이 살았던 대저택의 모습을 엿보게 만든다. 하얀옷을 입은 시종들이 나와서 인사를 할 듯하다.
지금은 순교성지이기는 하지만 여행객들에게는 평화와 안식을 주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200여년전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와 순교가 이루어졌고 백여년이 흐른 뒤에는 전주지역 교화의
본향이 되었기도 했던 곳. 하지만 지금 이 지역은 한옥마을과 오목대, 전주향교, 경기전 등으로
여행객이 걸으면서 전통과 예향을 느끼며 한정식과 비빔밥, 전통차와 국밥 등 전주의 맛과 멋을
한걸음에 깨닫게 해주는 전주의 중심거리이다.

성당이라면 대부분 하나씩은 보이는 마리아상은 온화한 얼굴로 두눈을 감고 두 손모아 기도하고 있다.

마리아상 아래에는 치정샘물이 흐르고 있다. 마리아상을 보면서 기도드리는 수녀의 모습도 있다.

예수그리스도가 두팔을 뻗고 세상을 향해 모든것을 끌어안으며 평화와 화합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하 103m 암반을 뚫고 생수가 솟아 오르면서 이곳은 치정생수라 이름지어졌다.
또한 순교동상을 건립할 때에도 자연석 제단과 방주모양의 좌대가 발견되어 성지로서의 뜻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초하나를 매점에서 구입해 생수가 흐르는 곳 옆에 촛불을 켜봤다.
두눈 꼭 감고 인류와 나라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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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에서 내려 19번, 60번, 79번, 109번 버스를 이용하거나 고속버스, 시외버스를 타고
전주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5-1번, 5-2번, 79번 버스를 타도 된다. 터미널에서
전동성당이나 한옥마을로 바로 오는 버스는 별로 없으니 금암동까지 5분정도 걸어와서
풍남문행 버스를 타는것이 더 편할 듯 하다. 아니면 쉽게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함께 가볼만한 전주 인근의 성지

익산 나바위 성지.

익산 여산순교성지.

완주 초남이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