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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ief's Diary-
21.유적 탐험기.
안개.
안개는 마치 눈과 같이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다. 따뜻한 태양 빛마저 뒤덮어 버리는 안개 속에는 항상 사람과 대지와 나무가 있고, 그 속에서 안개는 풍경을 만든다. 어디 풍경뿐이랴. 안개가 끼는 날에는 항상 그 날만의 소리와 느낌과 향기가 있다. 음침하지만 아름다운 새소리, 아늑하고 조용한 느낌, 안개 특유의 싸늘한 향기.
"으으~. 썰렁하네."
"그러네요. 안개 때문에 그런가?"
그런 안개 낀 숲길을 걸어가던 레이렐이 살짝 몸을 떨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라피노도 손을 비벼대며 대답했다. 여름이 아직 다 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아서 그런지 유난히 쌀쌀하기만 한 날씨였다. 피레체는 춥다고 가방에서 긴 팔 옷을 한 벌 더 껴입기도 했다.
"이런 안개가 매일 이런 곳에 있다니. 땅덩어리가 좁고 호수가 많은 것도 아닌데."
또 다시 이어진 레이렐의 말. 그 말에 디에마는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라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국토 안. 그런 국토 안에는 재미있게도 호수가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고, 산지라고 해 봐야 수도 뒤쪽의 조그만 산맥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나머지 지역은 숲 아님 드넓게 펼쳐진 평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대부분은 매일 안개로 뒤덮여 있다. 바다에서 생긴 안개가 바람에 밀려 이 곳으로 오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몇 번은 태양이 비춰야 정상이 아닌가. 이건 사시사철 안개만 끼니...
문득 디에마는 자신을 바라보는 조그만 시선을 느끼곤 그 쪽을 바라보았다.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디에마를 바라보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세라프였다. 세라프는 디에마의 심각한 표정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디에마, 무슨 일 있나요?"
"아, 그냥...짙은 안개가 매일 계속되니까."
"아아, 그것 때문에 그랬군요."
상당히 걱정했던 그의 일이 별 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자 세라프는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어두운 하늘. 세라프는 그 안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이상해요."
"뭐가?"
"이 안개는......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안개가 아녜요."
"에? 그런 것도 알 수 있나요?"
피레체의 대답에 세라프는 싱긋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레이렐에게 눈을 돌렸다. 레이렐도 그렇게 생각하죠? 하는 듯한 표정으로. 레이렐 자신도 레즈니오에 왔을 때부터 안개에 이유 모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는 그녀에게 똑같은 미소로 화답할 수 있었다.
따라 웃던 세라프가 고개를 돌리자 다시 일행 사이엔 여행의 가벼운 침묵이 감싸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세라프는 뒤따라가던 디에마를 붙잡아 일행과 거리를 벌린 뒤 그에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디에마는 세라프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몰라 당황해 할 뿐이었다.
"...왜 그렇게 당황해 해요?"
"아니, 음, 저, 그러니까......하여튼 왜?"
"이번 마을에 디에마 씨가 찾는 것이 있지 않나요?"
"응? 벌써 그렇게 됐나?"
"......아닌.....가요?"
그 말에 디에마는 자신의 품에서 지도를 꺼내었다. 커다란 세계 지도. 유려한 곡선과 직선들로 이루어진 지도에는 중간중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는데, 세라프가 손을 짚은 곳 오른쪽에 그려진 조그만 마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 말이 맞는 모양이군."
"여태껏 모르고 있었어요?"
"하하, 미안."
디에마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여기 3인 실 두 개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올라가요, 레이렐 님."
온통 안개와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도착한 일행. 그 한 곳에 자리잡은 여관 안. 어느새 낭랑한 목소리의 소녀에게 열쇠를 건네 받은 라피노가 일행을 향해, 정확히 레이렐에게 그렇게 말을 하자 레이렐은 고개를 끄덕이곤 라피노를 앞세워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열쇠를 각기 남자 방, 여자 방으로 나눈 일행은 그들의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레이렐과 피레체는 자기 방에 있는 침대에 풀쩍 뛰어올랐지만.
"꺅! 먼지 올라오잖아, 피레체~~!"
