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블로그가 휴면상태고, 이 글은 의자놀이 논란 관련한 것이기에 여기에 올립니다. 이 글은 단행본 작업을 하다가 중단된 원고인데 출판사에는 보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결국 출간은 못되었지만 이미 지난 10월에 완료해서 보낸 것임을 밝힙니다.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11월5,6일 이 글에 나오는 인터뷰이이기도 한 백원담 선생이 트위터에 공작가와 나눈 대화를 올리면서 "...한예로 희망식당하던날 이선옥이 공지영등 우리랑 일하고 인터뷰했다고 했던가? 아이패드들고 손님와도 자리차지만했던 이선옥ㅠ 그날 이선옥이 사진좀 찍으라 해서 찍었더니 바로 트윗에 올라온 멘션하고는 이렇게 웃고 놀 시간없이 일해야지였던가? 팩트란 게 뭡니까? 진실 아닌가요? 사람 이렇게 우습게 만들고도 쌍차노동자들 앞에 또다시 몹쓸 사람 만들고 싶을까"
라는 글을 올리셨고(지금은 지웠습니다) 다시 한 번 재차 올린 글에는 공지영씨 말을 빌어 "이선옥이 그 희망식당서 일은 안하고 아이패드만 만지던 사람"이라는 말을 또 올렸기 때문입니다.
백선생께서는 공지영작가가 이선옥을 몰랐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의도라면 설사 그런 말을 했다 해도 "희망식당서 봤던 그 사람이구나, 몰랐네" 정도로 표현했어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 번 했던 말을 지웠다가 다시 저 대목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제가 받아들이기에, 저런 가십같은 얘기를 얹어서 제가 희망식당서 일하지 않고 놀았다는 식으로 제 도덕성을 흠집내려는 걸로 받아들여집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런 말들이 무척 지칩니다.
누군가는 집요하게 말꼬리 잡는다고 또 비난하겠지만, 그래도 감수하고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루 일하러 와서 잠시 본 광경으로 상대방에 대해 너무 쉽게 말을 뱉고 재단하는 그 행동 때문입니다. 그게 지인들끼리의 사담이면 문제될게 없지만, 공적으로 내뱉을땐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루 와서 일하고, 잠시 지켜본 사람이 계속 그 자리에서 오래 전부터 일한 사람 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저는 의자놀이 사태에서 다른 이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아 문제가 된 그 인식과 같은 일관성을 봅니다.
아래 붙인 원고는 그 날치 제 노동의 결과물입니다. 저는 그날 희망식당의 관리자였고, 희망식당 단행본을 준비하면서 그날의 명사 호스트였던 세 분을 인터뷰하기 위해 기다렸으며, 트위터 홍보를 하면서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발표되지 못하고 지금 쓰일 곳을 찾고 있는 미발표 원고를 여기에 굳이 붙인 이유를 구구히 적었습니다.
<공지영, 백원담, 이보은>: 희망식당을 서울의 명물로 만들어야죠
공지영 작가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이보은 요리 전문가 - 쿡피아 요리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 중
아주 절친한 세 명이 있다. 한 사람은 작가, 한 사람은 교수, 한 사람은 요리연구가다. 이들의 공통점은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 만드는 일도, 맛있게 먹는 일도, 남에게 먹이는 일도 모두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이니 의기투합해서 희망식당을 찾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과 희망식당이 원하는 것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거 나누면서 즐겁게 사는 바로 그런 삶 말이다. 공지영 작가는 원래 희망식당 2호점 개업 날 첫 호스트로 예약되어 있었다.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미뤄졌는데, 마침 단짝인 세 사람이 함께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흔쾌히 승낙했다. 백원담 교수는 이미 온 가족을 동원해 써빙과 설거지를 한 바 있고, 요리연구가 이보은님은 친구들과 밥을 먹고는 큰돈을 내고 가기도 했다. 따로 또 같이, 셋 모두 이미 희망식당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쁜 분들이라 날짜 잡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기꺼이 희망식당을 위해 뭉쳤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삼십년 지기인 백원담 교수와 공지영 작가, 2년 전 트위터에서 만나 30년 지기 못지않은 우정을 나누게 된 이보은 씨, 이들이 뭉친 그 날은 흡사 희망식당의 잔칫날이었다.
