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폐기물 처리는 기후위기 대응과 도시 운영을 지탱하는 필수 공공서비스임에도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은 여전히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이 관리·감독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산재사망의 56.5%가 지자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2022년 1월~2025년 8월/이용우 민주당 의원실 1947개 기관 설문조사 결과), 다이옥신·중금속 등 유해물질 노출과 인력·안전 기준 미비와 같은 환경기초시설의 구조적 문제가 확인됐다.
이에 27일, 국회에서는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환경기초시설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법령 개정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이날 토론회는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과 기본소득당 노동·안전위원회, 여성환경연대, 전국환경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11월 27일,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방향 국회 토론회' ⓒ 여성환경연대관련사진보기
안전을 포기하는 현장
토론회에는 노동계, 여성계, 현장 노동자, 서울시 관계자가 참여해 각계의 견해를 밝혔다. 서울시 '자원회수시설 작업환경측정 및 근로자 건강영향조사'에 따르면,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하는 비율은 24%로,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이 발암물질이 묻은 작업복을 가정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토론회에서는 마스크 같은 기본 보호구조차 지급되지 않는 재활용 선별장, 민원 우려로 창문을 열 수 없는 음식물류 폐기물 처리장 사례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여한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은 "민원이 무서워 노동자의 안전이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된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이 많은 환경기초시설 특성상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이 의무가 아니므로, 현장별로 위원회를 설치해 노동자 의견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 중인 안현진(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 팀장)11월 27일,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방향 국회 토론회' ⓒ 여성환경연대관련사진보기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장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인도네시아 재활용 선별원의 소변·혈액을 분석한 결과, 카드뮴·납 등 중금속과 프탈레이트·페놀 등 플라스틱 유래 화학물질 23종이 검출됐다"며 "국내 재활용 선별 노동자의 94.8%는 여성으로(2024년 6월~7월, 여성환경연대가 전국생활폐기물 자원순환 시설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한 선별 노동자 77명을 조사한 결과), 내분비계 교란물질에 더 취약할 수 있어 공정별 위험요인과 성별 특성을 반영한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제를 맡은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서울시 4개 소각장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및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발표하며 "소각장 노동자는 다이옥신, 불화화합물, 중금속 등의 유해인자에 노출되며 특히, 설비를 수리할 때 고농도의 유해물질에 노출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측정 과정에서 포착되지 않는다"며 "소각장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퓨란류와 같은 물질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측정 목록에 빠져있다"고 제도적 허점을 지적했다.
박진덕 전국환경노동조합 위원장은 두 번째 발제에서 "환경기초시설 운영방침이 법에 명시되지 않고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침 단계에 머물러 있는 탓에, 지자체 재량에 따라 운영된다. 때문에 시설 용량별 인력 기준의 축소, 낙찰률·위탁 관행으로 말미암은 최저가 임금, 보호구·냉난방·휴게실과 같은 안전·복지 시설 미비, 제대로 된 평가 및 규제 절차 부재 등 직접적인 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조차 방치되고 있다"며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체계의 필요성을 밝혔다.
▲김양희(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11월 27일,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방향 국회 토론회' ⓒ 여성환경연대관련사진보기
안전·임금 후순위… 잘못된 구조부터 개편 필요
서정구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일반노동조합 창원시 지부장은 "정부 입찰 기준에 따라 최저가 낙찰률 87.995%가 적용되며 인건비, 안전 비용 같은 필수비용이 삭감된다"며 "민간위탁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책무를 외주화하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하 환경기초시설의 위험도도 논의됐다. '2024년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분석에 따르면 전체 화재 인명피해 발생률이 6.7%지만, 지하 화재는 12.9%로 두 배 가까이 높다. 지하는 침수 시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며 계단 외에는 대피 경로가 없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이에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 교수는 "환경기초시설은 가연물로 인해 화재가 빠르게 확산되거나, 악취·소음으로 재난인지가 늦어질 수 있어 일반 지하 시설보다 위험도가 높다"며 "피난계단 설치기준 강화, 방화구획 확보 등 지하시설의 안전성을 높이는 설계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장지훈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자원회수시설과 팀장은 "서울시 자원회수시설 근로자 건강영향조사 기준이 산업안전보건법의 특수건강검진과 작업환경측정 항목에 반영돼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1월 27일,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방향 국회 토론회' ⓒ 여성환경연대관련사진보기
재활용, 음식물, 소각, 매립, 공공하수를 비롯한 환경기초시설은 생활폐기물을 처리해, 시민의 일상과 생명, 환경을 유지하는 국가 핵심 공공시설 중 하나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각 분야의 노동현장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환경기초시설 공공성 명문화 ▲현장 인력기준의 법제화 ▲위탁 구조 개선 ▲안전·보건 기준 의무화 등이 핵심 과제로 제시되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의 필수노동을 수행하는 환경기초시설 노동자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
|