"맞아요. 좀 얌전히 올라가라구요~!"
"그렇게 하면 침대가 얼마나 푹신한지 모른단 말야~."
옆방에서 여자들의 요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라피노와 디에마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넌지시 레이렐을 바라보았다. 레이렐은 침대에 달라붙은 채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디에마의 시선이 한층 더 강렬했으니......
"에효~. 누구는 침대에 엎어져 자고, 누구는 괴롭게 짐이나 풀고 있고......"
"디에마, 나보고 그런 거냐?"
"맘대로 판단해라."
디에마는 그렇게 꼬집으면서, 내려놓았던 짐들 중 직사각형 기다란 케이스를 들었다. 라피노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가 그것을 들고 나가려고 하자 기어이 입을 열었다.
"또 일하러 가시는 건가요?"
"그래. 이 동네에 좋은 곳이 하나 있다고 했거든."
좋은 곳이라......그가 말하는 좋은 곳이란 장소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지만 그의 직업을 고려하자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유적을 말하는 것이리라.
쾅쾅
"세라프! 얼른 나와~!"
"네에~. 지금 나갈게요~. 데아 씨, 제것도 좀 정리해 주세요. 알았죠?"
"에? 저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크게 대답한 세라프가 데아에게 그렇게 부탁하고 홀라당 나가 버리자 문 너머로 데아의 불만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세라프는 디에마와 같이 나가면서도 그녀에게 미안한 듯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의 안개는 정오가 지나고 오후가 다 지나가도록 사라질 줄 몰랐다. 아니, 어떻게 보면 더 맹렬한 기세로 마을을 덮고 있는 듯도 했다.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태양이 이제는 아예 윤곽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어떤 곳엔 길가의 마법 구를 켰지만 마을 전체를 비추기엔 너무나도 어두운 불빛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번 마을보다 밝고 활기찼다. 어느 마을에나 그렇듯 작은 시장에는 물건을 팔려는 사람과 그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고, 시장 한 구석에서 재잘거리는 여자들과 한번쯤 세라프를 보고 지나가는 남자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자들이야 떠들지만 남자들이 세라프를 한 번쯤 보고 지나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을 끌어들이는 외모와 아름다움에 그녀를 한 번쯤 보고 지나가는 게 그 이유였고, 혹자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긴 천사니까...그것도 치천사.'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디에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기를 머금었다.
복잡한 시장을 지난 그들은 어느덧 한적한 숲길에 다다랐다. 숲이라고 해 봐야 여태껏 걸어 온 숲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울창한 침엽수림과 그 뒤를 감싸는 안개. 시즈트에서 보았던 요상한 나무는 활엽수와 침엽수가 합쳐진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고대 누군가의 진화론이 진실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일 것이다. 디에마는 그런 씁쓸한 생각을 하며 지도를 따라 숲을 헤쳐나갔고, 이윽고 그들은 커다란 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유적은 여느 유적과 마찬가지로 동굴의 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동굴의 입구 좌우는 돌로 만들어졌는지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깎여서 표면조차 알 수 없는 석판이 놓여 있었고, 입구에서 몇 발짝 안쪽에는 거대한 돌덩어리와 함께 뭐라고 쓰여 있는 철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세라프는 철판을 보자마자 그 곳으로 들어가 철판을 읽기 시작했다. 엄청난 세월이 지났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철판은 상당히 깨끗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 곳은......군사시설이니......들어가는......사람은 처한다, 엄벌에, 그리고......"
"세라프, 됐어."
더 읽어보려던 세라프를 가로막은 디에마는 얼굴 가득 미소를 그렸다. 고대 군사시설이라.......대(大)고대의 피라미드보다는 더 가까운 때인 것만은 틀림없을 테지. 게다가 군사시설이라면 필시 그 안은 무척이나 요란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디에마는 세라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입구를 막고 있는 돌덩이를 날려버리라는 부탁이었다.
콰아앙 후두둑 후둑
고대 유적의 빛을 받기 시작하자 디에마는 여태껏 들고 다니던 기다랗고 하얀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것을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아무렇게나 분리되어 있는 트럼프카드와 탄창이 자리하고 있었다. 디에마는 품에 탄창을 넣고 총을 조립했다.