이들은 각자 앞치마를 들고 일찌감치 식당에 도착했다. 앞치마까지 준비해 온 호스트들은 또 그녀들이 처음이었다. 트위터의 친구들이 쉴 새 없이 찾아왔다.
그날의 메뉴는 콩국수. 단출한 메뉴였지만 그녀들의 열심 홍보와 정성 넘치는 서비스 덕에 콩국수는 순식간에 가장 훌륭하고 화려한 메뉴로 변신했다.
공지영 작가는 허리춤에 전대를 두르고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면서도 손이 잠시라도 쉴 참이면 열심히 희망식당을 알렸다. 손님들과 사진을 찍고, 계산대에서 얘기를 나누고, 이리저리 살피며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일했다.
오십이 다 돼서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게 너무 즐겁다고 했다. 지금 대통령한테 정말 감사하단다. 만약에 노무현 정부나 예전 시대에 살았다면 얼마나 민주주의가 고마운 줄 몰랐을 거고, 노동자들에게도 관심을 안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좋은 분들 많이 알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지금 대통령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정말로 감사하단다. 우리가 이렇게 연대할 수 있었던 게 그의 덕이란 의미에서.
그녀는 여러 차례 감사하다고 했다. 사람은 많고 음식은 더뎌서 많이 기다려야 하는데 불평 한마디 없고, 자리가 모자라면 스스로 합석을 하고, 어린 학생들이 없는 돈을 털어서 2천 원이라도 더 얹어주고 가는 걸 보면서 진짜 사람들 마음이 이쁘다고 생각했다.
일 때문에 중간에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던 이보은 씨는 직접 만든 오징어 숙회와 이런 저런 음식들을 싸들고 다시 돌아왔다. 일하는 사람들과 손님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여럿이 함께 온 테이블에 그녀의 음식이 건네지니, 한 손님이 얼마 전 많이 아팠을 때 그녀가 만들어 보내준 음식을 먹고 나았다며 증언을 한다.
그녀의 음식을 먹어 본 사람들의 증언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 먹을 걸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는 희망식당 이전부터 이미 정을 나누고 있던 사람이다.
나눠먹기 좋아하는 요리 전문가 앞에 음식을 내는 건 긴장되는 일이다. 희망식당의 아마추어 셰프들의 요리가 어쩌면 어설퍼 보였을 수도 있는데, 그녀는 음식걱정보다 과연 오늘 식당이 잘될까 그게 걱정이었단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허술하게 나가는 음식이지만 음식보다 ‘마음’을 먹고 간다는 손님들의 얘기를 듣고, 남을 위해 봉사한 오늘 하루의 경험이 굉장히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국수 하나로 이렇게 많이 매출을 올렸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역시 힘을 모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쉴 틈 없이 일하고 하루치 정산을 마쳐보니 사상 최고 매출 기록이 나왔다. 일제히 박수를 쳤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그녀들 모두 얼굴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한산한 시간에 혼자 와서 먹고는 5만 원 씩 내고 가던 분들에게 감동하고, 전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희망식당에 꼭 오겠다고 말하는 것에 희망을 느끼고, 노동운동에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다갈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백원담 교수는 그냥 성금 좀 내라고 하던 기존의 방식보다 밥을 같이 먹고 나눈다는 의미의 희망식당이 더 진일보 한 것이라고 평했다. 모두 맞장구를 쳤다. 계속 발전시켜서 서울의 명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오고, 시민운동의 하나로 계속 전통을 이어갔으면 하는 의견도 나오고, 그럴듯한 사업구상이 즉석에서 이뤄졌다.
이보은 씨는 자신이 희망레시피를 만들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받아 백원담 교수는 희망식당이 밥을 나누는 곳이니, 콘서트나 대담 같은 여러 형식으로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한지, 이런 고민들까지 나아가면서 자연스레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밥으로 삶을 나누는 희망식당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한 콩국수를 모두 팔고 영업을 마친 후에도 식당은 한 동안 사람들의 온기로 훈훈했다. 그녀들의 친구들이 찾아왔고, 아직 자리를 파하지 못하고 남은 손님들도 풍성한 안주를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게 바로 희망식당이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나누면서, 즐겁게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그런 여유. 사람이라며 누구나 그런 정을 그리워하고, 관계 속에서 안정과 평안을 누리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을 테니까.
세 절친들 덕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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