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김조민
저 늪에는 파란 눈물이 고여있다.
하늘이 내려와 둥지를 틀고
물푸레나무들이 옹기종기 이끼의 발을 담그는,
저 늪의 파란 잉크에서 산란하는 잉어는
모래의 여자*를 닮았다.
메마르게 서걱이는 갈대도 저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몬순의 구름을 몰고 와 발뒤꿈치를 적시며
몸의 균형이 흔들리는,
늪의 둔덕에 앉아 우두커니 초록의 파장을 지나는
소녀를 바라본 일이 있다.
긴 강물의 흐름에서 벗어난 외톨이 미아가 흘리는 젖은 서신
어깨 툭 치는,
그 소녀의 늪에 갇힌 잔물결 ,소년이 된다
*모래의 여자 – 아베코보의 소설
<해설> 이인평
시를 신비롭게 이끌어 가는 격조를 갖추고 있네요, ‘늪’을 동화의 영상처
럼 접근하면서 아직 때 묻지 않은 청순한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재능이
돋보이는 것은 화자가 추구하는 십상의 방향이겠지요. 읽는 이로 하여금
복잡한 세상이 아닌 아주 낯선 곳, 그러면서도 정말 만나고 싶었던 장소를
가리키면서 말이지요. ‘파란 눈물’ ‘파란 잉크’ ‘초록의 파장’ 이 주조를 이루
고 있는 가운데 ‘물푸레나무’ ‘이끼’ ‘잉어’ ‘종자 씨앗’ 등이 어우러진 늪이
바로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이러한 풍경을 지닌 순수한 소녀에게
빠진 곳이 바로 늪인 것이지요. 시어의 배열과 이미지의 배치로 볼 때, 화
자의 심상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순간 시의 전체상이 한 폭
의 신비로운 그림처럼 밀려오네요. 상상력을 언어를 통해 새로운 풍경으
로 제시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작업인지 알 것 같아요. 한 편의 시
를 완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언어를 물고 늘어질수록 마침내 얻어질 수
있는 수작秀作의 기쁨을 공감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