"자, 일을 시작하자."
어느새 총을 다 조립한 디에마가 앞장서서 들어가기 시작하자 세라프는 조그만 빛의 구슬을 만들어 디에마 앞에 세우곤 곧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동굴 안은 인공적으로 만든 듯 네모 반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좌우 위쪽, 그리고 아래쪽에는 이미 깨져 버린 검은 불빛이 번뜩였다. 게다가 바로 양쪽 벽면에 그려져 있는 길다란 줄들. 중간중간 떨어지는 돌가루와 언제 절단된 건지 모르는 두꺼운 선들......
"좀 으스스하네요."
"그러게."
세라프의 말에 디에마가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뭔가가 나올 듯한 분위기였다.
이윽고 그들은 세 갈래 길, 아니 일행이 온 데까지 해서 전부 네 개의 길 이 갈리는 곳에 도착했다. 일행이 온 곳은 굳게 문으로 잠겨 있었으나 세라프의 마법으로 그것들이 스르르 밀려나자 그 뒤편으로 조그만 방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세 갈래의 실은 모두 방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형태였고, 방구석 한곳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작은 유리 방이 있었다. 유리 방이라고 하지만 자리는 하얀색 뭔지 모를 재료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얀 구슬을 앞세우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입구인가?"
"그런 것 같네요. 아, 여기 지도가 있는데요?"
세라프는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빛을 발하는 오래된 지도를 발견하자 그 곳으로 달려가 지도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유리액자에 들어가 있는 커다란 종이는 몇 천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헤질 대로 헤졌지만 다행히 액자 속에서 꿋꿋이 버텨 왔는지 건물의 외형과 모습은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디에마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지금은 고급 건설재료로 쓰이는 유리가 고대엔 너무나 흔한 물건이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조상들이 건설해 놓은 문명은 얼마나 위대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느님, 이 지도가 영원히 제 기억 속에 남아 있기를......자, 어딜 갈까요?"
잠시 메모라이즈 계통의 마법을 시전한 세라프가 친근하게 되묻자 디에마는 잠시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화장실? 격납고? 창고?......아, 상황실.
"혹시 상황실이나 통제실, 그런 데가 있어?"
"상황실하고 통제실이요? 으음...어디 있더라.......아, 여기 있다."
세라프는 액자의 어느 한 부분을 짚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 곳은 일행이 있는 곳 바로 위쪽 길 끝에 있었다.
"이 길로 쭉 가면 되요."
"좋아, 들어가자."
그렇게 의견을 본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동굴이라 생각되지 않는, 지하 깊숙한 건물 안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건물은 피라미드 같은 조그만 함정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나 그 전에도 들렀던 대 고대 유적처럼 시체가 썩는 퀴퀴한 냄새도 없었다. 그러나 디에마는 심리적으로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 고대의 유적들은(그러니까 '대'고대가 아닌 유적들은) 아무런 위험 요소도 없었지만 그것들이 내재하고 있는 위력은 정말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한 트레져 헌터가 거대한 화살 모양의 철제 무기를 총으로 쏘는 바람에 그 일대가 다 날아갔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도 고대에 각광받고 있던 '핵'의 힘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총이야 집어넣으면 만사형통이지만 이 곳에서 낮선 경비병들이 있다면.......어쩔 수 없이 총을 내갈겨야 할 테지. 디에마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수북히 먼지가 쌓인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러던 일행은 곧 T자 모양의 복도에 다다랐다. 복도 좌우는 몇 미터도 가지 못하고 앞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있었고, 일행이 있던 복도의 끝에는 굳게 닫힌 미닫이문이 있었다. 세라프는 여기라는 듯 손을 뻗어 문을 가리켰다.
"으음......전자식인가?"
디에마는 문 오른쪽 위에 달린 조그만 물건과 문 옆에 숫자들이 쓰여져 있는 조작판들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마도 저 조작판에 숫자를 입력해야 하는 것 같지만 전기가 끊긴 지금 이러한 장치들은 전부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결국 그 문도 세라프의 마법으로 인해 뱃속에 훤한 구멍을 드러내야 했다.
