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도시 앙코르와트
이영호
열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고 정확하다
여행을 통해서 삶의 활력소를 찾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구경하고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다.
이번 여행은 혼자 한번 떠나보자고 마음먹고, 먼저 아내 허락을 받고 어디를 가볼까 하고 생각 끝에 앙코르와트를 가보기로 했다.
2012년 10월 16일부터 10월20일(3박5일)까지 나는 동남아시아 캄보디아를 여행하기로 하고 여행사 예약하였다.
떠나기 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였다. 한국과 시차 2시간, 기후는 열대기후이며 주로 건조한 계절과 습한 계절로 나눈다. 10월은 건조한 계절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꼭 필요한 준비물은 달러 환전, 휴대용 우산, 카메라. 선글라스, 모자. 상비약, 책 두 권, 춘추복 한 벌 등이다.
10월16일 오후 6시 55분 대한항공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5시간 30분 만에 씨엠립 국제 공항에 도착,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호텔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10월 17일부터 현지 가이드의 인솔하에 일정에 따라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현장을 관람하고 느끼는 마음은 나를 흥분하게 하고 미궁 속으로 빠트린다. 밀림 속의 유산 앙코르와트의 건축 비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모습, 현대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많다. 나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대해 점점 궁금해진다.
앙코르는 왕조라는 의미고 와트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앙코르와트는 왕의 사원이다. 12세기 초에 앙코르 왕조 중 가장 풍요로운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 바르만 2세가 힌두교의 비슈누 신과 한 몸이 된 자신의 묘로 사용하기 위해 약 30년간에 걸쳐 완성한 석조사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교건축물로서 옛 크메르 제국의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 가장 잘 표현된 유적이다. 그 당시 크메르인들의 발전된 건축공학 기술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인공 저수지를 만들어 광대한 해자(垓字)와 조각품으로 둘러싸인 사원의 석탑은 크메르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1층 회랑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 가파른 3층까지 올라가 보았다.
사원의 천상 정렬과 정교한 조각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번성했을 시의 왕이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 많은 사람과 코끼리가 혹사당했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 16세기 이후는 불교로 개종되었다.
밀림 속에 숨어 있었던 천 년 전의 유적 앙코르와트가 19세기 중반 프랑스 고고학자 앙리 무오(Henri Mouhot)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신들의 도시 우주 중심 신이 머무는 곳, 앙코르 왕국,그 당시 인구 백만 도시가 신의 저주를 받았는지 흔적을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 미스터리다.
신의 도시 앙코르와트를 찾아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세계의 사진작가, 예술가들이 해가 앙코르와트 위로 뜨고, 지는 황금빛 하늘을 배경으로 한 사원의 멋진 모습을 찍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며, 일출과 일몰을 기다리는 모습 또한 볼만한 광경이다.
수리아 바르만 2세가 세상을 떠나고 그 이후 자야바르만 7세가 크메르 왕국을 건설 문화, 종교의 최고 황금기를 이끌었다. 처음부터 불교식으로 바이욘 사원, 타프롤 사원, 앙코르톰 등이 만들어졌다. 12세기에서 13세기가 전쟁도 없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였다.
14세기 이후 참족과 주변국들과 세력다툼으로 잦은 전쟁으로 인해 점점 세력이 약해지면서 15세기에는 크메르 전쟁으로 16세기 이후 캄보디아는 멸망하게 된다.
그 외 벵맬리아 사원 등 많은 사원이 있지만 전쟁으로 무너지고 남아있는 사원도 스펑나무 뿌리가 신전을 감싸고 있고 거대한 신전을 무너트렸다. 한동안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도 했고 끊임없는 외세에 의해 혼란을 겪으면서 그 후유증은 지금껏 최빈국에 속한 가난으로 살아가고 있다.
톤레삽 호수, 수상마을과 수상가옥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보고 모든 것이 물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도 그들의 얼굴에는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킬링필드 기념관에는 유골들이 있다. 크메르루주의 캄보디아 대학살과 현대사의 처참한 비극을 엿볼 수 있다.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이 왜 멸망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주변 신흥강국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막강한 경쟁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내적으로 무능한 지배자, 후퇴하는 사회경제로 인해 무너지게 마련이다.
현재 캄보디아의 공식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 정치형태는 입헌군주제로 총통이 권한을 가지고 왕은 상징적인 존재다. 95%가 불교를 믿는다. 수도는 프놈펜, 국기에는 앙코르와트가 그려져 있다. 캄보디아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36년간의 강점기 생활과 6, 25로 남북이 갈라지는 근 현대사를 뒤돌아보게 된다.
3일째 되는 날 하루 일정이 끝나고 저녁 식사 때 가이드가 옵션 선택사항으로 모두 버스로 함께 마사지를 받겠다고 가는데 나는 빠지고 버스에 혼자 머물겠다고 하니 가이드가 나를 근처 사우나탕에 들어가 있게 배려해 주었다.
샤워하는데 옆에 치료용 물고기(doctor fish) 코너가 있어 발을 담그고 있으니 물고기들이 내 발에 붙어 따가울 정도로 나의 발가락 사이를 물어 뜬는다. 나는 발에 무좀이 있었는데 나중에 귀국해서 보니 무좀이 없어졌다. 여러 해 동안 갖가지 방법과 약을 썼는데도 잘 낫지 않던 무좀이 깨끗이 없어졌다. 효과를 본 것이다.
군중 속에 고독을 느끼듯이, 나를 바라보고 앞으로의 삶을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해 관광 일정이 끝나면 호텔 일인용 숙소에서 책을 읽고 시간을 보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늙어가는 노인이 될수록 고독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고독은 자신과의 싸움이자 화해하는 과정이다. 여행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2012.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