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주바다를 보다가 문득 사람들이 유난히 서성거리는 골목을 바라본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그닥 많아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제주항 안쪽의 건물들 사이의 골목에서 딱히 뭔가 특이해보이는 것도 없는 곳에 사람들이 빈번히 다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은 조금 의아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년여를 바라만 보면서 지내왔죠. 그런데 알고보니 그곳은 유명한 해장국집이 있는 골목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빈번하게 보였던 이유는 뱃일을 하거나 일찍 출근해서 아침겸 해장을 하려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동시에, 저는 이 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서부두 방파제가 멀리 보이고 몇걸음만 나가면 바로 바다가 있는 이 골목에 그닥 유별나지 않은 외관의 해장국집이 있습니다.
메뉴랄게 없이 딱 하나.. 해장국입니다. 거기에 막걸리와 소주.. 해장술이라는 딜레마스러운 단어가 문득 떠오르네요..^^
옆은 의자와 식탁이 비치되어 있고 이렇게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주문을 하면 사람 수에 따라 소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알싸하게 매운 고추.
김치는 바로 옆 스텐레스 통에 들어있어요. 제 상위의 것은 거의 다 먹어가네요.
자.. 해장국이 나왔습니다. 배추, 파, 콩나물과 부담스럽지 않은 다대기가 보입니다. 다진마늘은 취향에 따라 양을 조절하여 넣어먹도록 따로 내어주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직접 올려서 내어주셨네요.
잘 섞어서 먹다보니 이렇게 먹음직한 고기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 집 해장국은 대체로 시원하고 담백합니다. 오래된 집의 특성상 내공도 느껴지구요. 딱 이거다 하는 느낌은 없는 것 같은데 은근한 기운도 느껴집니다. 아쉬운 것은 한우가 아닌 호주산으로 국물과 고기를 만드는 것이지만, 먹다보면 그런 아쉬움도 금방 사라지게 됩니다. 손님들도 적당히 채워지다보니 북적거리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은근하고 꾸준하다는 느낌이 맛에서도 분위기에서도 함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다 비운 그릇좀 올리지 말아달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ㅎ 그냥 올리렵니다. 다 먹고 만족스럽게 나옵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속도 든든하네요. 그렇게 든든하게 먹고 바로 옆의 바닷가를 거닐다가 산지천을 따라 올라가 커피한 잔 하고 병원으로 돌아오는 점심시간 나들이는, 어쩌다가 한번씩 즐기는 저의 일상이기도 합니다. |
출처: 칼을 벼리다. 원문보기 글쓴이: 민욱아빠
첫댓글 시원한 해장국은 바닥을 봐줘야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