"우와~."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온 세라프가 탄성을 내지르자 디에마는 그녀의 뒤를 따라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한층 더 커다란 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의 끝에는 거의 4~5m는 족히 될 만한 화면이 자리하고 있었고 복도에서 방 끝까지 계단식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는데, 그 계단 계단마다 조그만 화면 기계들이 일렬로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이 곳이 상황실인 것 같은데......
뚜벅뚜벅
디에마가 방 맨 뒤쪽에 있는 화면기계에 가까이 다가가자 세라프는 잠시 그 곳을 바라보다가 디에마의 뒤를 따라갔다. 디에마가 찾아낸 그 기계에는 수많은 버튼이 늘어서 있는 타자기가 여러 개 놓여 있었고, 화면 기계 왼쪽에는 동그란 열쇠 구멍이 있었다. 이것이 아마 통제 기계이리라...그렇게 점찍은 디에마가 세라프를 바라보자 그녀는 디에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곤 그 열쇠구멍에 손을 가져대었다. 그리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하느님, 이 열쇠에 봉인된 고대의 기억을 제가 열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조금 긴 주문. 그리고 한 줄기의 빛. 그와 함께......
우우우웅
.......그 방에 있던 모든 화면기계들이 붉을 밝히며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기계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펑,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지만 대부분의 기계는 북북 대는 소리를 내면서도 열심히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의 커다란 화면에 불이 켜지자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은 유적이었다.
"시스템 부팅, 체크 더 시스템 스테이터스, 파인. 메인 컴퓨터 온라인.(System Booting, Check the System Status, Fine. Main Computer online.)"
"장치 켜는 중. 장치 상태 확인. 상태 좋음. 중앙 기계 작동."
세라프는 고대어를 줄줄 해석해 디에마에게 알려주었다. 디에마는 왠지 알 수 없는 용어들이 쏟아져 나옴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세라프를 바라보았다. 유적의 글자를 줄줄 해석할 줄 알고 마법도 사용할 줄 알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그녀를 데려온 건데...그녀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세라프, 으음...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잠깐만요."
세라프는 자기 앞에 있는 오래된 타자기에 자신의 손가락을 올려놓고 능숙하게 그것들을 누르기 시작했다. 조금 둔탁한 소리가 웅웅거리는 방의 내부를 메우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탁 탁 타악
마지막으로 세라프가 타자기 중에서 제일 큰 버튼을 누르자 앞에 있던 커다란 화면이 바뀌면서 또 다시 고대어로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세라프는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으음......뉴클리어(Nuclear)......핵무기 관리소인데요."
"핵?"
"네. '핵'이요."
핵. 고대에 발견된 에너지원. 사용하기에 따라 이점을 주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는 힘. 이익을 줄 때는 세상은 아름다운 빛과 소리로 천국을 만들지만 악용될 경우 거대한 구름과 함께 세상엔 불꽃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영혼으로 지옥이 된다고, 한 고문서에서 읽은 적이 있는 디에마의 얼굴엔 희비가 교차했다. 이런 위대한 힘을 발견했다는 기쁨과 함께 핵의 공포와 두려움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바스락
디에마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꺼내었다. 종이에는 '목표=중앙기기'라고 적혀 있었다. 디에마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세라프에게 다른 부탁을 했다.
"중앙 기기의 위치는?"
타타탁 타탁 타악
"......지하 3층 중앙."
"좋아. 가자."
"네? 어? 디에마 씨~!"
갑자기 디에마가 총을 집어들며 밖으로 나가자 세라프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통제실에서 나오자마자 복도를 거쳐 투박한 모양의 엘리베이터에 도착했다. 몇 천년을 썩혀 있었을 낡은 엘리베이터엔 검은 녹 가루가 우수수 떨어질 것 같았지만 일행이 올라섰을 때와 디에마가 다급하게 버튼을 눌렀을 때, 그리고 천천히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까지도 그것은 낡은 마찰음만 낼 뿐 떨어지거나 고장나지는 않았다. 몇 번 고대유적을 다닐 때마다 엘리베이터라는 운송수단을 탄 적이 있는 디에마와 세라프는 침을 꼴깍 삼키며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지하 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디에마는 뒤에서 세라프가 알려주는 대로 복도를 내달렸다. 그의 머리에는 이 유적의 핵심 부분과 그 곳에 있을 뭔가를 찾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커다란 철문에 도착했고, 다시 한 번 세라프의 마법으로 문안에 들어선 그들은 거대한 탑처럼 우뚝 솟은 어떤 기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계로 된 탑. 짙은 색의 갖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탑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연신 웅웅대는 소리가 요란했고, 그 중간 중간에는 두꺼운 줄이 탑과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높이는 상당한 듯 그 끝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통 보이지 않았고, 반면 그 중앙 기계의 상태를 알려주는 화면 기계와 그 화면기계 위에 박혀 영롱한 빛을 내뿜는 하얀 다이아몬드는 마치 곰 앞의 개미처럼 탑에 비해 너무 작아 보일 뿐이었다. 디에마는 화면 기기와 그 뒤의 기계에 박힌 보석에 가까이 다가갔다.
"시스템 온도는 20도. 메모리 128테라바이트, 현재 사용중인 메모리 2.4테라바이트. 오프라인 상태. 온라인 허가를 기다리고 있음......"
화면기기의 글자들을 해석하고 있는 세라프를 뒤로 한 채 디에마는 보석에 가까이 다가갔다. 투명한 다이아몬드 위에는 그것을 가로지르는 녹색 띠가 둘러져 있었고, 노란색 바탕의 느낌표 마크와 함께 고대어가 하나 적혀 있었다.
"세라프, 그거말고 이거 읽어 봐."
세라프는 자리에서 벗어나 졸졸졸 다가오더니 고대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에게 말해 주기 시작했다.
"......이것을 빼지 말 것."
"......그게 다야?"
"네."
빼지 말 것, 이라...꽤 간결하게 축약했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큰 거였다. 이것을 빼면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뜻에서 그 뒤에 일어날 말들을 적지 않을 수도 있고, 게다가 간결하게 적음으로써 경고의 의미를 증폭시키려 한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꼭 정말 빼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그러나 디에마는 그것을 잡아당겼다. 초록색 띠만 아니었더라면 어딜 가든 두둑하게 값을 받을 수 있는 크기의 다이아몬드였다.
그러나 디에마가 그것을 주머니에 넣을 때였다.
"워닝. 시스템 셀프 디스트력션 스타트. 카운트 다운, 투 미니트.(Warning. System self destruction start. Count down, Two minute.)"
"......경고, 시스템 자폭 시작. 2분 남음...?!"
탑에서 웅웅거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그 상태를 보여주던 화면 기계의 글자들도 '경고'라는 문구로 바뀌어 버리자 일행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빛은 붉은 색으로 바뀌었지만 몇몇 전구들은 퍽, 소리를 내며 깨져 버렸고, 시스템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폭'이 분명 좋은 뜻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쳇, 제길! 이것에 그런 함정이 있을 줄은...!"
"함정이 아네요, 우리가 잘못한 거라구요~!"
둘은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시간은 그 일말의 중얼거림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자꾸만 흘러갔다. 뒤에서 '원 미니트 피프티 세컨드(One minute Fifty second)'라는 소리가 그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엘리베이터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는 우웅,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엘리베이터는...
우우웅...쿠웅
"...?"
"...멈췄다. 젠장!"
철컥 카카카캉
디에마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트럼프 카드를 들어 네모난 모양으로 총을 갈긴 뒤 그 곳을 발로 차자 네모난 구멍이 만들어졌고, 세라프를 먼저 올려보낸 디에마는 곧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비상용 사다리를 통해 그들은 최상층에 도착했다
"하느님, 제 앞을 막는 장애물을 없애 주세요!"
이제는 다급한 마음에 세라프의 입에서 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엘리베이터의 문틈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렸고, 일행은 그 안으로 서둘러 뛰어들어갔다. 남은 시간은 원 미니트 텐 세컨드(One minute Ten second)...
"제길!"
디에마는 오던 길을 되짚어 입구로 뛰어가면서, 이런 귀중한 유물을 파괴하게 된 자신의 행동에 깊은 후회를 했다. 어쩌면 핵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통제실에 도착하자 통제실과 엘리베이터 사이가 상당히 멀었던 듯 시간은 단 10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인조 목소리의 주먹에 시간은 하나 둘 나가떨어지고...그들이 막 건물을 벗어나기 시작했을 무렵!
"쓰리. 투. 원. 커맨스.(Three. Two. One. Commence.)"
투콰앙 쿠구웅 콰과광
"윽, 시작됐다!"
계속 발걸음을 놀리면서 살짝 뒤를 돌아본 디에마는 거대한 화염이 동굴 안 가득 덮쳐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며 점점 발에 힘을 더했다. 그러나 동굴의 끝은 아직도 몰기만 했다. 내가 이렇게 깊이 들어왔었나?
콰콰콰쾅
"큭, 제길!"
불길이 걷히지 않는다. 잠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도 불꽃은 그 검은 입을 날름거리며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더 빨리 달리고 싶지만 날개도 없어! 제발, 이놈의 다리야, 더 빨리 달려라!!
펄럭
그때 향기로운 꽃내음과 함께 새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디에마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세라프는 동굴 안이 가득 찰 정도로 거대한 날개를 펴 그를 안아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하느님, 제게 묶어두셨던 가브리엘의 은총을 잠시 개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서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오더니 두 장이었던 그녀의 날개가 6장으로 늘어났고, 그녀는 6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동굴을 나오기 시작했다. 디에마는 자신의 발이 공기를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발을 굴렀으나 곧 그 움직임은 이내 사라져 버렸고, 그들이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콰콰쾅 퍼어엉
...엄청난 불꽃이 숲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아아...십년 감수했네. 고마워, 세라프."
"뭘요. 하나남이 잠시 저의 봉인을 풀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긴 금발을 휘날리며 밤하늘을 가르는 그녀를 보던 디에마는 평상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의 신성함이 이 시간엔 왜 이리 강렬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미소에 화답했다. 그리고 디에마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 그것을 바라보았다.
"앗, 따가워. 살살 좀 해, 라피노."
"아직 한참을 더 '기워야' 하는데 무슨 소리에요. 게다가 피레체 씨 덕분에 그리 아프지도 않잖아요."
여관 안. 늦게 들어온 디에마의 무릎께 상처를 라피노가 손수 꿰어주고 있었다. 이유야 별다른 게 있을까. 건물에서 뛰쳐나오며 그의 무릎께에 커다란 철 조각이 박혔는데, 그는 여태껏 그것을 모르다가 어느새 일을 끝내고 돌아온 레이렐에게 그것을 알아채곤 자신도 미처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철 조각을 빼고 살을 꿰는 동안, 그는 고통을 없애는 주문을 피레체에게서 받고 있었다.
"도대체 어딜 갔기에 이런 철 조각이 박혀요? 재질도 우수하고 강도도 강하면서 오래된 걸로 봐서.......고대 유적에 간 것 같은데?"
"유적은 맞아."
라피노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 크기의 철 조각이 박히려면 못해도...못해도...하여간 어디 위험한 데를 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리라.
"으휴~. 내가 왜 일행 바느질을 다 맡아야 하는 건지."
"참아. 라피노 오빠. 아니면 더 세게 찍던지."
"응? 야, 잠, 잠깐만!"
푸욱
"끄아악!"
데아의 비명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눈이 왔습니다. 여기 대전(정확히 말해서 유성구 원내동...)은 거의 60cm까지 왔습니다만, 다른 지역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지금 뉴스를 벗삼아 소설을 올리고 있는데-_-;; 러시아는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러냐, 관련당국은 뭐 하고 있느냐 하는 소리만 잔뜩하군요. 뭐 제가 보기엔 당국 탓하는 언론이나 당국의 변명이나 둘 다 짜증날 뿐이지만요. 하지만 진짜 폭설이 뭔지 실감했습니다=_=; 등교길, 출근길, 하교길, 퇴근길이 정말 전쟁을 방불케 하더군요, 눈과의 전쟁...저 같은 경우 산골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가기 위해 눈을 밟고 미끄러지고 엎어지고+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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